194화
그녀의 팔을 확인한 정우가 화들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 또한 놀랐으니 그의 반응이 이해된다.
‘…… 봉인 주문에는 제약이 따르는구나.’
두 개의 사슬이 그녀의 팔을 강하게 조이고 있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피부가 검붉게 보일 정도다.
“계속 참고 있었나요?”
정우의 질문에 리나가 밝게 웃었다.
“네.”
“…… 말씀을 하시지 그랬어요.”
“아무래도…. 제가 이 사실에 대해 말하면 천재 씨가 마음껏 싸우지 못할 것 같아서요.”
“왜요?”
“루시퍼랑 싸우게 되면 계속 사용할 텐데, 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이렇게 되는 걸 안다면…. 천재 씨가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말이 맞다.
제약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나는 저 스킬을 사용하자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계속 숨기고 있을 겁니까?”
“…… 네, 루시퍼와의 마지막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요.”
“그 지경으로 계속 스킬을 사용하면 끝나고 나서 죽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건 제 운명이겠죠.”
“리나 씨. ”
“정우 씨,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주세요.”
“……”
“제가 마나를 회복하러 간다고 하면 이 팔을 회복하러 간 거로 알아주시면 돼요.”
“……”
“그럼…. 믿고 있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리나가 옷을 추켜 입더니 대성당에서 나갔다. 정우는 그녀의 뒤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않았다.
다른 플레이어였으면 그냥 죽으라고 했을 텐데, 정우 녀석…. 저런 얼굴에 참 약하단 말이야.
나는 괜히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며 자리를 피했다.
‘씁쓸하네.’
대성당에서 나온 정우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와 마주쳤다. 녀석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는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손을 저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 그냥 와 봤지.”
“안에 들어왔었어?”
“아니, 대화는 다 끝냈냐?”
내 대답에 정우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마나 회복은 아직이래?”
“얼추 된 것 같아.”
“너 표정이 왜 그러냐? 뭐,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
“…… 야.”
“왜?”
내가 태연한 표정을 짓자 정우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아니다.”
“뭐? 말해.”
“아니라고.”
정말 말하지 않는구나.
역시 약속은 끝까지 지키는 놈이다. 내게도 말하지 않을 정도면 리나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데.
전장에서의 사랑이라니.
‘허허….’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 너, 혹시 희생 주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냐?”
“세크리파이스?”
“아니. 그냥 뭐…. 사용할 때 제약이 걸리는 주문들 있잖아.”
“알지, 나 네크로맨서잖아.”
“…… 혹시 제약이 걸리는 주문들은 그 제약을 없앨 수 없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정우는 저 질문에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 물어보았다. 그만큼 머릿속이 혼란스럽다는 말인데.
내가 고개를 크게 저었다.
“되겠냐?”
“…… 역시 안 되겠지?”
“당연하지.”
내 대답에 녀석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약은 왜?”
“…… 아니다.”
[시스템 메시지]
[현 시간부로 ‘제 4 마왕, 마르바스’가 탄생하였습니다.]
드디어 네 번째 마왕의 탄생이다.
첫 번째 마왕은 루시퍼가 될 예정이니, 그 외의 녀석들은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말했다. 마치 토라진 아이가 투덜대듯 말투가 던지듯 날아왔다.
“북문으로 가자. 지군 녀석 혼자 지키고 있잖아.”
“…… 너 뭐 불만 있냐? 계속 표정이 안 좋아.”
은근슬쩍 정우를 한 번 더 떠보았다. 이렇게 해도 내게 말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끝까지 모른 척하고 움직여야겠지.
“없어, 가자고.”
“…… 알았다.”
* * * * *
검은 알이 깨지며 성인 남성만 한 사자 한 마리가 나왔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몸에 갑주를 두르고 있었으며, 황금빛 갈기에 검은 오라가 일렁였다.
“…… 오랜만이군, 인간 세계의 공기.”
쓰으으으읍-!
사자가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내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시퍼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지옥의 대 의장이자, 제 4 마왕, 마르바스. 다시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
뿌드득.
마르바스가 고개를 꺾어 뼈소리를 내더니 루시퍼를 쳐다보았다.
“너는 뭐지?”
“나는 현 지옥의 마왕 자리를 맡고 있는 루시퍼라고 한다.”
“…… 루시퍼?”
“그래.”
루시퍼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마르바스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내 봉인을 푼 이유는 뭐지?”
“…… 무엇일 것 같은가?”
“질문은 내가, 대답은 네가 한다.”
“……”
“다시 물어보도록 하지. 내 봉인을 푼 이유가 무엇이냐?”
사탄이 둘 사이에 끼어들더니 언성을 높이며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었다.
“이 자식! 이 분이 누군 줄 알고.”
“루시퍼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 혼돈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네 놈을 꺼내주신 분이지.”
“…… 나는 너희들에게 꺼내 달라고 한 적 없다. 그리고 저 녀석이 나를 부른 이유는 뻔하지 않겠어?”
“뭐?”
“무언가 하려는데 힘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것이겠지. 안 그래?”
“……”
“하아-. 이런 미련한 놈을 부하로 뒀다니. 루시퍼, 너도 별 것 아닌 녀석이구나.”
그의 이야기를 듣던 루시퍼가 눈썹을 움찔거렸다.
“봉인을 푼 이유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고. 그럼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아니, 너와 할 이야기 없다. 나는 네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 마음대로 해라. 다만 이것만은 알고 있도록 해.”
“……?”
“네 형제인 메피스토펠레스와 가미긴의 영혼이 사라졌다.”
쾅!
마르바스가 갑자기 오라를 폭발적으로 뿜어 루시퍼를 위협했다. 사탄이 공간을 뒤틀 준비를 하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내 형제들의 영혼이 사라졌다고? 설마 그 둘도 네가 봉인을 푼 것이냐.”
“그래, 그리고 지금은 인간의 손에 의해 다시 봉인되었지.”
“…… 인간?”
“그래, 인간.”
인간이라는 말에 마르바스의 굳었던 표정이 천천히 풀어졌다.
“농담하는 건가.”
“농담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네 형제들과 같이 출전했던 악마들에게 물어보도록 해.”
루시퍼가 손짓하자 악마 몇 마리가 안으로 들어와 그에게 전장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어떤 인간이 어떠한 방법으로 두 마왕의 목숨을 앗아갔는지. 그리고 영혼의 행방은 지금 어떤 플레이어에게 향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전부 들은 마르바스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을 믿으란 말인가?”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차차 알아가면 되니깐.”
“…… 형제들의 영혼석은 아직 부서지지 않은 것이지?”
“아마도. 더 늦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
루시퍼의 답을 들은 마르바스의 표정이 굳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봉인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변해버린 이쪽 세계에 대한 정보는 부족할 테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마르바스가 루시퍼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내게 줄 수 있나?”
“…… 그럼, 쉽지.”
루시퍼가 손을 크게 휘젓자 공간이 뒤집히며 김천재와 그 그룹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비쳤다.
뒤로 보이는 전장을 보니 ‘폐허가 된 마을’의 한 장면이다.
마르바스가 그들을 보며 복수의 눈빛을 태웠다.
“저 녀석들이 우리 형제들을 잡았단 말이지.”
“…… 그래, 그리고 나와 당신까지 잡으려 한다더군.”
“인간 주제에….”
루시퍼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마르바스에게 다른 화면을 보여주었다.
누가 어떻게 촬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메피스토펠레스와 가미긴의 마지막 전투 장면이다.
김천재에게 어떻게 당했는지에 대해 나와 있다.
한 번은 아이언 메이든이라는 저주술에 당하고,
또 다른 한 번은 시체 폭발이라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정통으로 맞는 장면이다.
마르바스가 그들을 보더니 분통 터지는 얼굴을 지으며 땅에 주먹을 내질렀다.
쾅!
동굴의 지면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바람이 세어 나왔다. 얼마나 깊은 곳까지 충격을 받았는지, 그 사이에서 유황 냄새가 날 정도였다.
“루시퍼, 나를 저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 * * * *
[‘제 4 마왕, 마르바스’가 폐허가 된 마을 침공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마을 내에 대기 중인 모든 플레이어는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체력을 회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체력을 회복하라는 문구,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인다.
앞서 다른 라운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형식의 메시지다. 마치 플레이어를 걱정하는 듯한 느낌.
나는 스켈레톤 병사들을 계속해서 만들며 지군에게 물었다.
“마르바스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지?”
지군이 안경을 치켜세우며 내게 대답했다.
“마르바스, 질병과 치유 능력을 사용하는 아주 개 쓰레기 같은 몬스터야.”
“질병과 치료를? 그게 왜 쓰레긴데.”
“당연한 거 아니야?! 자신이 만든 병을 인간에게 걸리게 해놓고, 그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줄 시에만 치료해주는 사이코패스라고.”
그런 설명을 미리 해줘야 쓰레긴 줄을 알지.
“…… 알았고, 전투 능력은 앞선 마왕들에 비해 어떨 것 같아?”
“어…. 아마 최강 아닐까?”
“최강?”
앞서 이곳을 찾아온 마왕들보다 더 오래된 놈인데, 그게 가능하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어…. 아무래도 공홈에는 인간에 가까운 지능과 타고난 능력치가 높다고 설명되어 있었으니…. 루시퍼에 제일 가까운 놈인 것 같아.”
“루시퍼보다는 약하다는 거지?”
“에이, 당연하지. 모든 면에서 루시퍼 수준이었으면 우리가 이길 수가 없지.”
정우가 내 눈치를 보며 악마들을 상대했다.
뎅겅!
순서대로 열댓 마리를 베어낸 정우가 괜스레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음 마왕은 내가 맡도록 할 테니, 리나 씨는 쉬게 해줘.”
이 자리에 없는 리나 이야기가 나왔다. 지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그 여자를 왜 쉬게 해? 같이 싸워야지.”
“여자잖아.”
“이런 전장에서 여자니까 쉬라고? 하아-. 그거 남녀차별이다? 여자들에게 굉장히 실례야.”
정우가 검날을 들이밀며 대화를 이었다.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지군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역시 남녀차별이 최고지…. 그럼 다음 마왕은 정우 형한테 맡길게!”
“…… 그래.”
정우가 피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다음 마왕을 상대할 때 같이 있어 달라는 듯한 표정.
당연히 도와줄 거기는 한데….
‘쓰읍.’
-악마들이 몰려온다! 다들 전투 준비를 해!
-저, 저건 또 뭐야? 웬 동물들이 종류별로 마을에 달려오고 있어.
-사자…. 얼룩말…. 기린…. 코뿔소…. 하이에나…. 뭐야 저게?! 아니 몬스터도 아니고 그냥 동물들이잖아!
모두의 시선이 밖을 향했다. 누가 보아도 몬스터라고 부르기 힘든 상태의 동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살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은 확실한데.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 설마.’
키이이잉-!
얼룩말 한 마리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길게 울음을 내뱉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녀석들의 상태를 보았다. 전부 피부의 색상이 초록 혹은 보라색으로 바뀌어 있다.
이제 와서 오 박사의 짓은 아닐 텐데, 그럼 저 마왕이 사용한 바이러스란 말인가?
‘질병과 치유를 관장하는…. 마왕.’
마르바스.
“…… 재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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