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카운트 시작 ‘5초’.]
가미긴의 머리 위로 숫자가 나타났다. 이미 모든 준비는 되었고,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게 무슨 능력인지 눈치 채기는 했으려나?
“제기랄.”
눈치 챘구나.
“잘 가라.”
나는 손을 저으며,
고개를 천천히 틀었다.
쉬이이이이익-
공기가 흔들린 후.
쿠웅-!
검은 버섯구름이 솟구쳐 올랐다. 충격을 버티지 못한 내 몸이 날아갈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북쪽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김준철의 병사들이 선풍기 앞 종이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탱크가 뒤집히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플레이어들이 ‘어어어어-! ’소리만을 내뱉다가 나와 같이 뒤로 날아갔다.
정신이 까마득해질 정도로 강력하다. 시체의 수가 많기도 했지만, 개체값이 높은 녀석들이어서 그런지 하나하나가 엄청난 위력을 냈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가미긴과 그 부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파란색 홀로그램 화면이 눈앞에 둥실둥실 떠다니며 축포가 터지고 있었을 뿐.
[‘제 3 마왕, 가미긴’ 처치에 성공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보상으로 마왕의 정수가 지급됩니다.]
<*제 3 마왕의 정수>
-제 3 마왕 가미긴의 영혼이 들어 있는 정수입니다.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나와 같이 날아온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탱크 한 대가 딱 내 옆에 누워있다.
내게 꽂혔으면 그대로 큰 대미지를 입을 뻔했다.
“김천재!”
먼저 정신을 차린 정우가 달려왔다.
“후…. 괜찮냐?”
“내가 할 말이다. 아니, 갑자기 눈앞이 번쩍이더니…. 뭐고 저게? 북문 앞이 그냥 텅 비었잖아.”
그가 보는 방향을 보았다.
북문 앞이 정말 텅 빈 공간이 되었다. 그 주변 ‘폐허가 된 마을’ 내부는 정말 완벽한 폐허가 되어 버렸다.
무너진 건물과 사망자의 시체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 이 정도는 해야 마왕을 잡을 수 있지.”
보통 놈이 아니니까.
“햐…. 미쳤네. 미쳤어. 아니 이런 건 루시퍼랑 싸울 때 써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손을 저었다.
“루시퍼한테는 안 통해, 이미 한 번 이 기술을 쓴 전력이 있어서.”
“…… 아쉽네.”
“아쉬울 거 없어. 루시퍼한테는 그 녀석에게 맞는 기술을 준비해 놨으니까.”
“루시퍼에게 맞는 기술?”
“…… 어.”
나는 정우와 함께 북문 앞으로 이동해 이량훈의 시체를 찾았다. 정말 굉장한 놈이다.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몸 위로 모래만 덮여 있을 뿐,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가미긴에게 맞을 때 땅에 박힌 덕분에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나 보다.
타의에 의한 회피.
굉장한 운빨이다.
“…… 살았냐.”
이량훈이 반쯤 감긴 눈으로 내게 대답했다.
“살았다.”
“그냥 죽지 그랬어.”
“…… 그럴 걸 그랬나.”
내가 땅에 박힌 이량훈을 끄집어내며 그에게 물었다.
“이제 너와 나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겠나?”
“…… 모르겠군. 분명 너와 나 사이에 소환 능력 차이는 크게 없었을 텐데 말이야.”
물론 동급 레벨이라면 소환 능력에 큰 차이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라면.
하지만 이량훈은 내게 추가된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각성한 스켈레톤 병사들부터 시작하여 부가적인 아이템 능력들.
그리고 추가로 얻은 여러 스킬들까지 말이다.
‘…… 뭐.’
내가 얼마만큼의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녀석은 몰라도 상관없다.
나는 소환 능력을 녀석 앞에서 사용하지도, 앞으로 사용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번 전투에서 소환 능력을 사용한 적 없어.”
“……”
“그러니 너와 나의 차이점은 전투력이 아닌 전투 방법, 힘이 아닌 지능의 차이야.”
내가 이량훈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고 조용히 소환 취소 주문을 외웠다.
앞서 입은 상처가 너무나도 커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버린데다가, 치유할 수 없는 언데드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
“나를 보낼 생각인가.”
“…… 그래, 네 역할은 이제 끝났어.”
“빌어먹을…. 이번에도 결국 너를 이기지 못한 건가.”
나는 녀석의 두 눈을 감겨주며 말했다.
“그래도 언데드 중에는 네가 일인자일 거야.”
[‘이량훈’ 플레이어 소생이 취소됩니다.]
털썩.
* * * * *
나는 두 개의 마왕 정수를 보며 생각했다. 색상이 다른 것으로 보아 서로 다름을 확실하게 구별해놓았는데, 녀석들의 영혼을 대체 어디에 쓰라고 이런 물건을 만들어 놓은 걸까?
아이템 설명도 모호하고 말이다.
“……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준다고 하디?”
지군이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대답했다.
“어, 조건이 좀 뭣 같기는 한데…. 저번에 진 빚을 갚는다면서 도와준다더라고.”
“그때의 빚을 갚으려면 무상으로 좀 해주든가. 목숨을 살려줬는데.”
“나도 그렇게 말하려다가 참았어. 근데…. 녀석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더라고.”
“사정?”
“어, 지금 베트남 서버는 폭동이 일어나서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대.”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누구라도 지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아포칼립스 게임 내에서 무슨 폭동이 일어난단 말인가? 의견이 안 맞으면 그저 힘으로 결판을 내면 될 것이지.
“웬 폭동? 대집단으로 움직이는 게임도 아닌데. 모여봤자 그룹원은 다섯이잖아.”
“길드 단위로 움직이는 애들도 있잖아. 한국 서버는 하도 말을 안 들어 처먹어서 단결이 안 되는데, 녀석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서로 똘똘 뭉친다더라고.”
“우리도 국가 위협 상황 때는 항상 똘똘 뭉치지 않나?”
“이건 국가 위협이 아니잖아.”
하긴, 이런 게임 내에서 국가의 위협을 느끼기는 힘들지.
개인의 목숨이 먼저니까 말이다.
“하여튼 알았어. 수고했고, 이제 북문 좀 지키고 있어.”
“응? 나 이제 막 복귀했는데.”
“한 시간만 버티고 있어. 좀 쉬다가 교대해줄게.”
“하아…. 어쩌다 내 꼴이 이렇게 된 거지.”
정우가 한숨 쉬는 지군의 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팍! 치더니,
“인상 안 펴?”
양아치 같은 대사를 날렸다. 지군은 어쩔 수 없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리나는?”
“최대한 많은 마나를 응축시킨다면서 대성당에서 대기하고 있어.”
“에? 그 여자는 왜 경비를 안 서는 거야. 마나 응축은 교대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신급 무기를 가진 그녀의 마나 통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리나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충분하게 주고 싶다.
그녀의 마법은 이번 루시퍼 사냥에 중요한 핵심 ‘키’ 중 하나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야 뭐…. 나는 마법사들의 스킬에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오래 할수록 좋은 거 아니야?”
“아니! 마나 응축은 최대치가 정해져 있어서 한계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안 해도 된다고!”
“…… 그럼 응축점에 도달하지 못했나 보지?”
지군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마나 통이 커도 세 시간이면 충분히 가득 채울 수 있어.”
“리나는 마나 통이 커서 더 오래 걸리는 거 아니야?”
“아니야, 비켜봐. 내가 리나를 찾아올 테니 그년보고 북문 수비를 맡기자.”
지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우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지군의 앞을 막았다.
“리나 씨에게는 내가 잘 말하고 올 테니 너는 북문을 지키고 있어.”
“…… 형이?”
“그래.”
“웬일로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려고 해?”
“네게 모든 일을 맡길 수는 없잖아. 나도 뭔가는 하고 있어야지.”
“……”
지군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피했다.
“알았다고, 그럼 최대한 빨리 리나를 찾아서 북문으로 보내줘.”
“그래, 지금 가면 천재가 만들어 놓은 스켈레톤 병사들이 있으니까 직접 싸우지는 않아도 될 거야.”
“아아- 알았다능. 아니, 알았어.”
* * * * *
대성당 내에서 마나를 응집 중인 리나, 그녀는 눈을 감고 정신을 모아 회복력을 최대한 높게 올렸다.
푸른 정령들이 주변에 날아다니고, 팔뚝에 주삿바늘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소라의 버프 능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후우….”
리나가 숨을 천천히 그리고 길게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끼이이익-
대성당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잠시지만 정신이 흐트러진 리나의 귀와 오라가 움찔거렸다.
걸음의 속도로 적이 아님을 깨달은 그녀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며 신경을 집중했다.
“…… 리나 씨.”
“정우 씨군요.”
“예, 오라를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시는 것 같아서 확인차 왔어요.”
리나가 눈썹을 천천히 움직이며 대답했다.
“이 무기 덕분인지 마나의 최대치가 늘어나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게 되었어요.”
“그렇군요.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밖은 아무 일도 없습니다.”
“…… 다음 마왕이 찾아왔다고 하던데, 자리를 비워도 괜찮은가요?”
“예, 천재가 알아서 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천재 씨 혼자서요? 힘들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녀석은 싸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전투광이거든요.”
성당 밖에서 몰래 지켜보던 내가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다.
저 녀석, 리나에게 푹 빠져서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군. 싸움에 미친 전투광은 자기면서 말이다.
‘뭐.’
친구 녀석이 사랑에 빠졌는데 저 정도는 눈을 감아줘야지.
나는 음흉한 눈빛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리나가 다시 정신을 집중하며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 씨.”
“예.”
“…… 사실 제가 두 분에게 말씀 못 드린 게 하나 있어요.”
“음? 뭔가요?”
그녀가 잠시 대화를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정신이 흐트러졌는지 오라 또한 출렁거렸다. 정우는 조용히 기다리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
빨리 말해주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이곳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누워서 쉬든가, 아니면 북쪽으로 이동해서 적군의 상태를 보든가.
둘 중 하나를 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게 끝나서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이번에 얻은 마법, 봉인 주문서 있잖아요.”
봉인 주문서?
정우가 눈을 껌뻑이며 대답했다.
“예, 봉인 주문서는 왜요?”
“혹시…. 그 주문을 사용하면 제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주문을 사용하면요? 그럼 루시퍼를 묶을 수 있겠지요.”
“맞아요. 근데 루시퍼를 묶은 이후에 제가 어떻게 되는지를요.”
봉인 주문을 사용한 후?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다. 아니, 문제인지도 몰랐다. 내가 모르는 페널티라도 있는 것인가, 싶어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모르겠어요.”
“천재 씨도 모르죠?”
“그럴걸요? 제가 천재 마음을 전부 읽고 있는 건 아니어서 확실하게 대답하기는 힘들어요.”
“…… 그럼 정우 씨에게만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천재 씨에게는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그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거짓말을 하거나 누군가를 속이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저 약속은 꼭 지킬 것이다.
몰래 따라오기를 잘했다.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어서 말이다.
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옷의 팔목을 걷으며 정우에게 말했다.
“제가 앞서 지군이란 분에게 봉인 주문을 한 번 써봤어요.”
“그래서요?”
“…… 그리고 그 후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리나가 팔을 걷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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