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나기 시작한 이량훈의 공룡 부대는 금세 북문 앞을 가득 메웠다.
겨우 스무 마리 남짓한 숫자인데 주변이 가득 차 보인다.
-콰드득!
적군의 공룡과 이량훈의 공룡이 서로 물어뜯으며 싸운다.
“망령 기사, 적군의 다리를 노려라!”
영혼이 넘실거리는 망령 기사들이 전장으로 투입되었다. 빠른 속도를 이용해 적군의 다리만을 노리는 솜씨가 굉장하다.
물론 내 소환수들에 비하면 급이 다르지만.
쿠궁!
공룡들이 한둘씩 쓰러진다. 이량훈은 소환에 필요한 인구수를 전부 사용했는지 더 이상 리바이브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
정우가 딱딱한 바게트를 뜯어 먹으며 내게 말했다.
“저 녀석, 무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냅둬. 뒤지든지 말든지 나는 체력만 회복하면 되니까.”
“살려두면 좋은 거 아니야? 나중에도 쓸모가 많을 것 같은데.”
“…… 글쎄, 오래 살아있어서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네.”
현재로서는 득에 가깝지만.
[‘제 3 마왕 가미긴’의 정찰 스킬이 마을을 덮칩니다.]
‘응?’
갑자기 먼 곳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오라가 느껴졌다.
“마정우, 최대한 기척을 낮춰.”
“응?”
“오라를 숨기라고.”
“아, 오케이.”
우리는 기척을 숨기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가미긴은 대체 어떤 마왕이길래 적군에 대해 정찰까지 한단 말인가?
오만무도함이 끓어 넘치는 마왕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말이다.
“후우…. 지군이 있었으면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금방 돌아오겠지. 그나저나 저 녀석은 무슨 스킬을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곳에서 쓰냐.”
“…… 메피스토펠레스도 그랬잖아. 마왕급은 전부 루시퍼만큼 강한가 봐, 약점이 있는 것 빼고는.”
“하긴, 루시퍼 녀석은 약점이 없는데다가 그냥 강하기만 한 게 아니니 뭐….”
그렇다.
앞서 메피스토펠레스를 상대해보니 그 격의 차이가 느껴졌다. 분명 루시퍼였다면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할지 예측하고 공격을 대비했을 텐데.
놈은 자신의 힘에 심취하여 아무런 대비 없이 나와 싸울 생각만 했다.
단순무식, 그저 힘으로 적을 눌러버릴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한 놈이었다.
지식의 끝이라 불리는 파우스트를 어떻게 악의 힘으로 물들였는지 원….
‘하긴.’
벨제붑의 도움이 있었으니 된 거겠지.
“김천재! 보이냐!”
이량훈이 숨을 크게 들이마셔 가슴을 치켜세우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 만큼이나 해냈다고 자랑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 하네.”
내 칭찬에 녀석의 표정이 피었다.
저렇게 단순한 전투 타입은 적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기분이 좋은 일이 없다.
머릿속이 온통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크르르르르-
마왕의 오라가 땅을 긁으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몸을 슬쩍 비틀어 피하며 놈의 오라를 감지해 보았다.
끝을 알 수 없는 강함.
앞서 상대한 메피스토펠레스보다 더욱 수준 높은 오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미 한 마리 상대해봤으니까.’
마왕이 어느 정도 등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파악된다.
[‘제 3 마왕, 가미긴’ 님이 폐허가 된 마을을 향해 빠른 속도로 오기 시작합니다.]
이곳으로 오는 속도를 높였다는 건가.
시스템 창을 확인한 정우가 내게 물었다.
“너 정말 저 녀석 혼자 싸우게 할 거야?”
“…… 어. 우선은.”
“우선은?”
“한번 해보라고 해.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는데…. 뭐 우리가 말릴 이유가 있나?”
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긴. 뒤지든지 말든지.”
* * * * *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 가미긴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라의 크기는 메피스토펠레스보다 조금 더 커 보이기는 하는데, 녀석이 정확하게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강령술과 사령 술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소환 능력을 자랑한다는 것.
결국 네크로맨서의 시초, 이 게임의 소환 끝판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몬스터다.
이량훈 녀석, 언데드 주제에 마왕을 보고 몸을 벌벌 떨었다.
“저, 저게 마왕인가.”
앞서 상대한 거인족 비홀더만큼이나 커다란 덩치에 말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가미긴이 마차에서 두 발로 걸어 나와 지팡이를 흔들었다.
[‘제 3 마왕, 가미긴’의 어둠의 주술이 폐허가 된 마을 전역을 덮습니다.]
보랏빛 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마을 근방을 전부 덮었다. 나는 어깨 위에서 반짝이는 가루를 손가락으로 집어 비벼 보았다.
단단하다.
마치 쇳가루처럼.
“정우야, 너는 이번에 절대로 싸우면 안 되겠다.”
“…… 허허, 겨우 몬스터 주제에 이런 고난이도 주술을 사용한단 말이야?”
“마왕이잖아.”
“……”
지금 우리의 머리 위로 내리고 있는 보랏빛 가루, 이건 플레이어의 오라를 천천히 흡수하는 저주술사의 기술 중 하나.
“성스러운 빛이여!”
우렁찬 마이클의 외침과 동시에 폐허가 된 마을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돔 형태의 결계가 만들어졌다.
보랏빛 가루들이 결계에 막혀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결계 안에 있는 가루들도 타오르듯 회색으로 변하더니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건물 위에 대기하고 있던 내가 서쪽을 보았다. 그가 스코프로 우리가 있는 방향을 보고 있다. 북쪽보다 방어하기가 수월했는지 전장이 널찍해 보인다.
나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를 확인한 마이클도 엄지를 치켜들었다.
“저 녀석, 생각보다 게임 이해도가 높단 말이야?”
“군인이잖아. 우리보다 시야가 넓은 건 당연하지.”
“…… 그런가.”
쿠웅! 쿠웅!
가미긴이 마을을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공룡들이 조용히 양옆으로 갈라지며 그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이량훈과 그의 부하들이 넓은 진형으로 퍼져 그를 기다렸다.
“와라!”
자신 있는 외침.
하지만 그의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미칠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미긴이 목을 길게 내빼어 이량훈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내 형제를 쓰러뜨렸다는 네크로맨서인가?”
“…… 글쎄.”
이량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일이 없으니 당연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이렇게 약한 놈이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야. 루시퍼의 착각인가?”
“어이, 내가 약하다고?”
“그래, 너무나도 약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다.”
“싸워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알아?”
“…… 격의 차이가 하늘과 땅 수준인데. 굳이 싸워봐야 그 끝을 알겠-”
쾅!
척준경의 대검이 가미긴의 목을 내려찍었다.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한 것은 굉장히 잘한 일인데, 검날이 녀석을 베어내지 못했다.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날붙이가 겨우 손톱만큼 피부를 파고든 게 끝일 정도로 약했다.
아니지, 척준경이 약한 것이 아니라 가미긴의 몸이 너무나도 단단했다.
‘…… 방어력이 저 정도란 말이지.’
팍!
가미긴이 목을 흔들어 척준경을 날려 보냈다.
이량훈이 녀석을 향해 두 손을 뻗어 주술을 사용하고.
“커스 오브 플라워!”
한 송이의 꽃이 되어 날아간 붉은 저주술.
“재밌군.”
하아아암-.
가미긴이 입을 크게 벌려 저주 술을 삼켰다.
꿀꺽!
“…… 뭔데.”
이량훈이 당황스러워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소환수인 망령 기사와 척준경이 다시 가미긴을 향해 달렸다.
리바이브로 살려낸 공룡들도 동시에 뛰었다.
가미긴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몰려오는 녀석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가소롭군.”
* * * * *
털썩.
이량훈의 머리가 지면에 닿았다.
가미긴의 공룡과 이량훈의 소환수들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나, 마지막 승자는 가미긴이었다.
마왕이 사용하는 사령술은 참으로도 굉장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순한 소환술이 아니라, 영혼을 따로 끄집어내어 싸울 수 있게 만들었다.
신체에 큰 타격은 줄 수 없지만, 상대방의 영혼에 대미지를 주는 기술들.
모르는 상태에서 싸웠으면 나도 이량훈과 똑같이 쓰러졌을 것이다.
영혼이 공격해오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으니.
이량훈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얼마나 강했는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가미긴에게 큰소리를 쳤다.
“냄새나는 말머리 녀석!”
“…… 의지 하나만큼은 인정 해주도록 하마. 히이이잉!”
“조금만…. 내가 조금만 더 강했으면 너는.”
쾅!
가미긴의 주먹이 이량훈의 몸을 그대로 짓눌렀다. 땅이 갈라지며 큰 대미지가 들어갔다.
이대로 끝난 줄 알았는데, 이량훈의 생명력 게이지가 간당간당하게 조금 남아있다.
가미긴이 땅에 박힌 자신의 주먹을 빼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푸후-.
“인간 주제에 너무 나대지 말라고.”
“크으윽…….”
“네놈이 어떻게 내 형제를 상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비루한 힘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군.”
“제길…. 제길……. 빌어먹을!”
-크르르르르르
피 냄새를 맡은 공룡들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가미긴이 자신의 주먹을 털어내더니 뒤로 빠지며 공룡들에게 명했다.
“처리해라.”
부웅- 부웅- 쾅!
척준경이 허공에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와 쓰러진 이량훈의 앞을 막았다.
녀석도 이미 오라를 한계까지 끌어낸 것 같은데, 더 싸울 생각인가?
가미긴이 다시 마차에 올라타자 공룡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량훈의 소환수들과 가미긴의 공룡들이 크게 싸우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정우가 미카엘의 검을 흔들며 내게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 이제 끝내야지.”
“뭐?”
“이제 끝낸다고. 내가 이길 수 있는 판은 이미 만들어졌고.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내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오라를 집중하여 가미긴의 시선을 끌었다.
갑작스럽게 기가 올라가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이!”
내 외침에 가미긴이 다시 마차에서 내렸다.
“…… 너구나. 내 형제를 쓰러뜨렸다는 네크로맨서가.”
단번에 나를 알아보았다.
“흐음? 내가 그랬었나?”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 이렇게 강한 인간이 있을 줄이야. 루시퍼 녀석이 거짓말 하는 게 아니었어.”
가미긴의 얼굴에 미소를 지어졌다. 강적을 만나서 기쁜 건가? 아니면 루시퍼가 말한 인간의 존재 여부가 밝혀져서 그런 것인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후.
탁!
녀석을 향해 소리쳤다.
“네가 제 3 마왕, 네크로맨서의 할아버지 격인 가미긴이냐?”
“…… 내 형제의 영혼석은 어디 있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정말 루시퍼가 말한 대로 여우같은 입버릇을 가지고 있군.”
루시퍼 녀석, 마왕에게 나에 대해서 말한 건가.
“하하…. 미안하지만 나는 여우가 아니라 호랑이인데 말이야?”
“호랑이건 여우건 죽으면 전부 똑같아지지.”
“그러게 말이야, 누구든지 죽으면 영혼이 되잖아? 너도 마찬가지고, 네 형제도 마찬가지고.”
“…… 내가 제안 하나 하도록 하지. 내 형제의 영혼석을 돌려주면 너를 내 밑으로 받아주마.”
“정말이야?”
“정말이다.”
나는 천천히 다리를 벌려 공간을 만든 후 가랑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미안한데 내가 누구 밑으로는 절대 안 들어가서 말이야. 네가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영혼석을 줄지 말지 한번 생각해볼게.”
“……”
“아, 아니다. 너무 커서 못 들어오려나? 그럼 됐다! 그냥 죽어라.”
“뭐라고?”
“그냥 죽으라고.”
“…… 이 건방진 새끼가!”
콰광!
가미긴이 마차를 부수며 뛰쳐나오더니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을 정면으로 보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내가 좀 건방지기는 하지, 어르신을 이렇게까지 놀려먹었으니 말이야.”
‘시체 폭발.’
[‘시체 폭발’을 시전합니다.]
[카운트 시작 ‘5초’]
[‘티라노사우루스’ 22기에 대한 폭발이 이루어집니다.]
[‘트리케라톱스’ 16기에 대한 폭발이 이루어집니다.]
[‘아르젠티노사우루스’ 6기에 대한 폭발이 이루어집니다.]
[‘프테라노돈’ 40기에 대한 폭발이 이루어집니다.]
[‘망령 기사’ 20기에 대한 폭발이 이루어집니다.]
[‘우귀’ 1기에 대한 폭발이 이루어집니다.]
[시체의 숨겨진 힘이 워낙 강하니 인근 지역에서 벗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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