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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현 시간부로 ‘제 3 마왕, 가미긴’이 부활합니다.]

[가미긴과 그의 부하들이 폐허가 된 마을을 공격해옵니다.]

‘…… 가미긴이라.’

지군이 이량훈의 시체를 발로 툭툭 치며 내게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리바이브.

[‘리바이브’를 시전합니다.]

[‘이량훈’ 플레이어의 시체를 소생시킵니다.]

이량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악에 받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게 하는군.”

“그게 네 운명이지 뭐.”

내가 녀석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어차피 내 밑으로 들어왔으면 명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 녀석이 순순히 내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마왕을 상대로 싸우라는 말이지?”

“그래.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너도 이 게임의 끝으로 데리고 가주지.”

“…… 필요 없다. 한 번 죽어보니 별것 없다는 걸 알게 됐거든.”

죽음 이후의 세계.

나는 그곳에 대해 알고 있다. 이 게임 내에서 사망 시 어디로 가는지를 말이다.

“영혼의 탑, 그곳에 갇혀 있던 거 아니야?”

“…… 맞아. 잘 알고 있군.”

“뭐…. 뻔하지.”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여튼 네 부탁은 들어주도록 하지. 어차피 심심했으니까 말이야.”

“들어주도록 하는 게 아니라, 너는 내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거부할 수 없어.”

“그래? 거부하는 방법이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뭐?”

이량훈이 허리춤에 달린 단검으로 자신의 심장을 겨누었다.

“강제로 소환을 푸는 방법쯤이야 알고 있지.”

“……”

녀석이 단검을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으며 내게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네 말대로 움직일 테니까.”

“너 같은 실력자가 왜 그렇게 미쳤는지 모르겠군.”

“…… 내가 미친 게 아니라. 이 세상이 미친 거다.”

나는 담배를 두 개비 꺼내어 녀석에게 한 개를 주고, 한 대를 내 입에 물었다.

그리곤 녀석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사라질 수도 있어.”

“바라던 바야. 내가 녀석에게 이기면 너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거잖아?”

“네가 나보다 강할 리는 없고.”

“아니- 레벨만 낮을 뿐, 전투 기술은 내가 너보다 뛰어나.”

“……”

“네 소환에 의해서 살아났으니 내 레벨도 올라갔다. 지금의 내가 너보다 약하다는 보장은 없어.”

내가 킥킥거리며 담배 연기를 크게 뱉었다.

푸후-

“그래, 그럼 그 강한 힘을 한번 증명해봐. 네가 이번에 오는 마왕을 이긴다면. 내 네 실력을 인정하도록 하지.”

* * * * *

이량훈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밑에 활동하던 소환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척준경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덩치의 소귀신인 우귀까지.

그 외에는 망자의 숲에서 낮은 확률로 나오는 ‘망령 기사’까지 데려왔다.

나를 죽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체를 준비했던 건가?

대성당이 아니라 마을에서 전투를 치렀으면 꽤 고생할 뻔했다.

준비를 마친 이량훈이 북쪽 문으로 향하며 내게 말했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해.”

“다시 말하지만 네 역할은 마왕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끄는 거야.”

“내가 직접 처리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

“가능하다면.”

“가능해.”

“싸워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알아.”

“네가 가능하면 나도 가능하다.”

“……”

이러니까 녀석이 만년 2인자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다. 고집불통에 소통하기 힘든 스타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손짓했다.

“그래, 그럼 이길 수 있으면 직접 싸워서 이기도록 하고. 못하겠다면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싸워서 시간을 끌어줘. 우리가 체력을 좀 비축할 수 있게.”

“체력?”

“그래. 일곱 번째 라운드 이후로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서 한 번만 싸우더라도 피로도가 너무 많이 축적되고 있어.”

“…… 알았다.”

척준경이 이량훈의 옆으로 바짝 붙으며 나를 경계했다.

이량훈의 소환수라면 내 명령에 움직이는 거나 마찬가지인 놈이, 자기의 진짜 주인이 있다는 걸 티내는 건가?

녀석의 날붙이가 반짝이자, 내 소환수인 ‘레카’가 오라를 뿜으며 녀석을 경계했다.

“주군.”

“됐어. 자, 그럼 이량훈. 나는 이제부터 회복에 집중하도록 할 테니 너는 북문을 맡아줘.”

녀석이 대답도 하지 않고 북쪽으로 향했다. 진짜 내 명에 따라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불안하다.

시스템상 거역할 수는 없지만, 이량훈이라면 무언가 일을 칠 것만 같다.

‘…… 믿어봐야지.’

지군이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내게 물었다.

“저 쓰레기 같은 새끼, 버르장머리 좀 보소?”

“시끄럽고. 너는 베트남 유저라도 어떻게든 잘 설득해봐. 원하는 조건 중 큰 문제가 없는 건 전부 해준다고 하고.”

“알았다능. 그럼…. 나는 대경성에 다녀오면서 조영기를 좀 만나보고 오겠다능.”

“조영기? 지금 폐허가 된 마을에 있는 거 아니야?”

지군이 손가락을 저었다.

“노! 아까 전에 잠깐 온 건 식량 때문이고. 지금은 엘프들과 함께 숲에서 무전 대기하는 중이야.”

“아…. 맞네. 근데 조영기는 뭐 하러 만나게?”

“혹시나 작전 전달에 착오가 있었을까 봐, 한 번 이야기해보고 오려고.”

“좋네. 그럼, 그쪽 일은 네게 맡기도록 하지.”

“카이카이 오카이!”

지군이 펑! 소리와 함께 한 마리의 새로 변하더니 하늘로 날아갔다.

그가 떠나자마자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제 4 마왕, ‘마르바스’가 부활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생성된 ‘가미긴’과 ‘마르바스’, 두 마왕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 이게 무슨 정신 나간 말이야.’

즉, 두 마리의 마왕이 동시에 마을에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한 마리만 상대하더라도 플레이어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인데, 두 마리가 동시에 찾아온다니?

-키야아아아악!

하늘에서 뼈로 만들어진 익룡이 날아왔다.

가미긴의 부하가 확실하다.

정보란에는 강령술과 사령술에 능한 마왕으로 표현되어 있었으니까.

네크로맨서의 아버지 격인 파우스트. 그리고 그 파우스트에게 지옥의 힘을 준 메피스토펠레스의 형제.

소환의 지배자, 마왕 가미긴.

이번 승부는 고대와 현대의 스킬 능력 싸움이라 보아도 될 만큼 같은 류의 전투가 될 것이다.

아직 적의 힘을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힘들지만, 정우와 유소라가 있으니 우리가 이길 확률이 굉장히 높다.

‘이량훈도 있고….’

나는 동쪽의 김리아와 서쪽의 마이클에게 단단한 경계 태세를 주문한 후, 레카와 함께 북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 *

선사시대 공룡들이 지구를 뛰노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뼈로 만들어진 각종 육식 공룡과 초식 공룡들이 마을을 향해 뛰어오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에 뒷다리가 튼실한 티라노사우루스.

머리에 세 개의 뿔이 달린 네 발 공룡 트리케라톱스.

목이 미칠 듯이 길어 구름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커다란 아르젠티노사우루스까지.

쿠궁! 쿠궁! 쿠궁!

녀석들이 진격만 했을 뿐인데 땅이 크게 울렸다.

-키에에엑!

익룡 수백 마리가 하늘을 빠르게 날며 해를 가렸다.

나는 턱을 괴고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어차피 이번 전투는 이량훈에게 맡겨 놨으니, 나는 최대한 휴식에 집중해야 한다.

정우가 내 어깨에 손을 슬쩍 올려놓던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도와줄까?”

“…… 아니. 녀석 혼자 해보라고 해.”

“금방 뒤질 텐데.”

“그건 아닐 거야. 전투 실력 하나는 정말 나보다 뛰어나니까.”

“…… 그래?”

전투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한다.

레벨과 아이템이 나보다 뒤처졌을 뿐. 피케이에는 굉장한 놈이니까.

몬스터를 상대로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

아니, 랭커급이다.

이량훈이 몰려오는 공룡들을 상대로 자신의 부하들을 전부 뒤로 뺐다.

그리곤 척준경과 자신만이 앞으로 나와 녀석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네크로맨서가 전방에서 직접 싸운다고?’

열네 번째 라운드를 진행하는 플레이어치고 아이템의 능력도 부족한 놈이 말이다.

쿠궁!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가 빠른 발을 앞세워 먼저 도착했다.

이량훈이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더니 녀석을 향해 달렸다.

척준경이 그의 뒤로 바짝 붙어 커다란 대검에 오라를 집중시켰다.

굉장하다.

99레벨의 척준경은 저런 힘을 가지고 있었구나. 특수 기술을 사용해서 조합한 레카만큼 굉장한 오라다.

역시 소드마스터라 불릴 만한 소환수였다.

부웅-

콰직!

척준경의 대검이 티라노사우루스의 두개골을 그대로 찍어냈다.

콰직! 콰직! 콰아직!

계속해서 두개골을 찍어 내리자 녀석의 생명력 게이지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회색으로 변했다.

이량훈이 티라노사우루스의 꼬리를 타고 빠르게 올라가더니 녀석의 등에 손을 대고 주문을 외웠다.

“리바이브.”

위잉-

티라노사우루스 한 마리가 녀석의 손에 들어갔다.

“잘 봐라, 고인물. 내가 너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마!”

* * * * *

집채만 한 마차, 그 마차를 끌고 있는 거대한 공룡들.

그리고 그 안에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말의 형상을 한 거인, ‘제 3 마왕 기마긴’.

그가 근엄한 표정으로 고대종 소환수 군단을 이끌고 폐허가 된 마을로 향하고 있다.

“네비루카, 적진까지 얼마나 남았느냐.”

덩치가 작은 익룡 한 마리가 날아와 그에게 대답했다.

“이 속도로 간다면 앞으로 삼십 분 이내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금방 도착하겠군.”

“예, 앞서 보낸 정찰대들은 이미 도착했을 것입니다.”

“…… 내가 도착하기 전에 전투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으음? 녀석들이 먼저 정리해놓으면 좋은 것 아닙니까?”

기마긴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뼈 소리를 내더니 하품을 하며 말한다.

“아니지.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몸이라도 좀 풀었으면 해서 말이야.”

“하하핫! 마왕님이 직접 상대할만한 적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 아니.”

“예?”

“루시퍼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적군 중 한 명이 굉장하다고 하더군.”

익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인간이요?”

“그래, 내 형제인 메피스토펠레스.”

“아! 기마긴 님이 탄생하기 전에 지옥의 왕이었던 메피스토펠레스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그놈을…. 쓰러뜨린 녀석이 있다더군.”

익룡이 깜짝 놀란 얼굴로 날개를 파닥거렸다.

-키엑!

“아니, 저, 정말입니까? 메피스토펠레스 님에게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정말이다. 루시퍼 녀석이 거짓말을 할 만한 놈은 아니야.”

“……”

기마긴이 가마의 앞문을 열더니.

쿵!

전방을 노려보며 오라를 흘렸다.

그는 이 정도 거리에서도 적의 힘을 겨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마을 쪽으로 오라를 최대한 멀리 보내어 확인하기 시작했다.

“…… 저 녀석인가 보군. 굉장한 네크로맨서라고 하더니 별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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