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요한 파우스트에게 강제로 빼앗은 능력, 무한에 가까운 소환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대한 정보를 가진 책.
‘네크로노미콘’.
그 책에 적혀 있는.
아니, 요한 파우스트의 머릿속에 있는 그 능력이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저택 밖으로 나와 요한 파우스트에게 인사했다.
“약속은 꼭 지키도록 하지.”
“…… 뭐, 멸망이 조금 늦어진다고 내 계획이 변하는 건 아니니….”
“맞아,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려주길 바라. 이 능력은 내가 꼭 세상을 멸망시키는 데 쓸 수 있도록 해볼게.”
내가 사라진 이후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잘 가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 그래.”
나는 가볍게 손을 털은 후 오두막 밖을 향해 걸었다. 초원에 바람이 불어 왔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니 아까와 같은 계단이 나를 반겼다.
나는 계단 위로 올라가며 생각했다. 이 무한의 소환을 사용한다면, 루시퍼에게 그때보다 더 강한 일격을 가할 수 있지 않을까.
‘……’
성공한다고 단방에 처리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계단의 끝에 도착한 나는 침대를 원위치로 돌려놓고 오두막에서 나왔다.
피비린내가 내 코를 찌른다.
전장은 이곳에서 꽤 먼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몬스터를 찾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기린 한 마리가 보인다. 저 녀석도 다리가 빠르려나? 목이 길다는 정보 외에는 없어 우선 죽이고 보았다.
파각!
그저 주먹으로 등을 한 대 때렸을 뿐인데 생명력 게이지가 회색으로 변했다.
“리바이브.”
[‘리바이브’ 주문을 시전합니다.]
[‘감염 된 기린’ 1마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기린이 삐걱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볍게 녀석의 목 위에 올라 출발 신호를 내리자,
-히이잉!
소리를 내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빠르다고 느껴질 만큼의 속도였다.
직접 달리면 더 일찍 도착할 수 있겠지만….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해야지.
* * * * *
폐허가 된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테오가 보였다.
“…… 음?”
운석에 붙어 있는 불길이 검은색이다. 플레이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떨어지는 방향으로 보아 북쪽으로 가는 것이 확실한데, 우리 그룹원들이 있는 쪽이다.
나는 예상 낙하지점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낫에 오라를 집중했다.
다그닥! 다그닥!
기린의 달리는 속도로는 때를 맞춰갈 수 없다.
“그대로 직진하도록.”
기린에게 명령을 내린 후, 지면에 뛰어내려 전속력으로 달렸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
두두두두두두-
순식간에 북쪽 문에 도착한 나는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메테오!”
지군과 리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을 가르며 떨어지는 메테오가 보였다. 먼 곳에서는 먼저 보였지만, 가까운 곳에서는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길래 이리 늦게 도착한단 말인가.
아니, 저 마법을 사용할만한 몬스터가 대체 누구지?
나는 메테오가 떨어지는 방향을 향해 오라로 휘감은 낫을 던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죽음의 낫이 메테오와 함께 터졌다.
쾅!
거대한 운석을 박살내자, 주먹만 한 돌덩이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가 맞는 것은 잘 피했는데, 폐허가 된 마을에 폭격이 쏟아지게 된 상황.
“어스필드!”
등 뒤에서 조영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흙이 높이 솟구치며 빌딩 높이의 절벽이 만들어졌다.
콰과과과광!
쏟아지는 메테오의 잔해물들이 벽에 막혀 떨어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 조영기!”
조영기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다들 뭐 하는 거야?”
그 모습을 본 리나가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다.
불 속성 마법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류의 공격이었기에,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리나는 자존심에 금이 갔는지 애꿎은 악마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좋은 남매다.
나는 지군에게 달려가 그동안의 상황을 물었다.
“뭐 어떻게 된 거야?”
“…… 어떻게 되기는. 그냥 악마 죽이면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메테오가 떨어지네?”
“지금 처음 떨어진 거야?”
“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몰랐어.”
지군 수준의 사냥꾼이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기척을 가진 적이 있단 말인가?
내가 석연찮은 표정을 짓자 지군이 절벽 위로 올라가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었다.
“보자…. 흐음…. 저 녀석인가?”
지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응시하며 말했다.
“누구?”
“아직 형 눈에는 안 보일 텐데, 저 멀리에 처음 보는 악마가 하나 보이네.”
“처음 보는 악마?”
“어, 흐음…. 생김새로 유추해보건대. 아마…. 그 녀석인가?”
“그 녀석?”
“그…. 뭐더라, 메피…. 뭐라는 놈이었는데. 공식 홈페이지 정보란에서 봤던 놈이라 기억이 잘 안 나.”
‘메피’로 시작하는 악마라면 단 한 마리밖에 없다.
‘메피스토펠레스’
네 명의 마왕 중 한 명인 거짓의 군주라고 불리는 놈이다.
“메피스토펠레스?”
“아! 맞아! 그 솔로몬 이야기에 나오는 악마 중 한 명을 오마쥬해서 만들었다는 놈 있잖아.”
“…… 그 녀석이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그건 나도 모른다능! 아니, 모르겠네.”
네 명의 마왕, 이 게임 속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저 태초의 지옥이 창시되었을 때, 그 힘이 너무 강하여 아누에게 봉인되었다는 놈들인데 말이다.
‘흐음….’
메타트론이 사라져서 그런 건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지금 우리 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오라의 크기는?”
“우리보다 좀 더 큰 것 같은데.”
“개인? 단체?”
“우리 전부보다.”
“…… 우리 전부보다?”
“어.”
우리 전부보다 큰 오라를 가졌으면 상상 이상의 힘을 낸다는 말인데.
완전 각성 루시퍼 급이 아닌가? 그 이하의 몬스터 중에는 나보다 강한 자가 없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듣던 정우가 미소를 띠었다.
“재밌겠네. 그 자식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데?”
“한 시간도 더 걸릴 것 같은데? 걸음이 엄- 청 느려.”
“…… 그렇게 먼 곳에 있어?”
“어, 내 능력으로도 굉장히 뒤에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
내가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렇게 멀리 있다고?”
“어, 엄 청 멀리 있다고.”
“……”
“왜? 빨리 보고 싶어서?”
아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바로 지금 우리를 향해 떨어진 메테오 때문이다.
이렇게 강한 스킬을 저 멀리서 사용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일반적인 메테오가 아닌 그 윗단계, 메테오 스트라이크 수준.
궤도도 북쪽 문 앞으로 정확했다.
“…… 지군, 지금 우리랑 저 녀석이랑 싸우면 누가 이기지?”
“어…. 저 상태로 덤빈다면 우리가 질걸?”
“이유는?”
“우리 스킬은 전부 전사형 몬스터인 루시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저놈은 마법사잖아.”
“…… 그렇지.”
“뭐 특별한 무기가 있지 않은 이상 우리가 좀 불리한 상태야. 그렇다고 막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정도는 아니고.”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공략법은?”
“…… 시간 좀 끌어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오케이, 그럼 내가 녀석을 막아볼 테니 녀석과 우리의 힘을 더 자세하게 비교해줘.”
“혼자서 막는다고?”
“…… 어.”
지군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이어 미소를 지었다.
“믿고 맡겨도 되는 거지?”
“그럼.”
“…… 알았어. 그럼…. 리나! 당신은 나를 돕도록 하고. 정우 형은…. 입구를 좀 지켜줘.”
마정우가 리나를 슬쩍 보더니 지군에게 물었다.
“리나 씨는 왜 데려가는 거지?”
“응? 아니, 마법사니까 저 메피스토펠레스라는 놈이랑 힘을 비교할 때 필요해서.”
“…… 알았다.”
정우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마을 밖으로 향했다. 나는 지군의 등을 툭 친 후 던지듯 말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해보라고.”
“…… 맡겨둬.”
* * * * *
정우가 악마를 쓰러뜨리고, 내가 그 시체를 제물 삼아 스켈레톤을 소환했다.
그 수가 천에 가까워졌을 때, 전방에 메피스토펠레스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사탄같이 인간형 악마인 것 같은데, 날개가 없고 등에 수많은 다리가 달려 있다.
대충 세어 보아도 다리의 수가 서른 개는 될 것 같다.
“정우야, 이제 마을로 가서 체력 좀 비축해둬라.”
“…… 정말 혼자 할 생각이야?”
“어, 걱정하지 말고 좀 쉬고 있어. 지군 녀석이 공략을 마치면 그때 오도록 해.”
“…… 지금 다른 곳은 좀 널널한 것 같은데. 마이클이라도 불러줄까? 녀석이 다가오는 순간 똭! 하고 하늘에 천사의 찬가…. 를 쓰면-”
“내 스켈레톤들이 같이 녹아내리겠지?”
“아, 그렇지.”
“걱정하지 말고 좀 쉬어. 스켈레톤이 이만큼인데 설마 시간도 못 벌겠냐?”
정우가 줄지어 있는 스켈레톤 병사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소환했냐?”
“…… 나중에 정리되면 설명해줄게.”
“그래, 그러세요.”
정우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가볍게 경례를 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나는 스켈레톤 병사들을 좌우로 나누어 길을 연 다음 메피스토펠레스와 내 힘을 대충 겨누어 보았다.
“흐음….”
단순히 오라의 무력으로만 계산해보자면, 내가 10중 3이라면 녀석은 10중 8 혹은 9. 루시퍼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굉장하네.’
놈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스켈레톤 병사들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겁을 먹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막강한 힘에 공간이 떨려서 그런 것 같다.
쿠구구구- 쿠구구구-
녀석의 대군이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스켈레톤 병사 중 전사 형태인 녀석들을 앞으로 두고, 궁수와 마법사 형태인 놈들을 뒤로 빼었다.
[김천재 플레이어님이 숨겨진 업적 ‘군단을 통솔하는 자.’를 획득합니다!]
[‘군단 사령관’의 힘이 개방되며 커맨드 오라(Passive)가 활성화됩니다.]
*커맨드 오라(Passive)
-사망한 병사의 수에 따라 아군의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 드디어 열렸나.’
과거에는 백 마리의 소환수를 동시에 소환하면 열렸던 업적인데, 이번에는 훨씬 많은 수의 능력을 필요로 했다.
마치 나만이 열 수 있도록 기다린 능력처럼.
발밑으로 은빛의 오라가 빙글빙글 돌았다. 소환수들 또한 마찬가지.
내가 손짓하자 스켈레톤 군단이 진형을 바꾸며 앞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 챈 메피스토펠레스의 부대가 걸음을 멈추고 진형을 양옆으로 넓게 퍼트렸다.
우리가 하나의 창날 같은 모습의 진형이라면.
녀석들은 그 창날을 막아내기 위한 방패, 단단한 타워 쉴드.
창과 방패의 대결.
“…… 가자.”
-크아아아악!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