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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나는 저택으로 다시 들어가 요한 파우스트와 대화를 시작했다.

“김천재 씨, 죄송하지만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제 스킬을 가져가는 방법은 단 하나, 멸망을 지켜보는 것뿐이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멸망을 지켜보려면 그 스킬을 가져가는 이유가 없어지는데?”

“우선 이번 세계는 사라지도록 두시고, 그다음 멸망을 막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긴 시간을 나보고 기다리라고?”

“불로장생의 약초를 드리도록 하지요.”

“아니,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아. 미안한데 이 게임을 지금 끝내고 싶어.”

“……”

호로로록-.

녀석이 차를 천천히 마시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제가 가진 힘은 가져갈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 그럼 이건 어때, 리콜.”

[‘리콜’ 주문의 사용이 차단되었습니다.]

요한 파우스트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내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 저택 안에서는 아무런 능력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천사와 악마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마치 신 같네.”

“신이라….”

“X신.”

“…… 예?”

“너 X신 같다고.”

녀석이 분노에 차 내게 덤벼들기를 바랐지만, 놀랍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뭐라고?”

“천재 씨 입장에서는 제가 X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 한 명 때문에 모든 존재에 대한 운명을 바꾸고 있으니까요.”

사고방식을 보아하니 도발은 안 통한다. 나는 대화를 마치고 안나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내게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안나를 보러.”

“안나…? 를 왜 보려고 하시는 거지요.”

“죽이려고. 그럼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끝날 거 아니야?”

팍!

눈 깜짝할 사이에 요한이 내 눈앞에 나타나 손바닥으로 내 복부를 때렸다.

갑주에 손바닥 자국이 새겨지며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능력치가 이렇게 높은데 생명력 게이지가 절반으로 줄어들며 피를 토했다.

“커헉-.”

“죄송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안나의 방에는 갈 수 없습니다.”

“…… 너는 미쳤어.”

“제가 자라온 환경은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었지요.”

어떤 대화를 해야지, 이 녀석을 처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 능력치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는데다가 스킬을 사용할 수 없으니 전투가 제한된다.

조금 전에 맞은 한 방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전투로 이겨서 넘는 NPC가 아니다. 대화 혹은 스토리의 틈을 찾아 공략해야 한다.

나는 다시 소파로 돌아가 앉으며 담뱃불을 붙였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한 대 피울래?”

“아뇨, 괜찮습니다.”

“후우….”

싱글 생글 웃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저 표정, 마치 무적의 존재와 같이 느껴진다.

‘…… 무적의 존재라.’

“한 가지만 물어보도록 하지. 내가 네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능력을 가지고 간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에 그런다면. 너는 이곳에서 나올 생각인가?”

요한 파우스트가 입을 꾸욱 다물더니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눈동자가 하늘을 향하는 것으로 보아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다.

가벼운 질문에도 허투루 대답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는 놈이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되찾으러 가야겠지요.”

“안나를 이곳에 두고?”

“안나도 함께 가면 됩니다.”

“안나도 함께 온다고?”

“예.”

“…… 어떻게?”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쿵!’ 소리와 함께 커다란 관이 하나 생겨났다.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 모양의 관. 강력한 오라가 겉을 감싸고 있어 외부로부터의 공격은 확실하게 막을 수 있어 보인다.

“이곳에 데리고 가면 됩니다.”

“전장에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겠다는 건가?”

“예, 제가 있는 이상 안전하니까요.”

“안전하지 않다면?”

“…… 음?”

“안전하지 않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가 아무리 신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신은 아닌데 말이야.”

“……”

내 질문에 녀석의 눈동자가 또 당시 하늘을 향했다.

“아니다 싶으면 도망가도록 하지요.”

“…… 그래?”

“예, 어차피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천재 씨가 말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내가 찻잔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의사는 확실하게 알았다. 그럼 네 힘은 내가 가져가도록 하지.”

“…… 안 된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 나도 들었어. 근데 말이야….”

“……?”

“나도 너만큼 꽉 막힌 놈이거든. 어이 보이지 않는 눈들! 스펙터를 지금 부르지 않으면 USB에서 추출한 내용 중 하나를 다른 플레이어에게 공유하도록 하겠다.”

[‘제3의 눈’이 김천재 님의 발언에 흥미로움을 표시합니다.]

[‘운영진1’이 당신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요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첫 번째, 플레이어는 죽음에 이르더라도 끝이 아니다. 영혼은 다른 차원에 갇히게 되며 게임이 종료될 시- ”

[현 시간부로 스펙터가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 다행이군.’

[운영진들이 김천재 님의 플레이 방식을 두고 회의를 시작합니다.]

[불법적인 행동이 있었다면 그에 맞는 경고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잠시 기다리자 스펙터가 저택의 벽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요한은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지 당황스러워하며 손을 저었다.

“저 녀석은 어떻게 들어온 거지?”

나는 스펙터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 삼촌, 왜 그래요.”

“왜 그러기는? 보고 싶어서 부른 건데.”

“하아….”

나는 스펙터와 요한 파우스트를 번갈아 보았다. 과연 둘 중 누가 더 강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싸움은 해봐야 알겠지.

“요한, 미리 경고하도록 하지. 저 녀석을 막지 못하면 안나는 죽을 거야.”

“…… 예?”

“안나를 죽이기 위해 저 녀석을 불렀거든.”

물론 거짓말이다.

“그, 그런. 저자는 누구인데 이곳에 온 것입니까?”

“글쎄, 내가 지금 말해줄 수 있는 건 안나의 죽음과 힘의 계승, 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거야.”

“…… 아뇨. 둘 다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스펙터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내게 물었다.

“나는 왜 부른 거야?”

이 질문을 기다렸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내 대답이 요한을 크게 흔들 수 있으니까.

“안나 크라프트, 지금 저 방에 있는 여자를 죽여.”

“내가 왜-”

샥-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요한의 손날이 정면을 가로로 빠르게 베어냈다.

스펙터의 목이 그대로 잘려나가는가 싶더니 연기가 되어 사라진 후, 다시 뭉쳐 모였다.

“뭐, 뭐야 이 아저씨?!”

“스펙터, 저 녀석이 너를 죽이려고 하는데?”

“뭐?”

요한 파우스트와 스펙터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내가 바라던 그림이 완성되었다.

나는 차를 천천히 마시며 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두근거리며 이 상황을 지켜봅니다.]

요한 파우스트가 강력한 오라를 뿜으며 스펙터에게 말했다.

“꼬마야, 이 저택에서 나가도록 해라.”

“……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지?”

“나가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나를 죽인다고?”

내가 은근슬쩍 말을 보탰다.

“내 말이 맞지? 너를 죽이려 한다니까.”

“…… 삼촌은 잠깐 빠져있어 봐요.”

“어 그래그래, 천천히 일들 봐.”

* * * * *

둘의 싸움은 길게 가지 않았다.

오 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지난 후에 한 명이 피투성이의 상태로 땅에 뒹굴게 되었다.

털썩.

“…… 아저씨, 꽤 강하네.”

스펙터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이 꼬마…. 쿨럭, 꼬마 녀석이….”

승자는 스펙터.

화려한 전투는 아니었다.

마치 태권도 대련을 하듯 뻔한 기술 속에서 누가 더 우위를 점치는지 겨루었다.

신에 가까운 존재, ‘요한 파우스트’와

신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 ‘스펙터’의 대결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찻잔에 담긴 물을 요한의 얼굴에 뿌린 후 그에게 물었다.

촤륵-!

“요한, 안나의 죽음과 힘의 계승.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나?”

“……”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안나를 죽이러 가겠어. 어차피 네 힘이 없더라도 루시퍼는 끝낼 수 있거든.”

“……”

녀석이 대답하지 않는다.

스펙터와 요한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나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그리고 세 번째 걸음이 지면에 닿으려는 순간.

“잠깐!”

“…… 왜?”

“힘을…. 계승해주도록 하지.”

나는 최대한 기쁨을 참으며 대답했다.

“그래? 안 해줘도 되는데 말이야.”

“후우…. 이번 여는 자는 정말 굉장하군. 이런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내가 좀 굉장하긴 해.”

나는 스펙터 옆으로 살짝 붙으며 작게 독백했다.

“이제 돌아가도록 해, USB에서 추출한 내용은 발설하지 않도록 하지.”

“…… 삼촌, 그거 말하면 저는 사라져요. 제발 이상한 이야기 하고 다니지 마세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꺼져.”

“…… 하아, 소라 누나한테 안부 전해줘요.”

“소라 이모겠지. 나는 삼촌이고 왜 소라 씨는 누나냐.”

스펙터 녀석이 대답하지 않고 땅속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나는 녀석이 사라진 자리를 발바닥으로 강하게 한 번 내려찍은 후 요한에게 말했다.

“우선 일어나.”

내가 손을 내밀자 그가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방금 그 녀석은 어디로 간 거지?”

“이 밑에, 당신이 또 무슨 일을 할지 몰라서 대기시켜놨어.”

이것도 거짓말이다.

요한 파우스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물었다.

“김천재, 그럼 이것 하나만은 부탁을 좀 들어다오.”

“뭔데?”

“루시퍼를 막고 이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게 된다면.”

“된다면?”

“…… 네가 원하는 만큼 인생을 산 후, 세상이 멸망할 수 있도록 다른 인간에게 이 힘을 계승하도록 해라.”

내가 죽기 전에 힘을 계승하라는 말인가 보다. 나는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정말인가?”

“그렇다고. 어차피 내가 죽기 전에만 다른 이에게 이 능력을 전달하면 되는 거잖아.”

“…… 맞아.”

“그 정도쯤이야 어렵지 않지.”

내 대답을 들은 요한 파우스트가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계승 주문….’

이번 게임에는 처음 받아본다.

PC로 할 때는 플레이어들끼리 서로 필요한 주문을 이렇게 옮기고는 했는데.

진행이 빠르고 하루가 짧디짧은 이곳에서 계승할 줄이야.

요한이 말하는 글자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며 통통거리다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고드름으로 내 머리를 콕콕 찌르는 듯한 기분이다.

수십, 아니 수백, 아니 수천!

셀 수 없이 많은 글자가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난 후, 내 눈앞에 검은색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요한 파우스트’의 비기.]

[*‘네크로미노콘’을 획득합니다.]

[신화 속 신들에 대한 방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김천재’ 님이 보유하신 인구수가 무제한으로 바뀌며 소환에 제한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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