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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요한 파우스트가 매서운 눈빛으로 안나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요한 파우스트, 그 날을 기억하는가?”

테디 크라프트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 녀석이…. 당신이었나.”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

파우스트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그를 낮게 내려보았다.

“안나가 아픈가?”

“……”

“살려주마. 대신….”

댕그랑!

짧디짧은 단검 하나가 테이블 위에 던져졌다.

테디가 고개를 들어 날붙이를 보았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파우스트에게 물었다.

“죽으라는 건가?”

“그래, 그때의 우리 어머니가 나를 위해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너도 똑같은 길을 걷는다면, 내 너의 딸을 살려주도록 하지.”

방안이 얼어붙은 것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테디를 따라온 노파가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

“요한 님. 제발 제발 저희 아가씨를 살려주십시오.”

“방금 말했잖아. 이 녀석의 목숨을 그 값으로 대신한다고.”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그날의 일에 대한 값을 받아야겠어. 어이, 테디 크라프트. 어떻게 할 텐가?”

“요한 님!”

파우스트는 노파의 말에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테디를 내려 보았다.

“내가 죽으면 우리 딸을 고쳐줄 텐가?”

“그래.”

“…… 정말 고칠 수는 있는가?”

“내가 못 고치는 병은 없어. 목숨만 붙어 있다면 말이야.”

대화를 마친 테디 크라프트가 조용히 단검을 들었다. 그는 날붙이를 자신의 목 옆에 들이밀었다.

공포, 그 무게감이 얼마나 컸는지 손이 크게 떨렸다. 한참을 침만 꼴깍꼴깍 삼키던 테디 크라프트가 요한에게 말했다.

“내 딸 아이를 잘 부탁하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테디는 땅에 쓰러졌다. 붉은 피가 천천히 땅에 흘러 주변을 적셨다.

노파가 두 팔로 입을 다물고 천천히 신음을 내뱉었다.

요한이 죽어가는 테디를 내려 보며 와인을 천천히 마셨다.

“…… 부모란.”

촤르르륵!

또다시 안개 커튼이 쳐졌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지금까지 봐온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파우스트가 냉혈한 백작이라고 불린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허허….

아무리 그래도 사랑했던 사람의 부모를 눈앞에서 죽으라고 하다니.

내가 혀를 찼다.

촤르르륵!

‘응?’

벌써 다음 화면인가.

안개가 걷혔을 때는 파우스트가 절망적인 얼굴로 침대 위에 있는 안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안나 크라프트, 그녀의 행색을 보니 너무나도 초라했다. 그래도 시골 마을의 남작 딸이라면 꽤 높은 위치였을 텐데.

제대로 가공되지 않은 침대에 방안은 텅 비어 있다. 그 흔한 화장대조차 없었다.

안나는 밥을 못 먹은 듯이 삐쩍 말라 눈가가 푹 들어가 있고, 손과 발은 뼈 다음으로 가죽이 만져질 만큼 얇았다.

파우스트가 작게 속삭였다.

“안나….”

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녀의 숨이 멎어 있었다. 같이 따라온 노파가 엉엉 울며 파우스트의 등을 쳤다.

팍! 팍!

“이 악마! 이 악마! 당신만 아니었으면…. 당신만 없었으면!”

“……”

파우스트는 그녀의 한탄을 받아내며 안나의 손을 쓰다듬었다. 그리하더라도 차가워진 그녀를 다시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 시간 후 안나의 죽음을 받아들인 파우스트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노파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내 서고로 가서 B.Z라고 적혀있는 책을 가지고 오도록 하게.”

노파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미쳤군.”

“미치지 않고서는 지금 안나를 살려낼 수 없어.”

“…… ?!”

“서둘러, 안나의 몸이 더 변하기 전에 빨리 시작해야 하니까!”

노파가 우물쭈물하다가, 요한의 눈빛을 보더니 그대로 밖을 향해 뛰었다.

“안나…. 기다려. 너를 그때와 같이 되돌려 놓을게.”

이로써 나는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안나를 살리기 위해 황천으로 이동 중인 그녀의 영혼을 악마와의 계약으로 되돌려 왔다.

그러나 안나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단순한 연금술만으로는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부활의 영역에 닿지 않았다.

파우스트는 몇 날 며칠 동안 그녀를 살려낼 고민으로 연구를 계속했다.

모든 재산을 사용하여 전 세계에 있는 고대, 현대의 기록들을 모았다.

방대한 양의 자료들.

식사하는 시간조차 아껴 계속해서 문서들을 읽어 내렸다.

천상과 지옥,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신의 영역. 그리고 다시 되풀이되는 역사의 도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알게 되었다.

이 세계는 특정한 존재에 의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학문의 끝이라 생각되는 위치에 섰을 때, 그가 만들어낸 답은 하나였다.

“…… 영원.”

불로불사의 약을 만들어, 자신이 살아 있다면. 그리고 그 후에 멸망에서 살아남는다면.

안나 크라프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나는 빠르게 돌아가는 스토리 화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후 파우스트는 게이트를 만들어 악마와의 접촉을 시도했고, 그들의 수장인 벨제붑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여는 자’라고 불리는 자들과 함께 여행하며 역사를 바꾸기 시작했다.

요한 파우스트가 겪은 이야기들은 우리가 지나온 이야기와 비슷하다.

그저 과거와 현대의 차이일 뿐.

하지만 목적은 달랐다.

그의 목적은 멸망을 좀 더 앞으로 당기는 것이었다.

그 당시 여는 자 그룹이 지옥 성전에 있는 ‘사자의 탑’을 방문한 이유도 지금 보니 요한과 그의 뒤에 있는 벨제붑 때문이었다.

티아마트에게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벨제붑이 그를 통해 뜻을 전달한 것이었다.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들은 티아마트가 아누에게 대항할 힘을 벨제붑에게 주고, 그게 바로 루시퍼의 탄생 기원이 되었다.

스토리의 화면이 점점 빠르게 넘어간다. 그런데도 나는 모든 장면을 인지할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십, 아니 몇백 년 어치의 화면을 본 나는 두 눈을 감았다.

‘…… 저기 있는 건가, 파우스트는.’

내가 마지막으로 본 화면에는 파우스트가 작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삐이이이-

귀에 이명이 일었다.

[스토리 화면이 종료됩니다.]

[현 시간부로 ‘사자의 서’의 메인 기록자가 김천재 님으로 변경됩니다.]

“……”

눈을 떠보니 유소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그녀에게 물었다.

“하아…. 소, 소라 씨?”

유소라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예! 왜 제가 소라 씨에게 누워있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까 사자의 서를 읽어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제 쪽으로 누우시길래 저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이번 스토리 화면은 나만 보고 온 건가?

“……”

“그 후에는 그대로 주무셨고요.”

그렇구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북문을 확인했다.

리나와 지군이 놀 듯이 악마와 전투를 하고 있다.

적군의 변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나 보다.

“어이 지군!”

내 외침에 지군이 바로 반응했다.

“어어, 말해!”

“잠깐 와봐. 할 이야기가 있어.”

지군이 창을 크게 휘둘러 근처에 있는 악마들을 처리하더니, 곧장 내게로 달려왔다.

“…… 뭔데.”

“내가 잠깐 가야 할 곳이 있어서, 네가 그동안 지휘 좀 해야겠다.”

“뭐…. 문제는 없는데. 어딜 가려고?”

“어디라…. 고 정확하게 말하기가 힘드네.”

“음?”

“그냥, 이 게임에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다녀오게.”

“아직도 못 구한 물건이 있어?”

“어, 나도 몰랐는데 그런 게 있더라고.”

지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대로 해. 너무 늦지 않게만 오도록 하고.”

“…… 고맙다. 그럼 정우 돌아오면 네가 알아서 잘 이야기한 후 막고 있어.”

“오카이!”

대화를 마친 나는 그대로 폐허가 된 마을 밖으로 향했다. 내가 본 스토리 화면과 지형이 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예상되는 파우스트의 오두막 위치는 바로….

바로 이곳.

대경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으로 이어지는 숲속이다. 앞서 루시퍼의 부하들이 대기하고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분명 오두막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붙어 있었다. 땅에 귀를 대자 멀지 않은 곳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 * * * *

파우스트의 오두막을 찾았다.

외관만으로 확신을 지을 수 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고는 시간이 많이 흘러 이끼와 넝쿨이 외벽을 감고 있다는 것.

“…… ”

똑똑똑.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그들이 남아 있겠는가?

끼이이이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그 안으로 자그마한 책상 하나와 곰팡이 핀 침대가 보였다.

사람은 없었다.

오직 물건들만이 있었을 뿐.

나는 책상 위에 있는 자그마한 액자를 확인했다. 웃고 있는 안나와 요한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다.

자신들이 이곳에 있었음을 나타내려는 건가.

‘…… 흐음.’

나는 파우스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놈이 남긴 네크로맨서의 비기, 지금까지 나도 모르던 새로운 스킬을 분명 이곳으로 들고 들어갔었다.

쿠웅-. 쿠웅-.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모든 곳을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런 물건도 없었다.

‘…… 없다.’

그럼 그 스토리 화면을 내게 보여준 이유가 뭐란 말이지?

나는 침대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

끼이이이익.

침대의 축이 기울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내 무게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낡았나 보다.

어떻게 되었는지 고개를 숙여 축을 보려고 하는데.

“…… 빙고.”

찾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침대를 강하게 당겼다. 침대의 다리가 땅을 강하게 끌며 옆으로 밀려났다.

드르르륵-

이어 그 밑으로 계단이 보였다. 이끼가 가득 껴있는데 발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근래에는 사용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불로불사의 약을 만드는 것은 실패한 건가?

“…… 뭐.”

녀석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터벅. 터벅.

나는 계단을 따라 밑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부츠가 미끈거려 걸음이 조심스럽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토치라도 하나 들고 올걸.

나는 라이터를 꺼내어 앞을 비추었다.

타닥!

멀지 않은 곳에 문이 보인다. 앞서 이 게임에서 계속해서 보이던 바포메트 문양이 그려져 있는 철문.

속도를 내어 계단의 끝으로 가자, 습한 냄새와 함께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시스템 메시지]

[‘파우스트의 비밀 방’에 도착하셨습니다.]

[문을 여시겠습니까?]

[YES/NO]

선택지는 당연했다.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왠지 보면 안 될 것이 이 안에 있는 느낌이다.

“……”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안에서 지친 기색을 띄우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는가, 여는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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