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시스템 메시지]
[열네 번째 라운드의 첫 번째 악마 진격이 시작됩니다.]
저 멀리 마을을 향해 달려오는 악마들이 보인다. 먼지가 일 정도로 빠른 걸음, 사방을 동시에 지켜볼 수 있는 3개의 머리를 가진 개.
[켈베로스]
이 녀석들은 후에 올 병력들에게 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악마 군의 선발대다.
굳이 모두가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는 하급 몬스터, 좀비나 구울에 비해서는 꽤나 힘 좀 쓰는 놈이지만.
그래도 전투 목적으로 만들어진 녀석은 아니어서 지옥에서 온 놈 중에는 제일 약한 과에 속한다.
부웅-
콰드드드득!
마정우가 일격에 열댓 마리의 켈베로스를 날려 보냈다. 신의 무기란 참 오묘하고도 굉장했다. 튕겨내듯이 적들을 날려 보냈는데, 날붙이에 베인 상처가 그대로 있다.
녀석들 중 반 이상은 몸이 분리되어 땅에 뒹굴었다.
그나마 상처로 끝난 켈베로스들은 쩔뚝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말이다.
전투를 지켜보던 내가 앞으로 나왔다.
“리바이브.”
내 주문에 쓰러진 켈베로스 몇 마리가 일어섰다.
“마정우, 이제 내가 할 테니까 잠깐 쉬어!”
단신으로 악마를 상대하던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이거 한 방만.”
[광전사의 포효]
그가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우리 그룹원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우워-!
콰광! 소리와 함께 지면이 갈라지고 주위에 있는 악마들이 정신을 잃었다.
지군이 석연찮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런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말을 하라고!”
“…… 너 정도 실력이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잖아?”
“안 괜찮거든? 하…. 이래서 야만인들하고는!”
“뭐? 야만?”
“……”
내가 정우의 어깨를 툭 친 후 문밖으로 나갔다.
“쉬고 있어.”
“그래, 교대 필요하면 말해라.”
“한동안은 필요 없으니 체력을 전부 채워놔.”
정우가 엄지를 치켜들더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벌어질 긴 전투를 위해서는 이렇게 순서대로 싸워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힘을 다 쓴 상태에서 루시퍼를 맞이할 수는 없으니….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소환수들에게 명령했다.
“가라-.”
신호를 받은 스켈레톤 병사와 갓 일으켜 세운 켈베로스들이 전방을 향해 뛰어갔다.
적과 아군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턱을 괴고 조용히 놈들을 내려보며 다음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무한한 몬스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루시퍼 입장에서는 굳이 본 게임을 서두르지 않을 테고.
때가 되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키에에엑!
주위를 어느 정도 정리한 나는 켈베로스들을 다시 상대방 진영 쪽으로 되돌려 보냈다.
어설픈 공격으로는 아무런 대미지를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내 수하에서 움직이는 켈베로스들이 적군의 켈베로스와 뒤엉켜 싸운다. 그 모습을 악마 군의 부관쯤으로 보이는 자가 목격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놈이 두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루시퍼가 있는 후방으로 이동했다.
‘좋아….’
이제 녀석이 보고하면 새로운 악마들이 우리를 찾아오겠지.
* * * * *
내 예상대로 흘러간다.
보고를 받은 루시퍼가 마을을 공격하는 적의 종류를 바꾸었다. 대부분이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간, 악에 물든 수인족이었다.
근육질의 캥거루 격투가.
탄탄한 몸을 가진 하마 전사.
머리 회전이 빠른 원숭이 마법사.
시력이 뛰어난 고양이 궁술사.
악마라고 부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모두 중급 이상의 몬스터들이다.
마치 중세시대 전장에서 볼법한 진형으로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주위에 널려있는 켈베로스의 시체들을 소생시켜 녀석들에게 보냈다.
잠시지만 녀석들의 걸음이 지연되었다.
내가 녀석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잠깐의 지연이 다음 부대와의 간격을 줄였다.
“리바이브.”
계속해서 켈베로스를 보냈다.
놈들은 점점 뒷줄과의 거리가 줄어들었고, 결국 첫 번째 부대와 두 번째 부대와의 거리가 1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조용히 녀석들을 기다렸다.
놈들이 기지 앞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쿵! 쿵! 쿵!
제일 앞에 선 하마 전사들이 창봉으로 땅을 두드렸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와 내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길을 연다면 너희는 살려주도록 하마.”
“…… 길을 열라고?”
“그래, 길을 열어라.”
내 오라의 형태와 크기만 보더라도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을 텐데.
녀석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기세등등한 자세를 취했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길을 열면 되는 거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아라, 인간.”
“…… 그래, 그럼 길을 열도록 하지.”
내가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리곤 천천히 전방을 향해 내리며 검지로 녀석들을 찍었다.
“드래곤, 브레스.”
-쿠어어어어어!
머리 위에서 드래곤의 울음이 들려왔다. 적군들이 고개를 들어 정체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조용히 하늘을 날고 있던 본 드래곤이 빠르게 이륙을 하며 입을 벌렸다.
-방패 머리 위로!
수인족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방패를 머리 위로 치켜들더니 방어할 준비를 했다.
과연 드래곤 브레스를 막아낼 수 있을까?
드래곤 중 최강의 힘을 가진 본 드래곤에게서 말이다.
화르르르르륵!
본 드래곤이 강력한 화염을 뿜어냈다. 고열을 방패로 막아내면 결과가 어떨 것 같나?
고통을 참아내지 못한 수인족들이 방패를 떨구고, 그대로 녹아내렸다. 그들 중 몇몇은 도망가려 했지만 사방이 화염으로 덮여 갈 곳이 없었다.
앞 부대와 뒷 부대의 간격이 짧아진 덕에 한 방에 두 개의 부대를 전멸시켰다.
“…… 멍청한 놈들.”
-쿠워어어!
[시스템 메시지]
[‘제3의 눈’이 입을 떡 벌리고 김천재 님을 향해 손뼉을 칩니다.]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을 연신 내뱉습니다.]
전투를 지켜보던 지군이 휘파람을 불며 내게 소리쳤다.
“여어! 우리 형 최고다!”
나는 전멸한 부대의 하마 대장에게 물었다.
“미안하다 길을 열었는데. 뒤로 열었다.”
“……”
“어떻게, 열린 길로 갈래? 아니면 네가 직접 길을 만들어볼래?”
내 질문을 들은 하마 대장이 창을 치켜들었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죽는 건 마찬가지.”
“그래?”
“뒤로 가도록 하겠다.”
“그래, 어?”
하마 대장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나는 놈이 도망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았다.
원하던 그림이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 보고해주면 나야 고맙다.
멀뚱히 서 있자 유소라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천재 씨.”
“예.”
그녀가 사자의 서를 꺼내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되었어요.”
“그래요? 뭐라고 적혀 있어요?”
“‘한 순간의 자만이 내 끝을 바꾸게 되었다. 분하다, 너무나도 분하다. 이 녀석만 끝냈다면 드디어 멸망을 막을 수 있었는데.’”
여는 자의 시점에서 적힌 내용인가? 유소라가 잠깐 눈을 찌푸렸다가 다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이곳에 적어 놓았으니, 내 길을 따라오는 자는 절대 자만하지 말도록 해라. by. 파우스트.’”
“……?!”
파우스트?
파우스트라면 게임 내에서 몇 번 언급 된 인물이다. 지옥의 악마들과 거래하여 큰 힘을 얻은 인간.
“계속 읽을까요?”
“더 있어요?”
“예, 죄송해요. 제가 한 장 뒤를 먼저 읽어버렸어요.”
“…… 그럼 앞 장이 남았다는 거죠?”
“네.”
내가 침을 꿀꺽 삼켰다.
파우스트는 네크로맨서 직업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자이다.
왜 ‘여는 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는지, 아니! 저 책을 쓴 자가 왜 파우스트인지는 모르겠다.
짐작이 가는 부분도 없다.
스토리를 진행하며 저 자에 대해 언급된 이야기들은 전부 이 세계의 멸망을 초래한 태초의 인간.
악마들이 넘어올 수 있도록 게이트를 열었던 인물.
유소라가 다시 책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멸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검게 물든 종이를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무(無)의 형태, 새로운 종이가 필요하다.’”
“……”
“‘내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지금의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썩어 버렸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신들이 세계의 존폐 유무를 논하고 있다.’”
“신들이……”
유소라가 내 눈치를 보며 슬쩍 물었다.
“계속 읽을까요?”
나는 리나와 지군에게 전방을 맡긴 후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위병소 앞에 앉아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나머지 부분, 읽어 주시겠어요?”
“…… 네.”
유소라가 손가락으로 읽던 구절을 다시 찾더니 대화를 이었다.
“‘어리석은 인간 몇 때문에 이 세계를 잃을 수는 없다. 내 사랑하는 안나를 위해서라도 지켜야 한다.’”
‘…… 안나?’
“‘어쩔 수 없다. 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나서 어리석은 자들을 처리할 수밖에.’”
이야기를 듣던 내 의식이 갑자기 몽롱해진다. 비틀거리자 유소라가 내 어깨를 잡아주며 물었다.
“처, 천재 씨?”
나는 벽에 몸을 기대며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계속 읽어주시겠어요?”
“정말 괜찮아요?”
“…… 예, 계속하세요.”
“‘사자의 탑’에서 이 세계로 돌아온 나는 이후로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과 연락을 끊었다. 아니지, 그들을 피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었다.”
누군가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는 것처럼 머리가 아프다.
갑자기 왜 이런 거지?
내가 잠시 시선을 돌려 북쪽 문을 보았다. 리나와 지군이 적들을 가볍게 상대하고 있다.
‘저 둘이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유소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계속이요.”
“…… 네. ‘안나 크라프트, 내 여인이여. 너무나도 아름다운 내 사랑. 이제 곧 있으면 당신을 만날 수 있게 된다오.’”
안나 크라프트?
갑자기 내 머릿속에 갈색 머리의 여인 한 명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눈앞에 하얀 안개 커튼이 쳐졌다. 몸이 둥실, 하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숨겨진 스토리 발견]
[사자의 서 발동, ‘파우스트의 추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자의 서’ 저자, 파우스트의 기억이 담겨있는 책장을 발동시켜 스토리 영상을 재현합니다.]
‘이게 무슨……’
지금까지 겪어 온 스토리 영상 재현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평소에 보았던 하얀 연기가 일반적인 집 커튼 같았다면, 이번에는 공연 무대에서나 볼법한 커다란 크기였다.
스토리 화면으로 넘어오자 두통이 사라졌다. 아마 ‘사자의 서’에서 무언가 발동하여 내 뇌를 자극시켰었나보다.
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스토리 화면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 소라 씨?”
일부러 소리를 내보았다.
역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번 흐름은 나 혼자서 목격하게 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자들도 이 장면을 보고 있을까.
뭐-.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을이 걱정 되었다.
우리 모두가 스토리 화면으로 넘어오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힘들게 싸워야 하니까.
‘……’
“야 파우스트!”
갑자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어려 보이는 음성이다. 많게 보아도 초등학생, 혹은 유치원생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의 저학년인 것 같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안개 커튼이 천천히 쳐지기 시작했다.
보인다.
드디어 보인다.
저 녀석이 파우스트인가?
“…… 쏘리,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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