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신전, 그 안으로 향하자 처음 보는 게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흑색도 백색도 아닌,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그저 투명한 게이트.
우리 외에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커다란 벽, 그 너머에 있는 세계.
게이트 안으로 발을 담그자 금빛 메시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메카니아’ 초월의 대격전지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드디어-.’
쿠구구궁!
쾅! 콰과광!
여기저기서 총성과 포탄음이 들렸다. 우리는 이미 전장이 되어버린 메카니아 중앙에 떨어졌다.
[‘김천재’ 님의 그룹]
[앞으로 진행될 ‘멸망의 땅’ 열네 번째 라운드의 스토리 흐름을 선택해주세요.]
A. 루시퍼를 무시하고 지옥으로 향한다.
B. 루시퍼를 처치하고 지옥으로 향한다.
당연히 두 번째 선택지로 이동해야 한다. 녀석을 상대하지 않으면 마을이 초토화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가 돌아갈 장소도 없어져 버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B를 선택했다.
[선택지- B]
[‘루시퍼 처치’ 흐름을 부여받습니다.]
[현 시간부로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악마가 김천재 님의 그룹을 노리기 시작합니다.]
‘좋아….’
이렇게 되면 희생이 없는 이상 그 누구도 이 전투를 멈출 수는 없다.
오직 루시퍼를 죽이는 것만이 멸망을 막고 이 전쟁을 끝을 보는 길.
인간과 악마.
둘 중 하나는 오늘 사라지게 된다.
“가자!”
내 외침과 동시에 다섯 명이 맡은 바의 임무를 위해 흩어졌다.
‘우선은….’
메카니아 내부에 있는 적들을 모두 처리한다.
“에이도스, 현재 메카니아 내부로 침입한 적의 수를 보고하도록.”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현재 메카니아 내에 활보 중인 악마의 수는 총 ‘육십 오 마리’입니다.]
방어 시설이 탄탄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적은 수였다.
“좋아, 최대한 로봇 기체를 사용하지 않고 방어 타워를 가용해서 막을 수 있도록 한다.”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도시 전역에 있는 방어 타워를 가동해 악마들을 막기 시작합니다.]
[시간당 전력 소비가 5% 증가합니다.]
지군이 내 옆으로 빠르게 달려와 물었다.
“에이도스한테 명령 내렸어?”
“어, 여긴 내게 맡기고 너는 ‘폐허가 된 마을’로 가는 게이트 쪽으로 길을 열어.”
“후후후…… 그 명령, 기다리고 있었다능.”
“…… 빨리 가.”
“오카이!”
지군이 머리 위로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뛰어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텐션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키에에에엑!
‘오호라.’
Z바이러스에 감염된 오우거와 트롤이 마을 안에서 활개치는 모습이 보였다.
악마들뿐만 아니라 몬스터들도 출전했구나.
‘그때보다 더 많은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건가.’
재밌네.
정우가 신이 난 듯 뛰어다니며 몬스터를 잡았다. 대부분이 스치기만 해도 보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놈들이다.
마이클이 계속해서 성스러운 주문을 난사했다.
‘가브리엘의 지팡이’. 생긴 건 지팡이 같은데 산탄총처럼 빛나는 탄을 난사할 수 있었다.
“퍽, 댐, 이블즈!”
“…… 마이클 조심해!”
하늘에서 날아온 가고일이 마이클의 머리를 노렸다.
그 순간 유소라가 날아올라 가고일의 옆구리를 걷어찬 후.
팍!
라파엘의 지팡이를 휘둘러 머리를 박살냈다.
쾅!
단단한 가고일의 몸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그녀가 가볍게 땅에 착지하더니 마이클의 등을 툭 쳤다.
마치 정우와 내가 하는 것처럼.
“마이클 씨, 조심하세요.”
“…… 고마워요우!”
이제 모두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실력이다. 믿고 등을 맡겨도 될 정도로 뛰어나다.
쿠궁!
조복춘이 땅에 우리엘의 창을 꼽더니,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헬 파이어!”
그녀를 중심으로 땅이 사방으로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검고 붉은 화염이 솟구쳐 올랐다.
불꽃들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그녀의 생각대로 움직이며 적들을 공격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아 상황을 파악한 후, 메카니아 밖을 향해 달렸다.
* * * * *
메카니아 밖에 도착한 나는 리콜 주문을 사용하여 모두를 불러냈다.
네 명의 핵심 인물과.
박규환, 아레스, 가웨인, 불카누스.
-전투 준비 완료!
대대급의 스켈레톤 병사.
-크허허허허…….
이어 하늘 높이 날아오른, 이번 전투의 핵심 공격원.
부웅-!
-캬아아아악!
본 드래곤.
나는 스켈레톤 병사를 모아놓고 주문을 외워 전부 각성 상태로 만들었다.
백 마리에 가까웠던 녀석들이 합쳐지며 절반으로 줄었다.
‘한 마리 정도는 각성하지 않아도 되니까…… ’
[‘각성 스켈레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이어 다시 한번 스켈레톤 병사를 향해 소환 주문을 외웠다.
[‘2차 각성 스켈레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50마리에 가까운 숫자, 정확히는 49마리였던 스켈레톤이 또 다시 그 절반인 24마리로 줄었다.
단순히 등과 어깨에 가시가 튀어나왔던 1차 각성과 다르게, 2차 각성은 팔이 네 개로 늘어나고 사용하는 스킬이 많아졌다.
붉은색의 좌측 손은 원소형태의 스킬을 사용하고, 푸른색의 우측 손은 물리형태의 스킬을 사용한다.
전사와 마법사의 융합 형태, 바로 이 녀석들이 2차 각성 스켈레톤이다.
그리고 마지막.
“스켈레톤 소환.”
세 번째 소환 주문.
24마리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다시 절반으로 줄어들며,
[‘3차 각성 스켈레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12마리가 되었다.
2차 각성 형태에서 크기만 커진 상태, 뼈가 부풀어 올라 골렘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몸집이 늘어났다.
“…… 좋아.”
※ 신규 영입: 레전드 스켈레톤
(3차 각성)
레벨: 99
생명력: 6666/6666
마나: 4444/4444
체력: 666 공격: 666
방어: 444 속도: 444
▶뼈가 너무 단단하다.(패시브) (마나 소모: 0)
-모든 대미지 감소 50%.
▶단숨에 꺼지는 생명의 불꽃
(마나 소모: 4444)
-모든 생명력을 소모하여 지정 대상에게 물리적인 대미지를 입힙니다.
(*시전자의 최대 생명력에 비례하여 적에게 대미지를 줍니다.)
‘…… 완벽해.’
앞서 루시퍼의 환상과 대결할 때의 모습과 똑같다. 큰 이변이 없다면 이 녀석들만 사용하더라도 루시퍼의 각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박규환, 너는 이 근처에 출몰하는 몬스터를 막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레스, 너는 도시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거인들을 상대하도록 해.”
-알았다.
“가웨인은 나를 따라오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주군.
“불카누스 너는…… 어디 가서 죽든지 해라. 인구수만 아깝고 이제 필요도 없다.”
불카누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아니 일은 죽도록 시켜놓고 이제와서 무슨 소리야?”
“…… 아니. 그럼 너도 이 근처에서 박규환과 함께 몬스터를 사냥해.”
“나는 싸울 줄 모르는데?”
“그럼 그냥 죽든가. 시간 없으니까 작전 전달은 이제 마치도록 한다. 그럼 가자!”
내 시작 신호와 함께 모두가 자신의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
불카누스가 내 뒤를 따라오며 소리쳤다.
“나, 나도 데려가라고!”
가웨인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검을 치켜들자 불카누스가 뒤로 물러섰다.
“주군께서 명하신 말을 따르도록 해라. 그게 네 운명이다.”
“…… 시벌.”
* * * * *
본 드래곤이 크게 날갯짓을 하자 하급 악마들이 날아갔다. 가고일 수백 마리가 동시에 덤벼 보았지만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박살났다.
힘의 격차가 다르다.
단순한 무력으로는 절대로 묶어 놓을 수 없는 존재. 그 사실을 눈치 챈 루시퍼가 대악마 중 한 명인 ‘리바이어던’을 강제로 소생시켰다.
지옥에서 녀석의 영혼을 데려왔었나? 어떻게 강림 의식 없이 바로 살려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콰광!
다시 살아난 리바이어던은 전과 다르게 훨씬 강했다.
녀석이 동양풍의 날개 없는 거대한 용으로 변해, 본 드래곤과 서로 힘겨루기를 했다.
“크으으으, 김천재 이 배신자 녀석!”
“…… 뭐래, 악마 주제에.”
내가 콧방귀를 끼자 녀석이 더욱 날뛰었다. 그래도 나를 향해 다가올 수는 없었다.
본 드래곤은 한눈을 팔며 상대할 정도로 약한 존재가 아니니까.
둘이 맞붙는 동안 나는 루시퍼가 있는 동굴로 향했다. 어차피 녀석과 정면 대결을 할 생각은 아니라, 걸음이 가벼웠다.
내 역할은……
‘녀석을 동굴 밖으로 끌어내는 것.’
동굴 안으로 향하자 강력한 기운이 나를 반겼다. 심장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기운, 너무나도 어두워 칠흑이라 표현하고 싶을 정도의 불길한 오라다.
안으로 향하는 동안 기운 넘치는 악마 몇이 내 앞 길을 가로 막았다.
“비켜라.”
앞서 상대한 악마들은 이 말만 들어도 몸이 굳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이곳에 있는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역시, 밖에 있는 놈들과는 지닌 오라 자체가 다르다.
나는 녀석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스켈레톤 병사로 길을 뚫었다.
콰드득!
이 녀석들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거기까지.
동굴 안에서 루시퍼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마치 지친 듯한 목소리였다.
“루시퍼, 이런 조무래기를 보내지 말고 직접 나와라.”
“…… 김천재, 네 녀석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알고 있으면서 뭐가 무슨 일이야? 네 목을 따러왔지.”
-크하하하하!
동굴 안쪽에서 루시퍼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 목을? 네가?”
“그래.”
“무리라는 것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 그건 해봐야 알지.”
“아니, 네가 이곳에 온 목적 따위는 이미 알고 있다.”
“뭘 맨날 알고 있대? 알면 나와서 말해봐.”
“……”
루시퍼가 답을 걸어오지 않았다.
나는 또 다시 동굴 안으로 향했다.
몇 발자국 앞으로 걷자, 녀석이 숨을 거세게 몰아쉬며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라.”
“싫다면?”
“죽는다.”
“…… 네가?”
“그럴지도.”
애매한 답변.
나는 녀석이 왜 저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자신감 있게 앞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럼 그러든가.”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놈이 더 이상의 대화를 걸어오지도 않았다.
점점 강력한 오라가 느껴진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온다. 가슴이 쿵쾅거려 뇌까지 흔들리는 것 같다. 숨이 빨라져 침이 자꾸 삼켜진다.
[시스템 메시지]
[‘대악마 루시퍼’가 당신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전방 100미터 앞에 어둠의 결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지.’
결계쯤이야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손을 저어 홀로그램 화면을 흩트린 후 다시 앞을 향해 걸었다.
백 미터면 정말 가까운 거리.
얼마 걷지 않아 투명한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루시퍼에게 다시 말을 걸어 보았다.
“루시퍼, 아직인가?”
“…… 무엇을 말이지?”
“아까 네가 말했었지.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알고 있다고.”
“……”
“나도 알고 온 거야. 네가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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