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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화

저택의 문을 열자 고티가 서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설마 우리에게 장난을 치려했던 것인가.

아니지, 그럴 리가 없다.

고티의 성격상 게임 중에는 절대로 장난을 치지 않는다.

그가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깔고 말했다.

“김천재.”

“…… 말해.”

내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고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상황을 모른다는 듯한 표정.

“큰일 났다.”

“왜.”

“내 그림자를 빼앗겼다.”

“그림자를?”

이게 무슨 일인고 하니 루시퍼의 기지를 정찰하던 중 녀석에게 꼬리를 밟힌 것이었다.

게다가 고티가 ‘그림자 훔치기’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루시퍼가 능력을 받아쳐 그림자까지 빼앗겼다는 말이다.

“루시퍼에게 그런 스킬이 있었나?”

“이번에 추가 되었나 봐.”

“흐음…. 그럼 나가린데.”

“…… 음?”

“아니아니, 내가 좀 생각해둔 게 있어서 말이야. 그나저나 그림자를 빼앗기면 어떻게 되는 건데?”

고티에게 질문을 함과 동시에 설마 아까 그 그림자는 루시퍼가 조종하는 것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군이 갑자기 척척박사처럼 안경을 치켜세우며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내가 답해주도록 하지.”

“…… 그래 말해봐.”

“너희들이 모르는 루시퍼의 스킬, ‘되돌리기’는 항마사에 가까운 적이 있을 때 사용하는 능력이다.”

“항마사? 고티는 항마사가 아니라 암살자인데.”

“시스템이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겠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티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 목걸이 때문인 것 같군.”

“목걸이?”

“저번 라운드에서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백 퍼센트의 확률로 상대방의 스킬을 1회 방어하는 능력이 있어. 딜레이 타임은 60분이고.”

“…… 그런 아이템이 있다고?”

“그래, 착용하는 동안에만 발동하는 능력인데…. 아마도 이것 때문에 항마사로 인식한 것 같아.”

이해되었다.

특별한 조건이 걸리면 루시퍼도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구나.

“…… 그럼 루시퍼가 네 능력을 반사했을 때 막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그 전에 녀석의 손톱을 한 번 막은 상태라 쓸 수가 없었지.”

“흐음…. 지군, 근데 너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냐?”

지군이 얄미운 표정으로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내 친구가 저 스킬에 당해서 죽었었거든.”

“응? 우리말고 루시퍼를 상대한 사람이 있었나?”

“우리랑 다른 선택지로 가서 봉인이 덜 풀린 루시퍼랑 싸운 플레이어들.”

“아….”

“세미 루시퍼라고 해야 하나? 풀파워가 아니니까.”

그렇다.

루트가 다르면 스토리의 흐름도 다르다. 벨제붑이 아닌 봉인이 덜 풀린 루시퍼와 싸우는 루트도 있었으니 말이다.

15라운드의 결과는 똑같지만.

고티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내 그림자를 찾는 것 좀 도와주겠나?”

“…… 잠깐만. 지금 그 그림자는 그럼 루시퍼가 조종하고 있는 거야?”

“아니. 루시퍼와 내 데이터가 둘 다 들어간 복합체. 스스로가 움직이고 있다.”

“…… 뭐?!”

“녀석은 누군가에게 조종받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어. 두 개의 정신이 섞여서 무엇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리 무기를 노릴 수 있었던 건가. 플레이어가 아닌 시스템이니 저택에 입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허허….

루시퍼와 고티의 데이터가 들어가 있다면, 강한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예측되지 않는다.

“…… 완전 몬스터네?”

“그렇지, 굉장히 강한 몬스터.”

“그럼 아까 그 일도 이해가 되고….”

“그 일?”

나는 고티에게 무기 도둑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누군가 저택에 들어와 신의 무기를 훔쳐가려 했다는, 생각해보니 한 번에 한 개만 들 수 있는 무기인데, 동시에 여러 개를 가져갔다면 플레이어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럼 우선 이 근처부터 수색하도록 하자.”

“알았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테니, 지군하고 먼저 움직이고 있어.”

“알았다. 그리고 고맙다.”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유어 웰컴.”

* * * * *

폐허가 된 마을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모두 나서 고티의 그림자를 찾기 시작했다.

마이클이 자신의 몸과 하나가 된 가브리엘의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었다.

“천사의 찬가!”

그가 주문을 사용하자 원형의 빛나는 구가 하늘로 높이 올라가 펑! 하며 터졌다.

[‘마이클’ 님이 천사의 찬가(강화)를 사용합니다.]

황금빛 아기 천사 수천 마리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녀석들이 악한 기운을 찾아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그중 몇 마리는 내게 날아오기도 했다. 플레이어임을 인지한 후 다른 곳으로 향했지만.

투드드드득!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악한 물질들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누군가 소리쳤다.

서둘러 달려가 보이니 리 커우러나의 부하가 검은 그림자에게 붙잡혀 땅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낫을 크게 휘둘러 땅을 찍어 내린 후.

쾅!

리 커우러나의 부하를 끄집어냈다.

“나와!”

“크윽…. 감사합니다!”

우리 소리를 들은 다른 플레이어들도 한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가 도망가려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이내 포기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뚜렷하지는 않았다.

“…… 말 할 수 있나?”

내가 낫을 겨누었다.

녀석은 아무 대답 없이 내 낫과 똑같은 그림자를 만들어 나를 겨누었다.

오라의 크기로 보았을 때, 나 혼자서도 이길 수 있는 적이기는 한데.

정확하게 어떤 능력을 사용할지 모르니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부우우웅-

쾅!

정우가 나타났다.

“이 시밸럼이 그 새끼냐?”

단방에 그림자가 반으로 갈라졌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인 덕분에 세로가 아닌 가로로 잘렸다.

신의 무기답게 굉장한 위력이었다. 그의 무기가 닿은 지면이 갈라져 거미줄처럼 많은 갈래를 만들어 내었다.

쉬이이이익-

팍!

이번에는 리나의 마법 창이 그림자의 하체를 찔러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김천재, 이 녀석이야?”

“…… 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소라의 영혼 물고기들이 날아와 그림자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상체가 하체를 버리고 크게 발버둥을 치며 도망가려 했다.

피슝-

탁!

화살 한 발이 날아와 그림자의 상체에 명중했다.

이어 지군 녀석이 메타트론의 창을 창던지기 선수처럼 강하게 날려 그림자의 머리를 찍었다.

쿵!

빛이 회오리치며 공명을 만들었다.

그 주위의 그림자 머리가 지우개로 지운 것 마냥 소멸하였다.

‘…… 제법이네.’

고티가 건물을 뛰어넘으며 달려왔다. 그가 완벽하게 제압된 그림자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군. 고맙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생명력 게이지도 없고. 죽지를 않는데 말이야.”

“…… 이제부터는 내게 맡겨.”

고티가 그림자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대더니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그가 어떠한 주문을 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자가 천천히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그런 건가.”

그림자의 반을 흡수한 고티가 내게 말했다.

“저기 남은 그림자는, 루시퍼의 것이야.”

“……?!”

“저 녀석만 잘 잡아두면 루시퍼의 원소 저항을 제로로 만들 수 있어.”

“루시퍼에게 날린 네 스킬은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니, 내가 사용한 스킬이 되돌려졌을 뿐. 실패한 건 아니야.”

“그게 그 말이잖아. 거울로 빛을 반사하면 투과하지 못하는 것 같은 개념 아니야?”

고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스킬은 그대로 들어가고 사용한 능력만 되돌아오더군.”

“…… 오호라. 그럼 우선 공격이 들어가기는 한다는 거지?”

“그렇지.”

“…… 좋아, 소라 씨.”

유소라가 빠르게 달려와 내게 물었다.

“부르셨어요?”

“영혼 물고기로 저 그림자를 전부 먹어 주세요.”

“…… 넵! 그거야 쉽죠.”

고티가 그림자를 먹는 물고기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굉장하군, 나와 반대되는 능력이야.”

“그렇지? 나도 처음에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어. 영혼을 먹는 물고기.”

다들 크게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유소라의 영혼 물고기가 최강 능력에 가깝다.

저 녀석들은 공격이 통하지 않는데다가 그저 영혼을 뜯어먹으니 막을 방법이 없다.

신체 능력까지 뛰어나면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물론….

영혼이 없는 내 스켈레톤 병사들에게는 무용지물이지만 말이다.

콰드드득.

물고기가 마지막 그림자 조각을 씹어 먹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메시지 창이 열렸다.

[시스템 메시지]

[현 시간부로 ‘대악마 루시퍼’ 님의 원소 저항력이 0으로 측정됩니다.]

[4대 원소와 빛, 어둠 속성을 가진 스킬에 취약해집니다.]

50%의 능력치와 0%의 원소 저항력.

완벽하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녀석을 잡으러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

* * * * *

다음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천국으로 향하여 게이트 앞에 섰다.

이곳을 통해 게이트를 넘어가는 것이 다음 라운드의 선행 조건이니까.

“다들 준비되었지?”

내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번 게임에서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다면 절대 루시퍼에게 지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많은 경험을 토대로 이 상황을 만들 수 있었으니….

쾅!

회랑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악마들의 공격은 아니다.

그저 안에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을 뿐.

우리는 개의치 않고 지옥으로 향하는 게이트에 발을 담갔다.

[‘돌이킬 수 없는 길’ 열네 번째 라운드를 진행하시겠습니까?]

[YES/NO]

별것 아닌 진행창인데 갑자기 망설여졌다. 라운드의 이름부터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이다.

내가 잠시 걸음을 멈추자 정우가 뒤에서 등을 밀었다.

“뭐 해? 너답지 않게.”

“…… 그렇지?”

“가서 전부 조져버리고. 그 녀석들을 찾아가자고.”

“…… 그래.”

쓰읍-

내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푸후-.

천천히 내뱉었다.

역시 천상의 공기는 상쾌했다.

터벅.

내가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열기가 발끝에 닿았다.

터벅.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곤 두 개의 선택창 중 좌측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YES]

[현 시간부로 ‘돌이킬 수 없는 길’ 열네 번째 라운드가 시작됩니다.]

[게임 내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는 ‘김천재’ 님의 그룹이 희망의 빛을 가져오길 기도해주십시오.]

* * * * *

지옥으로 넘어오자 무장을 마친 천사들이 악마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두머리를 잃은 졸개들의 처절한 발악이었다.

이제는 대천사라 불리는 존재들도 없으니, 무엇의 명을 따라 움직인단 말인가.

내가 앞을 막고 있는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베어냈다.

콰직!

손에 묵직한 느낌과 함께 두 녀석이 동시에 썰렸다.

“모두 꺼져라.”

낮게 뱉은 내 목소리에 악마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천사들은 이 상황에서도 긍지를 꺾지 못하겠는지 무기를 돌려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위이잉-

소리와 함께 대천사의 무기를 사용하는 네 명의 플레이어가 도착했다.

마정우, 유소라, 조복춘, 지군.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광활한 빛을 보자, 천사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공격을 멈추었다.

[시스템 메시지]

[강력한 성스러운 힘으로 인하여 천사들의 공격이 중단됩니다.]

‘…… 좋네.’

우리는 천사와 악마를 뒤로하고 성전의 안쪽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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