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둘의 이야기를 듣던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소라와 리 커우러나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마치 치부를 들킨 듯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리 커우러나가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형님! 오해입니다!”
“뭐가 오해인데?”
“그, 그게….”
“소라 씨. 직접 말씀해주시겠어요? 저한테 스킬 봉인 마법서가 사라졌다라고 하는 이유요.”
내가 질문을 하자 유소라가 당황하는 기색을 줄였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들어야겠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 천재 씨.”
“예.”
“죄송한데…. 부탁이 하나 있어요.”
“우선 저한테 왜 그렇게 말했는지 들어보고. 그 후에 부탁도 들어볼게요.”
“……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를 좀 바꾸도록 할까요?”
“자리…?”
“예, 설명해드리려면 직접 가서 말씀드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과연 무슨 말을 하려고 자리를 이동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녀가 나를 배신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하려고 했으면 진즉에 운영진 측과 짜고 움직였겠지.
USB의 내용을 알았다 하더라도 내게 실이 될 만한 행동을 할 리도 없고 말이다.
그녀는 의외의 장소로 나를 데리고 갔다. 리 커우러나가 이량훈의 잔당을 심문하고 있는 건물이다.
경찰이 사라진 경찰서, 그 안에 있는 철창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 천재 씨, 이제부터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리 커우러나가 안절부절못하지 못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여기서요?”
“네…. 저기 저분 보이세요?”
“…… 저분이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뽀글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삐쩍 마른 몸에 매우 불량해 보이는 자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다.
“…… 네.”
“저 사람이 누군데요? 아니 저는 봉인 주문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 이야기예요…. 저기 저 남자가 봉인 주문서의 행방을 알고 있어요.”
뭐라고?
그럼 행방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유소라를 힐끔 본 후 뽀글머리를 향해 걸음을 떼었다.
“자, 잠시만요 천재 씨.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어요.”
“말씀하세요.”
“…… 저 사람은 심문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더 들어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마음이 약해져서 적을 심문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면, 내가 직접 하면 된다.
리 커우러나한테만 맡겼어야 했는데, 혹시나 강자가 있을까 봐 유소라를 붙여줬더니 이 사달이 나는구나.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내가 철창을 잡고 양옆으로 휘며 안으로 들어갔다.
키이이이이익-!
-어어어어! 저, 저 새끼 뭐야? 무슨 쇠를 휘면서 안으로 들어와?!
-자, 잘못했습니다!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잡혀있는 잔당들이 겁을 먹고 좌우로 갈라지며 내게 빌었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뽀글 머리 남성에게 말했다.
“스킬 봉인 주문서, 지금 어디 있지?”
“…… 당신은 누구쇼?”
“난 딱 세 번까지만 물어본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야. 스킬 봉인 주문서 어디 있어?”
“…… 아니 당신이 누군지부터 말하라고.”
“스킬 봉인 주문서 어디 있어?”
“……”
뽀글 머리 녀석이 말없이 나를 노려본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손가락을 흔들며 리 커우러나를 불렀다.
“커우러나, 이 새끼 밖으로 끌어내.”
“처, 천재 형님 잠시만요. 소라 누님 이야기도 좀 들어보세요.”
“소라 씨?”
고개를 돌려보니 유소라가 내 팔뚝을 잡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그녀의 무게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부터는 제가 맡도록 하죠.”
“천재 씨,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세요.”
“…… 더 할 이야기가 있나요?”
“예! 그, 그 사람. 누군지 아세요?”
“이 뽀글머리?”
무언가 불만이 있는 듯한 얼굴에 익숙한 모양의 머리, 마치 80년대 사람이 쓸 것 같은 잠자리 안경.
‘…… 누구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소라가 물어보았다면 내가 알 수 있는 인물일 텐데.
잠깐이지만, 나는 뽀글머리를 응시하며 누군가를 떠올리려 해봤다.
“…… 설마?”
“아시겠어요?”
“동탁…. 이 형이랑 좀 비슷하게 생겼네요.”
“맞아요! 저분. 동탁 씨…. 의 동생이에요.”
너무나도 당황스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임 초반에 사망한 동탁이 형의 동생이 있었다니?
“…… 아.”
아, 라는 대답밖에 안 나왔다. 유소라가 뽀글머리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스킬 봉인’ 주문서에 대해서 천재 씨에게-”
“거기까지만 말씀해주셔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동탁이형은 유소라와 친분이 깊다. 그런 상태에서 동생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았으니 혼란스럽겠지.
동탁이형의 동생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너는 뭔데 자꾸 강한 척하면서 남들한테 지랄이야? 생긴 건 기생오라비같이 생겨서.”
“……”
“어이, 띠꺼우면 나를 죽이든가. 나는 어차피 더 살 생각도 없어.”
“……”
“이량훈 님에게 구원 좀 받으려고 했더니 별 쓰레기 같은 것들이 다 끼어드네. 퇘엣!”
“……”
표정 좀 보아라.
미간이 돼지 창자만큼 한층 찌푸려져 있는데다가 잠자리 안경은 금방이라도 날갯짓을 해서 날아갈 것 같이 각이 져 있었다.
생긴 건 또 얼마나 양아치스러운지 주머니에 백 원짜리만 한가득 들어있을 것 같다.
나는 두 주먹을 꽉 쥐며 유소라에게 말했다.
“소라 씨.”
“예? 아, 예.”
“가서 마이클 좀 불러와 주시겠어요?”
“마이클 씨요?”
“예. 가능한 빨리요.”
“…… 혹시 제가 없는 사이에-”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요!”
“…… 아, 알겠습니다.”
유소라가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빠른 속도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주먹을 휘둘러 뽀글 머리 녀석의 생명력을 끊어 놓았다.
퍽!
정확하게 심장을 때리자, 단 한 방에 놈이 숨을 거두었다.
리 커우러나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얼어붙은 자세로 내게 말했다.
“천재 형님….”
“다른 새끼들 전부 옆 칸으로 옮겨.”
“…… 예?”
“다른 새끼들 전부 옆 칸으로 옮기라고. 이제부터 심문을 시작해야 하니까.”
“아…? 아, 알겠습니다.”
리 커우러나가 손짓하자 같은 철창 안에 있던 놈들이 빠르게 나갔다.
나는 혼자 남아있는 뽀글 머리 녀석의 시체에 손을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리바이브.”
[‘리바이브’ 주문을 시전 합니다.]
[‘장동성’ 플레이어를 소생합니다.]
‘…… 심문을 시작해볼까.’
* * * * *
다다다다다!
빠른 걸음 소리와 함께 마이클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쓰러진 뽀글 머리의 시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마이클, 이 새끼 좀 살려줘야겠어.”
“…… 으음? 뭐예요우. 천재 킴이 죽인 거?”
“응. 신체 훼손율이 90프로 미만이니까 그냥 살려질 거야.”
“오우! 그럼 살리는 것쯤이야.”
마이클이 두 손에 반짝이는 빛을 모으더니 쓰러져 있는 시체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뽀글 머리 녀석의 생명력 게이지가 한 방에 꽉 찼다.
뽀글 머리는 숨이 터졌는지 이내 캑캑거리며 목을 부여잡았다.
“하…. 아…. 하…. 아….”
마이클이 녀석의 뺨을 두어 대 때려보더니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내게 말했다.
“살려놨습니돠!”
“잘했어.”
뽀글 머리가 날카로운 눈으로 마이클에게 쏘듯이 말했다.
“이 깜둥이 새끼가 나를-”
퍽!
마이클이 뺨을 치자 녀석의 생명력이 다시 회색빛으로 바뀌었다.
뒤늦게 도착한 유소라가 부탁을 해서 다시 뽀글 머리를 살렸다.
뽀글 머리는 더 이상 죽지 않고 싶었는지 이내 입을 닫았다.
“어이 뽀글 머리, 네 형만 아니었으면 너는 진즉에 죽었다. 아참, 아까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었나? 한 번 더 죽여줄까?”
뽀글 머리가 고개를 떨구었다.
“대답이 없네?”
“…… 아니요.”
“그렇지? 죽는 건 별로 안 좋지?”
“…… 예.”
녀석이 고개를 더 푹 내리깔았다. 나는 괜히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지 느껴보라는 식으로 말이다.
후우-.
리 커우러나가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저 녀석은 그냥 풀어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전부 풀어주지 말고.”
“옙!”
“소라 씨는 이제 이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 녀석과 함께 북문 수비에 집중해주세요.”
유소라가 뽀글 머리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 너는 나를 따라오도록 하고.”
“오케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대성당, ‘스킬 봉인’ 주문서가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네.”
* * * * *
나는 폐허가 된 마을 내에 있는 대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뽀글 머리 녀석이 말해준 자리로 이동해서 바닥을 열자,
키익.
어두운 공간이 나왔다.
마치 맨홀 뚜껑을 열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쇠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타닥, 타다닥!
마이클이 토치에 불을 붙이더니 먼저 내려갔다.
그 끝에 도착한 마이클이 손을 흔들며 내게 소리쳤다.
“내려와요우!”
그의 신호를 받은 내가 쇠사다리를 붙잡고 천천히 내려갔다. 걸음을 뗄 때마다 갑주가 쇠에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캉! 캉!
그 끝에 도착하자 어두운 벽 한쪽으로 쌓여있는 물건들이 보였다.
각종 희귀한 아이템으로 시작해서 얻기 힘든 봉인서와 물약까지 한가득 차 있었다.
플레이어 사냥을 해서 모은 물건들인 것 같은데, 상상외로 많은 종류다.
대체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를 죽였단 말인가?
“…… 굉장하네.”
“리얼리….”
창고를 전부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나는 스켈레톤 병사를 전부 이곳으로 끌어 모은 후, 계단 위로 아이템을 전부 옮겼다.
캉! 캉!
“마이클, 여기는 내가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정우랑 지군을 이곳으로 데려와 줘.”
“옐로 몽키랑 핑크 피그?”
“어, 어? 핑크 피그?”
“예스, 오타쿠 피그.”
“…… 그래. 핑크 피그도 데리고 와.”
“오케이!”
내가 말을 받아줘서 그런지 마이클이 기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후 나는 이곳에 있는 아이템들에서 ‘스킬 봉인’ 주문서를 찾았다.
다른 아이템들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물건이었다.
붉은 촛농이 강하게 눌려있는 황금색의 두루마리.
“이제 준비는 끝이다….”
* * * * *
불카누스가 불타는 쇳덩이를 강하게 내려치더니.
캉!
“이제 끝이야….”
모루 위에 있는 날붙이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다섯 가지 무기를 곱게 천에 싸서 방 한쪽에 두더니 어딘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벽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다섯 개의 무기를 가지고 사라졌다.
스으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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