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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는 창고가 나왔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도적들의 창고 같다.

난생처음 보는 아이템과 백색으로 변한 해골들이 땅에 나뒹굴었다.

“…… 이런 곳이 있었다고? ”

어떠한 이유로 이 방을 여는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도 모르고, 팬 사이트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장소.

‘이스터 에그.’

빌어먹을 운영자가 만든 이스터 에그 중 하나다.

나는 창고 안에 있는 아이템들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게임 초반이나 중반에 쓸 법한 강철 재질의 도구들이었다.

전혀 필요 없다.

이어 발로 걷어차서 보석 상자를 엎었다.

콰르르-.

쓸 만한 물건이 단 하나도 없었다. 금은보화가 이곳에서 대체 어디에 쓸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무거운 짐덩이 중 하나일 뿐이지.

“…… 리콜, 스켈레톤 10마리. ”

공간이 뒤틀어지며 스켈레톤 병사 열 마리가 내 앞에 소환되었다.

혹시 모르니 보석과 금은 챙겨 가볼까, 라는 생각에 불렀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두자.

스켈레톤 병사들이 보석과 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아이템들을 한둘씩 확인해 보았다.

달그닥 소리를 내며 상자들을 한둘씩 뒤집어내자 스크롤 뭉치가 가득 차 있는 통이 나왔다.

‘호오라….’

마법사 클래스가 아니면 전혀 쓸모없는 마법서. 그중에서도 하급으로 취급되는 1서클 혹은 2서클 마법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마법서들을 찢어서 버렸다. 그냥 두면 몬스터가 사용할 수도 있는 물건이기에, 없애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 이건 뭐지.’

수많은 마법서 중 특이한 색상의 스크롤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봉인’ 주문이 엮여있는 고대 등급의 물건은 아니었다.

촤르르륵!

주문서를 펼치자 그 안에 적혀 있는 마법의 주문식이 보였다.

고리를 엮지 않은 자도 배울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럼 마법사 클래스가 아닌 자도 배움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나는 손바닥을 올려놓고 조용히 속삭였다.

“습득.”

[‘네크로맨서’는 습득할 수 없는 스킬입니다.]

‘…… 고리를 엮지 않은 자도 배울 수 있다면서?’

나는 주문서에 적혀 있는 글자들을 유심히 보았다.

이게 희귀한 주문서인 것까지는 알겠는데, 굳이 챙겨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인지는 모르겠다.

“……”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소환수를 데려올걸.

대경성이 이미 초토화되어 다른 영웅급의 소환수로 바꾸기에는 늦었다.

게다가 내 플레이는 마법과 거리가 멀었기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이 올 줄이야.

‘…… 나중에 조영기나 줘야겠다.’

나는 스크롤을 접어 허리춤에 꽂은 후 자리를 이동했다.

* * * * *

열두 개의 층.

열두 마리의 보스.

열두 번의 비밀 창고.

내가 ‘레지던트 던전’에서 경험한 이야기다.

물론 ‘봉인’에 대한 주문서는 나오지 않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쉽다.

내가 멋지게 봉인 주문서를 들고 갔다면 다들 좋아했을 텐데.

‘…… 뭐 누군가는 발견하겠지.’

이 게임 내에 있는 던전 중 한 곳에는 무조건 나오게 되어 있으니까.

던전 수색을 마친 나는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와 리 커우러나를 찾았다.

“어이, 리 커우러나.”

“앗, 행님!”

“다들 사람들은?”

“아직 안 돌아왔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고?”

“그럼요. 그나저나 일찍 돌아오셨네요?”

내가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아 그에게 대답했다.

“그렇지…. 생각보다 쉬웠어.”

“레지던트 던전이라면 이 게임 내에서 제일 큰 지형을 가진 곳인데….”

“그래 봤자 길은 전부 외우고 있으니까. 보스도 전부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역시 대단하십니다. 영원히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생긴 건 험악해서 아부는 굉장히 잘한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 후 리 커우러나에게 물었다.

“리 커우러나, 혹시 그 꼬마 녀석이 여기 왔었나?”

“꼬…. 마? 스펙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 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데?”

“한 달도 더 된 것 같습니다.”

한 달이 넘었다라.

그럼 내가 마지막으로 스펙터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시기다.

그때 이후로 녀석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혹시 나 때문에 그 삼촌이라는 자에게 처벌을 받은 건가.

‘…… 지금쯤 다시 나타나 줘야 하는데 말이야.’

USB에 관해서 물어보려면.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펍의 천장을 쳐다보았다.

“다들 준비는 된 거지?”

“예, 다른 마을에 있는 플레이어들까지 전부 소집시켰습니다.”

“…… 엘프와 드워프는?”

리 커우러나가 음흉한 미소로 지도를 내 앞에 펼쳤다.

촤륵-.

“이곳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 네 아이디어야?”

“예, 아무래도 이 마을 규모로는 그들을 전부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요.”

“…… 잘했다.”

쾅! 소리와 함께 펍의 문이 강하게 열렸다. 조영기가 셔츠의 깃을 추어올리며 팔자걸음으로 들어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

“불렀냐.”

“…… 선물 하나 주려고.”

“선물?”

내가 붉은색의 스크롤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조영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마법 주문서를 펼쳐 들었다.

촤르르륵-

“…… 이건 어디서 났지?”

“던전.”

“나보고 배우라는 건가?”

“아니 확인 좀 해보라고. 쓸 만한 거면 배우고, 아니면 찢어서 버려도 돼.”

다른 마법 주문서는 잡아들기만 해도 ‘어떤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설명 창이 나왔었는데.

딱 저 문서만 내게 설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사용할 수 있는 클래스나 조건을 만족한 자만이 설명을 볼 수 있다는 것.

조영기는 마법사니 웬만한 마법서를 전부 읽을 수 있다.

“…… 그렇군.”

“뭔데?”

“…… 고대 등급 마법서 중 하나야.”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게 고대 등급 마법서라고? 던전 1층에서 발견한 건데….”

“확실해. 봉인 주문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희귀한 놈이지.”

“그게 뭔데.”

“…… 강화 주문서.”

마법 강화 주문서.

단순히 마력을 높이는 능력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스킬의 힘을 대폭 상승시키는 물건이다.

나도 직접 본 적 없고, 소문으로만 봤었기에 실물을 몰랐다.

마법사가 아니니 관심도 없었고.

조영기가 스크롤을 다시 말아 쥐더니 내게 말했다.

“내가 가져도 되는 물건인가?”

“마음대로. 어차피 너 말고는 가질 사람도 없잖아.”

“리나가 있지 않나.”

리나를 신경 쓰고 있었나?

생각보다 속이 좁은 사내였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조영기에게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리나에게는 ‘스킬 봉인’ 주문만 건네주면 돼.”

“…… 알았다. 그리고 아까 그 녀석이 왔다 갔어.”

“그 녀석?”

“고티, 그 녀석이 찾아왔었어.”

* * * * *

조영기가 안내해주는 여관으로 가자 고티가 보였다. 대저택을 이용하지 않고 굳이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나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띵- 동.

벨이 울리고.

철컥.

그 안에서 고티가 나왔다.

아니지, 고티가 조종하는 인형이 문을 열어 주었다.

“…… 고티는?”

나무 인형이 고개를 꾸벅이더니 여관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제니가 넉넉하지 않았는지 공간이 굉장히 좁은 곳이었다.

내가 게임 속으로 들어오기 전 살던 곳보다 딱 두 배 정도 크다.

일반적인 부동산에서 말하는 투룸 정도의 크기.

현관문을 지나 좌측으로 몸을 틀자 소파에 앉아있는 고티가 보였다.

“…… 왔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 우선 앉도록 해.”

고티가 의자 하나를 자신의 소파 옆으로 끌어왔다.

터벅.

내가 의자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나를 찾은 이유는?”

“…… 혹시 이번 라운드가 시작되고 난 후, 루시퍼를 만난 적 있나?”

“아니, 만날 일이 없지.”

“역시…. 내가 너를 찾은 이유는 그 때문이야.”

“루시퍼?”

“그래.”

루시퍼 때문에 나를 찾았다니,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불길한 기운이 드는데, 제발 내가 생각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티가 책상 위에 있는 차를 호로록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놈이 너무 강해졌어. 우리가 예전에 상대하던 놈보다 훨씬.”

“…… 어느 정도길래 그러는 거야?”

“최소 다섯 배, 혹은 그 이상이다.”

나는 벙찐 표정으로 고티를 쳐다보았다. 각성이 풀린 루시퍼는 그냥도 이기기 힘든데, 다섯 배나 강해졌다고?

‘허허….’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머리만 만지작거렸다.

“김천재, 혹시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의 전투를 기억하나?”

“…… 당연하지.”

“내가 마을로 복귀하기 전, 루시퍼가 악마들에게 힘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는데….”

“보았는데?”

고티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개를 저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다.

“일곱 번째 라운드, 대악마만큼의 힘을 모든 몬스터에게 나누어 주더군.”

“그게 무슨 말이야?”

“녀석이 부하들에게 분배해주는 오라의 크기가 대악마만큼 컸다고.”

“…… 낮은 등급의 악마들도 그만큼 오라를 받았다는 거야?”

“그래, 그보다 더 무서운 점은. 그렇게 많은 오라를 분배한 후에도 루시퍼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정말 상상 이상이구나.

난이도가 올라간 것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루시퍼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오라를 가진 것은 몰랐다.

각성 후에는 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고티가 준 차를 호로록 마시며 천천히 생각했다.

그렇게 강해졌다면 작전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리에 단단히 박혔다.

상상된다.

그렇게까지 강해진 루시퍼라면 그냥 대충 휘두른 주먹질에 우리가 죽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루시퍼가 우리와 싸우는 것은.

호랑이가 개미를 상대하는 것만큼 쉬울 것이다.

‘…… 개미의 수가 많아지면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우선 알았어. 지군이랑 같이 새로운 계획을 짜볼게.”

“알았다. 나는 휴식을 끝내는 대로 다시 루시퍼의 행방을 쫓도록 하지.”

“혹시 다음 라운드가 언제 시작하는지는 못 들었지?”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우리가 아는 스토리 그대로, 마왕의 알이 지옥으로 옮겨진 것뿐.”

그렇다면 스토리라인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겠다.

보스전만 잘 준비하면 되겠다.

“마왕의 알….”

“다른 점이라고는 알을 운반하는 사람이 사탄이라는 거야.”

“사…. 탄?! 그 녀석이 왜 마왕의 알을 운반하는 거지?”

“그쪽에서도 하급 병사들에게 맡기기만 하는 건 불안했나 보지.”

루시퍼 녀석, 생각보다 철두철미한 놈이구나.

나는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원샷한 후 고티에게 말했다.

호로록-.

“고티, 어차피 이 게임의 끝은 정해져 있어.”

“……”

“우리는 그대로 작전을 실행할 것이고. 그 후에는 모두 게임에서 나가도록 한다.”

“……”

“이상 당신도 불만은 없지?”

고티가 입꼬리를 쫘악 찢으며 내게 말했다.

“당연하지,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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