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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루시퍼의 위치를 강대원에게 말해주는 순간.

[열세 번째 라운드 클리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새로운 스토리, 최초의 임무 성공자로 지정되며 ‘사자의 서’에 새로운 기록이 저장됩니다.

드디어 열세 번째 라운드가 끝났다.

[다음 라운드는 마지막 게임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신중히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게임이라….”

[‘제3의 눈’이 말없이 손뼉을 칩니다.]

[이렇게 빨리 마지막 게임으로 향할 줄 몰랐다며 탄식을 내뱉습니다.]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메카니아 도시 위로 꽃가루가 뿌려졌다. 운영진이 우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보낸 임팩트인가 보다.

나는 두 눈을 감고 하늘을 보며 이 순간을 만끽했다.

드디어 우리가 전에 해결하지 못한 열다섯 번째 라운드와 같은 열네 번째 라운드가 왔으니까.

[열세 번째 라운드 클리어 보상이 도착합니다!]

[‘김천재’ 님의 그룹에 혼돈의 힘을 부여합니다.]

[모든 스킬 레벨이 증가합니다.]

[마스터 레벨의 스킬은 한 단계 높아진 ‘EX’등급으로 진화합니다.]

‘드디어….’

[‘황혼의 눈’이 같은 서버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지급됩니다.]

머리 위로 눈 모양 홀로그램 하나가 생겼다.

이제부터는 모든 플레이어가 우리와 함께 마지막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자신이 몇 라운드까지 갔는지, 어떤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는지는 상관없이.

강대원이 컨트롤 타워, 총독실의 창문을 열더니 밖을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후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이 도시를 잘 방어해주시길 바랍니다.”

“…… 알겠습니다.”

악마들의 습격은 강대원 혼자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남아있는 상급 악마도 몇 없는데다가 벨제붑이 사라졌으니, 루시퍼에게 남은 카드라곤 사탄 하나뿐.

사탄 혼자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방어 시설이기에, 이제부터 우리는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메카니아에서 폐허가 된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곤 차카니와 리나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는데….

“어라? 당신이 왜 여기 있어?”

“…… 너야말로 왜 여기 있지?”

서로가 알아보았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영기에게 물었다.

“서로 아는 사이야?”

“…… 이 골칫덩이, 내 여동생이다.”

“여…. 동생?”

리나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뭐라고? 차카니가 오빠였어?”

“너야말로 김천재가 인정한 마법사였나.”

“아 미쳤나 봐! 내가 너 같은 새끼를 동경의 대상이라고-.”

“동경해야지. 마법사 중 최강인데.”

둘이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 사이로 들어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조영기가 머리를 긁적였다.

“후우…. 알았다. 조복춘, 이제부터 김천재를 잘 따라다니도록 해.”

“그, 그, 그! 그 이름 부르지 말라고!”

“리나는 염병. 김천재, 저년 이름 조복춘이야. 조. 복. 춘.”

“부르지 말라고 했다?”

“…… 복춘조.”

쾅!

불꽃이 솟아올랐다.

조영기가 토벽을 만들어 화염을 막아내더니 그 사이로 다시 리나의 이름을 불렀다.

“조복춘.”

“으…!”

정우가 조영기의 옆구리를 걷어차더니,

퍽!

조복춘의 앞을 막았다.

“그만, 장난할 때가 아니야.”

“……”

“복춘 씨도 그만 하세요.”

“리나라고 불러줘요.”

“리나…. 씨도 그만 하세요.”

정우가 나서서야 둘의 대화가 끝났다.

* * * * *

우리는 그룹을 나눈 후 다시 마지막 게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조영기] [유소라] [마이클] [김연희] [김리아] 조는 혹시 모를 악마의 공격에 대비해 마을을 사수하도록 하고,

[나] [마정우] [지군] [조복춘] 조는 루시퍼와의 대결에 필요한 ‘스킬 봉인’주문서를 구하러 가기로 했다.

지군이 투덜거리며 내게 물었다.

“물건은 언제 완성되는 거지?”

“앞으로 하루. 조금만 더 기다려.”

“다음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에 그 무기로 전투 연습을 해봐야 할 텐데.”

“시간은 넉넉해. 너무 조급해하지 마.”

“…… 알겠다능.”

우리는 폐허가 된 마을 밖으로 나오는 순간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

‘고대 주문서’ 같은 경우에는 아무 곳에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에, 모두가 이 근처에 있는 던전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서로가 자신 있는 장소를 택하고,

그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대경성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이 게임에서 제일 오래되고 깊은 ‘레지던트 던전’을 찾았다.

[‘레지던트 던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절벽 앞으로 다가가자 모래가 솟구쳐 오르며 뱀의 얼굴이 만들어졌다.

쩌억하고 벌린 뱀의 입안으로 계단이 보인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모래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단단했다. 내가 걸어오는 길에 자국이 조금 남기는 했지만, 그래도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또옥-.

물 한 방울이 내 목덜미에 떨어져 내렸다. 동굴의 천장에 이슬이 맺혀 있다.

“…… 차갑네.”

저런 게 있었던가?

게임 중반부에만 사냥하는 곳이라 너무 오래전에 와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해서 즐겼던 게임 초반부가 더 생생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동굴 안으로 걸음을 돌렸다.

-키에에에엑.

동굴 안에서 언데드류 몬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 음이 살짝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구울이 확실한데, 1층부터 몬스터의 상태가….

계단 끝에 도착하자 사방에 깔린 구울들이 보였다. 전방에 플레이어의 시체가 몇 구 보이기는 하는데, 내가 오기 한참 전에 사망한 것 같다.

나는 가볍게 낫을 휘두르며 앞을 향해 걸었다. 살짝 걸리기만 해도 녀석들의 몸이 부서지며 날아갔다.

날붙이로 잘라내는 느낌이 아니라, 그저 봉에 부딪힌 놈들이 건조 라면처럼 부서지는 촉감.

파박!

빠르게 동굴의 끝에 도착한 나는 보스 방의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이 동굴의 보스, 소귀신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우허허허허, 인간 주제에 이곳까지 오다니?”

정해진 대사.

나는 입꼬리를 올려 방안을 둘러보았다. 예전과 똑같다, 사방이 고문 도구로 가득 차 있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질문하도록 하마. 고대 주문서의 행방을 알고 있나?”

“…… 고대 주문서?”

“그래.”

녀석이 생각하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웃으며 내게 말했다.

“글쎄?”

샥-

가볍게 휘두른 낫이 소귀신의 왼쪽 팔을 잘라냈다.

“크악!”

“아까 말했지만 내가 시간이 없어. 앞으로 네가 내게 대답할 기회는 단 한 번이야.”

소귀신이 잘려나간 팔을 붙잡고 다시 붙여보려 오라를 집중했다.

“허어어억….”

“고대 주문서의 행방을 말해라. 대답할 시간은 삼 초 주도록 하지.”

하나, 둘, 셋.

셋을 외치는 동시에 소귀신이 입을 떨며 말했다.

“자, 잠깐! 마, 말할 테니 그만해.”

말한다는 뜻은 곧 행방을 알고 있다는 건데.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봉인 주문서를 이렇게 쉽게 찾게 될 줄이야.

과거에도 이 주문서를 찾으려고 몇 달간 이 게임의 모든 맵을 뒤졌었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과 같이 루시퍼를 잡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팔아서 금전을 얻을 목적이었지….

나는 나지막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 어디에 있지?”

“고…. 고대 주문서는.”

“고대 주문서는?”

“느금마가 가지고 있다아아아악!”

소귀신이 내게 달려들었다.

순간 벙쪄서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운영진이 몬스터에게 저런 대사를 넣어놨다고? 어이없을 수밖에 없다.

황당하다.

녀석이 남아있는 오른팔로 나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쉬익-

캉!

꽹과리를 치듯 경쾌한 철붙이가 진동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얼어붙은 표정으로 소귀신을 노려보았다.

녀석이 내 어깨 위에 안착해있는 도끼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 단단하네.”

“……”

내가 녀석의 도끼날을 강하게 잡아 구겼다. 소귀신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도끼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자, 잠깐만. 너 내 뒤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나?”

소귀신이 다음 층으로 향하는 문에 눈길을 주었다.

“곧 죽을 놈이 뒤에 누가 있는지 무슨 상관인가.”

“아니 누가 있다는 게 아니라-”

샥-

낫이 원을 그리자, 놈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소귀신은 신음도 뱉지 못했다. 그가 내 공격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있었고, 땅에 떨어진 후에는 머리가 바로 박살났으니까.

파각!

‘후우….’

나는 숨을 깊게 몰아쉬며 보스 방 뒤편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이 던전에서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끼이이이익-.

“…… 음?”

길이 아니라 창고가 나왔다.

[히든 장소를 여는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레지던트 던전’의 숨겨진 창고를 목격합니다.]

* * * * *

루시퍼가 마왕의 알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탄, 이 녀석을 지옥으로 데려가도록 해라.”

“…… 지옥으로 말입니까?”

“그래. 내가 선별해주는 악마들과 함께 지옥의 끝, 혼돈의 장소로 가도록 해라.”

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루시퍼 님은 여기에 남으십니까?”

“…… 그래. 나는 이곳에서 인간과의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천상을 먼저 잡는 게 좋으실 텐데요.”

“…… 아니, 지금 천상으로 향하면. 분명 녀석들이 우리의 뒤를 잡을 거야.”

“그래 봤자 루시퍼 님에게는….”

“김천재, 그 녀석을 무시하면 안 돼. 그리고 이 싸움이 마지막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

사탄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너도 지옥에서 방심하지 말고 있도록 해라. 한순간이라도 틈을 보이면 언제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낼지 몰라.”

“…… 알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루시퍼가 동굴 밖으로 나와 하급 악마와 중급 악마들을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삼지창을 들고 있는 인간형 마인과 그들의 뒤로 줄지어 있는 괴수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키에에엑! 키엑!

-루시퍼 님 만세!

-명령만 내려주시면 인간들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

루시퍼가 자신의 앞으로 모인 악마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손가락 끝으로 오라를 흘려 악마들의 몸을 휘감았다.

크극. 크그그극!

마치 진화를 하듯 몬스터들의 몸이 커지고, 외관이 괴상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사탄이 마왕의 알을 들고 나와 그 모습을 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부관급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하급, 중급 악마와 몬스터들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오라를 뿜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퍼의 오라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사탄.”

“…… 예.”

“이 녀석들을 데리고 가도록 해라. 그 누구의 방해를 받더라도 알을 지켜내야 한다.”

* * * * *

쉬이이이익-

나무의 그림자에서 검은 천을 두르고 있는 플레이어 한 명이 튀어나오더니 루시퍼와 그의 부하들을 목격했다.

“루시퍼 녀석…. 상상보다 훨씬 강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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