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파이어 스톰!”
붉은 망토의 마법사, 리나가 높이 뛰어오르며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뒤로 밀려나거나 날아갔다.
‘폐허가 된 마을’로 향하던 악마들이 걸음을 멈추고 방어태세를 취했다.
지옥의 열기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불꽃이었다.
사탄이 날갯짓하며 이를 갈았다.
“네년은 어디서 나온 거지?”
“우리 어머니의 배에서 나왔다.”
“…… 아니! 그런 말이 아닌-”
“닥치고 덤비세요. 하급 악마 주제에 쫑알쫑알 말이 더럽게 많네.”
“뭐? 하급 악마?”
리나가 건방진 포즈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덤. 벼.”
“…… 이 빌어먹을!”
사탄과 리나가 자웅을 겨루었다. 누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싸움이었다.
사탄의 푸른 불꽃과 리나의 붉은 불꽃이 서로를 집어삼키려 휘몰아쳤다.
“기, 기억났다! 너도 김천재와 함께 지옥에 찾아왔던 놈이구나.”
“년이라고 해줄래? 나는 여자거든.”
둘의 대결은 오래가지 않아 결판이 났다. 실력이 비슷한 상황에서 쉽게 우위를 가르는 방법, 제 3자의 개입이 벌어졌다.
피슝- 쾅!
마이클의 유탄이 정확하게 사탄을 맞추었다. 원형의 구가 터지며 강력한 빛을 뿜었고, 사탄의 한쪽 팔이 녹아내렸다.
“크악!”
리나가 그 꼴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보기 좋네!”
“이…. 제기랄!”
“왜? 더 덤벼보려고?”
사탄이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한쪽 손으로 허공을 그어 다른 공간을 열었다.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잠시 방심했을 뿐이다.”
“삼류 악당 같은 대사. 죽기 딱 좋고요-.”
“…… 네 목은 내가 꼭 가져가도록 하지.”
“응, 목 안 씻었고요-.”
“빌어먹을 계집년….”
“너는 빌어먹을 악마 새끼고요-.”
리나가 양손에 원형의 불꽃을 만들어 사탄을 향해 던졌다. 타오르는 그녀의 화염이 사탄의 몸에 닿기 직전, 놈이 공간을 넘어 도망갔다.
화르르륵!
“쥐새끼 같은 놈….”
마이클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고마워요우!”
“고맙긴, 내가 늦은 동안 마을을 지켜준 당신이 더 고맙지!”
“하핫….”
사탄이 사라지자 악마들이 회군하기 시작했다. 대격전이 이루어질 것 같았는데, 한순간에 평화가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리나를 보며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마법사님 만세!
-저 플레이어 누구냐? 말하는 건 꼭 초딩 같은데 엄청 강하네!
-봤냐? 너 봤어? 저 여자 방금 8서클 마법 사용했어!
-미쳤따리, 오졌따리, 지렸따리!
리나가 돌아가는 악마들을 향해 몸을 틀더니 손을 머리 위로 뻗었다.
그리곤 천천히 주문을 외우며 거대한 원형의 화염구를 만들었다.
불꽃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점점 커진다. 야구공만 했던 화염의 크기가 점점 커져 축구공처럼 되더니, 이내 짐볼만큼 커졌다.
“선물이다, 어둠의 자식들아.”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리나의 화염구가 날아가더니,
쾅! 하며 불꽃 기둥이 솟아올랐다. 단방에 수백 마리의 악마들이 사라졌다.
* * * * *
리 커우러나가 환하게 웃으며 리나와 악수를 했다.
“반갑슴메.”
“반갑다. 네가 나를 찾았다는 조선족인가?”
“…… 조선족이 맞기는 하지만, 그냥 플레이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래그래. 그래서, 김천재는 지금 어디에 있지?”
“천재 형님은 아직 메카니아에 있슴다.”
리나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카니아? 거기에는 왜?”
라는 질문을 하는 동시에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열 번째 라운드 이후에 메카니아를 갔다는 말은, 곧 마지막 라운드에 돌입한다는 뜻.
게다가 사탄 녀석이 ‘폐허가 된 마을’을 공격했으니 스토리의 진행 상황도 알 수 있었다.
“메카니아에-”
“됐어.”
“응?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되겠슴니까?”
“어, 말하지 않아도 알아.”
“…… 굉장한 분이시군요.”
“네가 더 굉장하지, 던전에서 자고 있는 나를 어떻게 발견한 거냐….”
리 커우러나가 음흉한 미소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천재 형님의 명이라면 지옥 끝까지라도 갈 수 있슴니다.”
“……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 거지?”
“무엇을 하라고는 하지 않았슴다. 그냥 폐허가 된 마을을 지키며 이곳에서 대기하라고 했슴다.”
“어…. 김천재가 그렇게 명령조로 말했다고?”
리 커우러나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리나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그에게 되물었다.
“김천재가 그렇게 명령조로 말했냐고.”
B22
“…… 예.”
“응? 정말?”
“저는 들은 대로 똑같이 전했습니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 내게 필요한 사람이니까.’ 이라고요.”
리나 정도의 실력자가 들었으면 기분이 나쁠법하기도 한 대화였다.
나름 높은 서클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데다가, 다른 플레이어와 비교하자면 상위 0.1퍼센트. 혹은 그 이상의 실력자에게 명령이라니.
“내가 김천재한테 필요한 사람이라고?”
“예.”
리나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움직였다. 입이 삐쭉삐쭉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더니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그럼 기다려야겠네.”
“오! 기다려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김천재가 나보고 기다리라고 했다면서?”
“그럼요, 그럼요.”
이야기를 듣던 마이클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신이 리나 입니꽈?”
리나가 좋은 미소로 대답했다.
“네.”
그녀는 마이클이 김천재와 함께 다니던 그룹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친절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앞서 리 커우러나를 대할때와 표정이 완전 달랐다.
“아하! 천재 킴이 당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를요?”
“예스.”
“…… 혹시 왜인지 알고 계신가요?”
리나는 사실 알고 있으면서도 물어보았다.
마지막 라운드에 필요한 병력을 모으리라는 것을.
그녀가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자 마이클이 리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멋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남자가 여자를 원하는 이유. 뻔하지 않겠습니꽈?”
* * * * *
메카니아의 하늘 위로 번개가 내리치며 커다란 게이트가 생겼다.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문보다도 커다랗다.
도시 전역을 덮을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였으니 조금 크다고 하기는 힘들겠지.
쿠르릉!
천둥 치더니 게이트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안으로 천상의 회랑이 비추어지며 천사들이 모습을 보였다.
그 중간에 서 있는 메타트론. 녀석이 크게 소리치자 천군들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쉬이이이익-
천사들의 날개 펄럭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에이도스, 로봇 기체 다섯 대만 따로 빼서 메카니아 근방을 경계시키고. 나머지는 강대원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여.”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정우, 차카니, 유소라. 셋은 도시로 나가서 시민들과 함께 행동하도록 해.”
정우가 가볍게 경례를 하더니 차카니와 유소라를 데리고 컨트롤 타워 밖으로 나갔다.
“지군, 너는 나와 함께 메타트론을 잡는다.”
“응? 우리 둘이 메타트론을 잡는다고? 녀석은 네 명의 대천사를 다 합친 것보다 강하다던데.”
지군은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 나온 메타트론의 힘밖에 모른다. 저번 게임에서도 녀석과의 싸움은 경험해보지 못 했으니까.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다.
대천사들의 수장, 신의 대리인.
메타트론의 힘을.
“나 혼자서도 가능해.”
“…… 혼자?”
“어, 너는 걱정하지 말고 내 보조나 잘해봐.”
“허허…. 자신감이 넘치네?”
그럴 수밖에.
지금의 내게는 너무나도 쉬운 상대니까.
위이이이잉!
게이트를 넘어오는 천사들의 수가 많아지자, 게이트가 굉음을 내었다.
천상의 빛이 메카니아 전역을 내리쬐었다.
시민 중 몇은 너무나도 찬란한 그 모습에 반하여 천사와의 싸움을 거부하는 자가 있을 정도다.
황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
나는 그런 녀석에게 향해 날붙이를 들이밀었다.
“와라.”
강대원의 명령을 들은 메카니아의 방어 시스템이 천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어 시스템 2단계 작동]
탄과 포가 하늘을 덮었다.
강화된 천사들이 방패로 앞을 가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최고의 문명을 가진 인류에게 대항하기에는 천상의 힘으로도 역부족이었다.
50%나 깎여 버린 능력치로는 탄을 막는 것조차 버거우니까.
타다다당!
천사들이 한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메카니아의 하늘이 회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화르르륵!
로봇들이 화염 방사기를 뿜어대며 천사들을 상대했다.
천사 중에서도 급이 높은 자들이 기계에 대항하며 저항하고 발버둥 쳤다.
쉬유우우웅- 쾅!
포탄 한 방에 천사장 한 마리가 사라졌다.
전투를 지켜보던 메타트론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녀석의 기백이 도시에까지 닿자, 그 위화감에 시민들이 동요했다.
-어어어어!
-뭐야 갑자기 발이 무거워.
-소, 손가락이…. 방아쇠가 안 당겨져!
이어 메타트론이 창을 휘두르자 하늘이 요동치며 번개가 떨어졌다.
콰르릉!
지금까지 봐온 모든 적중 제일 강하다. 각성하지 않은 루시퍼보다도 훨씬.
[시스템 메시지]
[천상의 지배자, 신의 대리인. ‘치천사 메타트론’이 지상에 강림합니다.]
[그의 분노를 맞을 준비를 하여 주십시오.]
준비라니, 벌써 전투태세에 돌입했는데 말이다.
메타트론의 등장과 동시에 천사들의 기세가 올랐다. 단 한 번도 공격에 성공하지 못 했던 놈들이 갑자기 빠른 몸놀림을 보이며 메카니아에 안전하게 착륙하기 시작했다.
놈들 중 몇은 신성 마법을 사용해 건물과 방어 시설을 폭발시켰다.
쿠궁!
지면에 도착한 천사들을 정우, 차카니, 유소라가 반갑게 맞이했다.
정우가 새로운 무기를 테스트해볼 겸 미카엘의 검을 휘둘렀다.
“엘, 솔!”
지이이잉- 소리와 함께 미카엘의 검에서 강렬한 노란빛이 뿜어져 나왔다.
샥-
“…… 좋은데?”
털썩.
가볍게 휘두른 일격에, 천사의 방패와 몸이 두 동강 났다.
유소라와 조영기도 새로운 무기를 사용해 싸우기 시작했다.
유소라는 영혼 물고기를 어떻게 사용하는 건가 했는데, 예상외의 모습을 보였다.
치유 능력인 줄 알았던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날아다니며 천사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전의 스킬과는 다르게, 이제는 공격도 가능해졌구나.
굉장하다.
나와 정반대의 상성을 가지게 되었지만….
‘…… 이제 다들 강해졌구나.’
도시 전역의 상황을 파악한 나는 메타트론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치천사 아저씨!”
메타트론이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표정을 읽을 수는 없으나, 그의 두 손이 떨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노했음이 틀림없다.
“아저씨, 어떻게 한데? 당신 친구들이 전부 없어질 것 같은데.”
“…… 김천재, 나를 실망하게 하는구나.”
“실망은 당신이 시켰지.”
“뭐라고?”
“당신, 과거에 인간들을 멸망시키려고 했었지? 그리고 이번에도 그때 실패했던 계획을 진행하려 했고.”
“…… 그, 그건-”
“대답은 필요 없어. 전부 알고 있으니까.”
나는 한 손을 들어 총 모양으로 메타트론을 겨누었다. 그리곤 입으로 작게 속삭였다.
-타앙.
“체크 메이트, 이번에는 당신의 일족이 멸살 될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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