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가브리엘의 무기를 사용할 자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지군이 곤란해했다.
“나, 나는 메타트론 무기를 사용해야 해서.”
정우가 지군의 목에 검날을 들이밀었다.
“그냥 이거 써, 이 새끼야. 너랑 딱 맞는 무기잖아?”
“……아니! 나는 소생 주문이 없다니까? 이건 그 깜둥이 마이클한테 주고.”
“깜둥이라고 부르지 마라. 내 친구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능.”
“오타쿠 말투도 쓰지 마.”
“…….”
“그냥 우리가 주는 대로 사용해.”
내가 낄낄 웃으며 정우의 등을 툭툭 쳤다.
“진정해, 그럼 가브리엘 지팡이는 이곳에 잠시 대기시켜놓고. 메타트론을 잡으러 가자.”
“역시 천재 쿤이라능! 아니, 처음부터 나는 메타트론의 무기를 사용하기로 약속했었잖아?”
“맞아. 너 가져.”
“오오오!”
지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에 반해 정우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럼 천재 너는?”
“나? 나는 어차피 네크로맨서라 신성 무기는 사용하지 못해.”
“…… 그럼?”
내가 씨익 웃어 보였다.
“나는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
“비장의 무기?”
“어, 너희들한테는 보여주지 않았던. 루시퍼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사용했던 무기가 있어.”
“뭔데 그게.”
“…… 비. 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나만의 비밀 병기, 마스터 레벨에 등극해야지만 사용할 수 있는 힘.
네크로맨서만이 가능한 그 힘을 사용하려면 천사들의 무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
어둠 속 혼돈.
앞서 티아마트와의 훈련에서 나는 확신했다.
이 능력만이 루시퍼를 확실하게 끝낼 수 있다고.
마정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지군도 그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따라 웃었다.
조영기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천재, 그나저나 그 리나라는 여자애는 언제 찾는 거야?”
불꽃 마법사 리나.
마법사 중 마스터 레벨에 가장 가까운 자다. 조영기를 데려가면 제일 좋지만, 시간상 레벨이 많이 부족하니….
“…… 찾을 필요 없어. 아마 폐허가 된 마을에 있을 거야.”
“폐허가 된 마을?”
“어, 리 커우러나가 그녀를 찾아서 폐허가 된 마을에서 기다리기로 했어.”
“…… 그럼 그녀와 내가 그룹을 바꾸는 건 메타트론을 잡은 후인가?”
“그렇지.”
쓰읍, 푸후-.
조영기가 담배 연기를 길게 뱉으며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김천재.”
“응?”
“…… 근데, 이 게임에서 나가게 되면.”
“어.”
“보수는 얼마나 줄 거지?”
그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 내게 보였다.
* * * * *
드높은 회랑의 왕좌, 그 자리를 지키는 메타트론에게 만신창이가 된 천사가 타 천사들의 부축을 받아 날아왔다.
“메…. 메타트론….”
“……! 어떻게 된 거냐?”
“인간들이…. 인간들이….”
“인간들이?”
“배신했습니다….”
쿨럭!
천사가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메타트론이 한걸음에 그에게 달려오더니 고개를 들여세우며 물었다.
“인간들이 배신했다고?”
“크윽…. 그렇습니다. 네 명의…. 대천사들이 전부….”
“전부?”
“사망…. 크헉!”
털썩.
메타트론과 대화를 하던 천사가 고개를 떨구었다. 머리 위 생명력 게이지가 회색으로 바뀌며 그의 몸이 한 줌의 빛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회랑에 정적이 흘렀다.
머지않아 상황파악을 끝낸 메타트론이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천사장들을 소집하도록 해라!”
하급 천사 여럿이 동시에 대답했다.
-옙!
그들이 날아가자 메타트론이 서둘러 회랑의 정상을 향해갔다.
천상의 규율 중 하나, 회랑 내에서는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법칙을 깨고 그가 날기 시작했다.
부웅-
단숨에 회랑 정상에 도착한 메타트론이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는 천장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대었다.
벽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그 틈으로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렬한 황금빛이 메타트론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메타트론은 그 중앙에 서서 빛 속에 있는 존재에게 물었다.
“…… 신이시여.”
보이지 않는 존재가 빛 속에서 대답했다.
-메타트론.
“예.”
“…… 네가 이곳에 왜 왔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
“네 곁에는 내가 있으니, 뜻대로 한 번 움직여 보아라.”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나는 이미 네게 미래를 보여주었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고 움직이도록 해라.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이다.”
“…… 알겠습니다.”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대화가 끝났다. 이어 회랑의 옥상으로 연결되어있는 문이 닫혔다.
쿠궁!
메타트론은 닫힌 문 앞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망설였다.
“뜻대로….”
* * * * *
메카니아의 수장, 강대원이 스피커를 통해 도시 전역에 방송했다.
-현 시간부로 진돗개 하나 발령. 진돗개 하나 발령. 시민들은 전원 전투태세에 들어가도록 한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 시민들이 전부 전투 슈트로 무장을 하고 거리로 뛰어나왔다.
시민들의 대부분이 마치 우주인들이 입을 것 같은 슈트에 특수 제작된 소총을 들고 있다.
피유우우웅-
메카니아를 지키는 로봇들이 전투기로 변하여 주위를 빠르게 날아다녔다.
동, 서, 남, 북.
외부로 통하는 모든 입구가 포탄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두꺼운 이중 강철 문으로 닫혔으며,
상공에는 드론으로 만들어진 자폭 기기들이 수를 놓았다.
-키에엑! 키엑!
도시 밖에서 악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은 도시 내에 쉽사리 접근하기 힘들다고 느꼈는지, 탄이 닿지 않는 거리에 진을 치고 무언가를 기다렸다.
“…… 선제 포격하도록 한다!”
강대원의 외침에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벽에서 대포가 튀어나오고, 이어 포신이 불을 뿜었다.
쾅! 쾅!
악마를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보였다. 과거에 크게 당했었으니, 꼴도 보기 싫었겠지.
강대원이 부대를 이끄는 동안 나는 전투를 구경만 했다.
내가 진짜 나서야 할 때는 지금이 아니다. 잔 몹 처리하는 데 굳이 주인공이 나설 필요가 있는가?
나는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쾅!
다시 한번 포신이 불을 뿜었다. 악마들이 메카니아와 점점 멀어진다.
어차피 저쪽에서도 전력 비교 겸 도발하러 온 것이니 서로 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
“…… 아직인가.”
이쯤 되었으면 메타트론이 이곳에 올 법도 한데, 감감무소식이다.
녀석만 처리하면 곧바로 이 게임의 마지막 라운드로 직행인데 말이다.
컨트롤 타워 정상에서 주변을 내려보던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어이 지군.”
“응? 어, 왜?”
“메타트론보다 루시퍼 쪽에서 먼저 움직일 확률이 있나?”
“어…. 제로에 가깝지? 녀석들은 어차피 새로운 마왕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지?”
“당연하지. 내가 루시퍼였어도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려고 했을 텐데 뭐.”
“…….”
루시퍼는 절대 먼저 공격해오지 않는다. 놈은 아직 전투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스토리대로 흘러가고 있다면, 루시퍼가 벨제붑을 개미 여왕에게 바쳐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지만….
시스템 메시지가 마왕의 존재를 미리 알려줬으니 존재는 확실하다.
‘흐음….’
이번에는 내가 벨제붑을 처리했으니,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마왕이 나오려나?
지군이 기지개를 켜며 내게 물었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건 어때?”
“…… 아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갈 필요는 없지.”
“마왕이 먼저 부활하면? 시간 표시가 안 돼서 좀 불안한데….”
“걱정하지 마. 어차피 빨리 부화 된 만큼 약한 놈이 나올 테니까. 루시퍼 쪽에서도 최대한 시간을 끌고 싶어 할 거야.”
“…… 그런가.”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확실해. 그리고 적진 앞마당까지 우리가 직접 가서 싸우면 누가 더 유리하겠어?”
“형이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어.”
“…… 이길 수는 있겠지. 피해가 클 뿐.”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그럼 나는 좀 더 자고 있을 테니 메타트론이 오면 깨워줘.”
“…… 그래. 한숨 푹 자고 있어.”
* * * * *
사탄이 악마 대군과 함께 폐허가 된 마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앞서 손쉽게 막을 수 있었던 하급 악마들과는 다르게, 그가 데려온 개체들은 거인만큼 덩치가 큰데다가 방어력이 좋아 바리게이트까지 진입했다.
쿠궁!
입구 앞까지 도착한 악마들을 향해 마이클이 총을 쏘아댔다.
탕탕! 탕!
탄으로 거인들의 눈을 맞추고,
“천사의 찬가!”
피유우우웅- 쾅!
성스러운 유탄으로 쏟아지는 빛을 하늘에 수 놓아 떨어뜨렸다.
-키에에에엑!
악마들은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몰려왔다. 플레이어들의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많은 수의 악마를 상대하다 보니, 무기들이 손상되고 생명력은 줄어들었다.
철컥. 철컥.
-중대장님! 탄이 부족합니다!
NPC들도 한계점까지 힘을 끌어올려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들이 한둘씩 마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은 다른 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김연희와 김리아 둘 다 이미 바쁜 상태였다.
“제귀라알~!”
탕! 탕!
-크어어어어!
메카니아에서 난동을 부렸던 비홀더 무리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마이클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놈들을 쳐다보았다.
놈들은 총으로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개체다.
마이클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후우…. 천재 킴. 서둘러 주세요우.”
탕! 탕탕!
몬스터와 김준철의 부대가 격전을 벌이는 동안, 마이클이 땅을 차고 나가 거인에게 덤볐다.
“으어어어어!”
콰직!
마이클의 나이프가 거인의 눈을 정확하게 찔렀다. 힘이 어찌나 좋았는지 날붙이가 손잡이 앞 끝까지 들어갈 정도였다.
“FUCX!”
퍼걱-!
나이프를 빼내고 뒤로 날아올랐다.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른 움직임이었다.
쿠궁.
거인이 쓰러졌다.
마이클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 뒤로는 수십 마리의 거인이 더 다가오고 있었다.
“God damn!”
마이클이 나이프에 묻은 피를 옷자락에 닦아내더니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드르르르르르.
거인의 걸음으로 인해 지면이 흔들렸다.
-저, 저게 뭐야. 거…. 인?!
-오어어어 어! 거인이다! 거인이야!
-미친! 우리 같은 저 레벨 플레이어가 저런 녀석들을 어떻게 잡으라고?
마을을 지키는 플레이어 중 대부분이 다섯 라운드 이하에서 머무는 자들.
비홀더를 상대할 수 있는 인원은 극히 드물었다.
마이클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최전방에 서서 거인들을 상대하려 했다.
전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Come on!!!”
마이클의 외침을 들은 사탄이 공간을 비집고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라…. 너, 김천재의 동료 중 한 명이구나.”
“…… 천재 킴?”
“그래,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좀 특별한 것 같으니. 내가 직접 상대해주도록 하마!”
쉬이이이익!
사탄이 마이클을 향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사냥감을 포착한 매가 빠르게 낙하하는 것처럼 굉장한 속도였다.
주변을 전부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어둠의 오라가 사탄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공포에 질린 플레이어들이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거나 그대로 얼어붙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마이클이 뒤로 주춤거리다 돌부리에 다리가 걸려 쓰려졌다.
털썩.
“노, 노노노노노 노우!”
“김천재도 곧 네 곁으로 보내주마!”
사탄의 손톱이 마이클의 이마에 닿기 일보 직전.
“인챈트 파이어!”
화르르르륵- 쾅!
붉은 망토의 여자가 불타는 주먹으로 사탄의 손톱을 막아냈다.
“휴우, 조금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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