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메카니아로 돌아오니 천국에서 복귀한 가브리엘이 나를 기다렸다.
계획과는 다르게 다들 그녀를 공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착오가 생겼나 보다.
나는 조용히 지군과 가브리엘의 대화를 들었다.
“야레야레, 미카엘 쿤은 결국 루시퍼에게 당해버렸다구!”
“…… 결국, 그렇게 되었나.”
“그렇취! 라파엘과 우리엘도….”
“라파엘과 우리엘이?! 그들은 게이트 너머에 대기하고 있었을 텐데.”
“그들은 벨제붑에게 당했어.”
“……”
가브리엘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는 지군이 참 대단해 보인다.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잘한다. 나 같은 일반인은 절대로 하지 못할 법한 제스처도 계속해서 나왔다.
“내 사랑 가브리엘 짱. 이제 당신밖에 남지 않았군요.”
“…… 악마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악마? 흐음….”
지군이 나를 슬쩍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벨제붑은 처리했고, 루시퍼는 아직 살아 있다능!”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하이잇!!”
“…… 죄송한데 그 말투 좀 어떻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천사도 질색팔색을 한다.
하긴,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의 말투긴 하다.
둘의 대화를 듣는 우리는 거의 웃음 참기 급의 고난이었다. 타 천사들의 죽음을 알리는 자리에서 ‘하이잇!’이라니.
‘허허….’
“가브리엘 짱이 원한다면 바로 나, 지영태가 바뀌도록 하지.”
“…… 알겠습니다. 그래서, 루시퍼는 지금 어디 있는지요?”
“루시퍼는 메카니아 근처, 천마산 정상에 있어.”
“아직도요?”
“응.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지 공격해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물론 저 말도 거짓이다.
우리는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루시퍼의 움직임을 포착하거나 확인한 적이 없다.
그저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방어하고 있을 뿐.
게다가 현재 루시퍼의 위치는 천마산 정상이 아니라, 그 중간인 혼돈의 동굴 안.
내 정보는 확실하다.
에이도스에게 명령하여 로봇 기체로 확인까지 마쳤으니까.
둘의 대화를 듣던 내가 뒤로 살짝 물러나 정우에게 물었다.
“정우.”
“왜?”
“계획이랑 좀 다르다?”
“…… 기다려봐. 지군이 녀석과 대화를 좀 해야 할 것 같대.”
“이유는?”
“나도 몰라. 그냥 기다리고 있어.”
“……”
이렇게 된 상황에서 가브리엘과 굳이 대화할 필요가 있나?
그녀에게서 얻을 만한 정보도 이제는 없는데다가, 천사들의 도움도 이제는 필요 없어졌는데 말이다.
나는 팔짱을 지군을 쳐다보았다.
-크음, 크음.
헛기침하자 지군이 내 눈치를 보더니 다시 가브리엘에게 말을 걸었다.
“가브리엘, 그나저나 메타트론은 왜 안 온 거지?”
“그는 회랑을 지켜야 해서 올 수가 없었어.”
“루시퍼를 처리하는 것보다 회랑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한가?”
“……”
“지금 데려온 천사 병력으로는 루시퍼를 절대 잡을 수 없어. 당신도 알지?”
가브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할 거야.”
“응? 인간들이 당신을 도와준대?”
“나를 돕지 않을 생각인가?”
“나? 나는 당연히 우리 가브리엘 짱을 돕는다능!”
“김천재, 당신은?”
갑자기 대화의 흐름이 내게로 넘어왔다. 지군의 의도를 알 수 없는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입으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놓고 거짓말을 하면 순식간에 들통나버리니까.
가브리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고맙군.”
고맙긴, 그냥 고개만 끄덕였는데.
“자자- 그럼 우리 모두 가브리엘을 도와 루시퍼를 무찌르러 갑시다!”
지군이 힘차게 소리치자 가브리엘이 데려온 천사들이 전투 준비를 마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림잡아 세어 보아도 천 명이 넘는 대병력.
이 정도면 회랑에는 많은 수의 천병들이 빠졌을 것이다.
지군이 눈대중으로 천사들을 세어보더니 가브리엘에게 넌지시 말했다.
“아 참, 가브리엘. 잠깐 우리랑 같이 좀 가줄 수 있어?”
“어디를?”
“아아- 우리 세 명의 대천사 선생님들께서 사망하면서 남기신 무기들. 내가 보관해놨거든.”
“……!! 형제들의 물건을 자네가 갖고 있다는 건가?”
지군이 엄지를 척! 하고 치켜들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러취! 유품 같아서 내가 챙겨놨어. 저기 저 컨트롤 타워라는 건물 안에 있는데. 잠깐만 들어와서 가져가.”
* * * * *
여성 드루이드, 김리아가 거대한 곰과 함께 악마들을 상대했다.
-쿠아아앙!
콰드득.
곰이 악마의 머리를 잡아 뜯었다.
이어 그녀를 뒤따라 온 플레이어들이 각종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입구를 열어주세요!”
김리아의 외침에 리 커우러나가 ‘폐허가 된 마을’로 통하는 바리게이트를 치웠다.
두두두두두!
땅이 울릴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마을 안으로 달려왔다.
“마이클 씨!”
“오우, 리아 킴.”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럼요우. 리아킴은?”
김리아가 마이클을 강하게 껴안으며 좋아했다.
“저도 잘 지냈죠. 그나저나 그 소총에 달린 유탄 발사기 참 멋있네요.”
“천재킴이 만들어 줬습니다. 아주 강력해요우.”
“하하…. 근데, 이제 권총은 쓸모도 없을 텐데 왜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음? 나 이제 권총 없어요우.”
“그럼 허리춤에 이건 뭐예요?”
김리아가 고개를 내려 마이클의 허리춤을 슬쩍 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에요. 제가 잘못 봤네요.”
“으음?”
“그나저나 다른 분들은 전부 어디 계신가요?”
“아! 천재 킴이랑 옐로 몽키는 지금 메카니아에 있어요우.”
“마이클 씨를 여기에 두고요?”
“예스, 우리는 이곳을 지키고. 천재 킴은 메카니아를 지키고.”
“아! 그게 그 말이구나…. 소라 씨한테 이야기는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따로 움직이는지는 몰랐네요.”
김연희가 둘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이, 리아 킴.”
“연희 씨도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
“그럼요.”
“다행이네. 여기까지 오는데 문제는 없었고?”
“예. 전혀 없었어요.”
김리아가 눈웃음을 짓더니 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이익!
그녀의 휘파람을 들은 매 한 마리가 날아와 어깨 위에 안착했다. 새 주제에 갑주를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투용 병기인 것 같다.
“그럼 저희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 우선 당신은 서쪽 문을 맡아줘. 내가 동쪽을 맡도록 하고, 마이클이 북쪽을 막으면 될 거야.”
“남쪽은요?”
“남쪽은 김준철의 벙커가 있으니 큰 걱정 없어. 거기에는 병력이 엄청 많거든.”
“아…. 알겠습니다. 아까처럼 악마로 보이는 놈들만 처리하면 되는 건가요?”
김연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근처에 있는 몬스터까지 전부다.”
“몬스터까지요?”
“어, 녀석들도 전부 루시퍼의 명령에 움직이는 놈들이야. 지금은 아니지만, 루시퍼가 근처에 온다면 전부 마을을 향해 공격할걸.”
“…… 그렇군요. 그럼 인간 외에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를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오- 카이! 그럼 서쪽을 잘 부탁해!”
* * * * *
천마산 중턱에 있는 커다란 동굴, 그 앞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의 악마 대군이 루시퍼 앞에 펼쳐져 있다.
악마가 악마를 낳고,
또 그 악마가 악마를 낳아 순식간에 수만의 병력이 완성되었다.
이곳에 있는 악마들은 인간의 생식 과정과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사마귀같이 생긴 큰 곤충에게 포로로 잡아 온 인간을 먹이면, 그 곤충이 알을 낳아 악마들을 생성해냈다.
악마들은 그 벌레를 향해 이렇게 불렀다.
‘나디아’
나디아가 한 시간 동안 만들어내는 숫자가 백여 마리 이상. 앞서 전투에서 소멸한 악마 병사 따위는 금세 채워졌다.
루시퍼와 사탄이 나디아를 쳐다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시퍼 님, 말씀하신 대로 벨제붑의 심장을 가져왔습니다.”
사탄이 붉은 보석을 루시퍼에게 보여줬다.
“…… 잘했다.”
루시퍼는 그 돌을 받아 나디아에게 다가가더니,
“나디아. 내가 네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키에엑….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벨제붑의 심장을 나디아의 이마에 박았다.
콰직!
-키에에에엑! 키엑! 키에엑!
나디아가 고통에 발버둥을 쳤다. 놈의 엉덩이에서 새하얀 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프들이 벌벌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너는 이제부터 마왕을 낳을 수 있도록 집중한다. 그전까지는 내가 직접 보호해주도록 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
-키엑!
키룩-키룩-키룩
박쥐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사탄의 어깨에 달라붙었다.
“…… 알겠다. 루시퍼 님, 지금 메카니아에 가브리엘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가브리엘이?”
“예.”
“…… 왜지? 천군과 김천재 일행은 사이가 틀어진 것 아니었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김천재 녀석이 벨제붑을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루시퍼가 사악한 미소로 입을 쫘악 찢어 웃었다.
“또 그 녀석인가…. 뭐, 어차피 죽을 놈이었으니 상관없기는 한데. 그래도 기분이 좀 찜찜하군.”
“명만 내려주신다면 제가 직접 녀석들을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 아니. 사탄, 너는 병사들을 이끌고 ‘폐허가 된 마을’로 이동하도록 해라.”
사탄이 고개를 천천히 숙여 목례를 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폐허가 된 마을 말씀입니까?”
“그래. 그곳에서 인간이 만든 부대를 전멸시키고, 김천재의 퇴로를 막도록 해.”
“메카니아는 그냥 두어도 괜찮겠습니까?”
“메카니아는 그 후다. 새로운 왕이 나온….”
루시퍼가 나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디아의 이마에 박힌 붉은 보석이 빛을 냈다.
[새로운 ‘어둠의 왕’의 시대가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 * * * *
“후우…. 가브리엘 짱, 수고 많았다능!”
팍!
지군의 방망이가 가브리엘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시스템 메시지]
[‘죽음의 대천사 가브리엘’이 사망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천군의 사기가 꺾이기 시작합니다.]
[천사군의 능력치가 –50%로 적용됩니다.]
천사들의 능력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내가 에이도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에이도스, 도시 내의 모든 방어 장치를 가동해 천사들을 공격한다. 단 한 마리도 놓치지 말고 전멸시키도록!”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방어 시스템 ON]
[‘메카니아’내의 모든 화기를 작동시킵니다.]
[로봇 기체를 공격 모드로 전환합니다.]
[목표물은 신성한 존재 ‘천사’, 현 시간부로 공격을 시작하도록 합니다.]
쾅! 콰광! 투두두두- 펑!
컨트롤 타워 옥상에 모인 우리가 고개를 내려 도시를 보았다.
무차별적인 학살.
천군이 멸살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화염 방사기가 천사의 날개를 태워버리고,
투두두두!
기관총이 그들을 난사하였으며,
쾅!
미사일이 도망가는 자를 추적하여 격추했다.
위이이잉-
사방에서 로봇 기체들이 날아와 천사들을 둘러쌓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로봇들이…. 아니 인간들이…!
-가브리엘 님! 어디 계십니까!
-크하아아악!
각종 화기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들려왔다.
천사들의 비명이 구슬픈 음악처럼 들린다.
오로지 내 귀에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악마가 아닌, 천사들을 위한 레퀴엠으로 느껴졌다.
‘…… 이제 메타트론을 끝내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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