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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준비를 마친 우리는 천상과 지옥을 향해 선전 포고를 했다.

더 이상 그들에 의해 움직이는 삶을 살지 않는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스토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 그러니 이제는 인간 모두가 힘을 합칠 때입니다.”

메카니아의 수장 강대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천재 씨가 말씀하시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메카니아를 방문한 김준철이 대답했다.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 모두 제 의견을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저희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에요.”

이로써 메카니아와 김준철 부대의 협약이 완성되었다. 둘의 힘을 합친다면 악마의 공격은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이제는 천사들의 부대, 메타트론의 천병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한다.

“에이도스, 악마의 위치를 보고하도록.”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현재 위치를 홀로그램 지도 위 좌표로 찍어 냅니다.]

푸른색 홀로그램 지도가 내 앞에 만들어지더니 악마들의 위치가 별 표시로 나타났다.

메카니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악마들이 있다. 작은 별부터 시작해 큰 별까지. 적들의 체급에 맞추어 표시해놓은 것 같다.

“마정우, 너는 지군하고 조영기를 데리고 이곳을 방어하고 있도록 해.”

“…… 벨제붑은?”

“나랑 소라 씨가 가서 처리하고 올게.”

“가능하겠어?”

“충분해. 지금 내가 가진 소환수와 이곳에 있는 로봇 기체만 생각하더라도. 녀석이 내게 이길 확률은 없어.”

전력의 차이가 다르다.

물론 악마 부대가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전면적으로 한다면 오히려 내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벨제붑만을 노린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

그가 위치한 장소는 현재 악마들이 모여 있는 곳과 거리가 좀 많이 떨어져 있는 천마산, 산기슭의 동굴이니까.

지군이 지도를 보며 큼큼거리더니 내게 물었다.

“가브리엘이 일찍 돌아오면 어떻게 하지?”

“…… 에이도스에게 명령해 놓을 테니까 전부 죽여. 어차피 다음 라운드가 시작될 때까지 메타트론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막기에는 무리가 좀 있는데…?”

당연하다.

악마 측 병사들만 막더라도 버거운데 두 쪽에서 공격 온다면 메카니아는 순식간에 전멸한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악마면 악마, 천사면 천사. 둘 중 한 곳에서만 공격 올 거야.”

“응?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생각해봐라, 너는 네가 천사인데 악마들이 공격하는 곳을 같이 공격하려 하겠어?”

“……”

“그 반대로, 천사들이 공격하는 곳을 악마들이 공격하겠어? 나라면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합류할걸.”

지군이 눈썹을 찡그리더니 수긍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너도 알잖아? 아니 형도 알잖아? 이번 게임에는 스토리가 많이 바뀌었다는 거.”

“스토리의 자잘한 흐름은 어느 정도 바뀌었지만, 뼈대는 그대로 남아있어. 너도 전략가로서 움직이니까 잘 알 거 아니야?”

“…… 그렇긴 하지.”

나는 표정을 풀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진행하도록 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내가 전부 책임질게.”

“…… 오케이!”

* * * * *

모든 병력을 메카니아에 집중시켜놓았다.

그저 유소라와 나만이 메카니아 근처에 있는 천마산을 방문했다. 우리가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삼지창을 든 하급 악마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때때로 좀비나 구울 같은 몬스터들이 덤벼들기는 했는데, 이제 게임의 후반부에 접어든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약한 존재였다.

그저 뺨만 때려도 생명력 게이지를 단숨에 빼앗을 정도니 말이다.

찰싹!

유소라가 손바닥으로 때린 좀비의 머리통이 목 위에서 세 바퀴 반을 돌더니 팽이처럼 땅에 떨어졌다.

“천재 씨, 이제…. 좀 게임 같아요.”

“…… 이제서요?”

“제가 좀 느린 편이라…. 사실 그전에는 너무 무서워서 게임 같지 않았어요. 아픈 것도 진짜로 아프고….”

“저도 그랬어요. 근데…. 게임이 아니면 이곳을 설명할 길이 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뭐…. 지금 저희 앞에 펼쳐진 이 세계가 게임이든 아니든, 지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봐요.”

유소라가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스켈레톤 다섯 마리만을 리콜 능력으로 불러 주위를 정리했다.

저런 하급 몬스터들을 상대로 하나하나 내가 직접 싸우고 싶지 않았다.

치지직!

스켈레톤 병사의 몸에서 전기가 일었다. 앞서 얻은 능력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강철로 만든 몸에 전기가 흐르니 하급 병사들은 닿기만 해도 팝핀 댄스를 추듯 덜덜 떨다가 쓰러졌다.

터벅. 터벅. 터벅.

얼마 걷지 않아 우리 앞에 큰 동굴이 나왔다. 산기슭에 있는 이곳은 루시퍼가 힘을 회복할 동안, 벨제붑이 외부인을 막는 장소다.

입구에 도착한 나는 유소라를 앞세워 ‘사자의 서’ 반응을 보았다.

“…… 아무런 변화도 없나요?”

“네, 아까 말씀드린 내용이 끝이에요.”

“흐음….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런 힌트도 없이 진행하라는 건가.”

내가 이 게임의 고인물이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막막한 상태에서 벨제붑을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들어가도록 하죠.”

“옙….”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짙은 어둠이 우리를 반겼다. 미리 횃불을 만들어 온 덕분에 주변을 환하게 비출 수 있었다.

나뭇가지를 스켈레톤 병사 머리통 속에 넣어놓고 불을 붙였더니 싸구려 후레쉬보다 주변이 환하게 비추어졌다.

동굴 속으로 들어갈수록 썩은 피 냄새가 내 코를 강하게 찔렀다.

“…… 리콜, 박규환.”

[‘리콜’ 능력을 시전하여 박규환을 이곳으로 불러옵니다.]

콰드득, 소리와 함께 공간이 진동을 하며 박규환이 내 앞에 소환되었다.

“부르셨습니까.”

“먼저 가서 안을 확인하고 오도록 해. 적이 나타나면 무시하고 바로 돌아오도록 한다.”

“…… 알겠습니다.”

박규환이 비틀어진 가면을 제대로 잡아 쓰더니 땅을 치고 나갔다. 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허공을 달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유소라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저분은 볼 때마다 대단하네요.”

“…… 그러게요. 게임 초반에 구한 소환수를 후반까지 사용할 줄 몰랐는데. 군인이 생각보다 대단하네요.”

거짓말은 아니다.

정말로 박규환을 게임 후반부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내가 생각한 그의 끝은 그저 일곱 번째 라운드 정도.

대악마를 상대로 싸우는 것 또한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상상하지 못한 전투력과 전투 센스가 큰 위기를 넘겼으니….

타닥-. 쿵! 타닥-. 쿵!

갑자기 동굴 안에서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전투가 벌어져 격을 주고받는다기보다는, 누군가가 높이 점프를 뛰었다 땅을 강하게 치는 것 같았다.

타닥-. 쿵!

저 소리가 날 때마다 진동이 내 다리에 느껴졌다.

가까운 곳이었다면 박규환이 미리 확인하고 돌아왔을 텐데.

“…… 뭘까.”

이 안에 벨제붑 말고 다른 존재가 있는 건가? 그 전과는 다르게 말이다.

나는 멈추지 않고 안쪽을 향해 걸었다. 어차피 예상외의 큰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리콜 능력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

“천재 씨, 안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요?”

“…… 그런가 보죠. 뭐.”

“시야가 너무 좁은데, 천재 씨 해골 전사들부터 안으로 들여보낼까요?”

“아뇨, 그럼 저희 시야가 더 좁아지잖아요. 같은 선상에서 움직여야 해요.”

“아….”

“무서우시면 제 뒤로 붙으시고요. 그 능력으로 이곳 몬스터에게 당할 일은 거의 없지만….”

“아, 아니에요. 그냥 가도록 하죠.”

유소라가 입술을 앙다물더니 일부러 나보다 앞에서 걷기 시작했다.

겁먹지 않았다는 의중을 내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그녀의 다짐에 보답이라도 하듯 걸음 속도를 높여 안으로 향했다.

우리는 동일 선상의 줄을 만들어 걷기 시작했다. 유소라가 이 사실을 알지 모르겠는데, 넓은 동굴에서는 이렇게 걷는 편이 좋다.

적이 어디서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 때에 즉각 반응해서 반격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서로의 옆을 지켜주는 전술.

두두두두두두-

안쪽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가벼운데다가 걸음의 거리가 일정한 것으로 보아 박규환이 확실했다.

나는 일부로 살기를 살짝 뿜으며 그를 기다렸다.

“…… 왔나.”

동굴 내부를 확인하고 돌아온 박규환이 내게 보고했다.

“적은 두 명, 한 명은 앞서 저희와 싸웠던 벨제붑이라는 존재입니다.”

“…… 나머지 한 명은?”

“나머지 한 명은 인간인데 처음 보는 자였습니다.”

“인간인데 처음 보는 자?”

“예, 검은 피부에 머리에 뿔이 달렸는데…. 악마가 아니라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누구지?

검은 피부에 머리에 뿔이 달리고,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면 최소 상급 악마는 될 텐데 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벨제붑이 상급 악마를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테고.

“…… 우선 알았다.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아니긴, 네 덕분에 든든하다.”

이렇게 칭찬을 해 주어야 소환수의 유대감이 높아진다.

[‘군인 박규환’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군인 박규환’이 높아진 호감도 만큼 자신의 능력을 더욱 잘 활용하게 됩니다,]

‘…… 칭찬은 고래도 날게 한다더니.’

“네가 확인한 자들이 멀리 있나?”

“아닙니다. 전방 육백 미터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그럼 엄청 가까운 건데?”

“예.”

그럼 아까 그 소리는 대체 뭐지?

나는 의문이 생겼지만, 그냥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자, 나만 손해다.

머리가 복잡할수록 상황 판단은 저하되니까.

나는 유소라와 함께 동굴의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시로 ‘사자의 서’를 펼쳐 들고 새로 추가된 내용이 있나 없나 확인했다.

내가 그녀에게 사자의 서를 맡긴 이유도 이것 때문. 다른 자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바빠서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인데,

유소라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움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펄럭- 펄럭-

책장을 넘기던 유소라가 나를 멈춰 세웠다.

“천재 씨.”

“예?”

“…… 사자의 서에 새로운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글자? 뭐라고 적혀 있나요?”

“어…. ‘과거의 영웅이 돌아와 당신의 앞길을 막는다. 목숨이 위험하니, 여는 자들은 모두 조심하기를 바란다.’라고요.”

“…… 과거가 돌아온다고?”

나는 그녀의 말을 해석해보려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시간도 넉넉한데 섣불리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내가 턱을 괴고 머리를 이리저리 젓자, 유소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재 씨.”

“예.”

“저희 돌아가야 할까요? 적힌 내용이 심상치가 않은데요.”

사실 나도 유소라와 같은 생각을 했다. 벨제붑만이 있는 줄 알고 왔는데 생각 못 한 생명체가 있고, 녀석에 대한 설명이 생각보다 웅장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지….’

돌아갈까?

그대로 진행할까?

결정하기 어렵다.

한참 동안 멈춰 서있던 나는 낫을 강하게 쥐며 유소라에게 말했다.

“…… 아뇨. 그냥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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