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하얀 연기 커튼과 함께 미카엘의 과거로 왔다.
과연 어떤 영상을 보여주려나? 뜬금없이 미카엘의 과거라고 하니 무엇이 나올지 모르겠다.
나는 턱을 괴고 화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 혹시.”
스으으윽- 구름이 갈라지듯 안개 커튼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아래로 천사 시절의 루시퍼와 미카엘이 보였다. 둘은 우애 좋은 형제처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는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내려가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루시퍼, 다음 천사장은 너라고 하던데?”
“나? 에이 아닐걸. 메타트론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뭐- 신의 대행인이 바뀌게 되는 거지.”
“…… 그럴 수도 있나?”
“위대한 자리에 오르는 천사는 오직 한 명. 네가 천사장의 자리를 얻게 된다면 메타트론은 자연스럽게 우리와 같은 위치로 내려오게 될 거야.”
“……”
“라파엘과 우리엘, 그리고 가브리엘까지 다음 회의 때 네게 투표를 던진다고 했으니. 그를 따르는 천사들도 너를 뽑을 것이고, 그럼 너는 천사장이 되겠지?”
미카엘의 부추김에 루시퍼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아! 괜히 바람 넣지 마.”
“뭘, 다 된 밥에 재만 안 뿌리면 된 거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인간들이 자주 하는 말이야.”
“오호라…. 다 된 밥에 재를 뿌리지만 않으면 된다라….”
철컹! 철컹!
멀지 않은 곳에서 하급 천사 중 한 명이 그들을 찾아왔다.
“미카엘 님, 메타트론께서 잠시 보자고 하십니다.”
“…… 나를?”
“그렇습니다. 단둘이 할 대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미카엘이 갑자기 근엄한 얼굴을 하더니 하급 천사에게 말했다.
“금방 갈 테니 기다리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루시퍼를 대할 때와 전혀 다른 위엄있는 말투였다. 하급 천사가 떠나자 둘은 다시 어린아이처럼 대화하기 시작했다.
“메타트론이 왜 나를 보자고 하는 거지?”
“글쎄, 천상이 만들어진 이후로 이번이 처음 하는 투표니…. 그에 관해서 도움을 달라고 부른 거 아닐까?”
“나한테? 메타트론이? 에이 설마.”
“…… 아니면 신께서 뜻을 전달하기 위해 불렀을 수도 있지.”
신의 뜻이라는 말이 나오자 미카엘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신의 뜻이라….”
“뭐- 어떤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서 잘 처리해봐. 나는 가브리엘과 함께 지옥에 잠시 다녀올게.”
“지옥에는 왜?”
“신께서 악마 중 천국으로 오고 싶은 자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어.”
“이번에도 특별 사면을 해주실 건가?”
루시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그럴지도. 신의 의중은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 알았다. 조심해서 다녀오도록 하고.”
“그래, 형도 다녀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
“그래.”
대화를 마친 미카엘이 루시퍼의 어깨를 툭 치더니 높게 날아올랐다.
단숨에 회랑의 중심부까지 올라간 미카엘은 성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문으로 들어갔다.
* * * * *
그가 회랑 안으로 들어가자 메타트론이 기다렸다는 듯 왕좌에서 일어났다.
“왔는가.”
미카엘이 고개를 낮게 꾸벅이더니 대답했다.
“예.”
“루시퍼는?”
“지옥으로 향했습니다.”
“…… 미카엘, 우선 좀 앉게나.”
메타트론이 손짓하자 미카엘이 은색의 의자를 끌어 앉았다.
키이이익-
“무슨 일이십니까? 저와 단둘이 할 말씀이 있으시다고….”
“그래. 자네 혹시 이번 천사장 투표에 누구를 뽑을 생각인가?”
미카엘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가 대답을 피하자 메타트론이 질문을 바꾸었다.
“미카엘, 그럼 질문을 바꾸도록 하지. 내가 아닌 다른 자에게 투표할 생각인가?”
“…… 그렇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겠나?”
미카엘이 숨을 크게 몰아쉬며 대답했다.
“첫 번째 이유는 ‘신의 말씀’에 대한 의문입니다.”
“…… 신의 말씀에 대한 의문이라니?”
“메타트론께서 저희에게 명령하는 것들이 정말 신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메타트론이 왕좌로 돌아가 앉더니 너털웃음을 뱉으며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럼 그 이유 말고 또 있나?”
“예, 신의 대리인 자리는 분명 지휘가 아닌 그저 뜻을 전한다고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저희를 통솔하시더군요.”
“……”
“그리고 근래 ‘신의 말씀’이라며 저희를 지옥으로 계속 보내시던데. 천사 중 벨제붑과 대화를 나눈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
“신께서 대체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메타트론이 주먹을 쥐어 책상을 크게 내리쳤다.
쾅!
“미카엘, 나를 의심하는 건가.”
“…… 예.”
“미안하지만 그 의심들은 전부 자네의 착각이네.”
“저의 착각이 아니라, 다른 천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그건 새로운 천사장, 신의 대리인이 바뀌는 날 알게 되실 겁니다.”
미카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쿵!
메타트론도 왕좌에서 일어나 그의 앞길을 막았다.
“잠깐.”
“…… 비키시지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미카엘, 네가 지금 말한 모든 의혹을 내가 없애주도록 하지.”
“…… 예?”
메타트론이 미카엘의 몸을 강제로 끌어 왕좌에 앉혔다. 그 순간 미카엘의 머리 위로 황금빛 아기 천사가 날아오르더니 눈부신 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보게나.”
“……”
발버둥 치던 미카엘이 몸에 힘을 풀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의 대리인이 어떤 자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자네가 직접 보도록 해.”
“……”
“그럼 알게 될 것이야. 내가 거짓을 말했는지, 진실을 말했는지.”
아기 천사가 가루를 전부 뿌리자 미카엘의 머리 위로 투영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는 내게도 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말하더니 곧 사라졌다.
투영한 존재가 사라지자 미카엘이 넋 나간 표정으로 두 무릎을 꿇었다.
쿵!
“이…. 이건….”
“이제 신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겠나?”
“……”
“자네들이 왜 내게 의혹의 씨앗을 품었는지는 알고 있네. 하지만 나는 절대로 ‘신의 말씀’을 잘못 전달한 적이 없어.”
과연 저 빛과 투영한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미카엘은 무슨 말을 들었길래 저런 상태가 된 걸까.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는 하지만….
미카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메타트론에게 물었다.
“언제부터입니까?”
“…… 언제부터냐니?”
“신의 말씀은 처음부터 이런 존재였습니까?”
메타트론이 고개를 돌려 천상의 먼 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
“다른 천사들도 알고 있습니까?”
“…… 모르고 있네.”
미카엘이 메타트론의 어깨를 잡아끌어 자신을 보게 만든 후, 다시 대화를 이었다.
“천사장, 아니 신의 대리인이 바뀌면 그동안의 일들을 어떻게 설명 하실 겁니까?”
“…… 어떻게 하기는. 나는 신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달했을 뿐이야.”
“신의 말씀? 고작 미래 조금 보는 게 신의 말씀이라는 건가? 어? 어?!!!”
팍!
메타트론이 미카엘을 밀쳐냈다.
“미카엘, 정신 차리게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건 신께서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것이야.”
“지금 이곳에서 본 미래가 현실이 되면. 다들 어떻게 되는지 당신도 알잖아?”
“…… 미카엘. 다시 말하지만, 이 미래를 보는 힘은 신께서 우리를 위대한 길로 안내하기 위해 직접 주신 능력이다.”
“……”
“나는 신의 뜻을 따라 움직인다. 이제 알았으면 내 말과 행동에 의심을 품지 말도록 해라.”
회랑에서 나온 미카엘은 곧장 루시퍼를 찾아갔다.
그는 어물쩍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루시퍼는 그의 행동이 답답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
“말해봐.”
“……”
“허허…. 드높은 천상의 대천사께서! 이렇게 말을 못해서야 되겠나?”
미카엘이 칼을 휘둘러 땅에 깊게 박더니,
쿵!
루시퍼에게 말했다.
“루시퍼, 너와 내가 후에 적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나?”
“…… 너와 내가 적이 된다면?”
“그래.”
루시퍼가 미카엘의 눈동자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얄궂은 얼굴로 대답했다.
“혹시라도 그렇게 된다면 서로 최선을 다하자.”
“…… 최선을 다하자고?”
“그래, 적으로서 최선을 다하자고.”
“……”
미카엘이 죽을상을 하자 루시퍼가 어깨동무하며 말을 이었다.
“신의 뜻이야?”
“…… 신의 뜻이다.”
“언제인데?”
“그건 몰라. 근데 말이야….”
미카엘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안개 커튼이 쳐지며 스토리 영상이 종료되었다.
[시스템 메시지]
[‘대천사 미카엘’의 기억 파편이 끝나며 스토리 영상이 종료됩니다.]
* * * * *
‘…… 그럼 미카엘과 루시퍼는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있던 건가?’
정우가 황금 도끼를 등에 메고 미카엘의 검을 챙겨 들었다.
“으쌰, 이제 이건 내 거지?”
지군이 간신배처럼 고개를 넙죽 내리며 대답했다.
“그, 그렇지.”
“야 오타쿠.”
조영기가 대답했다.
“왜?”
“아니…. 당신 말고. 지군.”
“응? 나? 왜?”
“이 무기는 어떻게-”
질문하려던 그의 머리 위로 황금 빛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콰광!
이어 정우의 머리와 수염이 금색으로 바뀌었다. 몸에서 흐르는 오라도 황금빛으로 바뀌더니, 이내 성스러운 존재처럼 보이게 되었다.
“뭐…. 냐? 마정우, 괜찮아?”
황금 전사로 변한 마정우가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대답했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괜찮냐고.”
“…… 괜찮아. 아주 괜찮아. 몸에서 힘이 미칠 듯이 넘쳐흘러.”
지군이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모습을 둘러보았다.
“스, 스바라시….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지군, 어째서 이번 게임에서는 미카엘의 검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급 무기들의 능력이 전부 향상되었다는 거야.”
마정우가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 천재야.”
“왜?”
“그거 한 번만 해보자.”
“……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이런 상황에서 그거라고 할 만한 행동은 단 하나뿐이다. 아이템의 능력을 확인차 나누는 격.
우리는 서로에게 들리도록 셋까지 숫자를 센 후 무기를 휘둘렀다.
내 낫과 정우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캉! 하고 크게 소리가 났기는 했지만, 서로의 날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내 몸이 뒤로 조금 밀려난 것 빼고는 말이다.
정우 녀석은 새로운 무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밝게 웃었다.
“아주 좋아.”
“…… 굉장한데? 지금 내 능력치로 손이 떨릴 정도야.”
“이 검에 적혀 있는 설명을 보니 굉장해.”
“뭔데?”
“‘상대방의 능력치를 기본 수치로 되돌리고,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무시한다.’라고 적혀 있는데?”
미친 무기구나.
상대방의 능력치와 방어력을 무시하고 대미지를 주는 무기라.
“저번 게임하고는 완전 다르네.”
“…… 내 무기로써 완벽해.”
“완벽하지. 우리의 작전을 위해서도.”
미카엘의 무기 덕분에 우리 모두가 기분이 좋아졌다.
단순히 대천사 한 명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 전력 보강과 함께 스토리의 방향을 확실하게 잡았으니까.
“…… 그럼 지군. 이제 가브리엘이 올 때까지 벨제붑을 잡으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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