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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미카엘, 내가 네게 주는 마지막 호의다.”

콰직!

루시퍼의 손톱이 미카엘의 복부에서 빠져나갔다. 하얀 핏물이 솟아올랐으나 신음조차 없었다.

“끝을…. 내라…. 네……. 호의 따위는….”

“형제여. 내가 비록 악마가 되었지만, 자네에게 호의 한 번쯤은 베풀어줄 수 있다네.”

“……”

“돌아가라. 그리고 그 잘난 신의 대리인, ‘메타트론’에게 나를 죽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해.”

“……”

미카엘을 따라온 천사들은 전부 악마들에 의해 사라졌다.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신성한 존재는 오직 두 명.

생명을 관장하는 천사인 가브리엘과 용맹함의 상징인 미카엘.

루시퍼는 지금 당장 그들을 끝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멈추었다.

그리곤 그 둘에게 기회를 주었다.

천상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반격할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미카엘이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나 숨을 거세게 몰아쉬었다.

“후우-. 후회하지 않겠나?”

“후회? 그럴 리가. 내가 누군지 잘 알잖아?”

“형제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자네도 그 형제 중 한 명이지.”

루시퍼가 가볍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미카엘이 무언가에 크게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뒤로 던져졌다.

그 순간 가브리엘이 빠르게 움직여 미카엘을 낚아채더니 높이 날아오르며 루시퍼에게 소리쳤다.

“루시퍼, 신마대전을 다시 일으키고 싶은 건가?”

“……”

“이제는 대악마라 불리는 자도 벨제붑 한 명밖에 남지 않은 것 알고 있지?”

“…… 아니, 내가 살아있으니 총 두 명이지.”

“그래 총 두 명.”

“그리고.”

“…… 그리고?”

하급 악마들이 게이트 너머에서 가져온 뼈들을 한둘씩 조립하기 시작했다.

파편이 많아 오래 걸릴 것 같이 보였지만, 악마의 수가 워낙 많아 순식간에 제작을 마쳤다.

과연 무엇을 만드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다.

누가 보아도 뼛조각을 맞춰 만든 형태의 주인은.

“…… 사탄.”

루시퍼의 오른팔인 ‘분노의 사탄’이었다. 악마들이 조립을 맞추자 어디선가 나타난 벨제붑이 어둠의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은 그 장면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덤빈다면, 무방비 상태의 미카엘이 순식간에 사망할 것이 뻔했다.

가브리엘 쪽에서 먼저 공격한다면, 악마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말이다.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한 어둠의 기운이 사탄의 뼈에 스며들었다.

녀석의 피부 가죽이 조금씩 생기를 되찾기 시작하고. 형체만 사람 같던 놈의 몸이 완전한 마인이 되었다.

벨제붑이 다시 살아난 사탄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핫! 역시 내 실력은 변하지 않는군!”

벨제붑이 사탄을 되살려내자 이번에는 루시퍼가 다가와 사탄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저 양손을 잡고 두 눈을 감았을 뿐인데,

탄산음료를 흔든 후 뚜껑을 연 것처럼 오라가 세차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루시퍼의 몸에서 흘러나온 오라는 전부 사탄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 이런….”

벨제붑과 루시퍼의 조합.

생각보다 위험했다.

대악마를 손쉽게 살려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래의 힘을 순식간에 원상복귀 시키니, 한 번 죽으면 끝나는 천사로서는 최악의 적이었다.

미카엘이 눈을 힐끔 뜨더니 가브리엘에게 속삭였다.

“가브리엘…. 자리를 피하도록 하지….”

가브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메카니아를 향해 날았다.

* * * * *

우연이었다.

그저 목이 뻐근해서 하늘을 쳐다보았을 뿐인데, 때마침 지나가고 있는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보였다.

‘벌써 전투가 끝난 건가?’

나보다 그들의 존재를 먼저 알아챈 지군이 빠르게 활을 조준하더니,

탁.

쉬이이이익-

가브리엘의 날개를 맞추었다.

팍!

균형을 잃은 가브리엘이 빙글빙글 돌며 지면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는지 오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녀와 함께 떨어지는 미카엘 또한 크게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부상이 큰가 보다.

저 둘이 루시퍼에게 패배하는 스토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흐름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큰 결과는 이번 게임에도 항상 비슷했다.

지군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 대천사들이 떨어진 방향을 보았다.

“김천재, 저 녀석들 생각보다 부상이 큰가 본데?”

“…… 그래? 생명력 게이지는?”

“생명력 게이지는 꽉 차 있어. 설정상 저건 줄어들지 않았나 봐.”

“흐음…. 그럼 한 명씩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왜? 이 기회에 둘 다 죽이는 게 낫지 않아?”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실수해서 둘 중 한 명이 도망가 봐.”

“……”

“도망간 놈이 메타트론에게 뭐라고 보고할까? 그렇게 되면 메타트론도 인간 멸망을 바로 실행하려 할걸.”

“…… 맞네.”

지군이 수긍하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악마나 천사나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인류의 멸망이다. 때가 언제인지만 다를 뿐, 결국 최종적인 목표는 저 둘이 같다는 말.

우리에게는 나쁜 소식이지만….

“우선 내가 먼저 가서 대화를 시도해볼게.”

“혼자?”

“어, 라파엘과 우리엘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달하면서 저 둘 중 한 명을 성역으로 보내면 될 것 같아.”

“…… 그게 가능해?”

“말만 잘하면. 둘 다 루시퍼를 경계하느라 이곳의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한 명만 성역으로 이동하라고 하면 될 거야.”

지군이 손뼉을 쳤다.

짝!

“와-. 그런 생각은 어떻게 바로바로 하는 거야? 나도 전략 전술에는 자신 있어도 이렇게 빨리는 생각 못하는데 말이야.”

내가 좋은 미소로 코끝을 훔치며 대답했다.

“너와 나의 차이가 바로 이거지. 너는 작전을 짜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대신에 완벽에 가깝고.”

“…… 맞아.”

“나는 즉흥적으로 작전을 만들기에 빠른 대신에 조금 부족한 점이 있다.”

“…… 맞는 것 같네.”

“하지만 이 정도 팀이면 전술이 조금 부족해도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어. 맞지?”

“…… 그것도 맞는 말이야. 축구선수 한 명이 게임을 이기게 만드는 일도 있으니까.”

* * * * *

우리는 자리를 빠르게 이동해 추락한 미카엘과 가브리엘을 찾았다.

화살에 맞은 건 가브리엘인데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건 미카엘이다.

앞서 루시퍼에게 크게 당했나 보다.

내가 일부러 놀란 척을 하며 숲속에서 달려 나갔다.

“미카엘!”

“기…. 김천재.”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긴.

루시퍼에게 당했겠지.

“루시퍼에게 당했다….”

어, 그래.

“루시퍼? 루시퍼는 지금 어디 있지?”

“…… 저 산속, 천마봉이라 불리는 곳에 있다.”

내가 아는 곳과 위치도 똑같다.

“우선 좀 쉬도록 해. 가브리엘, 당신은 움직일 수 있나?”

가브리엘이 날개에 박힌 화살을 빼내더니 숨을 크게 쉬며 대답했다.

“가능해.”

“그럼 미카엘은 우리가 메카니아로 데려가 치유할 테니. 당신은 천상으로 올라가 메타트론에게 도움을 청해.”

“…… 김천재.”

“응?”

“……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 뭔가 좀 이상해서.”

“이상하긴,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거야.”

가브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렇지. 미카엘의 상태를 봐. 이대로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

“여기는 우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빨리! 빨리 메타트론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재촉하자 가브리엘이 허공에 지팡이를 휘저어 게이트를 만들어 냈다.

“그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미카엘을 잘 부탁하도록 하지.”

“걱정하지 말고. 우리 실력은 이미 알고 있잖아?”

“…… 알았다.”

그녀가 미카엘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이내 게이트 너머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를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진중하지만 미소를 살짝 머금은 얼굴로.

그녀를 떠나보낸 후, 나는 동료들과 함께 미카엘을 메카니아 근처로 데려갔다.

아무도 오지 않고, 조용한 숲속으로.

“에이도스, 로봇 기체 다섯을 이곳으로 보내도록.”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인지합니다.]

[로봇 기체 다섯이 김천재 님의 좌표를 읽고 출동합니다.]

쿠아아앙-

소리와 함께 근처에 있던 로봇 기체들이 도착했다.

얼굴 위치에서 빨간 레이저가 나와 우리를 확인했다.

[‘김천재’ 님의 그룹 확인 완료]

[명령을 기다립니다.]

“…… 사격 준비. 목표는 전방에 있는 대천사 미카엘, 최고 출력으로 공격하도록 한다.”

내 손가락이 미카엘을 가리켰다.

미카엘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았다.

“기, 김천재 그게…. 무슨 말인가 쿨럭!”

미카엘의 가슴에서 하얀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를 내려보며 낫으로 땅을 쿵쿵 쳤다.

“미카엘, 미안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

“아니지! 천사라 불리는 존재 전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지들이 뭐라고 악마들과 함께 인간의 존속에 관한 이야기를 논한단 말이야?”

“그건….”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 물론 이번 사건의 당신은 인간의 존속을 주장했지만, 과거에는 인간을 없애자고 했었다면서?”

“그,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어떻게 알긴.”

내가 유소라가 들고 있는 사자의 서를 힐끔 보았다.

“그 당시 여는 자라 불리는 인간이 기록해놓은 자료를 봤지.”

“……”

로봇 기체의 머리 위에 달린 기관총이 철컥 소리와 함께 장전했다.

지군이 사냥꾼 전용 스킬인 ‘맹세의 속박’을 사용하여 미카엘의 몸을 묶었다.

촤르르르륵!

이어 정우가 황금 도끼를 위로 들고 독백했다.

“드디어 내 차례군.”

유소라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미카엘을 응시하며 로봇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쾅! 투두두두두두- 쿠궁!

업그레이드된 로봇 기체들의 위력은 땅이 패일 정도로 강력했다.

미카엘의 생명력 게이지가 구멍 난 페트병의 음료처럼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탄환이 미카엘의 몸에 명중되었다. 대천사라서 그런지 기계의 힘으로 그의 몸을 뚫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대미지를 주기에는 충분한 위력.

미카엘이 크게 발버둥 치며 신음을 뱉었다. 날개를 크게 펄럭여 도망 가보려 했지만, 지군의 사슬에 묶여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악! 김천재! 너를 잊지 않으마!”

“…… 고마워. 나 같은 놈을 기억해준다니.”

생명력이 회색으로 변하기 직전,

마정우가 도끼를 높이 추어올렸다.

부웅-

콰직!

황금빛 날이 미카엘의 가슴에 정확하게 박혔다.

“크허억!”

이어 내가 낫을 휘둘러 놈의 목을 베어냈다.

샥-

[시스템 메시지]

[‘용기의 대천사 미카엘’이 사망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천군의 사기가 꺾이기 시작합니다.]

[천사군의 능력치가 –30%로 적용됩니다.]

미카엘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로 강하다.

앞서 처리한 라파엘과 우리엘은 이러지 않았는데, 대체 뭐지?

미카엘이 뿜어내는 힘에 밀려난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최초의 천사’의 기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용기의 대천사 미카엘’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을 발동시켜 과거의 시간을 보여주는 공간을 만듭니다.]

“…… 미카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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