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나, 마정우, 조영기, 지군, 유소라.
새로운 초월자 그룹의 첫 전투가 막을 열기 전이다.
대경성에 악마들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가 출동했다.
“이번 라운드부터는 전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 흐름이야. 다들 기억하고 있지?”
모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소라만 제외하고.
“소라 씨는 그냥 저희 뒤를 따라오는 데만 집중하세요.”
“알겠어요.”
“그럼…. 김준철이 도착하는 대로 대경성 안으로 진입하도록 하자.”
우리는 대경성 근처 나무숲에 몸을 숨겼다. 몰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보았지만 결계가 우리를 막았다.
[‘도깨비 부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키에에엑!
마을 내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벌써 전멸했는지 악마들만이 보인다.
지금까지 봐온 모든 종류의 몬스터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수인족부터 시작해서 지옥의 악마들까지. 정말 지구 멸망의 시작이라고 해도 될 만큼 굉장한 놈들이다.
“…… 바이러스에 감염된 놈들은 생각보다 많이 없구나.”
지군이 대답했다.
“바이러스는 그저 루시퍼가 부활할 때까지 시간 벌이용으로 만든 거라고 했었잖아.”
“그렇긴 한데….”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 언젠가는 면역체계가 생기기 때문에 바이러스만으로는 전부 죽일 수 없대.”
“……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루시퍼가 직접 움직였다면 사방에 퍼져 있는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모였을 텐데. 그에 비해 감염체 수가 적다는 말이야.”
“…… 아!”
감염체들은 전부 루시퍼의 명령 하에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번 작전을 위해 모든 몬스터들이 대경성으로 모이는 게 당연한데.
그러기에는 감염체의 수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이 게임의 맵이 얼마나 큰데….’
“지군, 진입하기 전까지 주변 확인 좀 하고, 적의 수를 체크해봐.”
“저렇게 많은데 어떻게 체크해?”
“그냥 밖에서 안쪽 보면서 대강 세어보라고. 어느 쪽에 악마들이 더 많이 몰려 있는지, 이 정도만.”
“…… 알았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지군이 원숭이로 변하더니 대경성의 벽을 향해 달렸다.
이어 조영기가 내게 물었다.
“들어가지 못할 뿐이지. 공격은 해도 되는 거 아니야?”
“…… 몸 상태는?”
“백 프로다.”
“그럼 너는 정우랑 같이 대경성 입구를 맡아. 해골 병사들 같이 넣어줄게.”
조영기가 손가락을 저었다.
“노, 해골 병사는 넣지 말도록 해. 오랜만에 미친듯이 싸워보고 싶으니까.”
“…… 괜찮겠어?”
“물론이다.”
정우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유소라를 불러 그에게 주사를 놓게 한 후, 세 명 전부를 대경성 입구에 보냈다.
도깨비 부대가 도착하지 않았더라도, 미리 악마의 수를 줄여 놓으면 좋긴 하다.
“그럼, 죽지 말고 있으라고.”
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죽겠냐.”
“…… 나는 도깨비 부대가 도착하는 대로 안으로 진입할게.”
“오케이, 최대한 빨리 끝내라.”
“알았어.”
* * * * *
정찰을 마치고 도착한 지군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가고일들은 전부 건물 위에 참새처럼 매달려 있고, 나머지 녀석들은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어디가 더 많다고 하기 힘들어.”
“…… 리치의 위치는?”
“리치는 대경성 맨 뒤쪽, 트롤전사들과 함께 있어.”
“트롤이라….”
투두두두두두두.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았지만, 헬기가 날아오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흔들림은 분명….
멀리서 무전 소리가 들려왔다.
-대경성! 위치! 파악! 완료! 좌표를 전달한다!
닷지 차량 세 대가 인근에 멈춰 서더니 병사들이 빠르게 내려 통신 안테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먼저 정찰대가 온 건가?
차량이 만들어 내는 소음 때문인지 크게 소리쳐 무전했다.
-안테나 설치 완료! 전원 이동하도록 한다!
악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꽤나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들리도록 소리치는 이유는, 이제 곧 싸울 테니 준비를 하라는 뜻.
“오케이 도착. 지군, 너는 지금 당장 입구로 이동해서 다들 자리를 피하라고 해.”
“알았어!”
지군이 다시 원숭이로 변하더니 대경성의 입구를 향해 달렸다. 김준철의 부대가 도착했으니 빠르게 발을 빼야 한다.
괜히 게임이 시작되기 전 움직였다가 초토화될 수 있으니….
지군이 그룹원들을 데리고 빠르게 복귀했다. 악마 몇이 따라오려 했지만 조영기가 땅 마법을 사용하여 녀석들을 따돌렸다.
허겁지겁 달려온 마정우가 도끼날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내게 물었다.
“어디 있는데?”
“저- 기. 닷지 차량이랑 안테나 보이지?”
“…… 오!”
닷지 차량이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전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수만 하더라도 대략 서른 대. 그 뒤로 따라오는 로봇 여러 대가 보였다.
조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신식 무기는 전부 탑재했으니….
대경성 근처에 도착한 전차들이 일렬로 서서 전투 준비를 갖추었다.
전차 옆을 지키는 보병의 수만 하더라도 수천은 되어 보였다.
고글을 쓴 남성이 망원경으로 대경성의 입구를 확인하더니 크게 무전했다.
-12시 전방 대경성 앞 적군 발견! 포수 대탄, 전방 대경성 전역!
‘드디어 시작인가….’
전차 쪽에서 대답하는 무전이 들려왔다.
“표적 확인, 장전 끝. 조준 끝.”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악마군 쪽에서도 전차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는지 가고일들을 하늘로 날렸다.
.
.
.
.
.
.
고글을 쓴 남성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쏴!
그가 입을 뗌과 동시에 전차 수십 대의 포구가 불을 뿜었다.
쾅! 콰광! 쾅! 쾅!
사방에서 날아든 포탄이 대경성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시작해서 마을 안까지 전부 화염에 휩싸였다.
폭발로 인해 악마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반격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포탄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가고일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제자리를 날다가, 명령을 받았는지 전차를 향해 빠르게 날았다.
-키에에에엑!
보병과 로봇들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총을 장전했다.
철컥!
-어깨 총!
보병들이 무릎을 꿇어앉아 자세를 취하더니 총을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총구가 하늘을 향하는 자세.
보병들은 가고일들이 날아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발포!
고글 남성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총을 발포했다.
-발포!
탕! 탕탕!
수천 개의 총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전차를 향해 날아오던 가고일 무리가 다가오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오래전부터 이 전투를 기다려왔는지 다들 숙련된 행동을 보였다.
총탄에 살아남은 가고일 몇이 도망가려 하자, 로봇 기체가 머리에 달린 포를 장전하여 발사했다.
쾅!
한 번에 여섯 발의 포탄이 날아갔다. 가고일들이 피하려 해보았지만, 유도탄이었는지 녀석들을 따라가 격추했다.
쿠우웅-
순식간에 가고일 무리가 전멸했다.
동시에 전차 포구의 불꽃이 멈추었다.
잠시 쉬는 타임인가? 싶은 순간, 고글 남성이 다시 무전을 했다.
-브라보 장, 작전 준비 완료.
투두두두두두-
멀리서부터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빠르게 이동한 수송 헬기들이 대경성 위에 멈추었다.
-진입.
고글 남성이 명령하자 헬기의 문이 열리고,
철컹.
그 안에서 도깨비 가면을 쓴 군인, 김준철의 직속 공수 부대원들이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낙하산도 없이 빠른 속도로 강하했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오라를 보니 그럴만하다 싶을 정도다.
일개 군인 NPC들이 저 정도로 강해지다니. 내가 모르는 5년의 세월은 절대 얕볼 수 없구나.
고글 남성이 떨어지는 도깨비 군인들을 향해 경례하더니 무전기를 켰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걸걸한 남성 목소리가 무전 반대편에서 대답했다.
-전원 무운을 빈다.
* * * * *
[현 시간 부로 ‘대경성’ 출입이 가능해집니다.]
[플레이어 전원 전투를 준비해주십시오!]
도깨비 부대가 투입되는 동시에 나도 대경성을 향해 달렸다.
“너희들은 군인들과 함께 입구로 들어오도록 해!”
지군이 등에서 활을 빼내 들었다.
“코노야로, 맡겨두라고.”
전속력으로 대경성의 벽을 향해 달린 나는, 낫을 크게 휘둘러 벽을 부수었다.
쾅!
[‘김천재’ 플레이어가 숨겨진 입구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곳은 이렇게 무너트릴 수 없다. 대경성의 박물관 쪽으로 향하는 이곳만이 유일한 이스터 에그.
[숨겨진 입구 개방으로 인해 서쪽의 바람이 대경성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자 마을 내에 붙어있는 불꽃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대경성 안으로 들어가자 악마들과 싸우고 있는 도깨비 부대가 보였다.
그들이 투입되기 전 이미 절반 이상이 전멸한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있었다.
“김천재 씨!”
“어? 소령님.”
김준철이 가볍게 대검을 휘둘러 악마를 썰며 달려왔다.
“도착하셨습니까.”
“예, 저번에 말한 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천재 씨 말대로 정말 있었군요. 악마라는 자식들이….”
“…… 예.”
나는 김준철의 어깨를 툭 친 후 다시 대경성의 뒤쪽을 향해 달렸다.
리치는 분명 박물관 뒤 묘지에 대기하고 있다. 그곳에서 영혼을 흡수해 강해진단 설정이니까.
하급 악마 여럿이 동시에 덤벼들어 내 앞길을 막았다.
“리콜.”
[‘리콜’ 주문을 시전합니다.]
[특정 소환수가 없으므로 모든 소환수를 이곳으로 데려옵니다.]
위잉-
공간이 잠시 틀어져 보이더니,
팍!
하며 내 수하에 있는 모든 소환수들이 나타났다.
“박규환! 너는 도깨비 부대를 도와 악마들을 상대하도록 해라. 가웨인, 아레스! 너희 둘은 내 옆을 지키도록 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모두가 자리에서 튀어 나갔다.
가웨인이 전방에 있는 하급 악마들을 썰어 버리고, 아레스가 내 뒤를 지키며 악마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스켈레톤 병사 전원. 마을 내에 있는 몬스터를 섬멸하도록 한다!”
-키엑!
스켈레톤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완벽하다.
이제 리치만 처리하면 이번 게임은 쉽게 끝난다.
* * * * *
대경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 그 안에서 악마와 천사들이 싸우고 있다.
키이이잉-
날붙이끼리 부딪쳐 갈아내는 소리를 내었다.
“루시퍼!”
“…… 미카엘.”
루시퍼와 미카엘이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너만 사라지면 이 세계는 평화가 찾아온다.”
“…… 평화란 무엇이지?”
“뭐?”
“네가 말하는 평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
루시퍼가 검을 위로 치켜세워 미카엘을 밀어냈다.
그러곤 그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평화란 전쟁과 분쟁이 없고 평온한 상태를 뜻한다.”
“……”
“그런데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행동은 지옥과 천상. 그리고 인간계까지 전쟁과 분쟁을 만들고, 평온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게 했지.”
“닥쳐라. 너희들만 사라지면 그 모든 일이 정리돼.”
루시퍼가 입을 크게 벌려 껄껄 웃더니 붉은 게이트 앞에 섰다.
“메타트론이 그렇게 말하던가? 신께서 지옥을 지배하고 악마들을 멸하라고.”
“……”
“아닐걸? 그리고 신께서 원한 건 평화가 아니야. ‘신마전쟁’을 떠올려 봐라.”
“그건 너희들이-”
“그 당시 악마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천사들이 지옥을 지배하겠다고 공격 온 거지.”
“……”
“그리고 그때의 나는 천사였다. 당시에는 악마의 입장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신이라는 작자가 참 원망스럽군.”
“루시퍼!”
“미카엘, 지금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직…. 내 방식대로 네가 말한 평화를 만들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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