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고티가 왜?”
의외의 대답이었다.
자신이 최고라 생각하여 누구 말도 듣지 않기로 유명한 지군이 고티의 말을 들었다고?
서쪽에서 해가 뜰 일이다.
지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이유는 모르겠고, 이 게임을 빨리 끝내려면 그편이 좋다고 했어.”
“너는 그 말을 들었고?”
“그렇지. 근데 너 몇 살이냐? 자꾸 나한테 반말해.”
“너는 몇 살인데?”
“스물아홉.”
“후우….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아, 임마.”
물론 정신 연령을 기준으로 대답한 거다.
“아…. 형이셨군요.”
“됐어, 이제 와서 무슨 존댓말이야.”
“반말해도 돼요?”
“되니깐 아까 그 이야기 좀 이어서 해봐. 천사들의 무기를 전부 구한다고?”
지군이 씨익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그렇지. 우리가 저번에 루시퍼를 잡지 못한 이유가 뭔지 알아?”
“…… 딜량 부족?”
“맞아! 딜량 부족이었어. 그래서 내가 기를 쓰고 메타트론의 무기를 구하려고 했던 거야.”
“…… 그래?”
“그렇지. 딜만 좀 더 높았으면 전부 죽기 전에 녀석이 쓰러졌을걸?”
루시퍼의 마지막 순간을 보았다면 그런 말이 안 나왔을 텐데. 먼저 죽은 놈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너 이 게임이 어떻게 끝났었는지는 알고 있냐?”
“게임이…. 글쎄? 마지막 날 나는 일찍 죽어서….”
“전부 죽었어.”
“…… 응. 나도 알고 있는데?”
“나도 죽었었다고.”
“…… 네가? 아니 형이? 에이- 구라치지 말라고. 분명 김천재 플레이어가 마지막 생존자였다고 시스템 창에 떴는데.”
내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플레이어라고 했지. 루시퍼를 잡았다고는 안 했는데?”
“…… 그 많은 사람을 살려내고도 못 잡았어? 형 능력이었으면 계속해서 살려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날의 기억을 지군에게 말해 주었다.
막타를 남겨두고 녀석이 자폭하는 바람에 진짜 멸망이 왔었던, 그 마지막 게임을.
지군이 내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더니 숙연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이켰다.
꿀꺽- 꿀꺽-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단번에 많이 마셨다.
“크아! 아니, 천하에 김천재가 루시퍼에게 졌었단 말이야?”
“아무리 나라도 못 하는 일이 있더라고.”
“허허….”
“그나저나 네 그룹은 어디에 있는 거지? 혼자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우리 그룹? 야레야레…. 저~ 언멸해버렸다구….”
“전멸? 누구한테? ”
지군이 양손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
“내 안에 있는 흑염룡에게 당해버렸다규.”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게 바로 오타쿠와의 대화인가 싶다. 채팅으로 볼 때는 그나마 참을 만했는데, 직접 저런 말을 하니 짜증이 치솟는다.
“아 좀!”
“장난이고. 고티 그룹이랑 같이 움직이다가 헤어졌어. 우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명은 진즉에 죽었고.”
“…… 처음부터 그렇게 말할 것이지.”
내가 괜히 지군의 머리통을 한 대 때렸다.
찰싹!
“악! 왜 때리냐능!”
“몰라. 그냥 때리고 싶었어.”
“지군짱은-”
“그만하라고.”
“……”
정우가 지군을 한 대 더 때렸다.
찰싹!
“아오 이 새끼. 나도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는데 너무 빡친다.”
“아악! 너 이 털보 영감 새끼가!”
“야 됐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말해봐.”
지군은 머리가 욱신거렸는지 크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 아까 말했잖아. 딜량이 부족하니까 천사들의 무기를 전부 빼앗자고.”
“그 후에는? 어차피 딜을 많이 넣어도 최후에 루시퍼 녀석이 자폭해버리면 끝이잖아.”
“…… 자폭을 못 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뭐?”
자폭을 못 하게 한다라.
그런 방법이 있다면 물론 좋은 작전이다.
나는 담배를 깊게 태우며 그에게 물었다.
“자폭을 못 하게 할 만한 방법이 있어?”
“간단하지. 어차피 녀석의 마지막 스킬이 자폭이니까, 그 전에 고랭크 마법사를 찾아서 봉인 주문을 배우게 하는 거야.”
“…… 봉인?”
“그렇지. 9랭크 마법사들은 침묵 스킬을 배울 수 있잖아. 그 영역에 도달한 자만 찾으면 돼.”
“9랭크라….”
9랭크면 90 이상의 레벨을 뜻한다.
게다가 업적 100개 이상을 이루어야지만 배울 수 있는 침묵 계열 스킬.
조영기도 그 정도는 안 될 텐데 말이야.
“…… 아! 적합한 사람을 알고 있어, 9랭크는 아직 아니지만.”
“그래? 그럼 그 사람을 찾아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게 시켜. 어차피 이대로 가면 열흘 언저리쯤 마지막 라운드에 도달할 것 같은데.”
있다.
미카엘의 몸에 봉인되는 바람에 업적이 적은 조영기보다 9랭크에 더 가까운 마법사.
정우도 눈치를 챘는지 내게 물었다.
“혹시 그 여자 말하는 거냐?”
“눈치 챘구나.”
“…… 우리랑 함께 하려고 할까?”
“당연하지. 죽기 싫으면 무조건이야.”
지군이 나와 정우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쑥 내밀었다.
“자-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방에서 마저 하자고.”
* * * * *
펍의 2층으로 이동하자, 잠에서 깨어난 조영기가 우리를 반겼다.
그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확인하고 있었다.
“여- 김천재.”
“…… 몸은?”
“아주 좋아. 미카엘의 몸속에서 네가 하는 모든 일들. 전부 봤다.”
“그래?”
그렇구나.
나는 모르고 있었다.
미카엘의 몸에 들어가면 정신은 살아있다는 것을.
우리들을 순서대로 확인하던 조영기가 지군에게 시선이 꽂혔다.
“…… 뭐냐, 이 안경 여드름 돼지는.”
지군이 발끈했다.
“뭐!…… 라는 거예요….”
가 눈을 내리깔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조영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정말 건달과 대화하는 것 같았으니깐.
나는 작게 웃으며 조영기에게 지군을 소개해 주었다. 둘은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서먹서먹했다.
오타쿠에도 레벨이 있는지 조영기 쪽이 좀 더 강해 보였다.
“김천재, 그럼 이제부터는 지군이랑 같이 그룹을 이룬다는 거야?”
“…… 그렇지. 우선 마이클과 김연희는 따로 그룹을 이루어서 이 마을에 남도록 하고.”
“하고?”
“나머지 나, 지군, 정우, 소라 씨 마지막으로 당신. 이렇게 다섯이서 움직일 거야.”
“…… 흐음.”
“왜?”
“그냥. 그냥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무슨 생각?”
조영기가 숨을 크게 내뱉더니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아니다.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니 신경 쓰지 마.”
“……”
“우선 나는 좀 쉴 테니 다들 나가줄래? 아직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좀 자야 할 것 같아.”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모두를 데리고 나왔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지금 유소라의 자리에 고티만 있다면, 예전 우리 초월자 그룹이 다시 모여 움직이는 것과 똑같이 된다.
“…… 후우.”
그때와 같은 생각이 들겠지.
지군이 궁딩이를 씰룩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모두가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터벅. 터벅. 터벅.
“…… 잠깐만.”
지군이 갑자기 뒤로 돌아 나를 보았다.
“혹시 조영기와 미카엘의 생각이 공유되는 건 아니겠지?”
“뭐?”
“조영기가 미카엘과 한 몸에 공존했었잖아? 그 여파로 뭐 마음의 고리 같은 게 연결되어 있나 해서.”
“……”
모르겠다.
그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예상외의 발상이다.
“아직 천사 무기에 대한 작전을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저 녀석이 누설한다면 우리 전부 큰일 나.”
“…… 우선 휴식을 취하게 하도록 하고. 그 후에 물어보자. 그럼 되는 거 아니야?”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
“할 이유가 없지.”
“…… 그런가?”
지군이 히죽 웃더니 다시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정신 공유라….’
* * * * *
<대경성>
글로벌 서버라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이 집결된 이곳에.
악마들이 미칠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해외 플레이어들은 자리를 떠난 지 오래.
오로지 한국인 플레이어와 NPC들만이 자리를 지키며 악마에게 맞서 싸웠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 우리가 뚫리면 대경성은 무너진다!
-김리아, 김리아는 어디에 있는 거야?-조금 전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폐허가 된 마을로 갔어!
-제기랄!
탕! 탕!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렸다.
쉬유우우웅.
쾅!
고랭크 마법사가 사용한 메테오가 떨어져 내렸다. 단 한 방에 임프 무리가 전멸했다.
“메테오는 십 분에 한 번 밖에 못 써! 다들 시간을 벌어줘!”
전사들이 방패를 높게 치켜들어 대경성의 입구에 줄지어 섰다.
그 뒤로 궁수들이 활을 쏘며 악마의 진입을 막아보려 했다.
피융- 탁!
Z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블린 한 마리가 입구를 막고 있는 전사를 향해 달려왔다.
전사 중 한 명이 검을 휘둘러 놈의 심장을 뚫었다.
콰직!
“키에엑, 키엑…. 루시퍼 님…. 만세!”
쾅!
고블린의 몸이 터지며 전사들이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악마들이 수를 앞세워 밀고 들어왔다.
악마의 괴기스러운 음성과 인간의 비명이 뒤섞여 지옥 같은 전장을 만들어 냈다.
-키에에엑!
가고일이 하늘을 덮고.
각종 동물형 악마들이 경성 전역을 뛰어다녔다.
악마의 수에 비교하여 사람은 너무나도 적었다. 바둑판에 검은 돌이 흰 돌을 압도적으로 먹은 것처럼 말이다.
“제, 제발! 조금만 더 있으면 다섯 번째 라운드인데- ”
부웅-
팍!
오우거의 방망이가 플레이어의 머리를 박살냈다.
-쿠워어어!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악마 사이를 가르며 나타났다. 인간에 가까운 얼굴을 가진 마녀.
리치.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호호-. 미천한 인간들아. 루시퍼 님의 제물이 되어 모두 사라져라!”
-키에에엑!
* * * * *
삐빅. 삐빅. 삐빅.
무전을 마친 김준철이 어두운 표정으로 전투복을 입었다.
“김천재의 말이 진짜였군.”
그가 방문을 열자,
끼이이익- 쿵.
수천 명의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부관들이 앞으로 나와 김준철에게 경례했다.
“단! 결! 미리 말씀해주신 덕분에 빠르게 모일 수 있었습니다.”
“잘했다. 그럼 전원 대경성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전- 원-. 뒤로! 돌아!”
척! 척! 하는 소리와 함께 무장을 마친 군인들이 뒤로 돌았다.
“죽음이 무서운 자 있나?”
-없습니다!
“그럼 도망치지 말고 끝까지 싸워라. 우리 도깨비 부대의 명예를 걸고.”
-알겠습니다!
부관이 김준철에게 경례하더니 마을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서 만든 전투 로봇 및 장갑차와 함께 이동하며 굉음을 만들어 냈다.
어찌나 큰 행렬이었는지 땅이 흔들려 발이 움직일 정도였다.
김준철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물자, 군인 한 명이 달려와 불을 붙여 주었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고맙군.”
“아닙니다.”
“공수여단은 준비를 마쳤나?”
“……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그래그래, 그럼 우리도 이동하도록 하지.”
김준철이 걸음을 떼자 먼 곳에서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귀가 찌릿하고 옆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컸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도착하자, 흔히 치누크라고 불리는 수송 헬기 열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준철이 피우던 담배를 땅에 던지더니 크게 손짓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도깨비 가면 군인들이 빠르게 탑승했다.
모두가 탑승을 마치자, 김준철이 무전기에 대고 걸걸한 목소리를 뱉었다.
“도착지는 대경성. 목표는 이 바이러스의 주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새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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