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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수많은 천사들 중 한 마리가 지목되었다. 외관으로는 절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샤캉!

사방에서 창이 날아와 녀석을 겨누었다.

“…… 야레야레, 여기까지.”

놈이 두 손을 천천히 위로 들며 펑! 소리와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누가 보아도 오타쿠 같이 생긴 안경 후드 돼지가 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그 모습과 완전히 똑같다.

“네가 지군인가?”

“…… 김천재, 왜 내 계획을 방해하는 거지? 아니! 그 전에 내가 이곳에 있는지는 어떻게 안 거야?”

“고티에게서 들었어.”

“고티? 그 입 싼 녀석이….”

“시끄럽고, 이제부터 우리랑 같이 움직여줘야겠는데.”

오타쿠, 아니 지군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가 안경을 고쳐 잡더니 낮은 톤으로 대답했다.

“내가 왜 너희랑 같이 움직여야 하지?”

“이 게임의 끝을 봐야 하니까.”

“나는 그럴 생각 없는데?”

“…… 뭐?”

지군이 몸을 빙그르르 돌려 천사들의 창을 튕겨내더니 우리엘의 앞에 멈춰섰다.

“뷰티풀 레이디,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니 싸울 필요가 없다오.”

“…… 나는 레이디가 아니다. 그리고 지군, 너는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고 했던 놈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내 임무는 당신의 마음을 빼앗는 것.”

지군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아이 러브-”

팍!

우리엘이 창의 손잡이로 지군의 머리통을 내려찍었다.

“커헉!”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루시퍼를 찾도록 해.”

“크윽…. 역시 뷰티풀은 스트롱하군.”

일어와 영어를 섞은 근본 없는 한국어. 게다가 버터같이 느끼한 말투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게임에서 같이 다니던 지군이 확실했다.

“어이 지군. 당신이 가지고 싶다는 창, 내가 구해줄까?”

창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지군의 얼굴이 굳게 변했다.

“…… 그것도 고티가 말해줬나?”

“응.”

“그 새끼는 과묵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 말 입이 싼 놈이야.”

“하하…. 그래서 내 제안이 어때?”

“…… 네가 그 무기를 구할 수 있다고?”

“응. 당신이 도움만 준다면 백 프로 구할 수 있어.”

“……”

내 제안에 지군이 고민에 잠겼다. 어차피 그의 목표는 메타트론의 창, 과거 자신이 사용해보지 못한 무기에 대한 아쉬움이 만든 결과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그가 멋진 영화배우처럼 검지를 흔들며 내게 말했다.

“야레, 야레. 그 정도 조건으로는-”

“창을 구해주고. 저기 있는 이쁜 여성의 뽀뽀까지 받을 수 있게 해주지.”

“…… 이쁜 여성의 뽀뽀?”

돼지, 아니 지군이 고개를 돌려 유소라를 보았다.

“저기 저 어여쁜 여인을 말하는 건가?”

“아니. 저기 있는 양 갈래 머리.”

이번에는 김연희를 보았다.

“싫다면?”

“왜?”

“주근깨 소녀의 뽀뽀는 받고 싶지 않다네.”

이야기를 듣던 김연희가 성질을 냈다.

“나도 안경 여드름 돼지한테 뽀뽀는 안 할 거야! 누가 한데? 기분 더럽게…. 김천재, 이상한 말 하지 말라고.”

“…… 김연희, 아무리 이 녀석이 안경 여드름 돼지 후드티 오타쿠지만, 그래도 뽀뽀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싫어! 나는 안경 여드름 돼지 후드티 냄새나는 오타쿠한테 뽀뽀 안! 해!”

지군이 손을 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 잠깐.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해. 왠지 내 기분이 안 좋다고.”

“…… 그래? 그럼 뽀뽀 말고 다른 걸 주도록 하지.”

“내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 제안을 해보라고.”

지군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 좋은 제안. 사실 그가 솔깃할 만한 이야기가 하나 있기는 하다.

뽀뽀는 장난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 창을 구하면 내가 대장장이 불카누스에게 부탁해서 네 몸에 맞는 무기로 만들어줄게.”

“…… 불카누스를 구했어?”

“그래, 어차피 메타트론의 창을 구하더라도 너무 커서 사용하기 힘들 거 아니야? 네 체격에 맞게 바꿔줄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굉장한 제안이다. 많은 유저들이 천사가 사용하는 무기를 구하지 않았던 이유도 크기 때문이었다.

굉장한 위력에 비해 너무나도 큰 사이즈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한 게 단점.

그 단점을 없앨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자가 내 소환수로 있다.

“…… 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 건데?”

이로써 마지막 라운드를 준비할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그는 열다섯 번째 라운드의 경험이 있는데다가 공략법까지 제작이 가능한 자.

‘이제 다음 라운드로 가도록 하자.’

* * * * *

네 명의 대천사들과 함께 회랑으로 돌아왔다.

미카엘이 메타트론을 직접 만나 루시퍼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 하늘이 갈라지며 번개가 내리쳤다.

쿠르릉!

“내 허락 없이 지옥에 다녀온 게냐?”

“우리가 허락을 받고 움직여야 합니까?”

“……”

“루시퍼의 흔적을 찾았으니 추격할 수 있도록 병력을 지원해주십시오.”

“…… 안 된다.”

미카엘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지금이 아니면 늦습니다.”

“자네도 알겠지만, 천병의 대부분이 지금 지옥 정화에 들어갔네. 녀석을 추적할만한 병력이 없어.”

“회랑에 남은 인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자들은 이곳을 지켜야 해. 이곳을 비워두었다가 기습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설마 녀석들이 회랑 공격을 시도하겠습니까?”

“모르는 일이야. 과거에도 기습을 당해서 천국 전체가 위험해질 뻔하지 않았나?”

“……”

대화를 들어보니 미카엘 쪽이 좀 더 불리해 보인다.

이대로 간다면 루시퍼 추격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내가 나서야 하나?

처음 보는 스토리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이때.

지군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어이 메타트론, 그럼 천병들을 제외한 대천사들에게 루시퍼 추격을 맡기면 되잖아?”

“……”

“지금 이곳에 있는 대천사만 하더라도 마흔 명. 추격에 성공해 루시퍼를 찾으면, 그때 다른 천병들을 투입해도 될 거고. 어때? 내 말 틀려?”

“인간이여, 이 일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결정 내릴 사항이 아니다.”

“허허…. 나도 쉽게 말한 거 아니야. 맞지, 뷰티풀 베이비?”

지군이 우리엘을 쳐다보았다.

우리엘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메타트론의 눈치를 보았다.

“뭐, 뭐라는 거야. 왜 나를 보는 거지?”

“자네 의견을 묻는 거야. 대천사 중 한 명이잖아.”

“……”

“어때? 내 의견이.”

모든 대천사의 시선이 우리엘에게 향했다.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정신을 바짝 차리며 대답했다.

“뭐, 나쁘지 않지. 어차피 지금 루시퍼와 벨제붑에게는 형제들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잖아?”

우리엘이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지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라파엘, 가브리엘, 미카엘 순서대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저 네 명은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이니 당연히 의견에 동의했다.

가브리엘이 동의하자 다른 대천사들도 수긍했고.

결국, 다수결로 루시퍼 추격 작전이 실행하게 되었다.

-야호!

지군이 엉덩이춤을 추며 내 어깨를 비볐다.

“어때? 내 실력이? 아직 안 죽었지?”

“…… 그래, 근데 왜 자꾸 우리엘한테 여자라고 하는 거야? 천사들은 중성 아닌가?”

“그래야 좋아하지. 중성이니까 여자 쪽 감성도 있는 거야.”

“……”

오타쿠의 감성이란.

[열두 번째 라운드 클리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새로운 스토리, 최초의 임무 성공자로 지정되며 ‘사자의 서’에 새로운 기록이 저장됩니다.

[이번 라운드에 참여하신 모든 플레이어의 성스러운 결계가 강화됩니다.]

[결계 방어력 +999]

[‘멸망의 땅’을 지켜보는 제3의 눈이 김천재 님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이제 곧 마지막 게임이라며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즐거워합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열두 번째 라운드 클리어 보상이 도착합니다!]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자!’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14’ 달성]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 * * * *

지상에 도착한 미카엘의 몸이 두 개로 나누어지며 조영기를 분리했다.

“약속은 지켰다.”

김연희가 조영기에게 달려가 질질 짜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아저씨! 아저씨!!”

나는 조영기의 몸을 향해 리바이브 주문을 외워 보았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문구와 함께 사용이 불가능했다.

‘다행이네.’

미카엘이 다른 대천사들과 함께 날아오르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루시퍼 추격 작전을 개시하도록 하겠다.”

“…… 우리는?”

[시스템 메시지]

[열세 번째 라운드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 시간부로 인간과 천사 간의 갈등, 대립이 더욱 강화됩니다.]

[‘김천재’ 님의 그룹]

[앞으로 진행될 ‘멸망의 땅’ 열세 번째 라운드의 스토리 흐름을 선택해주세요.]

A. 루시퍼 추격전을 돕도록 한다.

B. 근처 마을에서 휴식을 갖는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선택지다.

이 상황에서 이득을 얻으려면 어느 쪽으로 움직여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선택지- A]

[루시퍼 추격전을 돕도록 한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다만 지군이 선택지 B를 선택하려 오른쪽으로 손을 들었다. 먼저 선택을 마친 내가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지군이 내 눈치를 보더니 손가락의 위치를 바꾸어 A를 선택했다.

입 모양을 보니 욕지거리를 내뱉은 것 같은데.

괜찮다.

원래 저런 플레이어였으니까.

모든 이들의 선택이 끝나자 미카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루시퍼 추격 작전을 개시하도록 한다.”

부웅-

미카엘이 움직이자 대천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 날기 시작했다.

지군이 우리엘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또 보자고 베이비!”

“……”

천사들이 떠난 후 우리는 근처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유의 저택은 모든 인원이 들어가지 못하는데다가, 이제부터는 그룹원의 구성을 바꾸어야 하기에 잠시 대화가 필요했다.

“소라 씨는 우선 마이클과 함께 방으로 이동해서 조영기가 일어날 때까지 봐주세요.”

“알겠습니다.”

“알겠어요우.”

김연희가 손을 번쩍 들더니 내게 말했다.

“나도 같이 있어도 될까?”

“…… 그래.”

김연희가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더니 그들과 함께 방으로 떠났다.

펍에 남은 세 명.

나, 정우, 지군.

우리 셋은 맥주를 한 잔씩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지군. 싫은 척하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면 어느 정도 멸망 저지 계획은 짜 놨겠지?”

“…… 역시 리더야, 눈치가 엄청 빠르네.”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던데. 몇 번째 라운드부터 우리를 따라온 거야?”

“일곱 번째 라운드, 거기서부터 쫓아왔어.”

“일곱 번째 라운드? 그렇게 빨리 만났으면 미리 내색하지 그랬어.”

지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고티가 때가 올 때까지 숨어있자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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