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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절벽의 구멍, 그 앞에 황금 갑주의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어- 이 네크로맨서 양반.”

내가 그를 보며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야만 전사 양반.”

“일은 전부 끝내고 오셨나?”

“그렇지. 이쪽은?”

“이쪽도. 이제 막 일을 끝낸 참이야.”

“흔적의 위치는?”

“저 동굴.”

샐래맨더 녀석, 거짓으로 이곳에 데려온 줄 알았는데, 정말로 루시퍼의 흔적이 있는 장소였다.

나는 샐래맨더의 시체 위에 담배꽁초를 올려 주었다.

“진짜였구나.”

마정우가 절벽에서 내려오더니 내 옆으로 바짝 붙어 물었다.

“뭐해? 왜 불 위에 담배꽁초를 올려놓고 있어.”

“…… 그런 게 있어.”

유소라와 만난 김연희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했다. 누가 보면 오랜만에 본 줄 알겠는데, 헤어진 지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상극인 정우와 함께 있느라 힘들긴 했겠지.

“…… 어?! 마이클!”

내가 마이클에게 달려갔다. 큰 부상을 입어 옷 전체가 피로 젖어 있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군복이 횡으로 찢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듀라한에게 공격받았음이 틀림없다.

“괜찮아?”

“괜찮아요우. 옷이 조금 찢어졌을 뿐.”

“조금 찢어지기는. 피가 흠뻑 젖었구만.”

“남자가 이 정도쯤이야. 침 바르면 낫습니다.”

“…… 그건 또 누가 알려준 거야. 침을 바르면 낫는다니.”

마이클이 정우를 쳐다보았다. 나는 헛기침을 한 후 다시 물었다.

“듀라한하고 싸운 거야?”

“예스. 이겼어요우.”

“오…. 그래서 녀석의 머리통이 깨져 있었구나.”

이야기를 듣던 정우가 내게 물었다.

“듀라한하고 만났어? 머리통이 깨진 건 어떻게 알았냐.”

“…… 녀석의 본거지에 다녀왔어.”

“잡으러?”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그건 아닌데. 어떻게 하다 보니 싸우게 돼서 처리했네.”

“후우…. 우리랑은 상극이라 싸우지 않으려 했는데. 숨은 곳을 들켜서 어쩔 수 없이 합을 좀 나눴어.”

“그래도 다행이네. 즉살기에 당했으면 지금 바닥에 누워있을 거 아니야?”

“뭐- 네가 예전에 많이 사용한 방법대로 싸워봤지.”

“내가 사용한 방법?”

“어, 아픈척하다가 샥- 하고 기습. 한 방 먹이고 도망갔지 뭐.”

이야기만 들으면 거의 악당 수준인데, 사실 이기기 힘든 적의 방심한 틈을 노리는 작전이다.

“…… 잘했네.”

“그럼 이제 루시퍼의 흔적을 없애러 가볼까?”

“좋지. 소라 씨, 사자의 서는 준비 됐죠?”

유소라가 방긋 웃으며 사자의 서를 치켜들었다.

“그럼요!”

* * * * *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붉은 피로 그려져 있는 동그란 원형의 진이 보였다. 그 안으로 별 모양과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힌 주문들이 적혀 있었다.

유소라가 그 앞에 서서 사자의 서를 펼쳤다. 새로운 내용 두 페이지와 함께 우리가 외워야 할 주문이 적혀 있다.

나는 주문진 안에 들어가 그녀가 말하는 대로 따라 했다.

-혼돈 속에 존재하는 나의 아버지여….

“혼돈 속에 존재하는 나의 아버지여….”

첫 번째 줄은 티아마트의 힘을 빌려 이 세계로 가는 주문이었다.

두 번째 줄은 힘의 원천인 ‘심장’을 문제없이 추출하는 주문.

세 번째 줄은 추출시킨 심장을 이곳에 숨기는 봉인 주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소라가 읊조리는 저 주문이, 이 세 가지의 주문을 전부 무효화 하는 능력이다.

“그 모습을 드러내라.”

주문진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이어 중앙에 있는 별 모양이 번쩍이더니 루시퍼의 심장이 허공에 나타났다.

“…… 징그럽네.”

도마 위 살아있는 생선처럼 펄떡펄떡 뛰고 있는 심장. 마이클이 백팩에서 봉투를 꺼내어 빠르게 담았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우?”

“잘했어.”

사자의 서를 읽어 내리던 유소라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다. 현기증이 났는지 머리를 잡고 있었다.

“소라 씨, 괜찮아요?”

“아…. 갑자기 머리가….”

그녀는 아픈 와중에도 사자의 서를 계속해서 읽었다.

주문의 뒤를 이어 새로 적힌 스토리 내용이다.

“그 누구보다 혼돈에 가까운 존재여, 지금부터 시작되는 선과 악의 대립을 막도록 해라.”

“……”

“힘의 무게가 저울질을 하지 않으면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 중심을 잃은 세계는 더 빠른 속도로 멸망의 길에 드나들 것이다.”

“……”

아리송한 말이다.

결국, 선과 악의 중립에 서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 같은데.

‘…… x이나 까 잡수시지.’

인간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신이라는 작자가 만든 선과 악의 표본을 전부 없애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가 시작을 할 수 있으니까.

유소라가 머리를 부여잡고 계속해서 사자의 서를 읽다가 기절했다. 그녀가 쓰러지기 전에 말한 부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천사와 악마의 대립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물었다.

“기다렸다가 가야 하나?”

“…… 그렇지. 흔적도 찾았고, 시간도 넉넉한데 굳이 서두를 필요 없잖아.”

“그렇지. 그럼…. 나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온다.”

“좋지, 같이 가자. 김연희, 마이클. 둘은 이 안에서 소라 씨를 지키고 있어.”

* * * * *

숲속 어딘가에 있는 루시퍼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크아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자 근처에 있는 야생 동물들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갔다.

“빌어먹을…. 또 그 녀석인가….”

그의 외침을 들은 파리 떼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위잉- 소리를 내며 날아온 녀석들이 한곳에 모여 벨제붑으로 변했다.

“하핫…. 루시퍼, 또 무슨 일이야?”

“…… 김천재, 그 녀석이 내 심장을 찾았다.”

“뭐? 거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그건 나도 모르지. 후우….”

근심 어린 루시퍼의 표정과는 다르게 벨제붑은 웃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심장은 포기하도록 해. 이 상태로 지옥으로 돌아갈 순 없으니….”

“진행 중인 계획은?”

짝짝짝!

“완벽해! 이대로 간다면 적어도 일주일 내에 이 근방이 전부 지옥으로 변할 거야.”

“…… 다행이군.”

루시퍼가 숲 밖으로 걷기 시작했다. 벨제붑이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얼마 걷지 않아 울창한 나무들이 걷히며 드넓은 황야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곳에 대기하고 있는 수없이 많은 악마 병사들.

어둠의 마녀, 리치가 고개를 숙여 둘에게 인사했다.

“말씀하신 녀석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루시퍼가 리치를 내려보며 말했다.

“…… 수고했다. 이대로 인간들을 공격해 병력의 수를 늘리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영역은 어디까지 넓히면 되겠는지요?”

“어디까지라….”

루시퍼가 날아올랐다.

그리곤 멀리 떨어져 있는 ‘폐허가 된 마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저곳까지. 딱 저곳까지가 좋겠군.”

리치가 고개를 돌려 위치를 확인했다.

“저곳은 인간들의 수가 많아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힘들다면 내가 직접 나서도록 하지.”

“아, 아닙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답을 가지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그래야 대악마의 부관답지.”

루시퍼가 양손을 흔들어 어둠의 기운을 흘리자 악마 병사들의 몸집이 조금씩 커졌다.

푸른 들판은 검게 물들고,

하늘의 구름은 어둡게 변했으며,

근처 숲의 나무들은 시들어 양옆으로 기울었다.

다시 한번 손을 크게 휘둘러 아래로 내렸다가 올리니,

쿠구구궁!

지면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뾰족한 탑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크리스탈 조각처럼 불규칙한 모양이었다.

악마들이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미개한 원주민들이 아무 돌조각이나 모셔놓고 자연의 신을 상상하여 숭배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워어어!

루시퍼가 악마 병사들을 내려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벨제붑이 그의 곁으로 날아들더니 작게 속삭였다.

“형제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 전부 데려와야지. 새로운 지옥의 축배를 들려면 말이야.”

* * * * *

유소라가 정신을 차린 후, 김천재 일행은 어둠의 분출구로 향했다.

걸어서 움직인다면 아무리 적어도 하루 이상을 꼬박 걸어야 할 거리인데, 본 드래곤 덕분에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심장을 구해서 화산에 도착하는 데까지 이틀이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둠의 분출구에 도착한 우리는 주위에서 사냥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스터 레벨에 도달한 나와는 다르게 다른 그룹원들은 아직 90레벨 초반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정우야 아직이냐.”

“어, 앞으로 삼십 분은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경험치 분배 비율이 압도적으로 내가 높다 보니 다른 플레이어들이 적게 받았다.

지금이야 뭐….

경험치가 아무리 많이 들어온다 한들 더 이상 필요가 없지만 말이다.

사냥을 하던 마이클이 잠시 쉬며 내게 물었다.

“천재 킴.”

“응?”

“이제 루시퍼의 심장을 화산에 녹이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우?”

“…… 내가 아는 ‘멸망의 땅’스토리대로 흐른다면. 아마 루시퍼가 인간 세계를 다시 공격하기 시작할 거야.”

“인간 세계?”

“그래, 우리가 살던 곳.”

“오우 노! 그럼 안 좋은 거 아닙니까?”

“…… 시선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야.”

어쩔 수 없다.

이 게임을 최대한 빨리 끝내려면 강제로라도 라운드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으니까.

쉬익- 팍!

나를 향해 달려오던 악마 한 마리가 가웨인에게 잘려나갔다.

“주군.”

“왜?”

“…… 누군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음? 누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악마는 아닌 게 확실합니다.”

악마가 아닌 존재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악마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데?”

“…… 지금은 보이지 않으시겠지만, 시야가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오고 있습니다.”

“그래?”

“예, 그리고 이 자는 아까 전 ‘잊혀진 계곡’이라는 곳에서부터 저희를 감시하고 있던….”

잊혀진 계곡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고? 그런 기척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내가 느끼지 못한 사실을 가웨인이 알고 있다고 의아하며 녀석을 봤는데 이유가 단번에 나왔다.

호랑이의 신체를 가지고 있으니 인간보다 감각이 훨씬 발달했을 것이다.

수컷 호랑이 한 마리의 영역이 서울 면적 두 배라고 했었으니 나보다 뛰어난 건 당연한 일!

“…… 마정우!”

바삐 사냥하던 정우가 내게 소리쳤다.

“아 왜! 나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냐.”

“아무래도 심장은 지금 녹여야겠어.”

“…… 왜?”

“지금 이곳으로 누가 오고 있대.”

“누가?”

“그건 모르겠고. 인간이 아니라고 하네.”

“…… 그래?”

어쩔 수 없이 레벨 업을 위한 사냥이 종료되었다. 유소라, 마이클, 김연희 모두 전투를 멈추고 화산의 분출구 앞으로 모였다.

우리가 심장을 녹이러 오는 동안 본 드래곤 혼자 악마들을 막아냈다.

부웅- 부웅-

날갯짓만 했을 뿐인데 녀석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나는 마이클에게서 루시퍼의 심장을 넘겨받아, 그대로 화산에 던졌다.

빙글빙글 돌며 떨어진 녀석의 심장이 끓어 오르는 붉은 액체에 닿자,

치지지직!

표면이 타들어 가며 심장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타락한 심장’이 어둠의 분출구에 의해 녹아듭니다.]

[‘악마왕 루시퍼’ 님의 능력치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생명력 게이지가 10칸에서 5칸으로 줄어듭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줄어듭니다.]

“…… 성공이야.”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김천재 님에게 환호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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