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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과거, 한 시대의 영웅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길을 갈고 닦은 검객의 혼이 서려 있다는 놈이다.

“거기까지. 인간 주제에 감히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구나.”

“…… 듀라한.”

“내 이름을 알고 있는가?”

“당연하지. 네가 이곳의 주인이니까.”

듀라한이 박살 난 머리를 땅에 던지더니 주위에 있는 아무 머리나 집어 자신의 목 위에 올려놓았다.

대결이 있었나?

앞서 버린 박살 난 머리통을 보니 누구랑 싸웠는지 알 것 같다.

두개골을 단 방에 갈라버릴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자.

‘…… 정우하고 붙었나 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이곳을 방문한 인간들이 꽤 많군.”

“나 말고 다른 인간을 만났다는 건가?”

“…… 그래.”

“그들은 어디 있지?”

듀라한이 검날을 내게 들이밀며 대답했다.

“네가 알 필요 없다.”

“허허….”

샐래맨더가 불꽃을 피우며 듀라한의 뒤로 숨었다.

“듀라한 님!”

“내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네가 없어질 뻔했구나.”

“아닙니다. 소인 듀라한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는 것도 아깝지 않습니다.”

“……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마음 편히 쉬고 있어라.”

믿음직스러운 대사를 날렸지만, 내게는 우스웠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듀라한은 언데드 상태의 몬스터.

내게 적수가 되지 못한다.

녀석은 내가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저런 말을 했겠지만 말이다.

“내 아이를 죽이려 하다니, 이 빚은 크게 갚아야 할 것이야.”

“빚은 내가 받아야지. 녀석에게 속아 이곳까지 왔으니까.”

나는 손을 뻗어 듀라한을 조준했다. 그리곤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리바이브.

[‘리바이브’ 주문이 인구수 부족으로 취소됩니다.]

[필요 없는 소환수를 정리 후 다시 시도해주시기 바랍니다.]

“…… ”

그렇구나.

박규환.

가웨인.

불카누스.

아레스.

본 드래곤

메인 소환수가 벌써 다섯 마리가 되어버려 다른 자들을 데려올 자리가 없다.

듀라한을 데려오려면 이들 중 한 명을 포기해야 하는데….

박규환은 인구수를 적게 차지하는 인물이니 우선 제외하도록 하고.

나머지 선택지는 가웨인과 아레스뿐이다.

아레스는 마지막 루시퍼와의 대결에서 사용해야 하니 그렇다면 선택지는 화염의 기사 가웨인.

“…… 리콜, 가웨인.”

[‘리콜’주문을 시전합니다.]

[특정 소환수 지정으로 인해 1기만을 불러옵니다.]

공간이 뒤틀리는 것처럼 공기가 무거워지더니 가웨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 부르셨습니까.”

가웨인이 늠름한 모습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듀라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싸울 것을 부탁했다.

“너와 저 녀석, 둘 중 누가 더 강한지 끝을 내도록.”

“알겠습니다, 주군.”

듀라한이 가웨인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갑주를 입은 호랑이 새끼가 덤비겠다니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전투태세는 늦추지 않았다. 가웨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오라는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니까.

듀라한이 말에서 내려 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분수를 모르는 동물인 건가.”

“…… 나는 주인님의 명령을 받들어 적을 섬멸하는 ‘태양의 기사’. 그냥 동물이 아니다.”

“…… 말도 번지르르한 게 네 주인이랑 똑같구나.”

“…… 말만 번지르르한지는 곧 알게 될 것이야.”

대화가 끝났다.

둘 다 생전에 무인이었어서 그런지 적의 기를 살펴보는 시간이 길었다.

가웨인의 커다란 양손 검과 비교하면 듀라한의 검은 너무나도 짧은 한 손 검이었다.

그렇다고 불리하지는 않았다.

한 손 검을 사용하는 대신 방패를 들고 있으니, 근접전에서 공방을 나누기에는 오히려 듀라한 쪽이 유리할 수도 있다.

‘……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부웅-

가웨인이 먼저 일격을 날렸다. 궤도가 예상될 정도로 느린 움직임을 보니 적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

듀라한이 답이라도 하듯 검을 휘둘러 날붙이끼리 만나게 했다.

카앙!

압도적으로 밀리리라 생각했던 듀라한의 검날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오라를 잘 둘러서 그런지 위력이 예상외였다.

가웨인이 검끝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 제법이구나.”

“너야말로.”

첫 일격을 시작으로 둘은 셀 수 없이 많은 검을 주고받았다. 날붙이끼리 튀는 소리로 인해 고막이 찌릿할 정도였다.

둘의 싸움을 보던 유소라가 내게 물었다.

“천재 씨, 가웨인 씨를 도와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일대일 대결이잖아요. 그리고 둘 중 누가 더 강한지 알려면 제가 개입하면 안 돼요.”

“더 강한지 알려면?”

“예, 멸망의 땅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곳. 게다가 제 동료가 되려면 동급 적에게 질 정도로 약한 소환수는 데려갈 수 없어요.”

“……”

격을 주고받던 가웨인이 입을 크게 벌리더니 포효했다. 저 능력은 대호의 신체에 각인된 능력, 듀라한의 머리가 콰지직! 소리와 함께 깨지며 땅에 떨어졌다.

“크하하하-! 말만 번지르르한 건 바로 너였구나, 뼈. 다. 귀.”

듀라한이 널려있는 시체 중 가장 가까운 해골을 잡더니 다시 목 위에 올렸다.

“호랑이가 제법이구나.”

듀라한이 칼과 방패를 동시에 앞으로 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나는 알고 있다.

녀석의 필살기라고 불리는 즉살기중 하나, ‘데스 커터’.

알고 있지만, 가웨인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니, 말해줄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데스- 커터!”

반달 모양의 검은 오라가 가웨인을 향해 날아갔다.

막기 위해 휘두른 양손 검을 그대로 관통해서 지나가더니 갑주를 투과하여 가슴에 명중했다.

가웨인이 그 충격으로 뒤로 밀려났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뼈다귀 녀석아!”

“…… 왜 안 죽는 거지?”

“뭐?”

“……”

듀라한 녀석이 적잖이 당황했는지 굳은 상태로 말을 이었다.

“왜 죽지 않냐고 물었다.”

“죽어? 내가?”

나는 둘을 보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한 능력이 적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중요한 순간에.

적으로서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어이, 듀라한. 네 능력이 왜 저 호랑이에게 통하지 않았는지 알려줄까?”

“……”

“네 즉살기인 데스 커트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기를 뒤집어 터트리는 능력. 미안하지만 저 호랑이는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야.”

“…… 뭐?”

“죽었지만 이 땅을 걸어 다닐 수 있는 자. 너와 같은 언데드다.”

* * * * *

이어지는 전투는 가웨인의 승리였다. 검술의 실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레벨과 장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계속해서 격을 주고받던 듀라한의 검이 깨지고 방패가 찌그러졌다.

즉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듀라한은 마치 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였다.

카앙- 카앙- 콰직!

가웨인의 검날이 듀라한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갑주 안이 텅 비어있었지만, 그래도 공격이 들어간 만큼 생명력 게이지를 깎아냈다.

듀라한은 머리마저 잃어 대답할 수도 없었다.

가웨인이 자신의 검에 꽂혀있는 듀라한을 계곡 앞으로 데려가 용암에 던져 넣었다.

푸웅- 덩!

놈이 허우적거렸다.

가웨인이 녹아내리는 듀라한을 지그시 내려보며 독백했다.

“승패는 처음 날붙이를 부딪쳤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쉬워하지 마라.”

[잊혀진 계곡의 주인 ‘방랑 기사 듀라한’을 처치한 김천재 플레이어에게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유소라가 공연을 끝까지 본 관객처럼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

“굉장해요! 천재 씨 소환수들은 언제 봐도 정말 멋진 것 같아요.”

“…… 처음에는 무섭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때는 제가 잘 몰라서…. 하하.”

[시스템이 듀라한 처치 보상으로 ‘영혼의 구슬’을 지급합니다.]

[‘영혼의 구슬’을 섭취한 플레이어는 두 개의 생명력 게이지를 얻게 됩니다.]

‘어?!’

플레이어가 두 개의 생명력 게이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내 눈앞에 보라색 구슬 하나가 생겨났다. 나는 그대로 구슬을 집어삼켰다.

두 개의 생명력 게이지를 얻는다니, 처음 듣는 말이라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꿀꺽!

[‘김천재’ 플레이어의 생명력 게이지가 두 칸으로 늘어납니다.]

[‘최초의 두 칸 플레이어!’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13’ 달성]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내 머리 위를 보니 초록색 생명력 게이지 옆에 ‘2’ 라는 숫자가 달려 있었다.

길이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생명력만 그대로 두 칸이 된 것 같다.

“…… 좋아.”

띠링! 띠링띠링! 띠링!

갑자기 머리 위로 황금색 빛이 미칠 듯이 회전했다.

레벨 업을 뜻하는 신호인데, 갑자기 폭주한 것처럼 이렇게 많은 경험치를 얻을 곳이 있나?

‘…… 아!’

다른 장소에 배치해 놓은 스켈레톤 병사들.

몬스터를 일정 수준 이상 모이게 만들면 그때부터 사냥하라고 했었는데.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던전 내의 몬스터 양이 많았나 보다.

“상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상태창

이름: 김천재

직업: 네크로맨서

레벨: 99

생명력: ?????*2 / ?????*2

체력: 99+???? 공격: 99+????

방어: 99+???? 속도: 9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드디어….’

이 게임의 마스터 레벨에 도달했다.

[게임의 개발진들이 ‘김천재’ 님을 향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최초의 마스터 레벨 등극’ 업적을 획득했습니다.]

[‘김천재’ 플레이어가 가진 모든 스킬이 마스터 등급으로 전환됩니다.]

네크로맨서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

레벨이 높아야 많은 수의 소환수를 데리고 올 수 있으니….

다만 다른 이들이 지금 내 상태창을 본다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째서 생명력 게이지와 능력치 창에 물음표가 한가득 달린 것일까?

그 답은 간단했다.

-키에에엑!

지금 잊혀진 계곡 위를 날아다니는 저 녀석의 영혼을 나와 이어놨기 때문이다.

게임 초반에 얻어놓은 능력치 공유가 이렇게까지 도움이 될 줄이야.

“…… 좋아.”

이로써 루시퍼와의 대결 준비는 끝났다.

* * * * *

앞장선 샐래맨더가 속삭였다.

“저, 저쪽입니다.”

나는 매서운 눈초리로 놈을 내려보았다.

“이번에는 진짜겠지?”

“그럼요!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듀라한을 잃고 난 후 샐래맨더의 행동이 180도 달라졌다. 갑자기 비굴한 표정으로 나를 주인으로 모시겠다며 넙죽 절을 했다.

지금까지 듀라한의 저주에 걸려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하는데, 물론 거짓말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퍼의 흔적을 진짜 알고 있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기로 했다.

“자, 이제부터 어디로 가면 되는데?”

“그냥 이대로 쭈욱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럼 동굴이 하나 보이는데 그 안쪽에서 루시퍼 님이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 동굴 안에서?”

“예, 무슨 문양을 땅에 그리던데. 제가 정령이라 악마들의 능력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동굴에서 땅에 마법진을 그리고 사라졌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 전개와는 같았다.

그 장소가 동굴인지는 몰랐지만.

“저기입니다! 바로 저기입니다!”

샐래맨더 녀석이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고개를 들어 절벽을 보니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었다.

“…… 잠깐.”

주위를 보니 큰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곳곳에 떨어져 있는 핏방울을 보니 이 근처에 인간 혹은 동물이 있었던 게 확실한데.

나는 시선을 멀리 두며 주변을 훑었다.

그리곤 핏자국 가까이로 다가가 만져보았다. 아직 굳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투가 벌어진 지 긴 시간이 흐르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 너 이 새끼 또 우리를 속여?!”

내가 크게 화를 냈다.

샐래맨더의 눈동자가 요동을 쳤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또 뭐야? 듀라한 다음에는 뭐 와이번이라도 주변에 숨겨놨어? 그럼 나한테서 벗어날 줄 알고?”

“아, 아닙니다! 진정하시-”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샐래맨더를 주먹으로 내려찍어 박살냈다.

놈의 몸이 슬라임처럼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놈이 흔적을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죽였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임무도 쉽게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유소라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천재 씨, 진정하세요. 지금부터 다시 하면 되잖아요?”

“…… 예. 제가 잠깐 흥분했나 봐요.”

“여기까지는 어차피 외길이었으니 계속해서 가볼까요?”

“그러죠. 가웨인, 네가 먼저 가서 이 근처를 수색하도록 해. 우리는 뒤따라가도록 하지.”

가웨인이 낮게 목례하며 대답했다.

“예.”

터벅. 터벅. 터벅.

우리가 자리를 떠나기 직전, 동굴 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어- 이. 네크로맨서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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