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잠시 눈을 감고 가면을 취하고 있는데, 유소라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소리쳤다.
“천재 씨! 저기요, 저기!”
나는 고개를 숙여 밑을 내려보며 대답했다.
“…… 벌써 도착한 건가.”
“저기 맞죠? 천재 씨가 말한 대로 입구에 두 개의 거대한 악마 동상이 서 있어요.”
잊혀진 계곡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개의 동상.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곳의 주인이라 불렸던 자라고 했다.
누가 그랬냐고?
‘……’
정우의 삼촌인 이 게임의 운영자가 그랬다.
“그럼 내려갑니다. 꽉 잡으세요.”
“네!”
유소라가 내 허리를 꽉 움켜잡았다. 내가 손을 흔들어 신호를 주자 본 드래곤이 빠른 속도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파란색 홀로그램 화면이 내 눈앞에서 빙그르르 돌며 시간을 보였다.
고룡을 찾아 잊혀진 계곡에 도착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길어봤자 삼십 분 남짓.
[남은 시간: 114:10:56]
어둠의 분출구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이번 라운드를 진행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
부웅!
땅에 가까워진 본 드래곤이 날개를 크게 흔들어 바람을 내었다. 이어 상체를 살짝 들어 올리자 비행기가 이륙하듯 안정감 있는 자세가 취해졌다.
크그그그그-
드래곤이 발톱으로 땅을 긁으며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춘 탓인지 몸이 앞으로 쏠렸다. 나는 허벅지에 힘을 주어 드래곤의 척추를 강하게 잡았다.
유소라가 앞으로 쏠리며 내 등을 강하게 눌렀다.
“죄, 죄송해요.”
“괜찮아요.”
나쁘지 않았다.
내가 헛기침을 하며 드래곤의 등에서 천천히 내렸다. 초입을 지키는 악마 석상의 뿔이 부러져있다.
컨셉이 달라졌나?
‘뭐…. 내가 아는 스토리보다 오 년이나 흘렀으니, 뭔가 있겠지.’
계곡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본 드래곤을 멀지 않은 곳에 대기시켰다.
같이 다니기에는 계곡의 길목이 너무 좁은데다가, 타고 다니면 루시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소라 씨, 준비됐어요?”
사자의 서를 확인한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용 추가는 없고요?”
“…… ‘흔적이란 눈으로만 찾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되어 있어요.”
내가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그건 제가 아는 내용이에요.”
“아…!”
“그럼 가도록 하죠.”
“넵!”
[‘잊혀진 계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입장 플레이어: 6/10]
[흔적 찾기 진행률: 31%]
‘…… 입장 플레이어가 여섯 명이라고?’
* * * * *
듀라한과 천사가 맞서 싸우는 동안, 성체 코끼리만큼 거대한 스톤 골렘 다섯 마리가 마정우 일행의 앞길을 막섰다.
-크어어어어!
“이런 시벌! 마이클, 저 녀석들은 악마가 아니라서 신성 마법이 안 통해.”
“오우!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우?”
“녀석들은 소리에 민감하니 총소리로 유인만 좀 해줘. 김연희, 너 잘 왔다. 지금 아머 브레이크 가능하지?”
김연희가 단검을 치켜들며 대답했다.
“당근!”
“몇 번 가능하지?”
“다섯 번.”
마정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그럼 내가 골렘을 도끼로 내려찍으면, 그 사이로 아머 브레이크를 사용하도록 해.”
“…… 골렘한테 아머 브레이크를?”
“그래. 골렘은 온몸이 방어구로 분류되어서 단방에 보낼 수 있어.”
“…… 아!”
김연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브레이크 종류는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최고급 스킬. 그러니 사용해본 적이 적어 활용법 또한 제한되었었다.
-크어어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골렘이 그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마정우가 도끼의 등으로 놈의 주먹을 막아냈다.
쿠웅-!
힘으로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정우 쪽이 근력에서는 더욱 높은 듯했다. 날아오는 주먹을 받아냈는데도 멀쩡했으니 말이다.
-흐아아압!
마정우가 기합을 넣으며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골렘의 상체와 하체 사이로 날붙이가 들어갔다.
쾅! 소리와 함께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골렘의 허리가 패였다.
“김연희 지금이야!”
김연희가 가볍게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녀가 두 개의 단검을 X자로 쥐더니 골렘의 허리 틈새에 박아 넣었다.
팍!
[아머 브레이크]
능력치에 상관없이 상대방의 방어구를 단숨에 박살내는 스킬, 아머 브레이크.
그 스킬이 정확하게 들어갔는지 골렘의 몸이 단방에 분해되었다.
쿠구궁!
암석들이 땅에 떨어져 굉음을 내었다.
총소리로 골렘을 유인하던 마이클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굿 잡!”
공격에 성공한 마정우가 바로 다른 골렘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연희도 따라 움직이며 골렘들을 한둘씩 잡기 시작했다.
그들의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다섯 마리의 골렘을 전부 처리할 때까지 아무런 부상 없이 해냈다.
모든 골렘을 처리한 마정우가 듀라한을 보았다.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한 그들과는 다르게, 천사들이 한둘씩 듀라한에게 쓰러지고 있었다.
마정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황을 인지한 그가 김연희와 마이클을 향해 소리쳤다.
“뛰어!”
듀라한이 고개를 180도로 돌려 등 뒤의 그들을 보았다. 시선을 떼지 않고 어디로 도망가는지 확인했다.
그런 와중에도 천사들을 쓰러뜨렸다. 듀라한은 적을 직접 보지 않아도 오라로 적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었다.
부웅-
콰직!
채 오 분도 되지 않아 듀라한의 검날이 마지막 천사의 날개를 찢어내고, 두개골을 박살냈다.
마정우와 그의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도망가는 위치를 파악한 듀라한은 재빨리 말에 올라타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가즈아!”
팍!
그가 발의 뒤꿈치로 말의 옆구리를 쳤다. 갈색마가 히이이잉! 소리를 내더니 잊혀진 계곡을 거꾸로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빨랐는지 자동차가 느려 보일 정도다.
“…… 어디로 간 거지.”
한참 동안 달리던 듀라한이 말을 멈춰 세웠다.
분명 그들의 걸음으로는 이 이상 갈 수 없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그가 확인하지 않고 지나온 장애물은 없었다.
숨을만한 장소는 모두 뒤집으며 왔으니까.
듀라한이 계곡에 흐르는 용액을 슬쩍 보더니 짜증 섞인 어투로 독백했다.
쿵!
“…… 제길!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의 반응과는 다르게 마정우의 일행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위험한,
후각이 있는 몬스터가 동행했다면 무조건 들킬 수 있는 장소.
바로 김연희가 만든 절벽 그림자에 그들이 숨었다.
듀라한은 그들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못 알아보고 자리를 피했다.
* * * * *
입혀진 계곡에 입장한 나는 유소라와 함께 계속해서 걸었다.
우리가 몇 시간 늦게 출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움직였는데 정우 일행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오는 길,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 이건 골렘이 부서진 것 같은데.”
잊혀진 계곡 초입에서 좀 넘어가자 부서진 골렘들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사 수십 마리가 한 곳에 몰려 죽어 있었다.
마치 가로등 앞 나방 시체들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천사들의 상처를 확인한 후 유소라에게 물었다.
“치료 가능한가요?”
“…… 불가라고 나오네요. ‘사망한 자는 치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떠요.”
“흐음…. 알겠습니다.”
유소라의 치료 능력으로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 마이클의 사제 힘을 쓰는 수밖에….
아직까지는 천사가 우리 쪽인데 말이야.
골렘의 시체를 전부 확인한 나는 그곳에서 중요한 아이템을 발견했다.
다른 플레이어가 있었다면 그냥 두고 갈만한 물건이 아닌데, 얼마나 바빴길래 이런 녀석들을 그냥 두고 간단 말인가.
“…… 흐음.”
내가 주먹보다 조금 작은 구슬을 골렘의 몸에서 빼내었다.
[스톤 골렘의 핵]
전사들의 방어력, 즉 단단함을 높여주는 구슬 중 하나다.
정우가 먹어야지 최대의 효능을 볼 수 있는 물건.
‘…… 그냥 내가 먹을까?’
네크로맨서가 먹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정우가 강해져야 내가 살 수 있어서 양보하는 것일 뿐.
갑자기 고민되었다.
방어력이 골렘만큼 단단한 네크로맨서,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이 얼마나 대단한가?
“……”
꿀꺽!
나는 그대로 구슬을 삼켰다.
[‘스톤 골렘의 핵’을 섭취합니다.]
[골렘의 특수한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골렘만큼 단단해지기! (패시브)’ 스킬을 전수받아 방어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방어력+500 증가]
“…….오!”
내가 기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기껏 해봐야 방어력이 100 언저리에서 노는 게임에서 500이라는 큰 숫자를 얻게 된다니.
정우에게 양보하지 않아서 좀 걸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내가 강해졌으니 다행이다.
소환수는 주인의 능력에 비례한다고 했으니….
이제 스켈레톤들도 방어력이 높아졌겠다.
녀석들이 강해져야 앞으로 남은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기 수월하니 아주 좋다. 이제부터는 각자의 힘보다는 팀플레이가 중요시해지니까.
볼일을 마친 나는 다시 잊혀진 계곡의 안쪽을 향해 걸었다.
걷는 내내 경계를 풀지는 않았다.
5명이어야 할 장소에 여섯 명이 있으니, 분명 다른 한 명은 우리와 다른 그룹원 소속이다.
혹은 벌써 마정우 일행이 누군가에게 당해 죽었다거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쿠궁! 쿠궁! 쿠궁!
대략 전방 이삼백 미터 앞, 무언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예상하는 크기로 보아 골렘 수준, 하지만 녀석이 왜 이곳으로 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앞서 죽은 애들의 복수를 하러 오는 건가….’
아니지!
뒤늦게 이곳에 도착한 나를 노리고 온 것은 아닐 테니, 복수하러 온 건 절대 아니고.
그렇다면 그저 갈길 없어 방황하는 골렘인가?
나는 가까운 곳에 있는 암석 뒤로 몸을 숨겼다. 유소라 역시 내 옆에 바짝 달라붙어 호흡을 죽였다.
최대한 조용히 해야 놈이 그냥 넘어갈 것이다.
‘…… 후우.’
평소 같았으면 녀석을 상대해도 됐을 텐데, 이번에는 즉살기를 가진 듀라한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능력치가 높고 강하더라도, 즉살기를 사용하는 적은 이기기 힘들지 않은가?
정상인 중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쿠궁!
거리가 가깝다.
내가 암석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보았다. 스톤 골렘 한 마리가 느릿한 걸음으로 계곡을 따라 걷고 있다.
그저 걷는 것을 즐기는 놈인가, 싶었는데 녀석이 부서진 자신의 형제들을 보며 고개를 푹 떨구었다.
“……”
골렘 주제에 생각을 한다는 건가?
녀석의 행동이 가소롭고 오만하게 느껴졌다.
다른 생명체를 죽일 때는 아무런 감정도 없던 새끼들이….
나는 왼쪽 다리를 앞으로 살짝 당기고, 뒷다리를 뒤로 길게 뺐다.
그리곤 야구 선수처럼 두 손을 뒤로 뻗은 후, 골렘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낫을 던졌다.
부웅- 부웅- 부웅-
이 한 방이면 충분할 것이다.
스톤 골렘이라고 해봤자 대형급 중에서도 최약체라 불리는 놈이니까.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내 낫이 스톤 골렘의 몸을 관통했다. 자르는 게 아니라 뚫고 지나갔다.
나는 숨어있던 바위에서 나와 녀석을 응시했다.
“비켜라.”
녀석이 비키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내가 다시 한번 손을 흔들며 명령했다.
“비키라고.”
“……”
“안 비키면 죽는다.”
“……”
죽은 건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확인 사살을 하려 낫을 다시 드는 그때,
“자, 잠시만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스톤 골렘 안에서 정령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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