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내가 천천히 손을 뻗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리바이브.”
▶리바이브 (마나 소모: 3)
-시전자의 레벨 수만큼 죽은 자를 소생하여 언데드로 만듭니다.
파란색 상태창이 뜸과 동시에 태초의 고룡, 마르두크의 영혼이 몸속에서 튕겨 나갔다.
#
※ 신규 영입: 본 드래곤(???)
레벨: ??
생명력: ?????/?????
마나: ?????/?????
체력: ???? 공격: ????
방어: ???? 속도: ????
▶데스 브레스 (마나 소모: ????)
-주위에 있는 영혼을 흡수하여 강력한 호흡을 발산합니다.
*영혼 수에 따라 대미지가 달라집니다.
▶ 원소의 지배자(마나 소모: 0)
-모든 원소 공격을 무효화시킵니다.
*본 드래곤에게는 물리 공격 외에 통하지 않습니다.
#
전투 한 번 없이 녀석의 몸을 빼앗았다. 스토리의 메인 NPC가 아닌 이상 내 ‘리바이브’ 주문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튕겨져 나온 마르두크의 영혼을 보며 씨익 웃었다.
“꼴 좋네.”
마르두크의 영혼이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며 분노를 표현했다.
나는 가볍게 낫을 들어 영혼을 반으로 잘랐다.
샥!
두 동강 난 놈의 영혼이 안개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멍청한 놈….’
상대가 누군지 부터 파악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본 드래곤이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공룡 뼈처럼 굳은 채로 서 있다.
나는 놈을 보며 나지막이 명령을 내렸다.
“밖으로 나가는 길을 만들어라.”
내 명령에 놈이 날개를 크게 흔들어 벽을 부수고, 높이 날아오르며 천장을 무너트렸다.
순식간에 머리 위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곳을 통해 환한 빛이 들어왔다.
밖에서 볼 때는 어두컴컴한 하늘이었지만, 이곳에서 보니 밝았다.
눈이 부셔서 위를 볼 수 없을 정도다.
“…… 내려와.”
본 드래곤이 천천히 날갯짓하며 다시 동굴 안으로 내려왔다. 나는 놈의 목에 올라 간 후 다시 날아오를 것을 명령했다.
부웅-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떠올랐다. 겨우 두세 번 날갯짓했을 뿐인데, 강풍이 불어 먼지를 일으켰다.
화산재가 섞여서 그런지 코끝이 아렸다.
콰드드드득!
벽을 긁어 부수며 동굴 밖으로 탈출에 성공한 나는,
펄럭!
넓게 펼친 본 드래곤의 날개를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굉장하네.”
높이 날아오르자 이 근방 지옥 풍경이 전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곳의 지형을 확인했다.
-천재 씨!
밑에서 유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홀로 악마들과 싸우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혼자 몇 마리를 상대하고 있는 건지, 화산의 분출구를 둘러싸고 있는 악마의 수가 굉장히 많았다.
적어도 백여 마리.
그중에는 중형의 괴물들도 섞여 있어 쉽지 않은 적이다.
“멸살해라.”
내 명령에 본 드래곤이 지면을 향해 빠르게 낙하했다. 그저 날개를 흔들었을 뿐인데 벌써 소형 악마들이 몇 날아갔다.
유소라의 옆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절반이 겁을 먹고 도망갔다.
“천재 씨!”
내가 본 드래곤에서 내려 그녀와 합류했다.
악마 몇 녀석이 내게 덤벼왔다. 가볍게 휘두른 낫에 두세 마리 썰려 나가더니, 남은 녀석들은 꽁지 빠지게 줄행랑을 쳤다.
그 중 유소라를 괴롭히던 중형 몬스터들은 끝까지 남아 우리에게 덤볐다.
내가 본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 먹어.”
콰직!
본 드래곤이 중형 악마들을 가볍게 씹어 삼켰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유소라가 내게 달려와 물었다.
“생각보다 늦으셨잖아요! 금방 오실 것처럼 하시더니.”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존의 동굴과는 다르게 이상한 놈이 있어서요.”
“…… 뭐,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죠. 그나저나 저건 뭐라고 불러야 하죠? 뼈다귀 용?”
유소라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내 본 드래곤을 둘러보았다.
“본 드래곤이요.”
“아, 본 드래곤. 저 아이가 천재 씨 비밀 무기인가요?”
“예, 이제 악마고 천사고 뭐고, 이번 라운드에 저희를 방해할 놈은 없을 거예요.”
“오와…!”
내가 손을 위에서 아래로 긋자,
본 드래곤이 우리가 탈 수 있도록 몸을 지면에 낮게 내리깔았다.
유소라와 나는 녀석의 목을 타고 올라가 두터운 척추 위로 자리를 옮겼다. 척추 사이사이에 있는 큰 구멍과 양옆으로 줄지어있는 갈비뼈 덕분에 잡을 손잡이는 넉넉했다.
“출발할까요?”
“…… 안 떨어지겠죠?”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타보니 생각보다 안정감 있더라고요.”
“…… 옙! 그럼 출발하시죠.”
나는 본 드래곤의 양쪽 날개를 살핀 후 작게 속삭였다.
“잊혀진 계곡으로 이동하도록. 최대한 빠른 경로로 가도록 해줘.”
본 드래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몸을 남쪽으로 틀었다.
그리곤 땅에 닿을 만큼 크게 날개를 휘둘러 단숨에 날아올랐다.
-키에에에엑!
* * * * *
잊혀진 계곡의 초입.
먼저 도착한 마정우와 마이클, 그리고 김연희가 조심스럽게 걸으며 주위를 살폈다.
메마른 절벽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그 높이는 적어도 백 미터 이상 될 정도로 상당했다.
이곳에 처음 온 플레이어들은 명칭이 계곡이라 해서 물이 흐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금 그들의 옆에 흐르고 있는 액체는 붉은색의 용암이었다.
그것도 강한 열을 내뿜는 용암.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계곡의 안쪽으로 향했다. 길을 잃어버릴 것도 없었다. 갈림길 자체가 없으니 앞 아니면 뒤였다.
마정우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김연희, 미안하지만 나는 여자라고 배려해주고 도와주고 이런 거 없어.”
“…… 나도 안 바라거든요? 시끄럽고 빨리 앞으로 가시죠?”
“그럼 네가 앞장설래? 나는 너와 다르게 갑주와 무기가 무겁단 말이야.”
“그러게 누가 전사 직업을 선택하라고 했나…. 나처럼 암살자를 하든가.”
“…… 후우.”
마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더워서 절로 나오는 숨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이 답답한 것 같다.
달그닥-. 달그닥-.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정우가 마이클과 김연희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바위 뒤로 숨었다.
김연희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마정우의 손길을 떼어냈다.
“뭐 하는!”
마정우가 손바닥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쉿. 죽기 싫으면 입 닥쳐.”
“……”
“마이클, 근처에 듀라한 새끼가 있는 것 같아.”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탄 발사기를 장전했다.
철컥.
“파이트?”
“아니. 천재가 올 때까지는 조용히 움직일 거야.”
“…… 오케이.”
달그닥-. 달그닥-.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녀석의 걸음에 귀를 기울였다.
계곡이 고요해서 그런지 적의 걸음 소리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빠르게 걸어오던 듀라한의 말이 바위와 가까워지자 점점 속도를 낮추었다.
“…… 누군가 있군.”
듀라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마정우의 일행이 숨어있는 바위 바로 앞에서 말이다.
강력한 살기에 김연희가 떨었다.
루시퍼를 만났을 때도 당당하던 그녀가 몸을 웅크리며 불안한 눈을 했다.
마이클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눈을 마주쳤다.
마정우가 도끼를 강하게 쥐고 침을 꿀꺽 삼켰다.
“…… 흐음, 인간의 냄새가 나는데 말이야.”
달그닥-. 달그닥-.
놈의 걸음이 바위 뒤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들켰다고 생각한 마정우는 어쩔 수 없이 싸우려 전투를 준비했다.
그가 입을 크게 벌린 것으로 보아 ‘광전사의 포효’ 스킬을 사용할 것 같은데,
때마침 계곡을 지나가던 천사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악마다! 악마를 발견했다!”
듀라한이 고개를 들어 천사를 보더니 쓴 미소를 지었다.
“또냐.”
계곡을 찾아온 천사는 무리가 있었는지 바로 싸우지 않고 주위를 날아다니며 듀라한의 행동을 살폈다.
“네가 듀라한이구나.”
“…… 어째서 네놈들이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군.”
“어째서? 어째서긴. 악마 멸살 계획을 진행 중인 것이지.”
“악마 멸살 계획?”
“그래. 모르고 있나 본데, 네 상관인 일곱 대악마들은 진즉에 지옥에서 쫓겨났어.”
“……”
“거짓말 같지? 하하하하!”
마정우가 바위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듀라한과 천사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계곡의 위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속삭였다.
“이동하자.”
그들은 듀라한과 천사가 대립하고 있는 사이 자리를 이동할 계획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사의 일행들이 한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듀라한은 피하지 않고 그들을 기다렸다.
마정우는 마라톤 선수 같이 뛸 자세를 하고 그들이 붙기를 기다렸다.
“듀라한, 네놈을 오늘 끝장내고 이 계곡을 정화하도록 하겠다.”
“…… 할 수 있다면.”
“숫자를 셀 줄 안다면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지금 우리가 몇인 줄은 알고 있나.”
“…… 뭐, 많아 보이는데 전부 약하니 상관없다.”
“뭐라고?”
듀라한이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둔 머리를 들어 자신의 가슴팍에 박더니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대답했다.
“전. 부. 약해서. 네 녀석 다 같이 덤벼도 상관없다고 했다.”
“……”
“겁이 나나? 수가 많으면 내게 이길 것 같나?”
“……”
“항상 우리에게 비겁하게 싸운다고 지랄 염병을 하더니, 진짜 비겁한 건 천사들이었군. 나 혼자를 상대로 몇 명이 달려드는 건가?”
그의 술수에 놀아난 천사 한 마리가 크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이곳은 나 혼자 맡도록 하지!”
제일 먼저 도착한 천사가 손을 저으며 말리려 했다.
“혼자서는 안 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듀라한에게 덤벼든 천사는 싸워보지도 못한 채 그의 앞에서 소멸하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듀라한 외에는.
“크하하하! 봤느냐? 천사들은 내게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루시퍼 님에게 반기를 들어 비록 이곳으로 유배되었지만, 대악마라 불리는 다른 형제들만큼의 힘은 가지고 있다.”
천사들이 그에게 덤빌지 말지 주춤거렸다. 조금 전 이유도 모르고 소멸한 동료가 있으니 전투가 망설여질 것이다.
마정우가 놈들을 보며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다.
칫.
그대로 싸움이 벌어진다면 도망갈 기회가 생기는데, 이런 장면이 나올 줄 몰랐다.
“다들 뭐 하는 거지? 안 덤빌 건가? 천사들은 전부 겁쟁이인가?!”
주춤거리던 천사 중 한 명이 듀라한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 듯 그의 앞으로 날았다.
“망설임은 여기까지. 네게 심판을 내려주도록 하마.”
“심판이라, 네가 주는 건가? 신이 주는 건가?”
“…… 썩어빠진 입으로 위대하신 그분을 언급하지 마라.”
“아, 예예. 그럼…. 덤벼보시겠습니까?”
듀라한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전투 준비를 마친 천사가 무기를 머리 위로 들어 다른 천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가자! 오늘 녀석을 끝장내고 계곡을 접수하도록 한다.”
대기 중인 천사들이 복명복창했다.
-가자!
파드드드득!
동시에 서른 명에 가까운 천사들이 듀라한을 향해 덤벼들었다.
마정우는 이때를 기회라 생각하고 바위 밖으로 뛰었다.
“마이클! 김연희!”
그의 뒤로 마이클과 김연희가 따라 뛰었다.
그러나 그들이 바위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땅이 크게 흔들리며,
쿠궁!
절망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머릿속에 박혔다.
쿠궁!
그들이 숨어있던 바위에서 팔과 다리가 튀어나오며 커다란 괴물이 앞길을 막았다.
[잊혀진 계곡을 지키는 ‘스톤 골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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