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어둠의 분출구, 사탄의 탑을 넘어 지옥 제일 끝에 위치한 화산 앞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유소라가 숨을 거세게 몰아쉬었다.
높이만 보자면 그저 동네 뒷산 정도. 하지만 지옥의 뜨거운 열기가 호흡기를 괴롭히는 덕택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지쳐버렸다.
“천재 씨, 도착하려면 아직인가요?”
중턱쯤 올라왔을 때 내가 잠시 무기를 내려놓으며 땅에 앉았다.
“중간쯤 온 것 같아요. 잠시 쉬었다 가죠.”
유소라가 긴 한숨을 내쉬며 내 옆에 붙었다.
“천재 씨는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어요.”
“……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고는 숨이 하나도 안 차시네요.”
“저는 체력 능력치가 높아서 그럴 거예요.”
“아….”
“소라 씨, 혹시 사자의 서에 새로 적힌 내용은 없나요?”
유소라가 사자의 서를 천천히 읽어 내리더니 내게 대답했다.
“없어요. 탑에 갔을 때랑 같은 상태예요.”
“흐음….”
지금부터는 가는 길을 조금씩 안내해 주어도 좋을 것 같은데, ‘여는 자’의 동료가 주는 정보는 생각보다 불친절하구나.
“소라 씨, 혹시 이 게임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봤던 몬스터들을 전부 기억하시나요?”
“어…. 전부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제가 그린 건 다 기억하고 있어요.”
“NPC들은요?”
“NPC? 엔피씨도 제가 그린 건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 그럼, 직접 그리신 엔피씨 중에 이 안에서 아직 못 본 자도 있나요?”
유소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를 감추려하기 보다는 그저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다.
“음…. 한 명 있어요.”
“한 명?”
“네, 그릴 당시에 아이디어 컨셉만 받고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던 아이인데….”
아이?
“가끔 저희를 찾아오는 스펙터와 비슷하게 생긴 캐릭터였어요. 다른 점이라고는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려있다는 거? 그리고 눈동자가 천재 씨처럼 붉었다는 거예요.”
“……”
머리에 두 개의 뿔.
네크로맨서 같이 붉은 눈동자.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지만 게임 내에는 등록되어 있는 엔피씨.
“…… 그렇군요.”
“예, 근데…. 갑자기 엔피씨는 왜요?”
“그냥 물어봤어요. 혹시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나 해서.”
“아! 그리고 갑자기 기억난 건데, 그 캐릭터가 완성되었을 때 사장님이 키득거리면서 이런 말을 했었어요.”
“사장님이?”
“‘고 녀석 참 잘 싸우게 생겼다.’고요.”
“……”
“그리고 ‘최강은 역시 이래야지.’라는 말도 덧붙이셨어요.”
최강이란 이 게임 내에서 나를 수식하는 단어가 아니던가.
어째서 엔피씨 따위를 보며 최강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수가 있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지, 사장 입장에서는 그냥 가볍게 말했을 수도 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열심히 그렸으니 수고했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에 가루가 많이 묻었네요.”
유소라가 나를 올려보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
-키에엑, 키엑, 키엑!
잠시 걸음을 멈추었더니 주변에서 악마 무리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천사들의 손길이 뻗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수였다.
‘이렇게 유황 내가 짙은 곳에서 인간의 냄새를 벌써 맡다니….’
잠시 숨을 고른 나는 다시 유소라를 일으켜 세웠다.
“갑시다.”
“벌써요?”
“예, 악마들이 붙으면 더 힘들 거예요. 싸우면서 나아가야 하니.”
“…… 그렇군요.”
유소라가 입술을 앙다물며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 * * * *
화산 정상에 도착한 나는 분화구를 보며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여기가 루시퍼의 심장을 녹일 장소예요.”
“어…. 액체들이 검은데요?”
“표면만 공기와 마찰해서 검게 변한 거예요. 안은 붉게 끓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활화산은 아니죠?”
“예, 설정상 그대로라면 아니에요.”
“다행이네요.”
스토리상에서도 루시퍼의 심장을 넣을 때까지는 절대 분화하지 않은데다가,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고요한 지면이 안전하게 느껴졌다.
“이제 내려가야겠네요.”
“…… 어디를요?”
“분화구 안쪽이요.”
“…… ?!”
유소라는 화들짝 놀라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안쪽? 용암이 있는 곳에 들어가자는 말인가요?”
“예.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용암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 벽을 타고 내려가는 거예요.”
“아….”
“소라 씨는 안 내려와도 되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정말요?!”
유소라의 표정이 다시 좋아졌다.
“예, 어차피 볼일은 저 혼자서도 마칠 수 있으니까요.”
“아….”
“여기에 혼자 있을 수 있죠? 악마들이 좀 찾아오긴 할 텐데, 전부 중급 이하니까 소라 씨 혼자 상대할 수 있을 거예요.”
악마가 찾아온다는 말에 잠깐 눈썹을 찡긋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맡겨주세요. 근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 아래로 그냥 내려가시나요?”
“…… 뭐 준비할 게 있나요. 가스에 질식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나는 조심스럽게 분화구의 밑으로 걸음을 떼었다. 겉보기에는 절벽 같지만 조금씩 튀어나와 있는 돌조각들이 계단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게다가 낫으로 벽을 찍어 발 디딜 곳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니, 내려가는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쿵!
마지막 걸음이 용암에서 가까운 구멍 안에 닿았다.
[‘어둠의 동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볼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입구가 바위에 가려져 있는 동굴.
나는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매캐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갑주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오라가 동굴 안에서 세어 나왔다.
손끝이 찌릿찌릿하다.
내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가 조금씩 깎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양은 아니었다.
게이지 전체가 100이라고 한다면 분당 1 정도의 수준이었다.
즉- 100분 이내에 일을 마치지 못하면 내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말.
터벅. 터벅.
동굴이 어둡지는 않았다.
벽면이 반딧불의 엉덩이처럼 빛을 내었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앞으로 걸을수록 벽면의 불은 점점 커졌고, 흘러나오는 오라는 중력이 높아졌다고 느낄 만큼 내 발을 무겁게 만들었다.
‘…… 거의 다 온 건가.’
앞서 경험해본 텍스트와 똑같은 느낌이다. 목에는 사탕이 걸려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양팔은 쇠심이 박힌 것처럼 뻣뻣해졌으며, 두 발목은 쇠고랑을 찬 것처럼 무거워졌다.
“후우….”
나는 크게 숨을 몰아쉰 후 다시 안쪽을 향해 걸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해봤자 생명력을 깎아 먹기만 한다.
[‘어둠의 동굴’을 떠도는 영혼이 김천재 플레이어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눈앞에 원형의 새하얀 연기가 나타났다. 나는 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말해.”
[당신은 아직 이곳에 올 때가 아니라며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건 내가 정해.”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올 경우 큰일을 당할 수 있다며 경고합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며 ‘떠도는 영혼’이 혀를 찹니다.]
“…… 쓸데없는 말은 여기까지만. 인제 그만하도록 하지.”
나는 영혼과의 대화를 무시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영혼이 빠르게 날아와 내 앞을 막으며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이 안에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기다리고 있다며 조심하라고 합니다.]
“예.”
[대악마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자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손을 휘저어 기체 상태의 영혼을 흩트렸다.
어차피 이 녀석과의 대화는 스토리 진행에 무의미하니까 말이다.
내가 동굴 안쪽으로 향하는 내내 영혼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위험하니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 ”
동굴에 끝에 도착한 것 같다.
좁디좁은 길목이 끝나고 높고 넓은 원형의 공터에 도착했다.
[‘태초의 고룡’의 뼈를 목격합니다!]
[일곱 개의 머리가 달린 이 고룡은 신의 몸에서 분리된 일부분입니다.]
‘…… 역시.’
[‘떠도는 영혼’이 당장 이곳에서 나가라며 언성을 높입니다!]
“염병.”
네크로맨서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이 게임에서 나를 최강으로 만들어줄 물건을 찾았다.
혹시 누가 건드리지 않았을까. 약간 조바심이 나기는 했는데,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나는 원형의 공터 안으로 들어가 거대한 뼈를 만졌다.
“굉장하군….”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크기가 더욱 컸다. 거인 다섯 마리를 합쳐놓으면 이 정도일까? 아니지, 그 이상이다.
지금 내 앞에 널브러져 있는 일곱 개의 머리뼈 중 한쪽만 하더라도 거인보다 컸다.
[‘떠도는 영혼’이 마지막 경고라며 지금이라도 이곳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응하지 않을 시 플레이어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나는 영혼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 할 수 있으면 해봐. 이미 늦었겠지만.”
나는 팔짱을 끼고 영혼의 움직임을 살폈다. 녀석이 고룡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타겟으로 삼은 위치를 보니 드래곤의 등뼈, 그 속에 있는 핵을 노리는 것 같다.
부우우웅-
녀석이 얼마나 빠르게 날았는지 영혼의 잔상이 남을 정도다.
[‘떠도는 영혼’이 태초의 고룡과의 융합을 시도합니다.]
‘…… ’
고룡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강력한 오라가 멈추었다. 융합에 성공했는지 발가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곱 개의 머리도 움찔거리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 깨어났나.”
[융합을 마친 ‘태초의 고룡’이 눈을 뜹니다.]
[‘떠도는 영혼’이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김천재’ 플레이어에게 엄벌을 내리겠다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쿠구구궁! 소리와 함께 고룡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저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날개가 벽을 긁어 흙더미를 쏟아냈다.
최강이라 불리는 내게 어울리는 위엄 있는 자태다.
‘좋아….’
나는 녀석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말했다.
“태초의 고룡, 티아마트의 일부분, 지옥의 왕 벨제붑의 아버지.”
고룡이 일곱 개의 긴 목으로 나를 응시했다.
“…… 마르두크.”
쿠궁!
놈이 날개를 펼쳐 동굴의 벽면을 강타했다. 또다시 흙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 인간이여, 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
“그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일체의 망설임도 없는 내 대답에 녀석의 일곱 머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를 무시한 채 이곳까지 왔다는 건가?”
“그렇지. 네가 하는 경고 따위는 전혀 무섭지가 않거든.”
“……”
진짜다.
내가 녀석에게 질 확률은 0%.
그 이유는 이 게임을 해본 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놈이 과거에 얼마나 강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는 이미 죽어서 뼈가 되어버린 드래곤.
‘…… 귀엽네.’
언데드(Undead) 상태의 몬스터.
“너는 내가 누군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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