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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아포칼립스-151화 (151/215)

151화

다섯 번째 층까지 오는 길은 너무나도 싱거웠다.

계단을 걷는 동안 굳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아닌가?’

생각해보니 사자의 탑은 천사와 악마조차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 곳이라 들었는데.

그래서 만든 함정들인가 싶다.

첫 번째 층의 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플레이어, 악마, 천사. 전부 예상하지 못한 장치.

두 번째 층의 환각초로 덮인 방은 상태 이상 내성이 없는 천사들에게 치명적인 곳이었고,

세 번째 층의 가시밭길은 지면을 걷는 악마들이 지나기 힘든 길이었다.

천사들이야 날아다니니 가시밭길에 당할 일은 없었을 테고….

네 번째 층의 화염 방 같은 경우에는 천사와 악마 둘 다 지나기 힘든 장소였다.

물론 플레이어로서는 모든 방이 지나기 힘든 길이었지만, 앞서 지나간 ‘여는 자’가 남겨놓은 기록이 있으니….

터벅!

드디어 마지막 층에 도착했다.

[시스템 메시지]

[‘사자의 탑’ 마지막 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탑의 주인이 당신들을 반깁니다.]

탑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

텅 빈 백색의 방안에 나무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등이나 횃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환했다.

“…… 미카엘은 도착하지 못했나.”

하긴 대천사라고 하더라도 이곳까지 오는 길이 쉽지는 않겠지.

아니, 도달하지 못하는 편이 더 이해가 된다.

이곳까지 오는 길, 우리와 마주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내가 먼저 ‘사자의 탑’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이라고 불러도 되려나….’

지하의 끝과 같은 곳이니.

“소라 씨.”

“네?”

“혹시 사자의 서에 새로 글이 나타나지 않았나요?”

여기까지 진행했다면 앞으로의 일을 암시할만한 내용이 나올 만도 하다.

나는 그녀가 책을 확인하는 동안 나무의자를 둘러보았다.

첫 번째 층 벽면에 그려진 ‘여는 자’ 그룹을 떠올려보면 이곳은 보통 장소가 아니다.

태초의 천국과 지옥을 만든 신 중 한 명인 티아마트가 이곳에 있다.

그와 만나는 일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어?! 천재 씨. 마지막 장에 문구가 새로 추가되었어요.”

“뭐라고 쓰여 있나요?”

“음…. ‘무형의 공간, 그곳에서 혼돈 속 어둠을 만든 자가 여는 자를 기다린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게 끝이에요?”

“예. 이 문장만 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말인 것 같은데….”

무형의 공간.

꿈의 세계.

첫 번째 층 벽에 그려진 그림을 떠올려보니,

그곳에서 어둠을 만든 자가 여는 자를 기다린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나는 나무의자 앞으로 다가가 유소라에게 말했다.

“저 혼자 가는 건지, 다 같이 이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혹시 제가 말이 없으면 깨우지 마세요.”

“…… 알겠습니다.”

“정우야, 너는 마이클이랑 같이 입구를 지켜줘. 일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렵지 않지. 어차피 이 안에는 미카엘하고 우리엘 밖에 없을 거 아냐?”

“…… 혹시 모르니까.”

나는 심호흡을 천천히 한 후 나무의자 위에 앉았다.

[시스템 메시지]

[‘무형의 공간’ 꿈의 세계로 김천재 플레이어를 초대합니다.]

[앞으로 3초 후 당신은 티아마트가 만든 환상의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답을 찾지 못하면 계속해서 꿈속에 갇혀 있는 공간이니 죽기 전에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답을 찾지 못하면 꿈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건가.’

“…… 좋지.”

나는 두 눈을 감고 삼 초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사자의 탑’의 주인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티아마트’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을 발동시켜 과거와 현세를 잇는 공간을 만듭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지, 아주 미세하게 작은 먼지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 혼돈.’

바로 이곳이 천국과 지옥이 만들어지기 전 혼돈의 바다를 뜻하는 곳인가.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스토리 진행 화면과 다르지 않았다. 중력이 없는 것처럼 몸이 둥실둥실 뜰 수 있었다.

마치 우주에서 주변 행성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정신을 집중하며 천천히 호흡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목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하긴 주변에 생명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티아마트라는 존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와 같은 생명체는 맞는지 모르겠다.

헤엄을 치듯 앞으로 나아가자 우우웅- 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빠르게 돌아 정체를 확인했다.

‘……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검은 공간이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아까보다 좀 더 검고 반짝이는 별 같은 존재들이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위를 보았다.

그리곤 드디어 마주쳤다.

이 지옥의 창조주이자 태초의 두 신 중 한 명인 ‘티아마트’를.

“어…. 안녕하세요?”

나도 모르게 공손한 말투를 사용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몸인지도 모를 만큼 거대한 존재였다. 그래도 목과 머리는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어디에 말을 해야 하는지는 알았다.

이 자는 뱀이다.

아니, 용이다.

그것도 내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드래곤이 아니라, 정말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다.

티아마트의 머리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나를 향해 콧김을 뿜었다.

그저 숨을 쉬었을 뿐인데 공간이 일그러지며 내 몸을 옥죄었다.

나는 팔이 비틀리는 고통에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티아마트가 그 모습을 보더니 나와의 거리를 조금 벌리고 입을 열었다.

“‘여는 자’인가.”

“…… 예.”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무어라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르겠다. 티아마트는 내가 이곳에 올 줄 알고 있었나?

‘하긴….’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여는 자’라는 존재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만든 곳이겠지.

나는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티아마트신가요?”

“…… 그래.”

그가 입을 열 때마다 공명이 일었다.

나는 밀려 나가는 몸을 지탱하려 힘을 꽉 주고 다시 대답했다.

“제가 이곳에 올 줄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

“그럼…. 제가 왜 왔는지도 알고 계시겠네요.”

“…… 물론.”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하게 끝이 났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만 들으면 되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럼 그 답을 알려주시겠습니까?”

“…… 어렵지 않지. 하지만 내가 네게 대답을 해야 할 이유는 모르겠구나.”

이 녀석도 이유와 명분을 따지는 고리타분한 NPC구나.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알고 싶을 뿐.”

“그렇다면 내게 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이야.”

“…… 예?”

“너는 나를 찾아온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너를 부른 의미가 있지.”

“저를 부르셨다고요?”

“그래. 내가 너를 불렀다.”

“저는 저 스스로 온 건데요.”

“너 스스로 오게 하도록 인과율의 흐름을 바꾸었지.”

복잡한 소리를 하는 새끼가 또 한 명 늘었다. 결국 자신을 찾아오도록 스토리 흐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후우….

* * * * *

티아마트가 내게 제시한 이곳에 찾아온 ‘이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하루 이틀 수준이 아니라 달 혹은 년 수준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수염이 어느 산 도사처럼 덥수룩하게 길어졌다.

“…… 가자!”

내가 소리치자 소환수들이 티아마트를 향해 동시에 덤벼들었다.

놈은 가소롭다는 듯 꼬리를 휘둘러 모두를 동시에 박살냈다.

특별한 능력치를 가진 셋만이 살아남았다.

박규환, 가웨인, 아레스.

‘…… 저 새끼는 또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넷이었다.

불카누스까지.

-으갸갸갸갹!

놈이 꼬리를 피해 땅을 뒹굴었다.

나는 쓰러진 스켈레톤 병사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티아마트에게 덤볐다.

“간다!”

[시스템 메시지]

[숙련도 ‘만 번의 소환’ 조건을 충족하여 스켈레톤 소환 스킬을 각성합니다.]

“어?”

*스켈레톤 소환(각성)

-소환 된 스켈레톤 병사를 매개체로 삼아 다시 소환할 경우 강화형의 병사를 만날 수 있음.

‘…… 오케이.’

내가 가까운 곳에 있는 스켈레톤 병사의 머리를 잡고 스켈레톤 소환 주문을 다시 외웠다.

녀석의 어깨와 팔꿈치에 기다란 뼈 가시가 돋아나고, 머리가 외계인처럼 길어졌다.

*각성 스켈레톤 병사(강철)

-전체 능력치가 두 배 증가합니다.

-인구수를 ‘3’ 차지합니다.

‘…… 각성 스켈레톤 병사라.’

나는 완성된 스켈레톤 병사와 함께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이런 싸움은 벌써 셀 수도 없이 많이 진행되었다.

이때마다 놈은 나를 가지고 놀 듯 상대했다.

티아마트와 싸우는 동안 레벨업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에 비하여 강해진 것은 확실하다.

내 머릿속에 전술과 전략이 수도 없이 많이 늘었다.

티아마트가 입을 벌리자 반짝이는 별 하나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니, 악마의 모습으로.

“크아아악!”

내가 악마를 향해 덤볐다.

“루시퍼!”

놈이 만들어낸 가상의 루시퍼와 메타트론. 이 녀석들을 수십, 수백, 수천 번 상대하며 전투 패턴을 전부 외웠다.

부웅-

콰직!

루시퍼를 제압하는데 오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뒤이어 나타난 메타트론이 덤벼들었다.

녀석과의 싸움은 나도 이곳이 처음이라 꽤 놀랐다. 이렇게 강한 줄은 모르고 있었으니까.

루시퍼 수준의 전투 실력을 뽐내었다.

하지만 놈도 이제는 내 밥이다.

“…… 죽어라.”

[‘죽음의 낫’ 발동]

[체력이 15% 이하인 적의 생명을 단숨에 앗아갑니다.]

샥-

메타트론의 목이 떨어졌다.

두 명을 순식간에 처리한 나는 티아마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네놈만 처리하면!”

티아마트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나를 향해 하품했다.

광풍이 나를 짓눌러 땅에 처박았다.

쾅!

놈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반격할 방법은 찾았다.

“…… 아이언 메이든 발동.”

[아이언 메이든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응?

녀석의 몸에 붙어있던 은색의 가시들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놈을 이기기에 실패한 내가 미친놈처럼 웃으며 짜증을 뱉었다.

“아아아악! 이 미친 새끼야! 여기서 날 내보내라고!”

티아마트는 만신창이가 된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라.”

“없다고. 그냥 스토리를 따라서 온 거라고. 루시퍼의 흔적을 찾으려고 왔다고 이 쉬밸럼아!”

“…… 답을 찾으면 다시 찾아와라.”

녀석이 사라졌다.

나는 갑주 사이에 숨겨 놓았던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마지막 담배다.

갑주 사이를 뒤져 보았지만 라이터가 없다. 전투 중에 어딘가에 떨어뜨렸나 보다.

내가 포기하고 담배를 버리려 하자 가웨인이 검에 불을 붙여 담배 끝에 가져다 대었다.

“여기 있습니다.”

“…… 고맙다.”

쓰읍.

푸후-.

X 같네.

뜬금없는 곳에서 발목이 묶였다.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 그곳에 있으려나.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버렸는데.

다들 떠났어도 할 말은 없다.

자신감에 넘쳐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도전한 내가 잘못이지.

다른 층은 전부 쉽게 넘었는데 왜 하필 다섯 번째….

“…… 잠깐만.”

내가 왜 지금까지 이 생각을 못 했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를 때까지 말이다.

다른 층에서는 분명 벽에 그려진 그림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무언가에 홀린 듯 티아마트의 질문만을 생각했다.

생각해보자.

너무 오래 지나서 희미하긴 한데, 벽화들이 순서대로 떠오르기는 한다.

‘……’

태초의 ‘여는 자’들이 마지막에 한 행동.

“티아마트!”

내 외침에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투명화 시켰다가 다시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말해라.”

“이유, 이제 알겠어.”

“…… 그럼 말해 보아라.”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바…. 로?”

내가 중지를 들어 보였다.

“……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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