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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사자(死者)의 탑.

생을 마감한 영혼들이 지옥에서 환생하기 전까지 머무는 공간.

이곳에 도착한 영혼들은 이생에서 자신이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지,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을 정도로 미천한 천민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도착한 순번대로 직책과 임무를 부여받는다.

앞서 우리가 상대한 대악마들 또한 이곳을 거쳐 지옥의 주인이 되었다.

예를 들어 벨제붑만 하더라도 대악마가 되기 전까지는 수없이 많은 하위 악마 중 한 명이었다고 들었다.

자신의 진짜 힘을 개방하기 전까지.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어떻게 하다 보니 또다시 성전에 발을 들였다.

라파엘이 봉인된 방에 도착하자 무거운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이곳은 수리가 전부 끝났는지 작업에 투입된 천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미카엘이 빠르게 날아 벽면 쪽으로 향하더니 검을 크게 휘둘렀다.

쿠궁!

벽이 무너져 내리며 그 안에 있는 계단이 보였다. 라파엘이 결계를 펼쳐 이 방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세 시간, 그 이상은 못 버팁니다.”

[시스템 메시지]

[현 시간부로 열두 번째 라운드에 참여하신 모든 플레이어에게 ‘사자의 탑’ 입장이 허가됩니다.]

[남은 시간: 02:59:58]

가브리엘이 라파엘과 함께 남아 결계를 지키기로 하고,

미카엘과 우리엘이 사자의 탑 안으로 진입했다.

-혹여나 루시퍼와 마주치게 된다면 싸우지 말고 바로 이곳으로 복귀하도록 해라!

미카엘의 마지막 외침을 들은 나는 나머지 그룹원들에게 말했다,

“이번 라운드는 나도 잘 모르니까 다들 나대지 말고. 혹시라도 전투가 벌어진다면 내 지시에 따라서 도망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알겠지?”

마정우와 마이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연희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유소라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내게 물었다.

“여기서 또다시 루시퍼랑 싸우게 되는 건가요?”

나도 모른다.

사자의 탑 방문은 나도 처음이니까.

“…… 방금 말씀드렸지만 저도 모르겠어요. 싸우게 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우선 누구랑 전투가 붙더라도 도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세요.”

“도망을 최우선으로…. 알겠습니다.”

도망간다는 말이 찜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존이 확실하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가끔 한두 마리씩 즉살 기술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여기까지 와서 공략법을 모른다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끝을 보려면 우선 살고 봐야 한다.

모든 설명을 마친 나는 사자의 탑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갑주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음에 불구하고, 내 무릎을 누가 짓누르는 것 같다.

계단을 전부 올라가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일반적인 야구 경기장만 한 공간.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흙냄새가 가득했다.

‘우리를 두고 그냥 간 건가….’

미카엘과 가브리엘은 이미 따라갈 수도 없을 만큼 멀리 갔나 보다.

전방에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김연희가 주머니에서 후레쉬를 꺼내어 앞을 비추었다.

“김천재, 저기 앞에 계단이 또 있는데?”

그녀가 비추는 곳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저 직진만 하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운영진이었으면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통과하게 두지 않았을 텐데.

“…… 리바이브.”

[시스템 메시지]

[소환 가능한 매개체가 없습니다.]

우선 주위에 시체는 없다.

사방을 보았지만, 망령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지옥에서 환생을 담당하는 ‘사자의 탑’에 망자의 기운이 없다니. 평소와 같다면 이럴 리가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나는 망설임 없이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일렬로 서서 내 행진을 따랐다.

우리는 마치 기차처럼 일자로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도착했다.

“…… 뭐지?”

너무나도 쉬웠다.

겨우 다섯 개의 층으로 된 이 탑에 첫 번째 층을 가볍게 돌파했다.

알 수 없는 사람과 신경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몬스터와의 전투 또한 없었다.

그저 앞을 향해 걷기만 했을 뿐.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악의 탑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다음 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나는 그룹원들을 이끌고 다시 다음 층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김연희가 순식간에 계단을 찾아 주었다.

“잘했다 김연희.”

“헤헤…. 뭘!”

우리는 주변을 경계하며 또 다음 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층에서도 또 다음 층으로, 또또 다음 층으로, 또또또 다음 층으로.

“…… ”

분명 다섯 개의 층으로 된 탑인데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제일 처음 보았던 첫 번째 라운드와 동일하다.

콧속 깊숙이 들어오는 흙냄새가 이곳은 같은 장소라며 대변하는 것 같다.

‘…… 이거 같은 자리에서 계속 돌고 있구나.’

정우가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쓰읍-.

“어떻게 된 거지? 여긴 아까 왔던 곳이랑 지형이 똑같은데.”

“…… 계속 같은 곳에서 돌고 있는 것 같아.”

“거울 능력인가?”

“아니, 그냥 이 방안에 숨겨져 있는 함정 같아. 아무나 위로 올려보내지 않겠다는….”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눈이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졌다.

벽에 그려져 있는 낯익은 문양들.

그 외에는 특별한 장치가 없었다.

“김연희, 너 혼자 계단 위로 올라가 봐.”

“…… 응? 나 혼자?”

“그래.”

“무서운데.”

“걱정하지 말고.”

그녀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계단을 향해 걸었다. 우리가 같은 곳에서 계속 돌고 있다면 다시 찾아오겠지.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위를 향해 전진했던 김연희가 우리의 등 뒤에서 목소리를 내었다.

“어? 어?! 어!!”

“역시….”

“뭐야 이건.”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허…. 이곳에 온 이후로 주술을 부리는 놈은 전혀 못 봤는데 말이야. 악마 녀석들이 앞서 만들어 둔 결계 같은 건가? 다음 층으로 올라오지 말라는….”

“아니, 사자의 탑은 천사와 악마 둘 다 함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 그럼?”

“아마도 이 탑 자체에서 방어적인 무언가가 발동한 거겠지.”

나는 김연희의 후레쉬로 1층의 벽면을 전부 비추어 보았다.

성전에 그려져 있던 과거, 신마 대전의 흔적으로 보이는 전투 장면들이다.

그림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방 전체를 전부 둘러보았다.

“악마…. 천사…. 이건 여는 자인가?”

날개가 없는 인간의 모습과 그룹의 구성을 보니 인간들이 확실했다.

전사, 마법사, 힐러, 드루이드, 마녀.

이 게임에서 정석이라 불리는 그룹의 구성원이다.

내가 착안한 그룹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시스템 메시지]

[‘사자의 탑’의 주인이 김천재 님의 그룹을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이제 와서?’

그림 확인을 전부 마친 나는 다시 방의 중간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말했다.

“다음 층으로 가는 방법은 알아냈어.”

정우가 내게 말했다.

“그럼 당장 가야지.”

“…… 다만 그 이후에 얼마나 위험할지 모르겠네.”

“뭐?”

“탑이 주는 시련이란 건 별거 없어 보이는데, 위쪽에 신마 대전의 흔적이 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신마 대전의 흔적?”

“…… 그래. 지금의 천사와 악마들이 아닌, 그 당시 성스러운 존재와 악한 존재를 만들어낸 생명체.”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을 했다.

다만 유소라는 달랐다.

그녀가 항상 들고 다니는 ‘사자의 서’를 꺼내더니 내게 물었다.

“혹시 ‘티아마트’라는 존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그 책에 적혀 있나요?”

“네, 태초의 세계. 그 혼돈 속에서 존재했던 거대한 용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 외에는요?”

“어…. 그냥 그게 끝인데요?”

하긴 실마리 같은 내용을 저 책에 담지는 않았겠지.

“알았습니다. 혹시 다른 내용이 책에 나타나면 알려주세요.”

유소라가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 넵!”

“방금 소라 씨가 말한 신마 대전의 흔적, 태초의 존재. 티아마트라는 녀석이 이 안에 있는 것 같아. 적인지 아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도끼를 흔들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덤비면 조져버리고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조져질까 봐 그렇지.”

“루시엘도 잡았는데?”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루시엘은 치명적인 약점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고, 이 녀석은 나도 처음 보니까….”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자, 다들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마이클이 그룹원들의 얼굴을 한 번씩 둘러보더니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핫! 어차피 온 거 그냥 갑쉬돠. 우리는 해낼 수 있읍뉘다.”

“…… 마이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그럼요우. 어차피 못 먹어도 고!”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온 거냐….”

“천재킴이 알려줘씁니다.”

“……”

이럴 때는 다수결로 정하는 편이 좋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서로 원망하지 않도록 말이다.

내가 손을 들며 말했다.

“계속 진행하자는 쪽은 손을 들고,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내려.”

모두가 손을 들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다른 행동을 하는 자는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니까.

“…… 그럼 다음 층으로 간다. 불만 있는 사람은 지금 이야기해.”

불만은 당연히 없었다.

김연희가 내 옆으로 바짝 붙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다음 층으로 가는 방법은 정말 알고 있어?”

“…… 어.”

“어떻게 가는데?”

나는 김연희의 머리를 크게 쓰다듬어준 후 탑을 들어올 때 사용한 계단으로 내려갔다.

“어? 다음 층으로 간다면서 왜 내려가?!”

“여기가 올라가는 길이야.”

“…… 응?”

“이 탑은 위가 아니라 아래로 솟아 있어. 즉- 위쪽 계단이 아닌 아래쪽 계단으로 가야 하는 거지.”

“…… 아?”

“이 탑을 세운 자는 사자의 서에 적혀 있는 최초의 ‘여는 자’. 악마들의 눈을 피해 만든 탑이라 이런 장치를 심어둔 것 같아.”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내 걸음 소리가 계단에 울렸다.

계단의 끝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역시 그렇다.

마녀들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적들을 되돌려 보내기 위한 간단한 주술.

‘사자의 탑’ 1층 벽면에 그려진 여는 자들의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마녀 의상을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제 3의 눈’이 당신의 예리함에 감탄합니다.]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지체되지 않고 게임을 빠르게 진행하는 김천재 님에게 환호성을 지릅니다.]

‘제 3의 눈’과 ‘게임을 지켜보는 자’. 저들이 어떤 존재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 행동에 반응을 주는 그들의 특정한 반응으로 유추해 보자면,

‘아마도…. 이 게임의 관객….’

터벅.

계단의 끝에 도착하자 갑자기 꽃밭이 펼쳐졌다. 지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장소였다.

방 곳곳에 횃불이 달려 환하다.

이곳 또한 1층과 같이 학교 운동장 크기의 장소였다.

그 중간에 나무 상자가 하나 있다.

[시스템 메시지]

[‘사자의 탑’ 두 번째 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번째 층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 향기가 전혀 없군.”

내 뒤를 따라 모두가 두 번째 층에 도착했다.

-김천재! 진짜 다음 방에 도착했네? 너 정말 눈치가 대단하다!

-아름다워요우.

-우와! 갑자기 꽃밭이…. 무슨 꽃인지 모르겠지만, 색상이 굉장히 짙네요.

다들 즐거워하는 이때 마정우만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김천재. 혹시 이 꽃 그거 아니냐?”

“…… 카나비스.”

“역시.”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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