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쿵. 쿵. 쿵.
두터운 철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반대편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아니, 비명이라고 해야 하나?
-크아아악!
“…… 김준철인가?”
내 질문에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은데.”
나도 같은 생각이다.
김준철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큰 변화를 주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다시 한번 노크를 했다.
쿵. 쿵.
안에서 사람 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대답을 해왔다.
-누구십니까.
김준철의 목소리다.
많이 지친 듯해 보였지만 확실했다.
내가 문 앞에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김천재입니다.”
-…… 들어오시겠습니까.
“예.”
조심스럽게 문을 당겼다. 쇳덩이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몸이 앞으로 치우쳐질 정도였다.
레벨이 이렇게나 높아졌는데도 손목이 당길 정도니, 어지간한 놈들은 문을 열지도 못하겠구나.
끼이이익.
쿵.
우리가 염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김준철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방안에는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그도 이 냄새를 인지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후우-. 지금 방안에 좀비 썩은 내가 가득해서 죄송하군요.”
그가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고 방향제를 뿌렸다.
나는 부서진 탁상 앞으로 다가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 오 박사가 다녀갔습니다.”
오박사?
그래서 방안에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있던 건가.
“뭐라고 하던가요?”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하더군요.”
“…… 그래서 뭐라고 하셨나요?”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언쟁이 좀 있었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더군요.”
“……”
“그의 위치는 파악해놨습니다. 천재 씨가 직접 만나보시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때가 아니다라….”
“예.”
월! 월!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네모난 철창 안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그마한 치와와 한 마리가 있었다.
몸이 보라색인 것으로 보아 X 바이러스.
“…… 이 녀석은 뭔가요?”
“오 박사가 제게 바이러스를 주고 가서 테스트를 좀 해봤습니다.”
“테스트?”
“예, 이 X 바이러스는 Z와 다르게 벌써 치료제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 그래서 이 녀석에게 바이러스를 투입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치료제까지 투여한 상태니 이제 반응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X 바이러스의 치료제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 보았다. 오 박사의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Z 바이러스의 치료제는 아직인가요?”
“…… 예. 만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아쉽군요.”
김준철이 보라색 강아지를 멀뚱히 쳐다보며 말했다.
“제 추측건대, 오 박사는 Z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왜죠?”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오 박사가 원하는 세상.
그건 바로 종말이다.
세상을 더럽히는 인간들을 미워하는 게 그의 설정이니까.
내가 그의 말을 이해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단장님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 무엇을 말입니까?”
“오 박사와의 관계요.”
내 질문에 그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오랫동안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해준 인물이니, 함부로 대하기 힘들 것이다.
“처리해야 합니까?”
“제 생각에는요.”
“저는 천재 씨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뒤로 물러날 수는 없으니까요.”
“…… 좋아요.”
그의 결심을 들은 나는 천국에서의 일을 한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
김준철은 삼류 동화 같은 내 이야기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경청했다.
“…… 그래서 노효만을 그렇게 만든 녀석이 지금 그곳에 있다는 거지요?”
“예.”
“그럼 제가 해야 하는 건 무엇입니까?”
“…… 전투 준비 태세. 앞으로 보름 후 큰 전투가 일어날 겁니다. 그때 제가 말한 곳에 지원군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전 병력 그곳으로 이동하면 되는 겁니까?”
“아뇨, 이 마을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전부 와주시면 돼요.”
김준철이 책상 서랍을 열어 두터운 시가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쓰읍-
푸후.
“좋습니다. 앞으로 보름 뒤, 천재 씨가 말하는 곳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 * * * *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하는 제일 중요한 장소.
[시스템 메시지]
[메카니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우와 내가 메카니아로 자리를 옮겼다. 게이트를 넘어오자마자 에이도스의 홀로그램 화면이 내 눈앞에 나타나며 대화를 걸어왔다.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냄새에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
“…… 에이도스, 준비는?”
[진행률 99%, 도시 내에 방어 시설을 백 배 이상 끌어 올렸다고 합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전투 기체들을 생산하도록 해. 남은 기간은 보름. 최대한 많은 수의 로봇이 필요하다.”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인지합니다.]
[일주일 후 생산 완료되는 전투 로보트의 예상 기체 수는 총 40 EA. 오차는 +- 5대라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준비는 완벽하다.
나는 인적이 없는 골목길로 자리를 옮긴 후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 그 USB에서 추출한 파일 분석은 끝냈나?”
[데이터 마이닝 완료]
[분석 내용을 보시길 원하십니까?]
“…… 어.”
[‘에이도스’의 홀로그램을 스크린 화면으로 전환합니다.]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내용으로써 ‘김천재’ 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설정합니다.]
위이잉-.
에이도스의 모습이 휘몰아치며 네모난 화면으로 바뀌었다.
내가 손짓하자 스크린 위에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집중해서 보았다.
[‘제3의 눈’이 김천재 님의 화면을 궁금해합니다.]
[‘운영진 1’이 로그 파일을 열어 스크린을 분석하려 합니다.]
[‘운영진 2’가 규정 위반이라며 다른 운영진의 게임 개입 행위를 중단합니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다.
운영진 측에서도 내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 이 게임의 운영자 중 한 명인 유소라가 받는 내용을 가로챘으니 말이다.
나는 에이도스가 보여주는 모든 화면을 본 후 미소를 지었다.
“끝이야?”
[USB에 담겨 있던 모든 내용을 송출했습니다.]
생각보다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이 게임 속에서 나가고 싶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팁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들이 말해준 대로 유소라가 이행하기에는 벌써 늦어 버렸지만….
“오케이, 잘했어. 이제 모든 내용을 삭제하도록. 단순히 삭제하지 말고 소멸시켜.”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이행합니다.]
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담배를 한 개비 물었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존재들에게, USB 속 내용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쓰읍-.
푸후.
하얀 담배 연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 에이도스, 혹시 유소라라는 플레이어가 나 없을 때 이곳에 왔었나?”
[그렇다고 합니다.]
“그녀가 부탁한 일은?”
[‘김천재’ 님의 USB와 동일한 물건을 가져와 분석해달라고 했습니다.]
“…… 그래? 그게 언제인데.”
[하루 전에 왔었습니다.]
하루 전?
그럼 그 꼬마 녀석과 유소라가 접촉했다는 말인데, 그녀는 왜 내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분명 말해준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 알겠어.”
담배를 다 태운 나는 다시 폐허가 된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나도 씁쓸하다. 운영진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전해 받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머리가 띵해졌다.
‘…… 혹시.’
혹시 내가 모르는 운영진들끼리의 메세지가 더 존재하려나?
* * * * *
삼 일이 흘렀다.
휴식은 충분했다.
저택을 떠나기 전 나는 유소라를 따로 찾았다.
“…… 소라 씨.”
“네? 말씀하세요.”
“스펙터랑 언제 만나셨어요?”
내가 확실하게 결론을 지어놓고 말했다. 어차피 이 말에 거짓은 없으니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
유소라가 난처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 꼬마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얼마 전에 만났다고 하던데, 언젠가요?”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 말했다.
“…… 알고 계셨나요?”
“어제 알았어요.”
“언제 만났는지도 알고 계신데 물어보시는 건가요?”
“아뇨. 그건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다.”
“……”
유소라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열한 번째 라운드에 들어가기 전에 만났어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 왜 말씀하시지 않았던 거죠?”
“스펙터가 저를 만나는 걸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요.”
“저와의 약속보다 그 꼬맹이의 말이 더 중요했습니까?”
그녀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 스펙터 그 꼬맹이 말로는 제가 이 사실을 말하면 천재 씨가 위험해질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말하지 못했어요.”
USB 안에 있는 내용을 내가 알면 안 된다는 말이구나. 하긴, 일개 유저가 운영진들의 대화를 알고 있으면 안 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행동이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니 뭐라고 따지기도 모호했다.
“다음부터는 그냥 바로 말해주세요. 제가 위험해질 일은 없어요.”
“…… 알겠어요.”
“USB는 어떻게 하셨나요?”
유소라가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여기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넘겨주지 말라고 해서 제일 안쪽 주머니에 숨겨놨었어요.”
“…… 잘했어요. 그 안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는 아시나요?”
“아뇨. 몰라서 컴퓨터에 꽂으려고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는데다가…. 메카니아를 잠깐 다녀왔는데 AI가 제 부탁을 거부하더라고요.”
“부탁?”
“USB 속 내용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자기는 천재 씨 명령에만 움직인다고….”
이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렇다면 앞에 한 이야기도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합리적인 의심이었지만 USB에 관한 내용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우리를 보고 있는 시선이 하나둘이 아니니….
“우선 알겠습니다. 그럼 그 USB는 잘 관리해주세요.”
“이거, 필요 없으세요?”
“예. 괜찮아요.”
내가 손을 젓자 유소라가 USB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대화를 끝낸 우리는 저택에서 나와 다른 그룹원들과 합류했다.
아침부터 김연희가 신난 표정으로 방방 뛰었다. 이제 곧 있으면 조영기가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 것 같다.
“다들 준비는 됐지?”
모두가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나는 그들을 이끌고 열두 번째 라운드가 진행되는 신성한 회랑, 천국의 중심으로 향했다.
악마와 인간의 싸움이 이곳이라면, 천사와 인간의 싸움은 그곳에서 벌어져야 하니까.
[시스템 메시지]
[열두 번째 라운드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 시간부로 인간과 천사 간의 갈등, 대립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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