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146화 (146/215)

146화

“…… 그래서, 내 말은 전부 알아들었지?”

리 커우러나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면 말했다.

“맡겨 주십쇼. 녀석의 잔당들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회의 시간이 올 때까지, 모든 유저들이 전부 강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네 역할이야.”

“…… 그럼 저는 이곳에 남아서 갱단을 좀 더 늘리도록 하고, 나머지 인원을 다른 마을로 보내 충돌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으니 좋네.”

열두 번째 라운드까지 왔으니 이제 남은 게임들은 시간문제다.

앞서 내가 하던 ‘멸망의 땅’과는 다르게 이곳에는 시간제한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다.

열한 번째 라운드가 끝나고 다음 라운드에 도달하는 시간까지 총 사흘.

대게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 동안 플레이어들은 사냥터에서 캐릭터의 성장을 기반으로 강해지는데,

여기서는 그럴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과거 내가 열한 번째 라운드에서 열두 번째 라운드로 갈 때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던전을 돌며 강해졌는데.

“…… 후우.”

내 한숨을 들은 리 커우러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를 못 믿으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야. 너는 네가 맡은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잘할지를 모르겠다.”

“…… 행님.”

“왜?”

“지금까지 잘해 오셨으면서 왜 그러십니까? 앞서 출발했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전부 제치고 나간 신분이 왜 인제 와서….”

스테이크를 썰던 정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커우러나.”

“예.”

“천재는 이 게임의 끝을 봤으니까 저런 거야.”

“……?”

“단순히 시스템이 주는 임무만 처리한다고 이 게임의 끝을 낼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 않습니까?”

“…… 그건 불가능해. 기회는 단 한 번. 너도 알겠지만,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 서버 종료가 됐잖아?”

“예.”

“그날 모두가 죽은 후에 혼자 남은 상황. 우리는 모르고 천재가 겪은 일이 있어.”

리 커우라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엇입니까?”

정우가 나를 슬쩍 보더니 입을 지그시 다물었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지퍼를 걸어 잠근 것.

대답이 없자 리 커우러나가 다시 물었다.

“행님, 그게 무엇입니까?”

“…… 천재한테 물어봐.”

“천재 행님, 이 게임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납니까?”

내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리 커우러나를 응시했다. 말해도 될지 아닐지 모르겠다. 지금 말한다면 이 녀석 또한 절망을 느낄 텐데.

정우가 내 등을 강하게 툭 치며 웃어 보였다.

“그냥 말해줘. 어차피 녀석도 우리랑 같이 가야 하잖아.”

하긴, 어차피 우리와 함께 끝까지 갈 사람인데 굳이 숨길 이유가 없겠구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절망한다면 그것 또한 녀석의 운명.

그리고 여기서의 스토리는 그때와 다르다. 리 커우러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설명하기 쉽겠다.

“…… 그냥. 루시퍼랑 나랑 싸웠어.”

“그래서요? 이겼습니까?”

“이겼는데 졌어.”

“…… 응? 그게 무슨 말인지….”

“둘 다 죽었어. 그리고 끝.”

틀린 말은 아니었다.

루시퍼 녀석이 최후의 순간에 나를 처리하기 위해 자폭했으니까.

“허허…. 그럼 둘 다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냥 게임 종료. 세계가 멸망했다는 설명 창 하나로 끝났어.”

내 말을 듣던 리 커우러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긴 기존의 스토리가 그대로 흘러가면 모든 이들이 멸망하니까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모두가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내가 마지막 수저를 들자 리 커우러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재 행님, 그럼 이번에도 이 세계는 멸망하는 겁니까?”

“…… 아니.”

리 커우러나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그, 그렇습니까?”

“이번에는 그때와 달라. 그리고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만큼 멍청하지 않고.”

“오…. 그럼 이번에는 루시퍼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지요?”

“네가 나를 잘만 돕는다면.”

“……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해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충! 떵!”

리 커우러나의 경례를 받은 우리는 좋은 기분으로 점심을 마쳤다. 이제 다음 라운드까지 남은 시간 동안 마무리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김준철과의 협상이다.

인류의 생사를 건 싸움이 곧 시작되니, 그도 이제 움직일 차례가 되었다.

* * * * *

<폐허가 된 마을의 벙커>

김준철과 오 박사가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대화하고 있다. 서로 싸우듯 높은 언성이 오갔다. 화를 참지 못한 김준철이 목에 검을 들이밀 정도로 격한 이야기였다.

오 박사는 날붙이에 자신의 목을 더 가까이 밀어 넣으며 김준철에게 손가락질했다.

“X 바이러스는 인류의 희망이네!”

“제가 Z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들라고 했지, 바이러스를 만들라고 했습니까?!”

“백신은 이미 늦었어. 지금 인류의 몇 프로가 Z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생각하나?”

“……”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반응이 없는 감염자도 있을 것이네. 그들을 통해서 바이러스는 계속 퍼져나갈 거야.”

김준철이 석연찮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드십니까?”

“…… 김준철 소령. 이대로 간다면 지금 남은 인류는 이제 희망이 없어. 차라리 X 바이러스를 이용해 전부 감염시킨 후, Z 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네.”

“Z 바이러스나! X 바이러스나! 둘 다 생명체를 병신으로 만드는 건 똑같지 않습니까?!”

김준철이 검을 크게 휘둘러 책상을 내리찍었다.

쾅!

그가 분노하자 오 박사가 겁먹은 표정으로 두 손을 저었다.

“지, 진정하고 내 말 듣게나. Z 바이러스와 다르게 X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한다네.”

“자연 소멸?”

김준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 내 계획대로 자네가 도와준다면 결국 Z와 X 바이러스. 둘 다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야. Z를 X로 대체하고, 그 X가 스스로 소멸한다면? 답은 이미 자네 머릿속에도 나와 있을 것이네.”

“……”

“생각해보게나, 지금 상황에서 치료제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다면? Z 바이러스에 한둘씩 감염되다가 전멸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가?”

“박사님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오 박사가 눈에 힘을 풀고 시선을 내리며 대답했다.

“이렇게 된 이상 희생 없이 결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네. 자네도 알겠지만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괴물이 전세계를 집어삼켰어.”

“……”

“지금은 모든 이들이 나를 욕할지 모르겠지만. 후에 Z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다들 내 뜻을 알아줄 걸세.”

대화를 끝낸 오 박사가 고개를 저으며 방에서 나갔다. 김준철도 더 이상 그를 잡지 않았다.

서로의 의견이 갈린데다가 더 이상 대화를 해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오 박사를 보낸 김준철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하나 뽑아 들었다.

그 안에서 노효만의 사진이 떨어졌다. 색이 바랜 것으로 보아 오래되어 보인다.

사진 속으로 젊은 김준철과 노효만이 보였다. 다른 군인들도 해맑게 웃고 있다.

훈련 중에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행복한 젊은 시절 속 하나의 기억으로 보인다.

“…… 효만아.”

김준철이 무언가를 다짐한 듯한 표정으로 사진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보라색 액체가 든 병을 들었다.

“…… 후우.”

* * * * *

김연희가 히죽히죽 웃으며 내게 말했다.

“김천재!”

“…… 너 왜 그렇게 신났냐.”

“미카엘이 곧 있으면 조영기의 몸을 돌려준대!”

“그래? 언제?”

“이틀 뒤라고 했으니까, 우리가 열두 번째 라운드를 진행할 때?”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열두 번째 라운드에 조영기의 몸을 돌려준다는 말은, 그를 돌려주는 대신 우리에게 조건을 걸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인간의 멸망 계획은 악마만이 원하는 뜻이 아니니까.

“김연희, 너는 소라 씨랑 같이 다섯 번째 라운드로 가줘야겠다.”

“엘프 마을에는 왜?”

“가서 엘프와 드워프에게 내가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

“…… 응?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그래. 최대한 많은 수의 병사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알아서 준비해줄 거야.”

김연희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시키니까 하기는 하는데, 그들이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줄까?”

“무조건이야. 언제까지 준비하냐고 물어보면 보름 후라고 해.”

“…… 알았어.”

“지금 바로 출발해. 소라 씨, 소라 씨는 김연희가 엘프 헬름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정복자의 무덤에 대기 중인 김리아를 찾아주세요.”

유소라가 환하게 웃으며 ‘김리아!’ 라고 소리쳤다.

“그분이 거기 있어요?”

“아마도요. 김리아에게 네 번째 라운드에 대기 중인 한국 플레이어들을 전부 폐허가 된 마을로 복귀시키라고 해주시고요.”

“그냥 복귀하라고만 하면 되나요?”

“예, 저희가 마지막 라운드에 도달하기 직전이라고 하면. 다른 플레이어들도 이해할 겁니다.”

“…… 알겠어요.”

나는 둘은 보낸 후 마이클과 정우를 데리고 김준철의 벙커로 향했다.

이제 모든 병력을 이끌어줄 지휘관만 구하면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벙커 앞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바짝 긴장한 상태로 우리를 맞았다.

-충! 성! 근무 중! 이상 무!

내가 그들을 보며 목례를 했다.

“김준철 소령님은 안에 계신가요?”

“그렇습니다!”

“김천재가 왔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군인 중 한 명이 위병소로 돌아가더니 수화기를 들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이 입구를 열어주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준비되어있었다는 듯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시스템 메시지]

[김준철의 벙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응?’

원래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었나?

그저 벙커 안으로 한 발자국 걸음을 뗐을 뿐인데, 마치 몬스터가 있는 던전에 들어온 것처럼 공기가 바뀌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안으로 걸을수록 차가운 공기가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썩은 내가 풍겼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정우에게 말했다.

“…… 마정우.”

“말 안 해도 알겠다.”

“여기서 왜 이런….”

“글쎄다. 혹시 김준철이 당했나?”

“…… 마이클. 너는 다시 돌아가서 입구를 지키고 있어야겠다.”

마이클이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입구를?”

“그래, 위병소에 가서 세 명 중 한 명은 안으로 들여보내고. 호출해서 다른 곳에 대기 중인 군인들을 이곳으로 모아 달라고 해.”

“…… 오케이. 알겠어요우.”

마이클이 벙커 밖으로 향했다.

정우와 나는 서로의 상태를 확인한 후 안으로 향했다.

고약한 냄새가 점점 짙어진다. 익숙하지만 좋지 않은 느낌. 벙커의 끝에 도착했을 때 우린 벽 너머의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준철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들어간다.”

“…… 천재야.”

“왜?”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그 상황이면 녀석을 죽여도 되냐?”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아니. 혹시라도 우리가 예상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다른 길을 찾아보는 수밖에.”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