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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이량훈 녀석이 금방이라도 내게 덤벼들 것 같은 자세로 말했다.

“내게 네 정보를 준 자식, 고티라는 놈이다.”

“……”

“반응이 시원찮네? 조금이라도 놀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놀랐다.

같이 오랜 시간을 해왔던 고티가 저 녀석에게 나에 대해서 말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하지만 겉으로 놀랐음을 드러낼 정도로 큰 사건은 아니었다.

차카니가 조영기였다는 수준은 돼야지 정말 놀라우니까.

“그래서, 고티는 어디에 있지?”

“지금 이 안에 있어. 한번 찾아보지 그래?”

“……”

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만약에 고티가 이 안에 있다면 암살자답게 어두운 곳만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자, 이 안에 있는 사람들 몇이 감지되었다.

많으면 셋.

적으면 둘.

한곳에 뭉쳐있는 커다란 오라가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한 명인지 두 명인지 모르겠다.

“그 검객 할아범도 여기 있구나.”

“…… 빙고.”

“저기 마리아상 뒤에 있는 놈. 네가 고티냐?”

이량훈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네크로맨서 주제에 오라 감지도 하는 거야?”

“기본이지. 나는 어떤 직업을 선택했더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 스킬 없이 한단 말인가?”

“당연하지. 너 같이 랭킹 중위권에서 머무는 놈은 못 하겠지만 말이야.”

내 말이 웃겼는지 마리아상 뒤에 있는 놈이 크게 웃어 보였다.

-푸하하!

이량훈이 석연찮은 표정으로 그쪽을 보았다.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기분이 언짢은 것 같다.

“됐고, 고티. 네가 나올 차례다.”

내가 숨죽이고 마리아상을 집중해서 보았다.

정우는 녀석의 말을 믿지 않고 있는지 머리만을 긁적였다.

고티는 모든 암살자 중에서 최고의 플레이어라 불린 최강자.

게다가 우리 그룹에서 최전방을 맡았던 놈인데 뜬금없이 이량훈과 손을 잡는다니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 나는 생각이 좀 다르지만.’

“이량훈, 약속과 다른 행동을 하는군.”

중저음의 중년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진짜 고티라면 내가 두 팔 벌려 환영해줄 텐데.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이량훈, 저 뒤에 있는 놈이 정말 고티라고?”

“…… 그래. 고티! 왜 나오지 않는 거냐!”

내 실타래가 감지하고 있던 놈의 오라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정적이 흘렀다.

이량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마리아상 뒤에 도착한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뭐, 뭐야!”

내가 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없나?”

“아니 이 새끼가 어딜….”

“후우. 이량훈, 너 혹시 녀석과의 약속을 어겼나?”

“……”

“네가 고티라는 자를 잘 몰라서 그런 행동을 했나 본데. 녀석은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놈이야.”

“…… 이 빌어먹을 새끼가.”

내가 낫을 빙글빙글 돌리며 이량훈에게 다가갔다. 녀석이 단검을 치켜들고 나를 겨누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멀지 않은 곳에서 백발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상대했던 검술의 달인.

정우가 그를 보더니 환하게 미소 지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자연스럽게 대결 구도가 완성되었다. 이량훈이 성당의 북쪽을 계속 힐끔거리며 보더니 내게 말했다.

“너희 둘이 끝이냐?”

“…… 그럼?”

“용감하구나. 내 직업이 뭔지 알고 있을 텐데 소환수도 안 데리고 오고 말이야.”

“너야말로 소환수가 안 보이는데?”

“…… 당연하지. 이 안은 비좁으니까.”

콰광!

북쪽 문이 열리며 이량훈의 소환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척준경을 시작으로 각종 언데드 몬스터들이 걸어 들어왔다. 레벨업이 지체된 만큼 특별한 놈은 없었다.

전부 내게 상대가 되지 않을 수준.

긴장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에 비해 이량훈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듯이 비열한 웃음을 내뱉었다.

“크하하하! 멍청한 놈. 여기가 네 무덤이 될 것이야.”

삼류 악당 같은 대사.

내가 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겨우 이 정도로 내게 덤벼들려고 한 건가.”

딱!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리콜을 사용했다. 내 수하에 있는 모든 소환수들이 성당 안에 소환되었다.

이 큰 성당이 비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수였다.

이량훈이 내 병사들을 보더니,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저주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

“이량훈, 진짜 네크로맨서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 * * * *

이량훈과 그의 소환수들을 제압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소환수 중에는 척준경 말고 쓸 만한 놈이 없었으니깐.

모든 이들이 쓰러지고 이량훈과 척준경만이 남았다. 일당백의 힘을 낸다는 소드마스터도 압도적인 내 힘 앞에서는 굴복하게 되었다.

많은 소환수들이 덤빌 필요도 없었다.

이량훈과 내 레벨 차이는 두 배. 그에 따라 소환수의 격차도 컸다.

박규환 혼자 척준경을 제압할 정도니 말이다.

“주인님, 마무리해도 되겠습니까?”

박규환의 검날이 쓰러진 척준경의 목을 겨누었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 잠시 멈추라고 한 후 이량훈에게 물었다.

“이량훈, 살고 싶나?”

“……”

“그렇다면 이 게임에서 나가려고 준비하던 일들. 전부 멈추는 게 어때?”

내 제안을 들은 이량훈이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내 계획을 알고 있나?”

“한조에게 들었다.”

“…… 한조가 내 계획을 말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고티가 나에 대해 말한 것처럼.”

털썩.

정우가 만신창이의 백발노인을 이량훈에게 던졌다. 전투력의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 맨손으로 그를 때려잡았다.

역시 게임은 장비 빨 레벨 빨이다.

저 노인도 보통 사내가 아니었음이 확실한데, 이렇게까지 격차가 날 줄 몰랐다.

“김천재. 저 새끼 그냥 죽여버려. 뭐 하러 이야기를 해?”

내가 정우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기다려. 아직 쓸모가 있는 놈이야.”

“저런 새끼를?”

“…… 그렇지.”

이량훈이 백발노인을 보고 얼굴을 구겼다. 눈빛을 보니 마치 쓸모없는 노인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쓸모없는 노인네.”

역시.

“이량훈, 지금까지 플레이어를 몇 명이나 죽였지?”

“…… 모른다.”

“몰라?”

“그래. 내가 녀석들을 잡을 때 하나하나 세면서 죽였을 것 같나?”

“그럼 모든 플레이어를 죽여서 이 게임에서 나간다는 네 계획은?”

“…… 정말 알고 있군.”

“알고 있다고 했잖아.”

이량훈의 게임 탈출 계획.

모든 플레이어를 죽여서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마지막 한 명이 되면 되니까.

이게 바로 녀석의 작전이었다. 마지막 승자가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운영진 또한 라스트 게임의 승자는 마지막 남은 자라고 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놈이 나와 다른 길을 걷고 있기에 지금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정상적인 루트로 게임을 종료시키기 위해 많은 수의 플레이어가 필요한 나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끝내기 위해 사람의 수를 줄이려는 저 녀석.

둘 중 한 명은 사라져야 한다.

한 게임에서 두 개의 엔딩은 만들어질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량훈, 폐허가 된 마을 말고도 다른 곳에 부하들을 배치했나?”

“……”

“이 근처에 있는 마을은 전부 네 동료가 대기하고 있다며? 신규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처리하고, 성장한 사람들은 계획을 짜서 죽이기 위해.”

내 이야기를 듣던 이량훈이 말없이 단검을 들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뜻.

“내게 덤비겠다는 건가? 이기지 못할 싸움인 것을 알고 있을 텐데.”

“…… 재수 없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예전?”

“됐다, 이제 이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자.”

놈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더니 나와 싸울 준비를 했다.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서도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내가 검지를 까딱거렸다.

“와라.”

타닥! 소리와 함께 녀석이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레벨 차이가 큰 것은 녀석도 알고 있는 사실. 그 차이를 메우려고 분명 비밀 병기를 준비했을 것이다.

소환수가 아닌 그 어떤 무언가.

확실하다.

녀석은 과거에도 나와 싸우려 그런 짓을 한 전적이 있으니까.

샥-

내가 녀석의 단검을 피하며 계속해서 거리를 벌렸다.

상대적으로 긴 낫이 공격하기에는 유리하지만, 공격에 실패하는 순간 생기는 빈틈 때문에 마구잡이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스윽- 키기기긱!

놈의 단검이 내 갑주를 살짝 스쳤다. 나는 그와 동시에 발을 뻗어 놈의 가슴을 가격했다.

퍽!

서로가 뒤로 밀려났다.

레벨에 맞지 않은 빠른 몸놀림.

척준경과 능력치를 공유하고 있나?

나 또한 박규환과 능력치를 공유하고 있지만, 저 수준은 아닌데 말이다.

“꽤 하는구나.”

“……”

놈이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더니 다시 내게 덤볐다.

나는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생각했다.

네크로맨서치고 꽤 좋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게 덤비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 아!’

내가 낫을 크게 휘둘러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이량훈이 고개를 깊게 숙이며 달려와 내 복부를 노렸다.

단검이 아닌 손바닥으로.

“잡았다!”

팍.

내가 그대로 낫을 놓으며 놈의 양쪽 손목을 잡았다. 이량훈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크게 발버둥 쳤다.

“이, 이 새끼가!”

“역시, 단검은 그냥 페이크였구나.”

“놔라!”

“놓기는. 네가 무슨 짓을 할지 다 알고 있는데.”

싸움을 지켜보던 정우가 코를 파며 말했다.

“어이- 천재야, 어떻게 된 일이냐.”

내가 씨익 웃으며 이량훈의 왼쪽 손바닥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그려져 있다.

태초의 네크로맨서라 불린 파우스트가 만든 비장의 무기.

[‘황천의 독’]

억울하게 죽은 자의 혼을 모아 적에게 저주를 내리는 악한 기술이다.

이 게임 내에서는 플레이어의 영혼이 주재료인 데다가 너무나도 사기급 능력이라 불려 금지된 스킬인데, 설마 저것을 준비할 줄은 몰랐다.

‘왠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내보일 만했구나.

나는 이량훈의 팔목을 강하게 쥐었다. 부러뜨릴 생각으로 온 힘을 다했다.

놈이 신음을 흘리며 표정을 구겼다.

“아아악!”

“시도는 좋았어. 내가 아니었으면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을 거야.”

“크윽…. 김천재….”

정신을 차린 백발노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마정우가 도끼를 휘둘러 그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해버렸다.

콰직!

이량훈의 충신인 척준경 또한 주인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려다가,

샥-

박규환의 검에 목이 날아갔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 혹은 그보다 적은 순간.

“이량훈, 너도 이제 사라져라.”

내가 놈의 팔을 강제로 꺾어 단검으로 스스로를 찌르게 만들었다.

콰직.

이렇게 자칭 내 라이벌이라는 쓰레기가 처리 되었다.

띠링!

[‘악독한 사나이 처치!’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12’ 달성]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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