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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열한 번째 라운드부터 시작되는 천국과 지옥의 대립.

가브리엘의 구출 이후에는 서로 열다섯 번째 라운드까지 성장의 과정을 담은 스토리가 진행된다.

근데….

이번에는 달랐다.

전투, 전투! 또 전투!!

가브리엘의 부활로 천국이 원상 복구되자, 천사들이 지옥을 향해 끊임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과거에 완성시키지 못한 성전을 다시 빼앗고, 어두운 지옥을 성스러운 힘으로 밝혔으며,

악마들이 동서남북 어디에 있더라도 그들의 위엄을 느낄 수 있도록 거대한 탑을 세웠다.

원형의 금빛 탑.

마치 하늘의 회랑이 생각 날 정도로 찬란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대악마들과 일곱 번째 라운드를 진행했던 성전 앞에서 천사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 정우야.”

“왜.”

“우리 지금 몇 번째 라운드에 있는 거냐?”

정우가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뱉었다.

푸후-.

“열두 번째.”

“근데 왜 천사들이 지옥을 지배한 거지?”

“글쎄다. 이제 우리가 알던 이 게임의 스토리가 아닌 것 같아.”

“……”

누구보다 이 게임을 잘 알고 있는 정우와 내가 모르는 스토리로 게임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우리도 놓치고 간 곳들이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스토리 전체가 전혀 모르는 건 처음이다.

과거, 최강의 존재라는 놈을 물리쳤으니 이제부터 새로 쓰는 역사라는 건가?

수색을 마치고 온 마이클이 내게 말했다.

“천재 킴, 근처에 있는 악마들은 전부 사라진 것 같아요우. 한 마리도 안 보입니다.”

“허허…. 쓰러진 세계수 근처까지 다녀온 거 맞지?”

“예스! 사탄의 탑? 이라고 말해준 곳도 확인하고 왔어요우.”

“탑 안에도 악마들이 없디?”

“낫 띵. 이블 제로.”

내가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지옥에 악마가 없으면 어떻게 스토리를 진행하려는 것인가.

운영진들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지옥을 지배한 천사들을 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가자. 어차피 다음 라운드까지는 사흘 동안 기다려야 하니 집에서 쉬자고.”

김연희는 내 결정이 반가운 듯 깡충깡충 뛰며 말했다.

“끼얏호! 우리 돌아가서 맛있는 거부터 먹자. 와…. 신경을 너무 썼더니 배에 거지가 든 것 같아.”

“김연희. 너는 미카엘한테 가서 뭐 좀 물어보고 와.”

“…… 응? 뭘?”

“조영기. 조영기의 몸을 언제 돌려줄 건지 말이야. 분명 다시 돌려준다고 했었잖아.”

김연희의 표정이 잠시 굳어서 어두워졌다가, 수 초 후 다시 환해졌다.

“그렇지. 영기 아저씨의 몸을 다시 돌려준다고 했었지.”

“언제 가능한지 물어보고. 최대한 빨리 돌려달라고 해.”

“…… 알았어.”

김연희가 나와 정우 눈치를 슬쩍 보더니 미카엘을 찾아갔다. 우리는 그녀의 뒤를 보며 낮게 속삭였다.

“김천재, 벌써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게?”

“…… 일찍 준비해서 나쁠 건 없지. 벌써 열두 번째 라운드에 진입한데다가, 어차피 이 게임의 끝은 결정되어 있잖아.”

정우가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지금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끝은 정해져 있지.”

“그리고 이번 게임의 우리는…. 그 답을 찾았고.”

* * * * *

천사들이 지옥을 새로 설계하는 동안 우리는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왔다.

그들이 우리에게 준 시간은 삼일.

다음 라운드를 위해 정비하라는 뜻 같았다.

나는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근처 던전에 들러 스켈레톤 병사들을 새로 일으키고,

소환수들을 마을 곳곳에 배치해 자동 사냥을 시켰다.

새로운 유저들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냥터 전체를 안전하게 만들었다.

두두두두두두!

쾅!

누군가 달려와 우리가 있는 술집의 문을 강하게 열었다.

“천재 행님!”

식사하던 내가 고개를 돌려 입구를 보았다.

“어?! 리 커우러나!”

“행님! 이 마을에는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 나? 온 지 한참 됐는데.”

“아이고…. 근데 왜 저를 찾지 않으셨습니까.”

“너랑 다른 라운드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못 만날 줄 알았지.”

리 커우러나가 섭섭한 얼굴로 내 옆에 앉았다.

쿵.

의자가 그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끼이익 소리를 내었다.

“어디 여관에 편지라도 한 통 남겨주시지요.”

“그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어.”

“허허….”

리 커우러나가 우리 그룹원들을 한 번씩 천천히 둘러본 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잘 지내셨군요!”

마정우가 리 커우러나의 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쳤다.

찰싹!

“너도.”

“으윽…. 뼈 부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살이 이렇게 많은데 뼈까지 닿았겠냐.”

“정우 행님의 힘 정도면 닿고도 남지요.”

“이 새끼…. 아부 실력이 늘었는데?”

푸하하!

서로 웃으며 좋아했다.

리 커우러나는 우리가 없는 동안에 근처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어차피 이 게임은 각 서버에서 스토리를 앞서가는 인물이 흐름을 바꾸는 시스템이라,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편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너도 벌써 여섯 번째 라운드를 끝냈다고?”

“예!”

“너도 보통내기가 아니었구나. 아무나 통과할 수 있는 쉬운 라운드가 아닌데 말이야.”

“뭐…. 천재 형님처럼 한 그룹으로 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백 명 이상 같이 가니 편했습니다.”

“네 부하는?”

“전부 잘 있습니다.”

“아니, 전부 여섯 번째 라운드를 끝냈냐고.”

리 커우러나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렇습죠.”

“호오라….”

예상외의 전력이다.

그저 많이 먹고 뒷일만 처리하는 돼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이야.

내가 스켈레톤 병사 두 마리를 시켜 주위 테이블을 치웠다. 낮은 라운드의 유저들이 눈치를 보며 가게에서 나갔다.

리 커우러나도 내 뜻을 이해했는지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질이 급해지셨군요.”

“시간이 없어서. 짧게 보도록 할게.”

“으히히히-. 이것도 참고해 주십쇼. 제 부하들은 모두 저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 좋네.”

리 커우러나가 오라를 뿜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강력해졌다. 레벨이 90에 가까워진 우리 그룹의 마이클과 비슷한 수준의 오라.

스켈레톤 병사 한 마리가 그의 앞으로 섰다.

내가 신호를 내리자 부웅-소리와 함께 리 커우러나와 스켈레톤 병사가 주먹을 날렸다.

마치 복싱 선수들이 서로의 급소를 노리고 펀치를 날리는 것 마냥 간결하고 정확한 움직이었다.

쿵!

두 주먹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주먹과 주먹 사이에 오라가 휘몰아치며 밀어냈다.

전기 속성을 가진 강철 스켈레톤이 치직! 소리를 내며 전류를 뿜어냈다.

리 커우러나 녀석, 원소 계열 저항이 높아졌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연히 녀석이 한 방에 쓰러질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 진짜 강해졌구나.’

콰직, 콰지지직!

스르르륵 쿵.

스켈레톤의 몸이 붕괴하며 녹아내렸다.

내가 손뼉을 치며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짝짝짝짝!

“오! 리 커우러나, 너 진짜 강해졌구나. 스켈레톤 병사 정도면 지옥 악마 중급 혹은 그 이상의 힘인데!”

리 커우러나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행님의 은혜 덕분이지요. 떠나신 후에 정말 목숨을 걸고 단련했습니다.”

“잘했다, 잘했어.”

“헤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리 커우러나의 주먹을 보았다. 방망이를 들고 다니던 놈이 장갑을 끼고 있어서 무엇인가 했는데.

보석이 박힌 건틀렛이었다.

“마력 증폭 장치?”

“예! 다섯 번째 라운드 클리어 보상으로 받았습니다.”

“괜찮네. 근데 네 직업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맞는 물건이었습니다. 공격력이 낮아진 만큼 마력이 증폭되어서, 매 공격에 배쉬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쉬: 일정 확률로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기본 스킬]

적은 마나를 사용하는 스킬을 매 공격에 적용한다는 말이다. 하긴, 간호사가 없는 그룹에서 마력 부족은 항상 생기는 일.

“그동안 수고했다. 리 커우러나.”

“…… 감사합니다! 행님을 돕기 위해 앞으로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 * * * *

식사를 마친 우리는 마을 분수대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 저 사람들 엄청 강해 보여요.

-쉿! 조용히 해. 라운드 초반에는 다른 사람들 눈에 들지 않도록 움직여야 해.

-아…. 알겠습니다.

이 게임에 접속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유저들이다. 주위를 경계하는 눈빛과 조심스러운 대화.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제일 심장이 두근거리는 기간이라 생각된다.

타 플레이어의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결정되는 때니까.

“…… 왔구나.”

정찰 임무를 보낸 박규환이 돌아왔다.

“찾았습니다.”

“인원은?”

“삼백여 명 정도.”

“삼백여 명? 플레이어도 섞여 있나?”

“예, 절반 정도가 플레이어였습니다.”

“…… 알았어.”

내가 담배를 태우며 마이클과 유소라에게 말했다.

“둘은 저희가 돌아올 때까지 마을 내에서 플레이어 간의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해주세요.”

마이클이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맡겨요우.”

유소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히죽 웃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열두 번째 라운드에 도착하면 이제 게임의 끝을 준비하게 되는 때다.

경쟁하며 미칠 듯이 달리던 앞 라운드와 다르다. 이제 우리를 추격할 힘을 가진 플레이어도 많지 않은데다가 게임의 끝을 보려면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한다.

“마정우, 가자.”

“리 커우러나는?”

“마을 경계. 동서남북 모든 입구에 배치했어.”

“…… 좋네.”

전투 준비를 마친 정우와 내가 마을 내부에 있는 성당을 찾았다. 예전, 이 게임의 끝을 맞이했던 장소다.

마지막 게임에서 루시퍼에게 패배했던 바로 그, 멸망의 땅이 실현된 건물.

내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이이익-

어두운 성당 안, 창을 통해 빛이 새어 들어왔다. 곳곳에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이 조각되어 있었다.

창에 그려진 아기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다.

또각. 또각. 또각.

텅 빈 건물이라서 그런지 우리의 걸음이 크게 울렸다.

성당의 제일 끝, 거대한 십자가 앞으로 가자 기둥 뒤에 몸을 숨겼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천재….”

내가 돌아보지 않고 그에게 대답했다.

“오랜만이야, 이량훈.”

놈이 킬킬거리며 기둥 뒤에서 나와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 썩은 내가 진동을 해서 와봤더니 네가 있네.”

“주둥이는 여전하구나.”

“그런가?”

이량훈이 허리춤에서 구불구불한 단검을 빼내어 들었다. 전설급 무기 중 하나인 저주 받은 단검.

플레이어 백 명의 목숨을 희생해야 얻을 수 있다는 ‘저주 계열’ 네크로맨서 최고의 무기.

“김천재, 네가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

“그렇지. 네 친구가 내게 정보를 줬거든.”

“내 친구?”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의 뒤에서 수상한 그림자가 어둠을 타고 움직였다.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눈으로 쫓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래, 네 친구. 아니, 과거의 네 초인 그룹에서 함께 했던 동료.”

“……”

“고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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