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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내 스켈레톤 병사 한 마리가 빠르게 달려가 도끼로 루시엘의 머리를 노렸다.

부웅-

팍!

그가 가볍게 막아내더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김천재.”

“루시엘, 생각보다 역겹게 생겼네.”

“당돌한 건 여전하군.”

“당당한 거지.”

“……”

내가 손짓하자 마정우가 천사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이 방에서 나가! 미카엘을 데리고 후퇴하도록 한다!”

그의 외침을 들은 천사들이 만신창이가 된 미카엘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갔다.

루시엘 또한 그들을 막지 않았다.

어차피 결계 밖에는 악마들이 깔려 있어 도망갈 곳도 없는데다가 패잔병을 쫓는 것보다 나와의 싸움이 더 매력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방에서 나가자, 루시엘이 내게 말했다.

“이제 시작해볼까?”

“좋지. 죽을 준비는 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하는구나.”

내가 얄미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피차 하고 싶은 말이겠지.”

“…… 오너라.”

루시엘이 나를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코끝을 훔쳤다.

“그래.”

내 손짓과 함께 스켈레톤 병사들이 놈을 향해 달려갔다.

루시엘이 하품을 하며 가볍게 딱밤을 때려 병사 한 마리의 머리를 박살냈다.

두 번째 스켈레톤 병사가 오자 뺨을 때려 과자처럼 으스러뜨렸다.

세 번째 스켈레톤 병사가 도착하는 순간 몸을 가볍게 비틀며 발차기를 날려 부수었다.

‘…… 역시.’

이 게임 내에서 제일 강한 존재, 가브리엘과 루시퍼가 한 몸이 되기 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전투를 벌일 정도로 막강했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루시엘과 루시퍼의 차이.

단 한가지지만 놈이 내게 이길 수 없는 유일한 것.

“…… 루시엘! 언제까지 내 해골 병사들이랑만 놀 생각이지?”

내 도발에 루시엘이 석연찮은 표정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스켈레톤 병사를 뚫고 이곳까지 오지 않는 이상.

나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

마나 회복 속도가 높아진 나는 무한에 가까운 스켈레톤 병사를 일으켜 세웠고,

녀석은 그 병사를 뚫고 와야 했다. 한 방에 한 마리를 처치하더라도, 이곳까지 오려면 놈은 상당한 체력을 소모해야 한다.

“겨우 이런 해골 병사 따위로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루시엘의 생명력 게이지를 보았다. 눈곱만큼도 줄어있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다. 해골 병사로는 녀석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적은 피해는 줄 수 있다.

타격하는 이상 대미지는 들어가니까.

“잡을 수 있지. 너, 내 병사들을 얕보지 마라.”

-키에에엑!

나는 루시엘에게 당해 쓰러지는 스켈레톤 병사를 매개체로 삼아 다시 소환 주문을 외웠다.

[스켈레톤 소환]

내가 녀석에게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루시퍼는 광역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루시엘은 단일 공격 능력만 갖추고 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라면 전혀 모를 사항이지만, 나는 정우의 삼촌 덕분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베타테스터로 게임을 할 때 녀석과 싸워본 적이 있다.

루시퍼보다 더 강한 몬스터를 만들려고 하는데 도와달라면서 말이다.

물론 그때도 이와 같은 공략법으로 녀석을 처리했었다. 이 방법을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결과를 얻어 내다니.

역시 길을 닦아놓으면 그 후에 가는 건 굉장히 쉽구나.

루시엘이 이마에 핏대를 올리고 내게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자식! 내 너를 꼭 죽이고 말 테다.”

“허허…. 말만 하지 말고 좀 죽여 보셔. 지금 우리 얼마나 싸웠는지는 알고 있나? 삼십 분도 넘었어. 근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에 있네?”

내 도발에 녀석이 더욱 분노했다.

녀석은 무언가가 생각 난 듯 온몸에 오라를 모으더니 스켈레톤 병사들을 향해 달렸다.

자세가 마치 럭비 선수가 공을 들고 상대편 진영으로 뛰는 것 같았다.

팍! 파바바박!

‘호오라.’

녀석이 해골 병사 무리를 그대로 뚫으며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낫을 가볍게 돌리며 주문을 외웠다.

“아이언 메이든.”

투명 가시들이 날아올라 놈의 몸에 달려들었다. 다른 몬스터였으면 접착제처럼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루시엘의 몸에는 저주가 통하지 않는지 튕겨 나갔다.

잠깐이지만 녀석이 내 저주를 막으려 손을 휘둘렀다.

나는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스켈레톤 무리 속으로 몸을 숨겼다.

“어이! 잡아봐!”

루시엘이 내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잡아 죽여주마.”

“가능하면 해보던가!”

나는 스켈레톤 병사를 계속해서 만들었다. 녀석이 부순 만큼 만드니 잡힐 일이 없었다. 내 위치를 찾으려면 그만큼 스켈레톤 병사를 부숴야 했고,

부수면 또 새로운 녀석이 나타나 앞을 막았다.

우리가 싸우기 시작한 지 세 시간쯤 흘렀을까? 루시엘의 생명력 게이지가 생각보다 많이 깎여나갔다.

대략 삼분의 일 정도 줄인 것 같은데, 이대로 간다면 열 시간 내에 놈을 제압할 수 있겠다.

스켈레톤 병사들을 상대하던 루시엘이 씩씩대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도 이렇게 하면 끝이 없는 걸 알고 있는지, 내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후우-. 김천재. 지금이라도 나와 손을 잡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 필요 없어.”

“대악마의 자리를 주고 그에 걸맞은 힘까지 부여해주마.”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라니까? 그 힘을 너한테 부여해서 나를 잡아보는 건 어때?”

저렇게 권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놈에게는 빈정대는 말을 하는 편이 최고의 멘탈 흔들기다.

“…… 깐죽대기는.”

* * * * *

전투가 시작된 지 정확하게 열 시간.

게임 내에서는 피로도 때문에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전투였다.

물론 이 싸움의 승자는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갔다.

긴 시간이 흐르자 루시엘이 지친 기색을 보였다. 미세먼지처럼 조금씩 깎여간 그의 생명력이 바닥을 쳤다.

금방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얇게 말이다.

나는 녀석을 보며 혀를 찼다.

이 상황에서 저렇게 뚝심을 세우기도 쉽지 않을 텐데,

계속해서 스켈레톤 병사들을 상대했다.

뒤늦게 자신의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한 루시엘이 한쪽 손에 치료 주문을 외워 스스로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어딜.’

나는 내 수하에 있는 병사들을 계속 전투시켜 놈이 회복 주문을 마치지 못하도록 괴롭혔다.

주문을 외우려 할 때마다 가까이 붙어 저지했다.

-그만! 그만!!

놈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상황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나가자 내게 물었다.

“너, 처음부터 내 능력을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지. 그래서 너와 일대일 대결을 신청한 거야.”

“……”

“어때? 나한테 당하는 기분이.”

“…… 엿 같군.”

머지않아 놈의 생명력 게이지가 회색으로 변했다.

죽음.

그에 가까운 상황이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 눈에는 루시엘이 죽음에 이르렀다기 보다는 또 다른 형태로 새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크아아아악!

생명력 게이지가 0%가 되는 순간.

콰직, 콰지직.

놈의 피부가 항아리처럼 조금씩 깨져 나갔다.

분노에 가득 찬 루시엘이 나를 향해 포효했다.

“김천재! 이 사지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새끼가!”

내가 놈을 보며 미소 지었다.

“사지는 네가 찢어지겠지.”

[‘루시엘’의 몸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사지가 부서져 가는 와중, 놈이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스켈레톤 병사들의 공격이 그대로 명중했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공격해보려는 놈의 움직임이 처절해 보일 정도였다.

‘그때와 똑같구나.’

나는 낫에 오라를 모아 놈을 겨누었다. 스켈레톤 병사들이 공격을 멈추고 일부로 길을 열어 주었다.

“와라.”

“크아아악!”

루시엘과 내 사이의 거리가 1미터 정도 되었을 때,

나는 가볍게 낫을 휘둘렀다.

[‘죽음의 낫’ 발동]

[생명력이 15% 미만인 적의 생명을 단숨에 꺼트립니다.]

샥-

내 공격이 루시엘의 몸을 세로로 그었다. 다른 악마들과는 다르게 몸이 단단해서 그런지 갈라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공격에는 성공했다.

이제는 놈이 사라지는 것만 남았을 뿐.

루시엘이 무릎을 꿇었다.

나는 놈을 내려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크으윽….”

[‘지켜보는 자’들이 김천재 님의 공략 방법에 찬사를 보냅니다!]

방 밖에서 내 전투를 지켜보던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일 개체로만 보자면, 이 게임 내에서 최고라 불리는 루시퍼보다도 강한 놈이었다.

물론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내게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미카엘이 흘리듯 말을 뱉었다.

“믿을 수 없군….”

정우가 그가 들으라는 식으로 독백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놈이니까.”

루시엘의 상태를 확인한 모두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 아직 끝나지 않았어.”

“……?”

갈라져 보이는 루시엘의 가슴에서 자그마한 빛이 반짝였다.

혹시나 놈이 부활하나 싶어 모든 이의 걸음을 멈추었다.

[두 개의 영혼이 분리되는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니 ‘플레이어’ 분들은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영혼 분리?’

갑자기 눈앞에 안개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몸이 붕 뜨며 허공을 날 수 있었다.

설마 또 스토리 화면을 보여 줄 생각인가?

“…… 후우.”

[가브리엘 봉인 해제 계획에 성공하신 ‘김천재’ 님의 그룹에 최상급 보상이 주어집니다!]

[전원 ‘하늘 걷기(PASSIVE)’ 스킬을 습득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희미하게 내 귓가에 들려왔다.

[열한 번째 라운드에 성공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스토리의 흐름이 말끔하게 정리되며 ‘김천재’ 님의 그룹 사자의 서에 기록됩니다.]

‘아…… 결국 루시엘은 이렇게 기록 된 건가.’

만취한 사람처럼 머리가 몽롱해진다.

두 눈이 천천히 감겨왔다.

단순히 스토리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날아가는 것 같다.

-김천재! 김천재!! 김천재!!!

저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메카니아에서 개인의 스토리 흐름을 볼 때였나. 나만 시간이 멈춰 보이고, 다른 이들은 평상시와 같았던 그 날 말이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왠지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루시엘은 처리한데다가 생명(生命)을 관장하는 가브리엘이 부활할 테니까.

[‘대천사 가브리엘’ 님의 부활이 고지에 왔습니다.]

[모두 신성한 빛을 맞이하여 주십시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부시다고 생가 될 만큼 강력한 빛 나타났다.

몸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귓가에 아련한 소리가 들려왔다.

[성스러운 힘으로 물든 ‘새로운 세계’가 찾아옵니다.]

[천사들이 이 세계의 구원자, 김천재 님을 찬양합니다!]

* *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둡고 습한 방 안에 있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내 옆에 유소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어디 간 거지?

“으….”

내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하자 유소라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어?! 천재 씨! 깨어나셨어요?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 예. 어떻게 된 거죠?”

“뭐가요?”

“제가 잠이…. 들었잖아요? 그 후에는 어떻게 된 건가요.”

“…… 천재 씨, 어디까지 기억하세요?”

어디까지 기억하냐는 질문을 듣자마자 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하지 말라는 듯이 강한 두통이 왔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녀에게 천천히 대답했다.

“으…. 루시엘과…. 싸우고….”

“싸우고?”

“제가 이긴 다음 가브리엘이 부활하고….”

그다음 어떻게 되었더라?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요?”

“…… 기억이 잘 안나요.”

“그럼 이건 기억나세요?”

“어떤 거요?”

유소라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내게 말했다.

“루시퍼가 벨제붑을 흡수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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