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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시체 폭발과 동시에 루시퍼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죽어!

환청인가?

순간 김정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기 사이로 루시퍼의 몸을 움켜쥐고 날아가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 김정재?’

김정재의 영혼이 루시퍼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나는 그 틈에 황금 문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이익-

쿵!

“…… 성공인가.”

[‘김천재’ 님이 봉인의 방 진입에 성공하셨습니다.]

[현 시간부로 지옥 성을 지키는 벨제붑의 힘이 약화됩니다.]

-크아아악!

김정재의 영혼이 사라지며 루시퍼의 팔과 다리가 얼어붙었다.

마법 내성이 높은 대악마의 몸을 단숨에 얼게 할 정도면 굉장한 힘.

‘김정재….’

[‘영웅 김정재’의 영혼에 담긴 증오가 한기 서린 빙산(氷山)을 만들어 루시퍼의 움직임을 막습니다.]

고맙다.

콰지지직!

루시퍼가 암석만 한 자그마한 빙산에 갇혔다. 저 능력이 얼마나 시간을 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천금과 같은 기회다.

내가 전속력으로 모래시계를 향해 달렸다.

모래시계의 상태를 보니 아직 깨지지 않았다.

투명한 모래시계를 두 마리의 드래곤 석상이 맞잡고 있다.

그렇다면 루시퍼 또한 아직 봉인에서 완벽하게 풀려나지 못한 상태.

역시 저기 얼어붙어 있는 놈은 진짜 루시퍼가 아니었다.

봉인되기 전 어디엔가 남겨 놓았던 ‘사념의 조각’ 같은 존재.

내가 남은 시간을 보았다.

[남은 시간: 00:01:41]

“마이클!”

마이클이 달려와 모래시계의 중간을 잡았다. 그가 두 팔에 힘을 주어 모래시계를 뒤집기 시작했다.

“흐아아압!”

생각보다 모래시계가 무거웠는지 마이클이 기합을 넣었다. 마치 고중량 데드리프트를 하는 운동선수처럼 말이다.

키긱. 키기기긱.

모래시계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얼마나 무거웠는지 레벨이 80이 넘는 근육질의 마이클이 버거워할 정도다.

내가 그를 도와주려 모래시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탕!

역시, 손을 살짝 뻗는 순간 튕겨 나갔다. 성스러운 힘으로 봉인되어 있기에 어둠의 힘을 사용하는 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내가 아쉬워하자 마이클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천재 킴, 무리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요우.”

힘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마이클의 얼굴이 붉어졌다.

“…… 알았어.”

키긱. 키기긱.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정우!”

정우가 내 쪽을 슬쩍 보더니 벨제붑을 제치고 달려왔다.

다다다다다!

땅을 차는 소리가 울릴 정도로 빨랐다.

“비- 켜!”

정우가 모래시계에 붙어 같이 통을 뒤집기 시작했다. 벨제붑이 쫓아와 우리를 공격하려 했다.

캉!

가웨인의 대검이 벨제붑을 가로막았다.

탕!

박규환의 총이 벨제붑의 이마를 정확하게 맞추었다.

부웅-

아레스의 창이 콰직! 소리와 함께 벨제붑의 가슴을 찔렀다.

“크아아악!”

벨제붑이 고통에 발버둥쳤다.

키긱. 키기기긱.

정우가 합세하자 모래시계에서 마찰음이 더욱 거세게 들려왔다.

나는 남은 시간을 보며 둘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마이클과 마정우가 서로 합을 맞추듯 동시에 힘을 주어 모래시계의 하단부를 밀었다.

하나-. 둘-. 셋!

쿠궁!

* * * * *

모래시계의 투명한 통이 반쯤 돌아갔다. 내 눈앞에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던 홀로그램 시간이 멈추었다.

[모래시계의 움직임이 멈추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라파엘의 결계가 강화됩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남은 시간을 보니 손이 떨려왔다.

[남은 시간: 00:00:03]

조금만 더 늦었으면 임무에 실패할 뻔했다. 실패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니 정말 다행이었다.

[열한 번째 라운드의 두 번째 스토리 흐름이 끝났습니다.]

[현 시간부로 세 번째 스토리 흐름이 시작됩니다.]

[가브리엘의 봉인을 풀고 천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나는 모래시계를 쳐다보았다.

금빛 날개에 얇은 로브를 걸치고 있는 미모의 대천사가 보였다. 정신을 잃었는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루시퍼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 거지?”

내 독백을 들은 정우가 대답했다.

“저기 갇혀 있잖아.”

그가 빙산에 갇혀있는 루시퍼를 가리켰다.

“아니야, 저건 루시퍼의 혼 중 일부분일 뿐. 본체가 없어.”

“…… 그래?”

“그렇지…. 흐음. 봉인을 풀려면 녀석과 가브리엘을 분리해야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네.”

마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래 속에 숨어 있는 거 아니야?”

“모래 속에?”

“어, 가브리엘하고 모래알만 분리해봐. 그럼 루시퍼의 영혼은 자연스럽게 따로 있게 될 거 아니야?”

루시퍼의 영혼이 굳이 모래 속에 숨어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 계획을 미리 알고 대기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겁을 먹고 숨을 녀석도 아니었다.

“…… 우선 분리하려면 미카엘이 와야 하니 좀 기다려보자.”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루시퍼의 모래시계 속에 봉인되어 있어야 할 녀석의 영혼이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되었으니 미카엘이 금방 도착할 텐데. 내가 답을 만들지 못하면 어떠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겠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이 빌어먹을 새끼들!”

악에 받친 포효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피투성이 벨제붑의 앞으로 박규환과 가웨인이 쓰러져 있었다.

상위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강력한 둘인데, 부상당한 벨제붑에게 저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신화 급 존재인 아레스마저 한쪽 팔이 잘려 나가 창을 제대로 휘두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가 나서려는 순간 정우가 먼저 녀석을 향해 튀어 나갔다.

그가 휘두른 도끼가 벨제붑의 주먹과 맞부딪쳤다.

둘의 오라가 꽈배기처럼 엉키며 진동을 일으켰다.

정우가 놈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또 죽고 싶나 보지?”

“닥치고 모래시계를 원 상태로 돌려놓도록 해라.”

“…… 싫은데?”

벨제붑이 이를 꽉 깨물더니 독기 서린 얼굴로 정우의 도끼를 위로 쳐냈다.

팟!

그대로 다시 맞붙나 싶더니 놈이 신체를 파리로 변신시켜 사방으로 날았다.

정우가 도끼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다. 놈의 움직임을 막아보려 했으나 수가 너무 많았다.

위이이잉-.

벨제붑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니 루시퍼가 얼어붙어 있는 빙산이다. 파리들이 한둘씩 얼음을 뚫고 루시퍼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설마.’

내가 스켈레톤 병사 한 마리를 시켜 떨어진 낫을 주워왔다.

“마정우! 모래시계를 완전히 돌려버려!”

“모래시계를?”

“그래. 가브리엘이 갇혀 있는 곳이 위가 되도록.”

“…… 알았어.”

정우가 마이클과 함께 다시 모래시계를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모든 소환수들을 방안으로 불러 모아 빙산을 둘러쌓다.

내 예상이 맞다면 벨제붑 녀석은.

투득.

루시퍼가 갇혀 있는 빙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투드득.

내가 낫을 강하게 쥐고 휘두를 준비를 했다.

투드드득.

빙산의 틈에서 어두운 오라가 흘러나온다. 김연희와 유소라가 내 옆으로 붙어 같이 싸울 준비를 했다.

우리가 숨을 죽이고 빙산을 지켜보았다.

“…… 역시.”

쾅!

빙산이 깨지며 안에서 루시퍼가 나왔다. 놈이 아까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내었다.

방안에 녀석의 살기가 퍼지며 닭살이 돋았다.

루시퍼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 보았다. 벨제붑과 한 몸이 된 건가? 아니면 그저 힘만 공유 받은 것일까.

얼음에 갇히기 전보다 더욱 강한 오라를 보였다.

“김천재, 끝까지 나를 방해하는구나.”

“…… 칭찬 고맙다.”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당연하지.”

수많은 천사의 어머니라 불리는 가브리엘 구출 대작전.

모를 리가 없다.

“저 모래시계가 얼마나 흘렀다고 생각하나?”

“……”

“삼천 년이다. 삼천 년.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흐르고 있었지.”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래 살았다고 자랑하는 건가?”

“삼천 년 동안 내가 저 안에서 무엇을 했을까?”

“…… 모르겠는데?”

루시퍼가 피식 웃었다.

“후우- 그럴 줄 알았다. 네 녀석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알고 있다.”

“……”

“하지만 네놈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거야. 너희는 나를 너무 얕봤어.”

키긱. 키기긱.

모래시계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두 개로 나뉘어 있는 통의 한쪽 면이 천천히 황금빛 모래알로 차오른다.

[‘용의 모래시계’ 발동]

[지옥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3초에서 멈추어 있던 라파엘의 결계 시간이 다시 움직인다.

이번에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났다.

[남은 시간: 00:00:59]

“아니,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를 얕보지 않았어.”

“……”

“너를 상대할 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으니까.”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잘 알고 있지. 숨겨진 네 힘이 어느 정도인지까지 말이야.”

루시퍼가 오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낮게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봐주지 않도록 하지. 내 진짜 힘까지는 아니지만, 팔 한쪽 정도는 제대로 쓸 수 있으니.”

팟!

루시퍼가 나를 향해 뛰었다.

그 순간 유소라가 자신의 몸에 주사를 놓더니 앞으로 치고 나갔다.

“천재 씨 도울게요!”

팍!

루시퍼의 주먹과 유소라의 발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지금까지 짐 덩이 고구마 같던 그녀가 상상 이상의 힘을 보여 주었다.

무투가처럼 강력한 힘과 기술로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다.

물론 방어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큰 발전이었다.

“정우야, 너는 나서면 안 되는 거 알지?”

“……”

“혹시 우리 중 누군가가 죽더라도 너는 여기를 지키도록 해. 그게 최선이니까.”

“…… 알았다.”

내가 낫을 들고 루시퍼를 향해 뛰었다. 동시에 마이클과 김연희가 합류하여 놈과 맞서 싸웠다.

싸움의 시작은 치열해 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둘씩 쓰러졌다.

진짜 루시퍼에 비하자면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상태지만, 그래도 현재의 우리 힘으로는 이기기 힘들었다.

마왕, 루시퍼를 상대할 핵심 키를 아직 갖지 못했으니까.

부웅-

루시퍼가 크게 휘두른 주먹이 공명을 일으키며 우리를 날려 보냈다.

쾅!

내가 벽에 부딪히며 그대로 쓰러졌다.

쿨럭-.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다른 이들도 나와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스켈레톤 병사 대부분이 박살났다.

박규환과 가웨인, 그리고 아레스는 이미 전투 불능 상태.

나는 입안에 침을 가득 모아 뱉은 후 바로 일어났다.

퇘엣.

“꽤 하네.”

루시퍼가 실소했다.

“다 죽어 가는 놈이 주둥이는 살아있구나.”

“주둥이만 살아있을까?”

“아니면?”

“…… 글쎄.”

느껴진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기운이. 루시퍼 또한 그의 존재를 눈치 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미카엘인가.”

“때마침 네 친구가 도착했네.”

“……”

루시퍼가 두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뱉더니 내게 말했다.

“김천재.”

“왜?”

“너는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

“지금 네 힘으로 모래시계의 봉인을 풀면, 그 후에 벌어진 일은 감당할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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