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지하의 끝에 도착했다.
바포메트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문이 있었다.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여는 자’의 힘 발동]
[루시퍼가 봉인되어 있는 방의 문을 엽니다.]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며 안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망설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공간에 벨제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또 너냐.”
벨제붑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또 나다.”
남은 시간은 십 분 남 짓.
녀석과 싸울 시간은 없다.
그대로 돌진해서 넘어야 한다.
“정우야.”
“…… 알았다.”
정우가 마이클의 등을 툭 쳤다.
“시작하자.”
“…… 알겠어요우.”
철컥.
마이클이 방 천장에 유탄을 발사했다. 소용돌이치는 노란빛이 벽을 치는 순간 크게 터졌다.
쾅!
빛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벨제붑이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유소라의 주사를 맞은 마정우가 도끼의 손잡이를 꽉 쥐더니 놈을 향해 달렸다.
-하아아압!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정우가 벨제붑의 몸을 가로로 썰었다.
샥-
잘려 나간 벨제붑의 상체가 땅에 떨어졌다. 그것도 잠시, 놈의 몸이 파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다시 뭉쳐 모였다.
“하핫! 아쉽군요. 저에게는 그런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정우가 녀석의 머리 위를 보았다.
조금이지만 깎여나간 생명력 게이지가 보였다.
“김천재, 진짜 네 말이 맞네.”
“…… 그렇지. 뻔하거든.”
정우가 나를 보며 피식 웃더니 다시 벨제붑을 향해 달렸다.
이번에는 벨제붑이 마정우의 공격을 한 치 차이로 피하며 반격을 했다.
놈의 손톱이 정우의 이마를 향해 날아왔다.
그 순간.
김연희가 뛰어들어 단검을 휘둘렀다.
“어택브레이커!”
캉!
벨제붑의 손톱이 부러지며 땅에 떨어졌다. 마정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끼로 녀석의 목을 베어냈다.
쉬익-
또다시 벨제붑의 목이 떨어졌다.
다시 파리가 되어 뭉칠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녀석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척하며 벽면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내 목적은 루시퍼의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모래시계를 탈환하는 것뿐이니 말이다.
마정우와 김연희가 벨제붑을 맡았다.
유소라와 마이클이 나를 따라 벽면을 걸었다. 아니, 뛰었다.
남은 시간 내에 모래시계를 마주치려면 이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다다다다-!
마정우와 김연희를 상대하던 벨제붑이 우리의 발걸음을 눈치 챘다.
“어딜 가시나!”
갑자기 사방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벨제붑의 모습으로 변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적어도 열 마리는 되어 보였다.
분열되었다면 그 능력도 여러 개로 분배되었겠지.
“…… 리콜. 아이언 메이든.”
피슉!
공간이 잠시 틀어져 보이더니 내 수하에 있는 소환수들이 동시에 내 앞으로 나타났다.
[‘아이언 메이든’ 시전.]
셀 수 없이 많은 은색의 가시들이 날아오르며 내 앞을 막는 벨제붑의 몸을 덮었다.
“녀석들을 처리해라.”
-키에에엑!
스켈레톤 병사들이 벨제붑을 향해 뛰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몸에 전류까지 흐르니 보통 스켈레톤과는 전혀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강해진 스켈레톤도 녀석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의 목적은 길을 뚫는 것이다.
놈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쿵!
벨제붑의 환영과 내 병사들이 서로 충돌했다. 박규환과 가웨인을 제외한 다른 병사들을 역시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한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상관없다.
지금 녀석들의 목적은 오로지 ‘아이언 메이든’을 위한 대미지 중첩.
“아레스, 너는 나를 호위하도록 해.”
아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거도 좀 들고 있고.”
스켈레톤 한 마리가 앞서 처치한 김정재의 머리통을 아레스에게 넘겨주었다. 괴물로 변한 상태로 가져오느라 꽤 크기가 컸다.
“음? 이건 왜 들고 있으라는 거지?”
“혹시나 해서. 우선 창끝에 끼워서 들고 다니고, 내가 신호하면 다시 돌려줘.”
“…… 우선 알았다.”
아레스가 김정재의 머리통을 창끝에 끼우더니 내 옆으로 붙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벨제붑의 환영 중 몇 마리가 나를 막아보려 했지만 아레스에게 막혔다.
“꺼져!”
내가 길을 막는 수많은 벨제붑 중 한 마리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퍽!
가볍게 찼을 뿐인데 놈의 몸이 파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적은 양의 오라를 분배해서 만든 환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일대일 대결에서는 스켈레톤 병사를 제압할 정도니 아주 약한 것은 아니었다.
다다다다다다!
모래시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도착했다. 앞선 문은 거인도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랬는데.
이 문은 성인 남성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였다.
나는 황금의 문 앞에 서서 천천히 밀기 시작했다.
벨제붑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포효했다.
“안 돼!”
나는 놈을 보며 씨익 웃은 후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끼익. 끼이익. 끼이이익.
문 안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앞서 지독한 악취를 맡아서 그런가? 너무나도 달콤한 향기였다.
나는 조금 더 문 앞으로 다가가 강하게 밀었다. 커다란 바위를 굴리듯 온몸을 써야 움직일 수 있었다.
키이이익!
문을 반쯤 열자 그 안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꺼져라.”
‘……응?’
고개를 드니 루시퍼가 있었다. 놈이 내 명치를 향해 발을 크게 휘둘렀다.
피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
놈의 발끝이 내 명치를 찔러 날렸다. 순간적으로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나는 가볍게 몸을 말아 뒤틀며 착지했다.
탁.
“…… 후우.”
단 한 방에 내 생명력 게이지가 오분의 일 이상 깎였다.
“…… 루시퍼?”
“오랜만이군.”
“……”
“왜 그렇게 놀라는 거지?”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나.
아직 시스템이 정해준 시간이 오 분이나 남아 있는데 루시퍼의 봉인이 풀렸으니 말이다.
나는 낫을 강하게 쥐며 놈에게 말했다.
“어떻게 봉인을 푼 거지?”
“…… 글쎄다.”
“네 힘으로는 봉인을 풀 수 없었을 텐데.”
“그렇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봉인을 풀 수 없었을 거야.”
내가 벨제붑을 보았다. 녀석이 환한 미소로 나를 약 올리듯 보고 있다.
놈이 혀를 날름거리자 정우가 도끼를 휘둘러 몸을 또다시 반 토막 냈다.
쾅!
나는 고개를 저으며 루시퍼의 모습을 보았다.
“벨제붑과 손을 잡은 이유가 뭐지? 너희 둘은 적이 아니었나.”
“…… 네놈은 몰라도 된다. 한낱 인간 주제에 많은 것을 알려 하지 말도록 해.”
“한낱 인간이라….”
고개를 아래에서 위로 올리며 루시퍼의 행색을 보았다.
반짝이는 검은 피부와 날카롭게 솟은 뿔. 그리고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사악한 오라까지 루시퍼와 동일했다.
다만,
내가 의심스러운 것은 단 한 가지.
“…… 네가 이렇게 약했었나?”
“응?”
“마왕 루시퍼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었었냐고.”
“그게 무슨 말이지?”
“오라의 양이 벨제붑과 차이가 거의 없다. 오히려 네 쪽이 더 약해 보이지.”
“…….”
대화를 하던 도중 문득 상황 하나가 추리되었다. 내가 아는 루시퍼라면 곧장 달려들어 우리에게 무력을 행세했을 텐데,
이 상황에서 대화하고 있다?
게다가 같은 편인 벨제붑도 함께 있는데 말이다.
내가 유소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눈치를 보던 그녀가 내게 주사를 놔주었다.
[‘유소라’플레이어가 김천재 님에게 트리플 주사를 주입합니다.]
세 가지 속성의 주사 액체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힘이 넘쳐난다. 생각의 전환이 빨라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낫을 흔들어 루시퍼와의 간격을 재며 그에게 물었다.
“너, 진짜 루시퍼가 아니구나.”
“…… 그렇게 생각하나?”
“응, 확실해. 네가 진짜 루시퍼라면 진즉에 나를 죽이려 덤벼들었을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라.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맞아, 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
“대화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아이언 메이든 발동.”
[‘아이언 메이든’을 발동합니다.]
사방으로 흩어져 벨제붑의 몸에 붙은 은색의 가시들이 반짝였다.
벨제붑의 환영들이 가시를 털어내 보려 몸을 흔들었다.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로 공격을 받아야 할 뿐.
쾅!
굉음과 함께 큰 공명이 방안에 퍼졌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장이 무너져 쏟아질 만큼의 강력한 공명이 일었다.
쿠구구구구-.
굉음 후에 남은 벨제붑은 단 한 마리밖에 없었다.
마정우를 직접 상대하고 있는 본체 말이다.
“크아아악!”
그놈마저도 정우의 공격에 한쪽 팔이 잘려져 나갔다. 파리로 변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
팍!
내가 황금 문 안으로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굳이 녀석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어차피 유소라의 주사기를 맞아 몸이 빨라진 상태에서는 녀석에게 잡힐 리가 없다.
라고 생각했는데 루시퍼가 상상 이상의 속도로 날아와 내 앞을 막았다.
“어딜.”
“……”
약해져도 루시퍼는 역시 루시퍼구나. 내가 낫을 휘둘러 놈의 몸을 노렸다. 녀석이 가볍게 몸을 틀며 왼팔로 내 낫의 날붙이를 잡아냈다.
“김천재, 이 앞으로는 가지 못한다.”
“시…. 체….”
“뭐라고?”
“폭…. 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 시체 폭발. 아레스!”
쉬익-!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아레스의 창이 날아왔다. 루시퍼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오른팔을 뻗어 잡아냈다.
팍.
“겨우 이런 공격으로-”
“널 비키게 만들 수 있지.”
내가 낫의 손잡이를 놓고 뒤로 높이 뛰어올랐다.
[카운트 다운 완료]
[‘시체 폭발’을 시전합니다.]
[‘영웅 김정재’ 1기에 대한 폭발이 이루어집니다.]
[시체의 숨겨진 힘이 워낙 강하니 인근 지역에서 벗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뭔-”
쾅!
* * * * *
미카엘이 ‘지옥 성’ 정상에 도착했다.
라파엘이 만든 결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천사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성 밖으로는 그새 지옥 곳곳에서 몰려온 수많은 악마가 대기하고 있다.
결계가 풀리면 놈들이 안으로 들어와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그 안에 빨리 루시퍼의 봉인을 풀어야 하는데.
막막한 상황이 벌어졌다.
각 층의 수색을 맡은 천사들이 한둘씩 미카엘에게 달려와 보고하기 시작했다.
“미카엘 님, 1층에는 모래시계가 없습니다.”
“2층에도 없습니다.”
“3층에도 없습니다.”
“4층에도….”
미카엘이 크게 호통쳤다.
“발견한 자만 말하도록 해라!”
모두가 서로의 눈치만 볼 뿐, 대답하지 못했다.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조용해지자 그들 사이에서 쭈뼛이 서 있던 천사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미카엘 님.”
“말해라.”
“모래시계는 아마도 이 성의 지하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지하?”
미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와 대화하던 천사가 날개를 천천히 흔들며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예, 김천재와 그 일행이 지하로 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인가?”
“확실합니다.”
“……”
미카엘이 검을 높이 들며 모든 천사가 들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전원 성의 지하로 향한다!”
[남은 시간: 0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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