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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루시퍼와 사탄이 비열한 웃음소리를 남기며 떠났다. 녀석들이 떠나기 전 김정재의 손에 구슬 하나를 구겨 넣어줬다.

나도 처음 보는 주황색의 구슬이었다. 아마도 저 능력을 받아 김정재가 강해진 것 같은데,

저건 과연 무슨 능력일까?

드래곤을 타고 다니며 뛰어난 마법과 검술로 황제처럼 군림하던 놈인데.

정확한 능력은 아무도 모른다.

마지막 라운드라 불린 열여섯 번째 라운드에 도달한 자가 없는데다가 녀석의 진짜 힘은 그곳에서 보여준다고 했었으니까.

김정재가 오한 들린 사람처럼 스스로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고 벌벌 떨었다.

“저…. 저게 뭐지….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나는 그의 옆으로 날아가 독백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적부터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가 갑자기 변한 모습에 놀랐나 보다.

김정재는 땅에 널브러져 있는 할아버지의 가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 가엾은 놈.’

과거 내가 하던 게임에서 보았던 김정재와 너무나도 달랐다.

자신만만하게 게임 속 전 맵을 돌아다니며 플레이어들을 쓰레기처럼 바라보던 녀석이 저렇게 겁을 먹고 있다니.

내가 녀석의 정수리에 침을 한번 뱉은 후,

카악- 퇫!

면상을 발로 걷어찼다. 물론 여느 때와 같이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스토리를 알고 있어 김정재를 피해 진행했지만, 예전에는 녀석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매 라운드 녀석의 횡포와 갑질에 죽어 나가는 플레이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혼자 서글피 울던 김정재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일어났다. 녀석은 무언가를 다짐한 듯 주황 구슬을 갑자기 꿀꺽 삼켰다.

녀석의 능력이 궁금한 나는 조용히 변화를 관찰했다.

“크윽…. 크으으윽….”

뭐지?

갑자기 고통스러워한다. 능력 구슬을 먹으면 오는 반응 중 하나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 또한 앞서 두 개의 구슬을 먹었을 때 경험해 보았으니까.

땅을 뒹굴던 김정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보았다. 외관으로는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녀석의 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무처럼 키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성인이 되었다.

전신이 근육으로 탄탄해지고,

몸에서는 여러 가지 색의 오라가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악마에게 받은 구슬에 저런 힘이 있다니.

‘굉장한데.’

나는 녀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서 저런 변화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으나, 답은 금방 나왔다.

‘…… 모든 오라 증가.’

그것밖에는 답이 없다.

김정재가 먹은 구슬은 사람마다 가진 오라의 자질을 대폭 상승시켜 주는 아이템이었을 것이다. 녀석은 여러 종류의 오라를 전부 품고 있는 특이 체질.

‘다중 오라’를 가지고 있었을 테고, 루시퍼는 그 능력을 개방시켜주는 역할의 구슬을 주었겠지.

나는 내 유추에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잠시.

녀석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확인한 내가 고민에 잠겼다. 저 정도 힘이면 지금의 내가 이길 수 없을 정도다.

김정재가 괜히 벨제붑을 누르고 지옥을 휩쓸 정도의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힘을 확인한 김정재가 갑자기 실소했다.

미쳤나 싶어 독백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정말 또라이가 다 되어 있었다.

“굉장해…. 이게 내 힘이란 말인가….”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오라를 지켜보던 녀석이 갑자기 주먹으로 벽을 쳤다.

쾅! 소리와 함께 벽이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맨주먹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이었다.

“와우!”

놈이 동굴 밖으로 나가 나무에 발차기를 날려 부러뜨려 보고. 커다란 암석에 정권을 날려 박살을 내었다.

‘…… 힘을 확인하는 건가.’

김정재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녀석의 웃음을 끝으로 갑자기 안개 커튼이 쳐졌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 그렇다는 말이지.”

* * * * *

몇 초가 흐르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게임 속이라고 말해야 하나? 하여튼 내가 김정재와 마주하던 때다.

김정재가 나를 향해 다시 말했다.

“나를 죽여다오.”

“…… 무슨 미친 소리야?”

“너라면 죽일 수 있을 거다.”

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노! 너는 지금 죽으면 안 돼.”

“왜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당신이 벨제붑을 죽여야 스토리가 무난하게 흘러가니까 안 됩니다?

당신은 여는 자로서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악마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당신은 축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허허….’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정재가 밉기는 하지만 스토리 진행상 녀석이 살아있는 쪽이 내게 이득이다.

나는 손가락을 올려 입술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 비. 밀.”

김정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장난치지 마라.”

“아니, 나는 너를 죽이고 싶지 않은데 죽여 달라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

“……”

근데 녀석은 왜 내게 죽여달라고 한 것일까?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데다가 상상 이상으로 강한 힘을 가진 놈이 말이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녀석에게 물었다.

“왜 죽여 달라는 건데? 우선 이유나 좀 들어보자.”

“…… 악마가 내 몸에 있다.”

“악마?”

“그래.”

김정재가 상체를 일으켜 세워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었다. 주먹만 한 검은색 크리스탈 조각이 녀석의 심장 부근에 박혀 있다.

“설마….”

“이 조각을 알고 있나?”

모를 리가 없다.

이 게임의 중반부를 넘어온 자라면 모두 알고 있는 물건이다.

악마의 영혼이 들어 있는 크리스탈이자, 대악마로 변환할 수 있는 도구.

“몸에 변화가 왔나?”

“보면 모르겠나?”

하긴, 괴물이 되었는데 내가 너무 늦게 알아챘구나.

녀석의 변화는 즉-,

악마로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지옥의 최강자라 불리는 대악마 중 한 명으로.

“왜 그렇게 된 거지?”

“…… 당했다.”

“누구에게?”

“루시퍼.”

“루시퍼? 녀석은 봉인되어 있을 텐데.”

“…… 맞아.”

“맞아? 근데 어떻게 당했다는 건데.”

김정재가 입을 크게 벌려 불을 뿜자 루시퍼의 잔상이 남았다.

“이게 무엇으로 보이지?”

“…… 루시퍼?”

“그래, 내가 지금 루시퍼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이, 벨제붑이 루시퍼의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었다.”

“그럼 루시퍼가 아닌 거잖아?”

“…… 아니. 그 꼭두각시 인형 안에 루시퍼의 영혼이 들어갔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허허-.

모래시계 밖으로 루시퍼의 영혼이 나왔다는 말인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극히 적은 양의 영혼만이 주입되었다는 것이고.

나는 턱을 쓸며 김정재에게 말했다.

“어둠에 물들었으니 죽여달라. 이 말이지?”

“그렇다.”

“…… 그 어둠의 힘을 사용해서 녀석들과 싸워볼 생각은 없나?”

“없다. 머지않아 내 정신이 날아가 버릴 거야.”

“정신이 날아가?”

“그래, 너와 대화하고 있는 지금도 아까 전 야수 같은 괴물로 다시 변할 것 같거든.”

“……”

김정재는 이미 자신이 죽을 것을 마음먹고 있다. 내가 녀석을 죽이기는 굉장히 쉽다.

아무런 저항이 없으니 그저 목을 베어내고. 다 같이 공격을 퍼부어 생명력을 깎아내면 끝.

나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깎여져 내려가는 이벤트의 남은 시간을 보았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

김정재가 고통스러운 듯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녀석의 가슴에 박혀 있는 검은 크리스탈에서 어두운 오라가 휘몰아치고 있다.

-크하아악!

내가 낫을 굳게 쥐었다.

피차 서로 좋은 결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이 잡혔다.

“…… 김정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크윽…. 녀석들을…. 꼭…. 처리해라….”

내가 녀석의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터벅.

“약속하마. 내가 녀석들을 처리하도록 하지.”

내 낫이 곡선을 그리며 김정재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으면 흠집도 내기 힘들었을 텐데, 너무나도 가벼웠다.

떨어진 목이 꿈틀거렸다.

얼굴은 온화했다.

우리 모두가 김정재에게 폭격을 쏟아내는 전투기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생명력이 좀처럼 깎이지 않았다. 오히려 벨제붑을 상대하는 편이 생명력을 깎기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이다.

김정재가 완벽하게 괴물로 변하기 전에 만나게 되어서.

그리고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우리에게 죽기로 다짐해서.

[‘영웅 김정재’가 김천재 님의 그룹에 의해 소멸하였습니다.]

[변화한 스토리의 흐름이 ‘사자의 서’에 새로 적혀 나갑니다.]

[과거의 영웅이 사라지고 새로운 영웅이 도래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영웅이 도래한다고?

[‘제3의 눈’이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기대합니다.]

마정우가 소리쳤다.

“김천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

내가 고개를 돌려 남은 시간을 보았다.

<라파엘의 결계>

[남은 시간: 00:21:35]

대략 20분.

누구에게는 적다고 말할 수도, 누구에게는 많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가자.”

* * * * *

모래시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의 몸이 대부분 모래에 잠겼다.

루시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벨제붑. 미카엘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지?”

땅에서 그림자가 나풀거리며 대답했다.

“전부 왕좌를 찾아 올라가고 있어.”

“…… 다행이군.”

“다만 문제가 하나 생겼어.”

“문제?”

“그래.”

벨제붑이 양팔을 벌리자 공간이 휘몰아쳐 보이더니 다른 곳을 보여주었다.

김천재와 그의 일행들이 전속력으로 악마 성의 지하를 향해 달리고 있다.

모두가 위를 향해 갈 때,

그들은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설마 이쪽으로 오고 있나?”

벨제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알고?”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모래시계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

“이런 미친! 김정재는 무엇을 하고 있길래 녀석들을 막지 않는 거지?”

“……”

루시퍼가 대답 없는 벨제붑의 그림자를 밟으며 말했다.

“김정재는 뭘 하고 있냐고?”

“…… 죽었다.”

“뭐라고?”

“죽었다고, 녀석들에 의해 죽었어. 멍청한 녀석이 아무런 저항 없이 놈들에게 죽어줬어.”

벨제붑이 또 다른 공간을 열어 쓰러진 김정재를 보여주었다. 루시퍼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자신이 직접 만든 어둠의 크리스탈이 김정재의 정신을 삼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것 같다.

“…… 벨제붑.”

“말해라.”

“네가 직접 가서 녀석들을 막도록 해라.”

“…… 흐음, 나 혼자 녀석들을 막기에는 위험한데 말이야.”

“어차피 미카엘과 라파엘이 없으면 큰 문제는 없지 않나?”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저 김천재라는 놈. 절대 얕보면 안 돼.”

“김천재….”

“너도 녀석에게 한 번 당해봤잖아? 물론 수많은 영혼 파편 중 하나겠지만.”

루시퍼가 모래시계의 겉면을 툭툭 치며 가브리엘을 내려 보았다.

“…… 그렇지. 녀석에게 크게 당했지.”

“루시퍼,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 말해봐.”

벨제붑의 그림자가 여러 개로 분리했다. 그만큼 신체의 개수도 늘어났다.

여러 마리로 늘어난 벨제붑 중 한 명이 루시퍼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 중 하나를 이곳에 두고. 네가 직접 나와 함께 놈들을 막는 거야.”

“……”

“그럼 봉인을 풀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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