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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미카엘의 검이 벨제붑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완벽한 일격이라고 생각한 순간, 벨제붑의 몸이 셀 수 없이 많은 파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캬하하하! 그럼 또 보자고!”

천사들이 날아가는 파리들을 잡아보려 이리저리 검을 휘둘렀다. 우리엘 또한 신성한 빛을 뿜어 녀석을 공격해 보았다.

무의미했다.

무엇이 본체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많은 수의 파리였다.

오라로 감지해보려 했지만, 사방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잡을 수 없었다.

미카엘이 분통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벨제붑….”

내가 미카엘의 검을 땅에서 뽑아 그에게 던져주었다.

“진정해.”

“…… 미안하다, 김천재. 녀석을 속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 중간부터는 당신 말을 이해했으니까.”

벨제붑이 사라지자 어둠이 조금씩 물러나며 주위가 환해졌다. 우리엘의 창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강해진 것 같이 느껴졌다.

아까와 같은 능력을 사용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까지 시야가 달라질 줄이야.

우리 앞으로 루시퍼의 왕좌로 향하는 성이 보였다.

사실 명칭만 ‘악마 성’일 뿐이지 외관은 거대한 해골바가지였다. 지옥이 생기는 날, 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이라던데.

‘뭐….’

게임 속 설정은 운영자 마음이니 크게 여의치 않는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금세 악마 성 앞에 도착했다. 천군들이 우리엘의 지휘하에 사방으로 흩어져 성을 포위했다.

지옥문 속 악마들의 저항이 거세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우리가 모르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 미카엘.”

“말해라.”

“너희 셋이 힘을 합치면 루시퍼에게 대항할 수 있나?”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이렇게 바로 대답할 줄은 몰랐다.

“불가능하다.”

“벨제붑을 상대하는 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우리 쪽이 좀 더 우세하다.”

“…… 오케이.”

벨제붑은 가능하고,

루시퍼는 불가능하다.

이로써 벨제붑과 루시퍼의 힘 차이는 어느 정도 계산이 되었다.

3명의 대천사가 벨제붑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낸다.

그렇다면 루시퍼는 그 이상,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그 끝은 지레짐작이 되었다. 앞서 VR 게임에서 상대해본 루시퍼의 힘을 계산해보면 대충 각이 나온다.

[‘대천사 라파엘’이 정신을 집중합니다.]

[그녀의 힘으로 주변에 결계가 만들어집니다.]

[남은 시간: 00:59:58]

라파엘이 지팡이를 크게 휘둘러 지면에 꽂았다.

쾅!

“시작한다!”

찬란한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주변을 밝게 비추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물러났다.

[현 시간부로 열한 번째 라운드의 두 번째 흐름을 시작합니다.]

[제한 시간 내에 ‘지옥 성’에서 모래시계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이 성을 향해 날아올랐다. 거대한 해골의 눈과 코, 입으로 그들이 진격했다.

우리엘이 좌측 눈으로,

미카엘이 우측 눈으로,

그리고 우리들이 해골의 입을 향해 돌진했다.

다다다다다!

“김연희! 마이클! 더 가까이 붙어!”

뒤처졌던 둘이 속도를 높여 내 뒤로 바짝 붙었다.

파다다닥!

성 안쪽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마이클이 유탄을 쏘아 안을 비추었다.

쾅!

탄이 터지며 번쩍임과 동시에 수백 마리의 가고일이 날아올랐다.

박규환이 땅을 기듯이 빠르게 차고 나가 검을 휘둘렀다.

“일도양단(一刀兩斷).”

샥-

-키에에엑!

단칼에 가고일 여러 마리가 땅에 떨어졌다.

“여기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가고일 밀집 지형을 달렸다.

“지지 마라.”

“알겠습니다!”

가웨인이 박규환의 등을 툭 치며 지나갔다. 서로 미소를 지어 보았다. 마치 사이좋은 라이벌처럼.

“죽지 마라.”

“염병, 너나 죽지 말라고.”

* * * * *

어둠만이 가득한 작은 방안에 황금빛을 뿜는 거대한 모래시계가 있다.

그 뒤로 익숙한 얼굴의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피부에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 남성.

루시퍼.

그가 모래시계의 겉면을 어루만지며 쓴 미소를 지었다.

“…… 아직인가.”

위이이잉-,

파리 한 마리가 모래시계 근처로 날아왔다. 어둠이 블랙홀에 빨려드는 것처럼 모이더니 파리 몸이 터지며 벨제붑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루시퍼!”

“녀석들은?”

“벌써 성안이야.”

“……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벨제붑이 얄미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떻게 하기는. 전부 죽여야지.”

“…… 너 혼자?”

“아니, 네 도움 없이는 불가능해.”

“나는 지금 봉인된 상태다.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해.”

“흐음…. 가브리엘은?”

루시퍼가 손가락으로 모래시계의 하단부를 가리켰다.

“곧 끝날 거야.”

그 안을 보니 정신을 잃은 황금빛 천사, 가브리엘의 몸 위로 모래알이 쏟아지고 있었다.

“녀석만 죽으면 나올 수 있는 거지?”

“그래, 방해하는 놈만 없으면 이따위 모래시계 부수는 건 일도 아니야.”

벨제붑이 손가락을 튕겨 모래시계를 툭툭 쳤다.

“가브리엘이 죽는 것과 미카엘이 이 장소를 찾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빠를까?”

루시퍼가 무표정으로 가브리엘을 내려보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한참 동안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벨제붑이 포기하고 자리를 떠나려 하자,

루시퍼가 입을 뗐다.

“벨제붑.”

“빨리도 대답하네. 왜?”

“미카엘은 가브리엘이 죽기 전에 우리를 찾지 못한다.”

“…… 그럼 됐네.”

“다만.”

“다만?”

“…… 아무래도 김천재라는 인간 녀석이 불안해. 오랫동안 기다려온 우리 계획을 전부 망가트리고 있어.”

“……”

벨제붑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퍼가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땅을 만지며 그에게 말했다.

“벨제붑, 지하 감옥으로 가서 그 녀석을 꺼내라.”

“…… 설마 그놈을 말하는 건가? 단신으로 지옥에 쳐들어왔던….”

루시퍼는 사악한 미소로 입꼬리를 올렸다.

“…… 그래, 그 녀석. 지금쯤이면 어둠에 완벽하게 물들었을 거야.”

* * * * *

안으로 진입할수록 찌릿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깊은 동굴 속처럼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역질이 날 만큼 고약한 악취가 나기도 했는데,

이 정도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익숙해져 버렸다.

가웨인이 검날에 불을 붙여 앞길을 비추어 주었다.

화르륵!

우리들이 그의 뒤를 따르며 달렸다. 아레스가 걸음 속도를 늦추어 대형의 후방으로 가며 내게 말했다.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

“…… 누가?”

“모른다. 하지만 살기로 보아 아군이 아닌 것은 확실해.”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라를 뿜었다. 내게는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있는 놈 같다.

“너 혼자 상대할만한 놈이야?”

“모르지만 명령하면 녀석을 상대해보도록 하지.”

신화 급 존재가 저 정도의 반응을 할 정도면 적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말인데.

“네가 말한 놈과 우리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대로 간다면 금방 따라잡혀.”

“우리만큼 빠르게 뛰고 있다는 말인가?”

“…… 그 이상이지.”

악마 중에 그 정도 실력을 갖춘 놈이 있나? 우리를 따라잡으려면 이동 속도가 엄청나야 할 텐데 말이다.

정우가 속도를 높여 내 옆으로 달리며 말했다.

“내가 손 보고 올까?”

“…… 아니. 너는 이번 라운드의 핵심이야, 절대 빠지면 안 돼.”

“그럼 녀석을 냅두고 그대로 달려?”

“…… 그것도 안 되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들키면 일이 꼬이니까.”

후우-.

내가 손을 흔들며 걸음을 천천히 멈추었다. 모두 숨이 벅찼는지 호흡을 빠르게 몰아쉬었다.

“모두 전투 준비.”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간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 준비 운동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레스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나 혼자 막아도 되는데 말이야.”

“…… 안 돼. 너를 잃을 수도 있잖아.”

“지금 오는 놈이 그만큼 강할까?”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 예감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다.

그 말인즉슨, 지금 우리를 향해 오는 정체 모를 적은 굉장히 강할 확률이 높다는 것.

두두두두두.

땅이 울렸다.

녀석의 달리는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렸다. 아니지, 성안에 울렸다.

우리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놈을 기다렸다. 유소라가 정우와 마이클의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둘의 몸집이 커지며 강력한 버프 효과를 받았다.

“천재 씨도 해드릴까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강해질 수 있지만, 부작용을 생각하니 맞고 싶지 않다. 저 주사를 맞으면 적어도 삼십 분은 술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상태가 되니 말이다.

정우와 마이클은 육체파여서 그런지 나와 반응이 달랐으니….

쿠궁!

갑자기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이제 다들 전장에 익숙해졌는지 자세를 낮추어 흔들림에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후방을 지키던 아레스가 낮게 독백했다.

“…… 왔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물 한 마리가 어둠을 뚫고 달려왔다.

-키에에엑!

“응?”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동물이라기보다는 사람의 형태에 가까웠다. 온몸이 두터운 비늘로 덮여 있는데, 저 날개는 또 뭐지?

덩치가 곰만큼 커다랗다.

온몸이 검은 비늘로 덮여 있다. 쭉 뻗은 두 개의 날개가 마치 용을 연상케 했다. 뱀 같이 갸름하지만, 인간을 닮은 형태의 얼굴.

놈이 앞발을 휘둘러 우리를 위협했다.

부웅-

고개를 숙여 피하자,

쿠구구구구!

손톱이 벽을 긁어 무너뜨렸다.

내가 앞으로 굴러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놈이 크르르르 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마이클과 마정우가 거리를 재며 무기를 겨누었다.

아레스와 가웨인도 양옆으로 붙어 놈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나는 마주하고 있는 정체 모를 생명체를 천천히 둘러보며 탐색했다. 어디선가 느껴 보았던 오라다. 악마의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하지만 사악함이 느껴지는 어두운 힘.

“…… 너구나.”

“크르르르.”

“너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서브 스토리를 피해 다녔는데.”

“크르르르….”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 크르!”

대화를 듣던 마정우가 내게 소리쳤다.

“김천재! 저 새끼 뭔지 알아?!”

“…… 알지.”

“뭔데? 뭐 숨겨진 대악마 중 한 명이냐?”

대악마 중 한 명?

하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라가 보통이 아니니 정우가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앞서 상대한 대악마 수준의 짙고 불길한 오라.

적에게 공포감을 주는 어둠의 힘.

“…… 녀석은 악마가 아니야.”

“뭐?”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야.”

내가 낫을 겨누어 괴물을 겨누었다. 이제 보니 왜 녀석이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

꼬여버린 스토리에서 악마들에게 최후의 저항을 했다는 증거.

나는 드래곤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말을 걸었다.

“…… 다시 만났군. 스스로를 ‘여는 자’라 칭하며 다니는 희대의 영웅. 아니, 악당 불사신 김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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