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136화 (136/215)

136화

[‘불타는 지옥-2’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이게 뭔데?’

지옥에 도착한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황당하리만큼 어이가 없는 선택지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김천재’ 님의 그룹]

[앞으로 진행될 ‘멸망의 땅’ 열한 번째 라운드의 스토리 흐름을 선택해주세요.]

A. 벨제붑이 지옥의 왕이 된다.

B. 루시퍼가 지옥의 왕이 된다.

둘 중 누가 지옥의 왕이 되더라도 처리해야 하는 건 똑같은데?

기가 차서 할 말이 없었다.

모든 화면이 멈춰져 있다.

고개를 살짝 돌려 그룹원들을 보니 다들 나와 같이 당황한 표정이다.

이런 선택지는 본 적이 없어 그들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는데.

‘…… X 됐네.’

나도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을 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이다.

정우가 나를 보며 오른쪽 눈을 깜박거렸다.

껌뻑. 껌뻑.

두 번이다.

‘…… 하긴 루시퍼가 왕이 되는 쪽이 우리에게는 더 나은 흐름이겠지.’

모르는 길보다는 알고 있는 길이 더 가기 쉬우니 말이다.

나는 그를 보며 똑같이 눈을 두 번 깜박거렸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지 B로 가라는 신호.

“…… ”

[선택지- B]

[‘김천재’ 님의 그룹 전원 선택지 B를 선택하셨습니다.]

[‘루시퍼가 지옥의 왕이 된다. (B)’의 흐름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도록 합니다.]

쾅!

폭발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천사와 악마들이 크게 싸우고 있었다. 우리는 빠르게 모여 주위 상황을 살폈다.

루시퍼의 왕좌로 들어가는 거대한 문을 향해 천사들이 진격하고,

악마들이 그들을 막으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악마의 형태로 보아 벨제붑의 부하들이다.

거인족보다도 더욱더 커다란 코끼리와 악어가 어둠의 오라를 뿜으며 천사들에게 맞서 싸웠다.

무장한 장비들을 보니 최소한 S+등급 이상의 아이템들이다.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 상대했던 놈들과는 장비가 차원이 다르다.

놈들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진형을 펼치며 각종 도구를 사용했다.

벽을 높게 쌓아 올리고 그 뒤에 숨어 마법과 활을 사용했다. 그들 중 몇은 인간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대포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메카니아만큼 현대적인 장비는 없다는 것.

라파엘이 크게 소리쳤다.

“지옥문을 넘어라!”

천병들이 동시에 성스러운 오라를 뿜으며 문을 향해 날았다.

거대한 악어가 거목만큼 커다란 도끼를 휘둘러 천사들을 단방에 날려 보냈다.

부웅-

그에 맞먹는 코끼리가 강철로 둘러싸인 두 주먹으로 땅을 내리쳐 파편을 사방으로 쏟아냈다.

쿠궁!

그들의 공격으로 천사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내가 땅을 박차고 나갔다.

“간다!”

다다다다다.

지면을 밟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순식간에 코끼리 밑으로 파고든 내가 악마 시체 하나를 주워 낭심을 향해 던졌다.

부웅-

[시체 폭발]

쾅!

거대 코끼리가 고통에 포효했다.

뿌우우우우-!

마정우가 뒤이어 달려와 검을 크게 휘둘러 코끼리의 코를 잘랐다.

부웅-

팍!

얼마나 육중한 몸을 가졌는지, 그저 코가 떨어졌을 뿐인데 지면이 울렸다.

쿠웅!

마이클이 크게 소리쳤다.

“천사의 찬가!”

그의 외침과 함께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아기 천사들이 빙글빙글 날아다니며 악마들에게 빛가루를 떨어뜨렸다.

하급 악마들이 몸을 바짝 웅크렸다. 성스러운 주문에 정통으로 맞은 거대 코끼리의 생명력이 단숨에 줄어들었다.

이 틈을 놓치지 않은 내가 낫을 크게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심판의 낫’ 발동.]

[생명력이 15% 미만인 적을 단 방에 끝냅니다.]

콰직!

거대 코끼리의 생명력 게이지가 회색으로 변했다. 놈의 몸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나는 넘어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근처에 있는 악마들이 소리쳤다.

-모, 모두 도망가! 깔리면 죽는다!

-이런 X벌, 저 새끼가 설마 김천재냐? 인간 주제에 악마를 사냥한다는 놈!

-으어어어! 지랄하지 말고 빨리 튀어!

거대 코끼리가 뒤로 넘어지며,

콰광!

악마 수십을 깔아뭉갰다. 덕분에 상대해야 할 적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악마를 바라보며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리콜.”

[‘김천재’ 님의 수하에 있는 모든 소환수들을 이곳으로 불러옵니다.]

* * * * *

왕좌의 입구를 지키는 악마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천사들까지 같이 싸우니,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아주 적었다.

일곱 번째 라운드처럼 예상외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니 굉장히 편하다.

모든 적이 쓰러진 것을 확인한 미카엘이 내게 물었다.

“굉장하군.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야.”

“…… 저는 ‘여는 자’라고 했잖아요.”

“여는 자라…. 정말 신께서 보내셨을 만큼 강한 놈이군.”

“이제 놈이라고 하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천재, 김천재.”

“…… 알았다. 김천재.”

내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라파엘이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빠르게 날아와 어깨동무를 했다.

“둘이 화해한 거야?”

미카엘이 그녀의 손을 쳐내며 승을 냈다.

“화해는 무슨!”

“그럼?”

“어찌하여 천사와 인간이 화해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김천재와 사이가 나쁘지 않아.”

“그러셔? 회랑에서는 그렇게 씹어 먹으려 하더니.”

“…… 그런 적 없다.”

히죽히죽 웃는 라파엘과는 다르게 미카엘의 표정이 썩어 있다. 하긴 자존심 높은 대천사 중에서도 까다롭다고 소문난 놈이니. 전장에서 농담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겠지.

지옥의 문 앞에 도착한 우리엘이 소리쳤다.

“라파엘! 치료 부탁한다!”

라파엘이 뱀 모양 지팡이를 허공에 휘두르자, 도넛 모양으로 넓게 퍼진 그녀의 빛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감싸 안았다.

따듯하다.

생명력 게이지가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신체뿐만 아니라 갑주에 난 자그마한 흠집도 전부 사라졌다.

내가 놀라움에 탄식을 내뱉었다.

“허….”

굉장하다.

천사들이 모두 회복하자 라파엘이 도넛 모양 빛을 사그라트렸다.

우리엘이 창을 다시 한번 머리 위로 높게 들더니 모두가 들리도록 소리쳤다.

“문을 열어라!”

[열한 번째 스토리의 두 번째 흐름이 시작됩니다.]

[‘루시퍼의 왕좌’로 가는 길이 열리며 지옥의 악마들이 더욱 강해집니다.]

[플레이어 전원 지옥문이 열릴 때까지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엘과 그의 병사들이 모두 지옥문에 달라붙어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무거웠는지 한쪽 문에 수백 명이 붙어서야 눈곱만큼씩 움직일 수 있었다.

미카엘과 라파엘이 우리엘을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이야기를 엿들었다.

“라파엘.”

“응?”

“저 녀석, 우리가 없는 동안 혼자서 게이트를 지켰다고 하더군.”

“…… 우리엘 혼자? 다른 천사장들은?”

“메타트론과 함께 회랑에 남았다고 들었어. 녀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공간, 지옥문이 열린 틈으로 악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봐온 악마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였다. 온몸에 가시 같은 뿔이 달려 있었다. 생김새는 똑같은데, 그저 뿔의 수만 늘어났다.

-키야아아악!

악마 한 마리에 천사 여럿이 뒹굴었다. 안쪽에 있는 놈들은 바깥 악마들과 힘이 다르다.

우리엘이 창끝에 빛나는 오라를 집중시키더니 지옥문 안쪽을 향해 던졌다.

“빛이여!”

쿠르릉-.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우리엘의 창이 지옥문 안쪽에서 터졌다.

콰광!

정면으로 보았으면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빛이었다. 우리 모두가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손으로 가렸는데도 앞이 환할 정도다.

진동하며 주위를 비추던 우리엘의 창이 점차 빛을 잃었다. 그녀가 지옥문을 힘차게 밀며 소리쳤다.

“왕좌로 진입한다!”

천사들이 지옥문 안쪽을 향해 날았다. 미카엘 또한 그를 따라 안으로 향했다.

라파엘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부터는 조심하도록 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 * * * *

[*지옥문 안쪽에는 돌아오는 길이 없으니 준비를 완전하게 마친 후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열한 번째 라운드의 위험함을 알리는 일종의 경고문.

준비는 이미 되었다. 그저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될 뿐.

“가자.”

내 걸음에 맞춰 모두가 움직였다.

지옥문 안으로 들어오자 더욱 어두운 하늘이 우리를 반겼다.

땅이 정체 모를 검은 액체로 덮여 있다. 피비린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악마의 혈액인 것 같은데, 아마도 루시퍼의 부활에 사용된 재료로부터 나온 것 같다.

우리엘이 다시 한번 창을 흔들어 주변을 비추었다.

땅인 줄 알고 밟고 있던 바닥이 전부 몬스터의 시체였다. 앞서 우리엘이 처리한 뿔 달린 악마와는 달랐다.

지옥이 아닌 이계에서 데려온 괴물들, 고블린이나 버그베어 따위의 하급 몬스터였다.

‘제물이 확실하군.’

천사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루시퍼의 왕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정우, 너랑 소라 씨는 내 뒤에 바짝 붙어 움직이도록 해. 여차하면 바로 튀어 나가야 하니까.”

“…… 알았어.”

“김연희, 너는 마이클을 데리고 후방을 지키도록 하고.”

김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전방을 향해 걸을수록 더욱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엘의 창에서 뿜어내는 빛이 점점 작아졌다.

마치 촛불의 불씨가 천천히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

조금만 더 걸으면 루시퍼의 왕좌로 들어가는 성에 도착하는데,

미카엘이 걸음을 멈추고 이동 중단 명령을 내렸다.

“‘여는 자’여. 정말로 모래시계를 부술 수 있겠는가?”

“…… 예.”

“자네가 실패하면 우리 모두 사라지게 된다네.”

“저도 사라지는데 거짓말을 하겠어요?”

“……”

미카엘의 눈빛에서 불안함이 보였다.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믿고 안 믿고는 그의 선택이다.

라파엘이 지팡이를 붕붕 휘두르며 미카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 문득 생각이 들었다.”

“뭐가?”

“혹시라도 여기 있는 인간들이, 악마와 손을 잡고 우리를 함정에 몰아넣은 것은 아닌가 하고.”

“…… 뭐?”

그의 의문을 듣는 순간 짜증이 솟아올랐다. 피곤해서 그런 탓인지 분노가 참아지지 않았다.

“저기, 거 말이 좀 거시기하네요?”

“…… 거시기?”

“예. 타이탄 몸속에 봉인된 당신을 구해주고, 지옥까지 와서 라파엘의 봉인까지 풀어줬는데. 뭐? 함정에 몰아넣는다고요?”

“……”

“무슨 미친 말을 하는 겁니까?”

내가 갑자기 역정을 내자, 라파엘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대화를 끊었다.

“그만. 미카엘, 김천재. 둘 다 그만하도록 해.”

“……”

“아니, 대화를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지. 미카엘, 이제 와서 믿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할 건데?”

미카엘이 검을 뽑아 들었다.

“네 말대로 끝을 본다. 그리고 앞으로 가도록 한다.”

그와 눈동자를 마주친 내가 낫을 높이 치켜들었다.

“나와 끝을 본다고?”

“네가 루시퍼의 부하라면.”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증명해 보도록 해라. 네가 루시퍼의 부하가 아니라는 것을.”

[‘대천사 미카엘’님이 성스러운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합니다.]

녀석이 미쳤다고 생각한 나는 낫에 오라를 집중해 막을 준비를 했다.

아레스와 가웨인, 그리고 박규환이 녀석을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

천군들도 긴장을 유지하며 우리의 움직임을 살폈다.

“미카엘, 정말 나와 싸우고 싶은 건가?”

“…… 아니. 김천재, 다시 한번 말하마. 나는. 네가. 루시퍼의 부하라면. 끝을 본다고 했다.”

“…… 내가 루시퍼의 부하라면 끝을 본다고?”

“그래.”

나와 싸우고 싶지는 않은데,

루시퍼의 부하라면 끝을 본다라.

미카엘이 내 등 뒤를 힐끗 쳐다보더니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올렸다.

“어둠은 빛에 의해 사라진다.”

“……?”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내 등 뒤를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우리엘이 만든 빛에 의해 만들어진 내 그림자뿐.

“내가 만든 빛은 깊은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가져올 것이다.”

“……”

“어둠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어둠. 이 검으로 벌을 주도록 하지.”

“……”

그런 건가.

어둠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어둠.

나는 낫을 내리고 두 팔을 벌렸다.

“와라.”

마정우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당황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미카엘을 쳐다보았다.

부웅-

성스러운 검이 허공을 갈랐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쳐다보았다. 사람의 팔뚝만큼 두꺼운 칼날이

-쉬익

내 머리 옆을 지나,

쾅!

땅에 박혔다.

-키에에에엑!

등 뒤에서 악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림자에 숨어있던 벨제붑이 손을 휘젓고 있었다.

“빌어먹을 미카엘!”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