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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아포칼립스-134화 (134/215)

134화

“…… 그래서. 그 이후에는 루시퍼를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지?”

“그래. 근데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네 생각이고. 그럼 지금 네 목표는 루시퍼를 찾는 건가?”

“아니.”

“그럼?”

“우선 많은 강자를 잡아먹고, 루시퍼에게 싸워 이길 힘을 갖는 거야.”

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루시퍼의 강함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힘의 높낮이를 알 정도면 노효만도 보통 놈은 아니구나.’

대형 몬스터도 혼자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보다 더욱 강해질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대화를 마친 내가 그에게 물었다.

“노효만, 네 계획은 절대 성공하지 못해.”

“그건 해 봐야 안다.”

“…… 네 말대로라면 나도 잡아먹어야 하는데, 가능할 것 같아?”

노효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불가능한 것 같군.”

“거짓말은 안 하네?”

“진정한 군인은 거짓말 따위 하지 않는다.”

“옘병. 그럼 네가 지금까지 김준철을 속여 온 건 뭔데?”

“……”

그가 김준철을 미워하는 마음은 알 것 같다. 부족한 머리로 특수 부대에서 지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겠는가?

그의 상관인 김준철에게서 적잖은 갈굼을 당했을 테고,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라면 알고 있을 법한 스트레스다.

“됐고, 죽기 전에 할 말은 없나?”

“…… 살려주는 게 아니었나?”

“당연히 아니지. 그저 필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야.”

“허허….”

“잘 생각해봐, 나는 살려준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어.”

노효만의 눈빛이 바뀌었다. 나를 원망하고 증오하며 날카롭게 서 있던 눈매가, 천천히 내려앉으며 부드러워졌다.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쿵.

“…… 김천재, 이번 단 한 번만 살려주면 안 되겠나? 나는 꼭 해야 할 임무가 있어.”

“너라면 살려주겠어?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데.”

“그, 그건 루시퍼를 잡기 위한 과정이야.”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된다는 건가?”

“……”

“그리고 너를 지금 살려준다면 후에 네가 나를 다시 공격할 텐데, 내가 미쳤다고 그런 행동을 하겠어?”

그의 머릿속에는 선과 악 따위는 없었다. 그저 루시퍼라는 목표를 처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할 뿐.

“약속하지. 이제부터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몬스터만을 상대하며 강해지도록 하마.”

“못 믿어.”

“나는 약속한 건 꼭 지키는 남자다.”

“근데 메카니아에서 그런 행동을 했어? 몰래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아닌 척 김준철에게 보고했던데.”

“거짓말과 약속은 다르다.”

“약속을 거짓말로 하면 그것도 안 지키겠지.”

내 대답에 녀석의 입이 굳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아레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신호를 받은 아레스가 노효만의 목 위에 창날을 슬쩍 올려놓았다.

“부탁이야.”

“부탁은 신에게 하도록 해.”

“제발 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해줘.”

“……”

대답을 잠시 망설이던 내가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그에 맞춰 아레스가 창을 휘둘러 노효만의 목을 베어냈다.

스윽-.

가볍게 휘둘러진 창날에 핏물이 적셔졌다. 이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노효만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쿵.

내가 녀석을 내려보며 담배를 한 개비 물었다.

개조 좀비가 되어 몸에서 썩은 내를 풍기는 것도 뭣 같은데, 역겹게 느껴지는 썩은 피비린내까지 방안을 가득 채웠다.

“후우….”

[‘김천재’ 플레이어가 메인 스토리의 주요 NPC를 처치하였습니다.]

[전체 서버 ‘사자의 서’에 김천재님의 스토리 흐름이 기록됩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지금부터 바뀌는 흐름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됩니다.]

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시스템 창을 보았다. 내가 바꾼 스토리를 따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따라온다는 이야기였다.

기분이 묘하다.

한 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이 세상을 바꾸는 듯한 느낌이다.

[‘작전 과장 노효만은 개새끼!’ 임무에 성공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김천재’ 님에게 숨겨진 임무 완수에 대한 특전이 지급됩니다.]

[시스템 메시지]

[‘진실에 한 걸음 가까워진 자!’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11’ 달성]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 * * * *

담배를 다 태울 때쯤 마정우와 리나가 내 방을 찾아왔다. 그들 또한 다른 개조 좀비를 상대했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검은 피를 뒤집어쓰고 썩은 내를 풍겼다.

마정우가 재채기를 하며 짜증을 냈다.

-에취!

“아오! 내가 간 방에는 좀비 새끼들이 셋이나 있었어. X 같네, 스벌!”

리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내 방도야! 내 방은 네 마리나 있었다고. 봐, 내 치마 좀비 피에 다 젖은 거 보여?”

나는 둘을 보며 씨익 웃었다.

“둘 다 수고했어.”

다다다다다!

많은 수의 인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스켈레톤 병사들이 한둘씩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몸에서 치직!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피가 타며 연기가 났다.

녀석들도 꽤 많은 좀비를 처리했나 보다. 스켈레톤 병사들이 전부 도착하자 그 뒤로 박규환과 가웨인이 왔다.

병력들을 통솔하느라 제일 뒤에서 온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칭찬을 해준 후 경매장 밖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더 있어봤자 시간 낭비. 나머지 일은 대경성의 시장에게 맡기면 된다.

경매장 밖으로 나오자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그 앞으로 서 있었다.

내가 줄지어 놓은 악마 소환수들에 막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서 생긴 줄이다.

나는 소환수에게 명령을 내려 길을 트고, 그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이 안에는 개조 좀비들이 습격해서 아직 아수라장입니다. 정리되면 다시 오도록 하세요.”

-뭐?! 개조 좀비가 이곳에 나타났다고?

-허? 아까 그 시스템 메시지가 정말인가? 사자의 서 내용이 바뀌었다면서 뭐라고 하던데.

-그, 그럼 저 사람이 이 게임의 스토리를 바꾼 김천재인가, 하는 놈이야?

다들 못 믿는 듯한 눈치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리나가 괜히 다른 플레이어의 어깨를 강하게 치며 말했다.

“저 사람이 김천재야.”

‘쓸데없는 소리를….’

대경성에서 벗어난 나는 리나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뭘?”

“열 번째 라운드에 갈 건가?”

“…… 그룹이 모여지면.”

“그럼 내가 제안 하나 하지. 지금 다섯 번째 라운드로 가면 한국인 플레이어 중 우리와 함께했던 드루이드가 한 명 있어.”

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루이드?”

“그래, 우리 이름을 대면 바로 반응하는 여자가 있을 거야. 그 사람하고 같이 다시 라운드를 진행해서 열 번째 라운드로 오도록 해.”

“…… 내가 왜?”

“강력한 그룹. 후에 우리가 루시퍼를 상대하게 될 때, 너를 도울 강력한 동료가 될 사람이니까.”

나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한 후 자리를 떠났다. 이제 그룹을 잃은 리나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그녀의 손에 달렸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말을 따르는 편이 제일 좋은 계획이겠지만….

* * * * *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온 나는 김준철을 찾아갔다.

그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달해준 후 노효만이 계획한 일들을 말해 주었다.

“…… 그렇군요. 작전 과장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나머지 이야기는 직접 듣도록 하시죠. 노효만, 들어와라.”

개조 좀비로 변한 노효만이 벙커 내부로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김준철 앞에 섰다.

백색소음마저 없는 벙커 안 작은 방에 우리 셋이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지퍼를 여는 모션을 취했다.

[‘작전과장 노효만’의 음소거 모드가 풀립니다.]

[현 시간부로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김준철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정말 노효만인가?”

내가 노효만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김준철 소령이 하는 모든 질문에 진실을 말하도록 해라.”

명령이 떨어지는 동시에 놈이 대답했다.

“노효만입니다….”

“김천재 씨가 말하는 모든 일이 사실인가?”

노효만이 대답하지 않으려 입을 꽉 다물었다. 하지만 소환주인 내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결국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며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김준철이 눈시울을 붉혔다.

“작전 과장!”

“…… 예.”

“지금까지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했나?”

“…… 맞습니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 예.”

김준철이 이를 꽉 깨물며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알았다. 그동안 내 밑에서 일하느라 수고했다.”

“……”

“그. 리. 고. 자네가 겪은 과거의 일들로 인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마음 졸이며 살았을지 이해한다.”

“……?!”

“내가 자네의 모든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겠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을 것이야.”

노효만이 고개를 들어 김준철을 보았다. 자신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와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들었다.

“나 또한 자네와 같이 소위, 중위, 대위 시절을 겪었다네.”

“……”

“그때 상관으로부터 겪은 수모와 부조리들을 떠올려보면 자네의 행동들도 이해가 돼.”

“……”

“내가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김준철이 각을 잡고 서더니 노효만을 향해 경례했다.

“단! 결! 그동안 내 밑에서 고생하느라 수고했다. 다음 생에는 나 같은 상관 말고 좋은 사람을 만나도록 해라.”

노효만이 손을 떨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내가 허락한 대화는 오직 김준철이 한 질문에 대한 대답.

허용 범위 안에서 말을 하려니 입이 쉽사리 벌려지지 않을 것이다.

“노효만 이제부터 대화에-”

다시 명령해서 대화의 제한을 풀려는 순간,

노효만이 갑자기 경례 구호를 외치며 대답했다.

“단! 결! 아닙니다!”

[아닙니다.]

노효만이 김준철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다. 그의 한마디에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벌겋게 변한 노효만의 눈동자가 김준철을 또렷이 보고 있다.

김준철이 그의 경례를 받고 손을 내리자,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System Error Code:69]

[접근이 거부되었습니다.]

[시스템 에러로 인해 ‘김천재’ 님의 소환수 중 1명이 취소됩니다.]

내 수하에 들어온 개조 좀비 노효만의 몸이 갑자기 땅에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소환 취소 명령을 내린 적도 없는데 강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 김천재 씨.”

김준철이 나를 바라보았다.

“예.”

나는 또한 그를 보았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사망한 노효만 대위와 대화를 할 수 있었군요.”

“…… 아닙니다.”

그는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씁쓸했다. 갑작스러운 에러로 성장형 소환수를 잃게 되었으니 말이다.

김준철이 등을 돌리더니 내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다음 작전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예. 저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또 돌아오십니까?”

내가 문 바깥쪽으로 등을 돌리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정확한 날을 기약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오래 걸립니까?”

“아마도요.”

“…… 알겠습니다. 그럼 그 전에 천재 씨가 부탁하신 일들을 마무리 짓도록 하지요.”

나는 긍정의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벙커 밖으로 향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차가운 복도를 걸으며 나오는 길.

내 머리 위로 시스템 메시지가 하나 나타났다.

[시스템 에러에 대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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