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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달칵.

나는 저장이 완료된 녹음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노효만이 쓴 미소를 짓더니 내게 물었다.

“녹음해 봤자다.”

“응?”

“너는 이곳에서 죽을 테니까.”

“…… 그래?”

어느새 일어난 아레스가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내게 물었다.

“목표물인가?”

“…… 아니, 기다려.”

노효만이 아레스를 보며 웃었다.

“김천재, 저 녀석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

“절대 아닐걸. 내가 이곳까지 올라오며 ‘여는 자’라 칭하는 자들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알고 있나?”

“……”

“최소 백 명이야. 백. 명.”

100명.

개조 좀비는 플레이어를 먹고 그 힘을 키운다. 백여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 그것도 대경성에 올 정도로 단련된 자들을 먹었다면 그 힘이 굉장히 커졌을 텐데,

오라가 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 노효만.”

“말해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묻도록 하지. 오 박사가 인체 개조를 시도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개조를 시도한 이유?”

내 질문에 노효만이 멈추었다. 그가 눈알을 굴렸다. 대답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가 당연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내가 강함을 원하니까.”

“너를 강하게 해주려고 개조 연구를 했다는 건가?”

“…… 정확하게는 군인들을 개조해서 괴물들을 없애려고 한 연구지.”

그렇다.

군인들을 개조하여 괴물들에게 맞서기 위한 힘을 갖기 위해 만들었다.

취지는 좋았으나 방향이 어긋났다.

괴물을 잡기 위해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노효만의 모습이 정작 인류를 구원할 영웅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No’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란 점점 커지는 것. 결국 저 개조 좀비가 후에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

노효만이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죽어라, 김천재.”

다다다다다!

아레스가 창을 휘둘러 놈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창끝이 이마를 찌르기 바로 직전, 노효만이 아레스의 창을 잡고 비틀어 땅에 내던졌다.

쿵!

아레스가 땅을 굴렀다.

신화 급 존재가 이리 쉽게 제압당하다니. 역시 완성된 개조 좀비는 무시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다른 능력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힘에서는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옛 시대의 무술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맨손으로 무기를 든 상대를 제압하는 그런 장면이 있지 않은가?

그것과 마찬가지로 힘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나는 쓰러진 아레스를 향해 소리쳤다.

“아레스! 전력을 다해 싸워라.”

아레스가 터진 입술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 알았다.”

전투는 길지 않았다. 몇 번의 격이 오고 간 후에 둘 중 하나가 땅에 쓰러져 있었다. 큰 타격을 입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결과의 승패는 확실했다.

“크하하하! 김천재, 이 녀석은 아무래도 상대가 안 되는데. 저번처럼 네 친구들을 떼거리로 한 번 데려와 보시지?”

승자는 노효만.

빠른 움직임과 회피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아레스를 제압했다.

동체 시력이 뛰어난 복싱선수가 일반인을 상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놈이 비열한 표정으로 아레스의 가슴을 강하게 밟았다.

“크허억!”

아레스가 신음을 흘렸다. 노효만이 시선을 돌려 아레스의 생명력 게이지를 보았다.

“김천재. 네 친구, 곧 있으면 죽겠는데?”

“……”

나는 대답 없이 둘을 지켜보았다.

조금 전 둘의 전투를 생각하며 공략법을 만드는 중이다.

‘…… 능력 흡수라.’

놈은 경매장에 있던 많은 플레이어를 흡수한 상태. 덕분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스킬을 사용했다.

불, 물, 바람, 대지.

마법사가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마법을 자신의 주먹에 인챈트하여 사용하고, 암살자의 급소 노리기 스킬과 전사의 단단해지기 능력을 갖췄다.

타 직업의 주요 스킬만을 종합해놓은 말 그대로 사기급 몸. 그 누가 덤비더라도 일 대 일의 대결로는 이길 수 없다.

“노효만, 역시 넌 괴물이 맞았어.”

“괴물이라…. 그래, 이제 나는 괴물이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힘을 가졌으니 말이야.”

“…… 그렇지. 근데 그거 알고 있나?”

“뭘?”

“나는 괴물 사냥 전문가라는 거.”

내가 땅에 떨어진 돌 파편 하나를 주워 녀석에게 던졌다. 노효만이 가볍게 손을 저어 막아냈다.

콰직.

“이게 무슨!”

노효만이 내게 소리치는 순간순간 아레스의 창이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팍!

아레스가 씨익 웃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완전하게 충전된 생명력 게이지가 보였다.

잠시 대화하는 동안, 아레스의 패시브 스킬인 ‘끝없는 전투’가 발동하여 체력을 완벽하게 충전시켰다.

노효만이 가슴에 박힌 창을 굳게 쥐었다.

“어, 어떻게. 생명력이-”

“멍청한 놈.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지.”

아레스가 주먹으로 노효만의 정강이를 강하게 쳤다.

팍!

녀석의 중심이 무너지며 쓰러졌다. 아레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을 무차별로 휘둘러 노효만을 찔러댔다.

기세를 잡은 아레스의 찌르는 속도가 굉장했다. 부웅- 소리가 한 번만 들렸는데, 눈에는 열 번 이상의 격이 날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노효만이 팔을 엑스자로 들어 공격을 막았다. 모든 공격이 치명타로 판정되는 아레스의 창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노효만의 몸에 수십 개의 상처가 생겼다.

“크아아!”

“아까 기세등등하던데? 덤벼봐, 이 새끼야!”

콰직! 콰직! 콰직!

노효만의 생명력 게이지가 조금씩 깎여 나간다. NPC는 보스로 취급되지 않기에 게이지가 붉은색 단 한 칸이었다.

노효만이 비참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골목길에서 불량배에게 잡혀 삥 뜯기는 회사원처럼 말이다.

화르륵!

놈의 한쪽 주먹에 붉은 오라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더니 화염이 일었다.

콰지지직.

또 다른 주먹에 푸른빛이 맴돌더니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며 얼어붙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레스의 공격을 막아보려는 것 같은데, 불과 얼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나?

바보 같은 놈.

아무리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저렇게 되는 것이다.

아레스가 노효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았다. 양팔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찢겼다.

마지막 일격을 남긴 아레스가 내게 물었다.

“마무리해도 되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끝내.”

적으로 판명이 난 이상 자비란 없다.

그저 없애야 할 대상 중 한 명일 뿐.

아레스가 창을 머리 위로 높게 들었다.

부웅-

창끝이 반짝였다.

노효만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

[시스템 메시지]

[새로운 스토리 발견]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주요 NPC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작전 과장 노효만’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을 발동시켜 숨겨진 스토리 영상을 재현합니다.]

* * * * *

눈앞에 하얀 안개 커튼이 쳐졌다.

나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스토리 화면을 기다렸다.

알고 싶지 않은 놈의 스토리를 보게 되니 관심이 전혀 안 갔다.

‘후우.’

담배나 한 대 피울까 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물건이 잡히지 않았다.

‘꿈인데 한 대만 피게 해주지….’

촤르륵-.

안개 커튼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누가 보아도 운동장이다.

전부 소위 계급장을 달고 연병장에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임관 후 자대 배치를 하는 날인 것 같다.

굉장히 젊어 보이는 노효만이 동기로 보이는 자들과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노효만! 너는 어디로 가냐?”

“나? 나는 다행히 후방으로 배치됐어. 원래 가게 되었던 곳은 인가가 꽉 차서 옮겨졌다던데.”

“후방? 어딘데?”

“아직 부대명은 못 들었어. 나는 따로 차량이 배차되어서 이동한다고 하던데.”

“너만 차가 따로 배차된다고?! 너 무슨 빽 있냐?”

“빽은 무슨. 우리 집 가난해서 내가 중학교 때부터 알바한 거 너도 알잖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대 배치에 관한 대화였다.

그럼 노효만은 도깨비 부대로 가게 될지 몰랐던 건가? 특수 부대에는 지원해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부사관도 아니고 장교가 저런 식으로 부대에 배치되다니.

‘…… 혹시 관심 병사 같은 건가?’

노효만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동기에게 말했다.

“인사과장님에게 대충 들어보니 엄청 편한 부대에 갈 것 같아. 후방인데다가 부대원 숫자도 적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럼 관리하기 엄청 편하겠네. 후방이니까 작전 훈련도 적을 것이고. 어차피 임관 1년은 보병 부대로 가는 거니까 특별한 일도 없겠지.”

“그렇지! 캬…. 인생 폈다.”

처음 알았다.

‘육사 출신은 임관하고 첫해에 보병 부대로 가는구나.’

저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효만은 자신이 꿀 빨러 가는 줄 알고 있었다.

죽고 싶다고 느껴질 정도로 힘든 훈련을 하는 공수 부대로 들어가는지는 모르고 말이다.

노효만의 동기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웃었다.

곧이어 버스들이 줄지어 연병장 안으로 들어왔다.

동기들이 한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두 시간 정도 흐르자, 줄지어 서 있던 군인들이 전부 사라졌다.

오직 노효만 혼자 덩그러니 연병장에 남았다.

언제쯤 데리러 오나?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쭈그려 앉았다.

내가 빠르게 날아가 녀석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부웅-

내 발이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관통했다. 진짜로 때린 건 아니었지만 속이 시원하다.

노효만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고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굳세 보이려는 표정만 짓던 녀석이 이럴 줄이야,

의외의 모습이었다.

“찐따 새끼. 야, 우냐? 울어?”

들릴 리는 없지만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다. 아니, 놀리고 싶다.

쿠르릉- 쿠릉- 쿠릉!

‘응?’

갑자기 멀리서 연병장으로 달려오는 차 한 대가 보였다. 흔히 대대에서 왕고들이 타고 다니는 랩토나 차량이었다.

쿠릉!

노효만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벌떡 일어났다. 환희에 찬 얼굴이었다.

“어?! 드디어 왔나!”

랩토나 차량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연병장 정중앙에 멈추었다.

그 안에서 김준철이 고개를 내밀었다.

“자네가 노효만인가?”

“소위 노! 효! 만!”

“타라, 늦어서 미안하다.”

노효만이 차량을 향해 뛰어오며 다시 안개 커튼이 쳐졌다.

시스템이 내게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다음 화면을 기다리는 동안 눈을 감고 명상을 취했다.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은 이 때뿐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뱉자, 다음 장면이 시작되었다.

“노효만!”

김준철이 큰 소리를 내었다.

눈을 떠보니 그의 집무실 안 이었다. 노효만의 어깨를 보니 중위 견장이 달려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노효만이 고개를 떨구고 김준철의 눈치를 보고 있다. 주위를 보니 물자 창고처럼 보이는데, 중위 시절에는 군수과에서 일했었나 보다.

“노효만, 왜 자꾸 나를 실망하게 하는 건가?”

“…… 죄송합니다.”

“언제까지 죄송하기만 할 거야? 자네 작전 수행 중에도 물자가 사라지면 죄송하다고 말할 건가?”

“……”

B22

“이번이 마지막 기회네. 부탁이니 더는 나를 더 이상 실망하게 하지 말게!”

쾅!

김준철이 문을 강하게 닫고 나갔다. 텅 빈 창고 안에 덩그러니 남은 노효만이 한숨을 쏟아냈다.

“시발…. 그깟 손 소독제 좀 중고 마켓에 팔았다고 이 지랄을 떨고….”

응?

군수물자를 중고 마켓에 팔았다는 건가. 정말 관심 병사 수준의 간부였다.

특수 부대에서 저 짓을 하고 있다니, 이번 일을 눈감아준 김준철도 참 대단했다.

노효만이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뗄레레레레.

달칵.

-누구십니까.

“사, 삼촌. 저예요 효만이.”

-어, 효만아!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그럼요. 저기 삼촌,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한데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될까요?”

-…… 말해봐.

노효만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마치 히어로물 영화에 나오는 악당 같은 표정이 되었다.

“제가 부대에 문제가 좀 생겨서요. 삼촌 친구한테 말해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 무슨 일인데?

“제가 도둑놈으로 오해받을 일이 생겨서, 헌병대가 이 부대를 한 번 점거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수화기 너머에 있는 자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그가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효만아.

“예.”

-이번이 마지막이다. 더는 그 부대에서 문제 일으키지 말도록 해라.

“…… 알겠어요. 고마워요, 삼촌!”

그의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노효만은 비열한 표정으로 크큭대며 웃었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녀석의 사악함은 이때부터 시작된 게 틀림없었다.

[NPC ‘노효만’의 과거를 계속해서 시청하시겠습니까?]

[YES / NO]

아니,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오른쪽 홀로그램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또 다른 시스템 화면이 나타났다.

[‘노효만’의 과거를 시청하시면 멸망의 땅이 시작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선택에 신중을 가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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