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리콜.”
내 한마디에 수많은 병력이 경매장 앞에 모였다.
강철로 만들어진 스켈레톤 병사들이 경매장 앞에 열을 맞춰 줄지어 섰고,
그 뒤로 지옥에서 데려온 악마 병사들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대경성 내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술렁였다.
한 소대 정도도 아니고, 최소 백 이상은 되어 보이는 병사들이 마을을 점령했으니, 겁을 먹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소환수 전부 하나하나가 보통 놈들이 아니니깐.
경매장 빌딩을 둘러싼 나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안에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 악마 부대는 밖을 지키도록 하고, 스켈레톤 병사와 부관급은 전부 나를 따라오도록 한다.”
부관급이라고만 했는데 아레스, 가웨인, 그리고 박규환이 알아서 잘 따라왔다. 시스템이 어느 정도는 내 생각을 그들에게 전달해주나 보다.
끼이이이익.
문을 열자 안에서 냉풍이 흘러나왔다. 아까 그렇게 큰 화재가 있었는데, 에어컨으로 열기를 빼낸 건가?
“박규환, 너는 개조 좀비를 상대해본 적 있지?”
“그렇습니다.”
“그때 상대한 녀석보다 열 배 정도 강한 놈이 이 건물 안에 있다.”
“…… ”
“녀석을 찾아서 처리하도록 해. 가웨인, 너는 개조 좀비의 모습을 모르니 박규환과 함께 움직이도록 하고.”
가웨인이 부정적인 뜻을 전달하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 녀석과 말입니까?”
“명령이다.”
“…… 알겠습니다.”
가웨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명령이라는데 자기가 어떻게 할 것인가. 주인의 말은 절대적인 것을.
신호와 함께 우리 모두가 경매장 안을 향해 뛰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은 모두 흩어져서 찾아야 한다.
해골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경매장의 모든 문을 열기 시작했다.
VIP룸 또한 거침없이 열어버렸다.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할 것 없이 대소변 칸도 전부 강제로 열었다.
쾅!
-끼야아아악!
좀비가 아닌 자들은 무시하고 진행한다. 하나씩 상대하다 보면 시간이 더욱 지체될 테니 말이다.
우리가 경매장에 들어온 지 오 분도 안 되어 좀비 한 마리를 찾았다.
1층에서 2층으로 넘어가는 비상계단 앞에 숨어 있었다.
내가 거리를 두고 놈의 행색을 보았다. 분명 개조 좀비라면 몸의 색상이 검은색이어야 하는데, 이 녀석은 보라색이다.
‘…… X 바이러스?’
모습을 보니 도깨비 부대원 중 한 명인 것 같은데, 나는 그를 보며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안녕하세요.”
“크르르르르-.”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크르르….”
역시 소통은 불가능한 건가. 개조 좀비는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고 들었는데,
이 녀석은 절대 개조된 몸이 아닌 것 같다. 그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가 되었을 뿐.
다다다다다다!
박규환이 달려왔다.
“일격필살-”
콰직!
놈을 단방에 반으로 갈라버렸다.
피가 뿜어져 나와 땅을 적셨다. 내 뺨에도 두어 방울 튀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닦아내리며 박규환에게 말했다.
“강해졌구나.”
“덕분입니다.”
원하던 목표물은 아니었지만 박규환의 실력이 아주 만족스럽다.
그 누가 덤비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패기를 뿜었다.
나는 박규환에게 칭찬을 해준 후 다시 돌려보냈다.
“다음 층으로 가자.”
1층 수색을 마친 스켈레톤 병사들이 다음 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웨인과 박규환도 주변의 움직임을 살피며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위층을 향해 걷던 리나가 내 병사들을 보며 물었다.
“저건 시간제한이 없는 건가?”
“그렇지. 네크로맨서가 소환을 취소하거나 죽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아.”
“호오라…. 그럼 적을 죽인 후 되살려내서 사용할 수 있겠네?”
“…… 원한다면.”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타 직업을 가진 자들이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보면 항상 하는 생각이니깐.
강자를 제압하고,
녀석을 내 밑으로 둔다.
“그럼 플레이어 사냥을 해서 데리고 다니는 편이 낫지 않나? 각 직업군을 전부 데리고 다닐 수 있을 텐데.”
“…… 지금 내가 사용하는 놈들보다 강하다면 그렇게 하겠지.”
“플레이어가 몬스터보다 약하다는 건가?”
“아직까지는. 그리고 나는 명분 없이 다른 플레이어를 죽일 생각이 없어.”“명분이라….”
리나가 씨익 웃었다.
나는 대화를 끊은 후 위층으로 이동했다. 필요 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한시라도 빨리 노효만을 제압해서 ‘폐허가 된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다음 라운드를 위해서.’
쿠궁!
건물의 위쪽에서 폭발이 일었다. 충격은 전달되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꽤나 높은 층 같았다.
나는 정우와 리나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박규환, 가웨인. 너희 둘은 스켈레톤 병사들과 함께 천천히 수색하며 올라오도록. 개미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돼.”
-알겠습니다.
“아레스, 너는 나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한다.”
-예!
띵- 동.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우리는 이 건물의 최상층 버튼을 눌렀다. 평소에는 VIP를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가 누를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지금은 가능했다.
그 말인즉슨, VIP층의 주인이 없거나 사망했다는 말.
“…… 마정우. 전투는 내 소환수들이 할 테니 너는 내 몸을 지켜줘.”
“알았다. 리콜은 몇 번이나 가능하지?”
“하루에 세 번이니까 아직 두 번 남았어.”
“…… 넉넉하네.”
띵- 동.
고속 엘리베이터라서 그런지 순식간에 빌딩 옥상에 도착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천재.”
“…… 피 냄새군.”
조심스럽게 VIP룸 안으로 들어갔다. 초호화 호텔이 생각날 정도로 화려한 가구와 장식들이 있었다.
바닥을 보니 부상을 당한 자가 걸어서 안쪽으로 향한 것 같다.
한두 방울씩 떨어진 핏방울이 카펫 위에 묻어 있었다.
아직 핏자국이 굳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쫓으면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우리는 속도를 높여 VIP실 안으로 걸었다. 특수 부대원들이 사주 경계를 하는 것처럼 서로가 다른 방향을 보았다.
“아레스, 앞장서도록.”
“알겠다.”
아레스가 긴 창을 앞세워 전방을 맡았다. 로비로 보이는 장소에 도착하자 세 개의 방이 보였다. 전부 문이 닫혀있었다. 바닥을 보았지만 핏자국이 이어져 있는 곳은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코에 오라를 집중해 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어느 방향에서 피 냄새가 더 흘러나오는지를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다.
킁. 킁.
‘…… 모르겠다.’
세 개의 방, 전부 피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짙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향기였다.
나는 세 개의 방 중 중간에 서서 리나에게 말했다.
“리나, 당신이 좌측을 맡도록 해.”
“따로따로 움직이자는 말이야?”
“무섭나?”
“…… 아니.”
“정우야, 너는 오른쪽을 맡아야겠다.”
정우가 단검을 굳게 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나는 중간으로 가볼게.”
“괜찮겠냐? 너 지금 장비도 없잖아.”
“없는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지.”
“나는 전사니깐 단검만 들어도 강해.”
“…… 나도 리콜 있으니 적들에게 당할 일은 없을 거야. 아레스도 있는데 뭐가 문제겠냐.”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조심하고.”
“네가 더 조심해야지. 로브 하나 걸치고 왔으니.”
“나는 몸이 갑옷이야. 어이, 마법사. 너는 진짜 혼자 괜찮아?”
리나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아까는 기습을 당해서 안 좋은 꼴을 보여줬는데, 이래봬도 10라운드 마법사야.”
* * * * *
쾅!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밖이 보이는 커다란 창문과 소파, 그리고 침대가 있었다.
나는 아레스를 앞세워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 아레스, 전투 준비.”
내가 허리를 숙여 싸울 준비를 했다. 창문을 가득 메운 피로 물든 손바닥 자국. 누군가가 이곳에서 나가려고 거세게 저항한 흔적이었다.
천천히 안을 향해 걷던 아레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녀석이 창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긋더니 내게 물었다.
“이 안에 적이 있는데, 어디인지를 모르겠군.”
분명히 좀비의 썩은 내와 불길한 오라가 느껴진다. 다만 행방을 모르겠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침대와 소파는 텅 비어 있었다.
가구나 다른 물건도 없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혹시?’
저번에 만난 개조 좀비가 천장을 기어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 고개를 빠르게 들어 천장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백색의 시멘트만이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
“…… 여기구나.”
내가 손가락으로 아레스의 밑을 가리켰다. 방안을 전부 덮고 있는 카펫. 그 밑에서 오라가 강하게 느껴졌다.
내 신호를 받은 아레스가 창을 크게 휘둘러 카펫을 찍어 내렸다.
콰직!
그 안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크흑!
갑자기 카펫이 위로 붕 뜨며 아레스가 날아갔다. 밑에서 커다란 생명체가 이불을 걷듯 카펫을 옆으로 던졌다.
“푸하! 내가 여기 숨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에나멜 소재처럼 반짝이는 검은 피부에 뿔테 안경, 그리고 군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스포츠 컷.
“…… 노효만.”
작전 과장 노효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이거 우리들의 영웅 김천재가 아니신가?”
“인간이기를 정말 포기한 건가.”
“인간이기를 포기하다니? 그럼 내가 악마라도 된다는 말인가?”
“…… 아니, 짐승이라고 해야겠지. 본능에만 충실한 동물이 되었으니깐.”
녀석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본능에만 충실하다니?”
“전부 알고 왔다. 너, 오 박사에게 몸을 개조당했지?”
“……”
“좀비에게 감염된 몬스터의 혈액을 투여받았을 테고.”
“……”
“내 말이 맞았다면 너는 지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먹고 싶을 거야. 그 말인즉슨,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많은 인간을 잡아먹었겠지.”
“…… 빙고.”
노효만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이 악마만큼 사악하게 느껴졌다.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기운이 느껴진다.
“김준철에게는 뭐라고 말할 생각이지?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김준철? 푸하하! 녀석에게 뭐라고 말하기는. 전부 죽여야지.”
“뭐?”
“내가 그 새끼한테 당한 게 얼만데, 이제부터 하나씩 갚도록 해야지.”
“……”
노효만이 두 주먹을 강하게 쥐더니 양손에 오라를 모아 땅을 가격했다.
쾅!
지면이 갈라지며 건물을 크게 흔들었다. 녀석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행동, 동네 양아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봤나? 이게 바로 오 박사님이 연구를 끝내신 개조 바이러스의 힘이다.”
“……”
“대형 몬스터의 힘과 중형 몬스터의 민첩성. 그리고 소형 몬스터의 유연성 DNA를 내 몸에 주입했지.”
“……”
“지금의 나는 최강이다. 그런 내가 겨우 김준철의 말을 듣겠나?”
조용히 노효만의 이야기를 듣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묻고 싶었던 이야기를 자기 스스로 전부 했기 때문이다.
나는 로브 주머니에 있는 녹음기를 꺼내어 그에게 보여 주었다.
달칵.
[‘녹음’ 완료]
“뭐, 뭐야 그건?”
“노효만, 스스로 네 죄를 말해주어서 고맙다. 덕분에 증거를 쉽게 확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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