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나는 아레스와 정우를 데리고 박물관 밖으로 달렸다.
작전 과장의 신체 개조가 완료되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겨우 서브 NPC가 스토리의 흐름을 변경했다는 말도 이해되지 않았다.
콰광!
또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군인들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저쪽은….”
“김천재, 저기 경매장 아니냐?”
“어. 여기서 높은 건물은 저거밖에 없으니….”
경매장이 공격을 받은 건가?
그럼 작전 과장의 개조 완료 메시지는 왜 내게 온 것일까? 이곳은 전세계의 플레이어들이 모일 수 있는 글로벌 서버.
겨우 나 하나 때문에 이렇게 큰 사건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 가자, 정우야.”
“잠깐, 장비가 이런데 전투 장소에 가려고?”
“없어도 돼. 어차피 우리보다 강한 놈은 이 게임 안에 없어.”
“……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냐.”
“뭘?”
“우리는 레벨이 높은 거지 피케이 전문가는 아니잖아.”
“……”
“옛날에도 대회에서 우승한 이유가 레벨하고 아이템 빨로 밀어 붙인 거지, 솔직히 전문 피케이 꾼한테는 이기기 힘들어.”
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누가 오더라도 이 녀석이 있으니깐.”
내가 아레스의 등허리를 툭 치며 말했다. 정우가 그를 스윽 둘러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속력으로 달려가자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경매장 빌딩이 보였다. 하부층에만 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건물의 상부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아이스 볼트!
-워터 스플래시!
-프로즌 스퀘어!
각국에서 모인 마법사들이 경매장 건물을 향해 수(水)속성과 빙(氷)속성 마법을 난사했다.
불길이 얼마나 거셌는지 두 가지의 마법 전부 금세 증발되어 사라졌다.
-안에 불 마법사가 있는 것 같다. 모두 조심하도록 해!
-아니, 어떤 새끼가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에에에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도로에 울렸다.
도깨비 마스크를 쓴 군인들이 소방차 세 대를 끌고 와, 큰 호스로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마법사들도 스킬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을 도왔다.
모두의 노력에도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화염이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졌다. 대경성을 방문한 해외 플레이어들의 염려가 깊어졌다.
이곳이 무너진다면 경매장에서만 나오는 특수한 재료나 아이템을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전사와 마법사 클래스 직업을 가진 자들은 성장의 한계가 생기고, 특정 라운드에서 정체되어 버리는 악몽이 시작될 것이다.
경매장을 지켜보던 내가 조용히 아레스를 불렀다.
“아레스, 저 불 좀 처리할 수 있겠어?”
“…… 맡겨주겠나?”
“그래.”
아레스가 몸에서 푸른 오라를 뿜어냈다. 그의 오라가 눈동자에 집중되더니 경매장을 훑기 시작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녀석의 움직임을 보았다.
한참 동안 1층과 2층 사이를 보던 아레스가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팟!
그의 붉은 망토가 흩날렸다.
플레이어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비켜 길을 열어주었다. 단숨에 경매장 안으로 진입한 아레스가 크게 소리쳤다.
“네 이놈!”
쾅!
불길이 다시 한번 높게 치솟아 올랐다. 안에 있는 누군가와의 대결을 펼친 것 같은데, 결과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굉음이 멎고 얼마 되지 않아 아레스가 건물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창끝에 붉은 머리의 여성이 꽂혀 있었다.
마법사 클래스 최상위 칭호를 받아야지만 입을 수 있는 ‘현자의 로브’ 복장으로 보아 플레이어가 확실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아레스가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불길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내 앞까지 도착한 그는 창끝에 꽂힌 마법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처리했다.”
“…… 잘했어.”
마법사의 머리 위를 보니 아직 생명력 게이지가 끝나지 않았다. 군인과 플레이어들이 내 근처에 모여 아우성을 쳤다.
나는 도깨비 가면을 쓴 자 중 한 명을 불러 주위를 통제할 것을 부탁했다.
신원을 밝히자 군인들이 신속하게 사방으로 퍼져 플레이어들을 막았다.
-모두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법사의 목에 단검을 겨누며 물었다.
“경매장에 불을 지른 이유가 뭐지?”
“……”
대답이 없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보았다.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다.
“다시 한번 묻겠다. 이번이 마지막 질문이니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경매장에 불을 지른 이유를 말해라.”
“……”
“죽고 싶은가 보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피가 흐르는 복부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너 김천재지?”
“…… 나를 알고 있나?”
“그래. 나는 너와 함께 열 번째 라운드에 도달한 플레이어 중 한 명이야.”
“…… 어?”
“너와 함께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 점프했다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한국 플레이어 중에는 분명 마법사 클래스를 가진 자는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나와 함께 열 번째 라운드로 갔다고?”
“그래, 네 친구는 나를 알고 있어. 저기 있는 저 덩치 큰 흰 수염 남자.”
붉은 마법사가 마정우를 가리켰다. 정우가 그녀를 알고 있다는 듯 가까이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심까.”
“당신, 나 알고 있지?”
“…… 알고 있지. 근데 마법사인 줄은 몰랐는걸. 그때는 검을 들고 싸우지 않았었나?”
“인챈트 파이어, 나는 마검사야.”
* * * * *
나는 주위를 진정시킨 후, 마법사를 데리고 자리를 이동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용하는 공공시설, 경매장에 불을 지른 짓은 게임 내에서 중범죄에 해당하는 큰일이다.
군인에게 그대로 잡혔으면 시스템이 만든 감옥에서 한 달 동안 체류해야 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사로잡혔으면 매질을 당해 죽었을 것이다.
“…… 그래서 경매장에 불을 지른 게 아니라, 너는 정체 모를 적하고 싸우고 있었다?”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니! 정체 모를 적이 아니라, NPC하고 싸웠다고.”
“NPC?”
“그 뭐냐, 이름이 기억 안 나는데 군인 중에 얼굴 넙데데하고 키 작은 안경잡이 있잖아.”
“…… 노효만을 말하는 건가?”
“맞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대 현자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마법사가 겨우 보조 NPC와 그렇게 큰 대결을 했다니.
설마 나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작전 과장이 개조된 상태로 보이는 건가?
“…… 강하디?”
“강…. 한 것 같은데? 내 주문에도 별다른 타격이 없는 것 같았어.”
“너를 공격한 이유는 뭐지?”
“나도 몰라! 경매에 참여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덤벼들었어.”
“갑자기 덤벼들었다고?”
“어. 무슨 미친 개새끼 마냥 갑자기 덤벼드는데 와…. 누가 보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줄 알겠다니까.”
바이러스에 감염.
퍼즐 조각이 한둘씩 모여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듯 내 생각이 정리되었다.
결국 작전 과장 녀석이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여 좀비가 되었다.
오 박사와 녀석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메인 스토리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 찾아왔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기는 하지만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는데.
“…… 후우. 그래서 녀석은 어떻게 됐고?”
“모르지. 싸우던 도중 저기 저, 네 소환수가 나를 공격했으니까.”
“…… 그럼 녀석은 아직 경매장 안에 있는 건가?”
“그렇겠지?”
나는 턱을 괴고 잠시 고민했다.
내 실력으로 녀석에게 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지옥에서도 활약할 만큼 강력한 스켈레톤 군단을 가진데다가 가웨인과 박규환, 그리고 아레스라는 강한 동료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작전과장과의 싸움이 망설여졌다. 오늘 아침에 ‘폐허가 된 마을’에서 보고 온 운세가 너무나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표정이 굳자 마정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천재.”
“응?”
“녀석은 내가 처리하고 올까?”
“…… 안 돼. 너 혼자서는 너무 위험해.”
“왜? 이 정도 아이템으로도 개조 좀비 한 마리쯤은 가볍게 제압할 수 있어.”
“한 마리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 응?”
나는 마법사에게 물었다.
“노효만 외에 다른 놈은 없었나?”
“…… 아마 있을 거야.”
“그렇지? 오 박사 녀석이 공개적으로 개조를 시작하면 분명 다섯 이상의 놈을 동시에 진행할 거거든.”
“다섯인지는 모르겠고, 근처에서 놈과 비슷한 오라를 뿜는 놈이 감지되긴 했었어.”
“근처? 어디?”
“…… 경매장의 위쪽.”
경매장의 위쪽?
그렇다는 목표는 확실했다. 경매장 최상층에 있는 VIP 룸을 공격할 생각인가.
“네 이름이 뭐지?”
“내 이름?”
“그래.”
“…… 리나라고 불러줘.”
“알았다. 내 이름은 알고 있지?”
“당연하지, 너는 김천재. 저쪽은 마정우. 모를 리가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룹은?”
“없어.”
“그럼 혼자 행동 중인 건가?”
“어, 있었는데 없어졌거든.”
“…… 무슨 말인지 알겠어.”
“왜, 너희 그룹에 넣어주게?”
내가 단번에 거절했다.
“아니.”
그녀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많이 부족한가?”
“그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 그룹이 꽉 차서 그래.”
“아….”
김연희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이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라운드에서 굉장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있으면 무조건 득이 될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웨폰 브레이커’ 와 ‘아머 브레이커’.
그 어느 마법보다 큰 도움이 될 거다.
나는 다 피운 담배를 땅에 버리며 리나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경매장에 개조 좀비 녀석을 잡으러 가려 하는데, 같이 할래?”
그녀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영광이지. 근데…. 내가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아서 말이야.”
아레스에게 당한 상처가 깊었는지, 복부가 피로 흠뻑 젖었다.
그녀를 확인한 정우가 로브 주머니에서 ‘회복 캡슐’ 하나를 꺼내어 건넸다.
하긴, 마이클이 있으니 회복 캡슐을 사용할 틈이 없었겠지.
“아껴둔 건데, 당신 주는 거야.”
마정우의 호의에 리나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귀한 거 아니야? 상점에도 안 파는 물건인데.”
“됐으니깐 먹고 빨리 회복해. 우린 시간이 없어서 빨리 움직여야 해.”
“……”
리나가 회복 캡슐을 단숨에 꿀꺽 삼켰다. 그녀의 머리 위로 루비색 빛이 날아다니며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나는 둘을 보며 생각했다.
마정우, 저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구나. 아니라면 절대로 저 캡슐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김연희가 죽기 일보 직전일 때도 꺼내지 않은 물건이니깐.
나는 정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가 나를 힐끔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왜 웃냐?”
“그냥, 자 이제 준비됐으면 경매장으로 가자. 늦으면 놈들이 도망갈 수도 있어.”
“…… 근데 우리 셋으로 개조 좀비 다섯을 상대할 수 있으려나?”
“쉽지. 어이 리나, 혼자서 아까 그 개조 좀비 처리할 수 있지?”
회복을 마친 리나가 옷을 털며 일어나 내게 대답했다.
“두 놈도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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