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불타는 검이 마몬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뒤에는 가웨인이 있었다.
진즉에 죽일 수 있었지만 기다려줬다. 대악마들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필요했으니깐.
머리를 잃은 마몬의 몸이 날갯짓하여 날아올랐다. 가웨인이 같이 따라 점프를 뛰어 놈의 몸을 향해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샥-
몸이 두 동강이 나며 지면에 떨어졌다. 마몬의 능력으로 가웨인에게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력의 차이가 다르니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웨인이 마몬의 머리를 대검으로 내려찍었다.
쾅!
녀석의 생명력이 회색으로 바뀌며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스템 메시지]
[일곱 번째 라운드의 세 번째 보스 ‘탐욕의 마몬’ 레이드에 성공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보스 단독 처치로 인해 특별 보상이 ‘김천재’ 님에게 지급됩니다.]
[*보상: 1,000,000제니]
“어?!”
기존의 보상은 5,000 제니가 아니었던가. 어째서 이렇게 큰 금액이 들어온 걸까?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보상의 금액이 너무나도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 뭐 어때.’
많이 받으면 좋지.
[‘대악마 사냥꾼’ 칭호를 부여받습니다.]
[악마 저항력이 +30% 증가합니다.]
[증가한 악마 저항력에 비례하여 받는 대미지가 감소합니다.]
이로써 루시퍼의 공격을 받아도 한 방에 죽지 않는 몸을 갖게 되었다.
악마를 상대로 싸운다면 전사 계열 직업에 버금가는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다.
[마몬의 공격을 받은 ‘불타는 성전’ 서쪽에 성스러운 결계가 만들어집니다.]
“오!”
갑자기 불타는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투명한 결계가 넓어지며 악마들을 관통했다.
결계에 스친 마몬의 부하들이 원재료가 되어 땅에 쏟아져 내렸다.
스톤 골렘은 흙이 되고.
스틸 골렘은 큐브 모양의 강철 덩어리가 되었다.
내 목표는 골드 골렘과 실버 골렘. 놈들은 원형의 작은 구슬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소환수들을 대피시키려 했다. 악마들이 소멸하는 힘이라면 내 언데드 병사들도 큰 타격이 있을 터.
“…… 음?”
소환수들이 멀쩡했다.
신성한 결계 안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스템에 오류가 있는 것인지 원래부터 이런 행동이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땡잡았네.’
나는 스켈레톤 병사들을 시켜 땅에 떨어진 금구슬과 은구슬을 모았다.
그 수가 정확히 백 개였다.
금구슬 오십 개, 은구슬 오십 개.
“모두 구슬을 먹어라.”
내 명령에 스켈레톤 병사들이 구슬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하면 따로 보관하지 않아도 됐다.
구슬이 하나씩 있을 때는 가볍지만, 전부 뭉치면 무게가 꽤 되니 최적의 방법이었다.
마몬 처리를 끝낸 나는 전 병력을 북쪽으로 보냈다.
‘이제는….’
한조 녀석을 찾아갈 때다.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벌은 확실하게 주어야겠다.
이 죄는 죽음으로도 끝내지 못할 것이다.
* * * * *
마몬의 처치 소식을 들은 한조가 얕은 웃음을 흘렸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해일처럼 몰려오는 마몬의 병력을 막지 않고 성전 안으로 향했다.
사무라이들이 그를 따라 이동했다.
“미카엘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예!
일본 플레이어들이 빠른 걸음으로 성전 안을 향해 달렸다. 저 정도 속도면 걸음 소리가 울릴 법도 한데, 소음이 전혀 없었다.
짚으로 만들어진 저 신발이 특수한 능력을 내는 것 같았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성전 안쪽에 도착한 그들은 거침없이 문을 지나 ‘사자의 방’으로 입장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 흩어져.”
한조의 속삭임에 사무라이 플레이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몸을 감추었다.
그는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 뒤, 좌, 우.
어느 곳을 보아도 대천사 미카엘과 봉인된 라파엘. 그리고 그들의 앞에 줄지어 있는 천사상만이 있었다.
한조가 천천히 좌측 허리에 있는 칼을 빼내더니 앞을 향해 걸어갔다.
걸음이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고양이가 생각날 정도로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라파엘의 상태를 확인한 한조가 등에 메여 있는 붕대를 풀어 부러진 뿔을 꺼내었다. 일곱 번째 라운드 초반에 부러뜨렸다는 사탄의 뿔이었다.
그가 뿔을 들고 천천히 라파엘을 향해 걸었다. 미카엘이 그를 슬쩍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너는 누구지?”
“……”
“네가 왜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거냐?”
한조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악마가 떠오를 정도로 비열해 보였다.
“이게 뭔지 알고 있나?”
“…… 벨제붑의 뿔이 아닌가.”
“알고 있구나.”
“모를 리가 있나, 녀석과 싸움을 몇 번이나 했는데.”
“그럼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도 알고 있겠네?”
미카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 알 것 같군.”
“지금 너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고, 나는 너를 공격할 수 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나?”
“…… 알고 있지.”
“그래?”
“그래. 저 친구도 알고 있잖아.”
미카엘이 턱짓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마이클이 천사상 뒤에서 유탄 발사기를 조준하고 있었다.
“갓뎀. 스시 보이.”
쾅!
소총의 소리가 아니었다.
포탄이 발사되는 굉음이다.
빛나는 원형의 구가 피할 수 없을 정도의 고속으로 날아가 한조의 몸에 명중했다. 포탄이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어둠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치유의 마법진’이 발동합니다.]
쾅!
굉음과 함께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어 한조의 발밑으로 주문진이 그려지며 강렬한 빛을 뿜었다.
“크으으으으으-.”
한조가 손을 들어올려 눈을 가렸다. 악마였다면 한순간에 소멸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 말인즉슨,
그는 아직 언데드 혹은 악마 종족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말.
[치유의 마법진 효과로 인해 ‘한조’ 님의 생명력이 천천히 회복됩니다.]
한조가 들고 있는 뿔에서 어둠의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며 뒤엉켰다.
‘치유의 마법진’ 발동 시간이 끝나자 한조가 마이클을 향해 뛰었다.
다다다다다다-!
“이 깜둥이 새끼가!”
마이클이 소총을 버리고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깜둥이? Shit….”
은빛 군복을 입은 마이클이 나이프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한조를 기다렸다.
유소라가 갑자기 튀어나와 마이클의 팔뚝에 노란색 주사기를 꽂았다.
[‘마이클’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마이클 지면 안 돼!”
“맡겨주세요우.”
평소의 마이클이 아니었다. 든든함이 느껴지는 군인의 깊이 있는 목소리였다.
“이 년은 또 뭐야!”
캉!
한조 검이 마이클의 나이프에 막혔다. 서로 힘을 겨루며 밀어내기 시작했다. 덩치만 보면 마이클이 쉽게 제압할 것 같지만, 능력치 면에서는 한조 쪽이 조금 더 앞섰나 보다.
마이클의 뒤꿈치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뻐킹 재패니스.”
“이 초코렛 새끼. 김천재 옆에서 꿀만 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제법이구나.”
“…… 초코렛?”
마이클이 나이프에 힘을 빼며 몸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렸다.
유소라의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굉장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격투기 선수의 백스핀 블로우 각도로 날아간 주먹이 한조의 콧등을 때렸다.
팍!
예상치 못한 공격에 한조가 피하지 못했다. 속도라면 자신이 있던 놈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내 초코렛 펀치가 어떻습니까아?”
한조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더니 검을 한 자루 더 뽑았다.
“…… 장난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스윽-.
근처를 둘러싼 사무라이 플레이어들이 도검으로 마이클을 겨누었다.
그들에게 포위된 마이클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유소라가 겁먹은 표정으로 마이클 뒤에 숨어 소리쳤다.
“다, 당신들 전부 천재 씨랑 등을 돌릴 생각이에요?!”
한조가 손등으로 코피를 닦아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
“등을 돌려? 나는 처음부터 놈과 손을 잡은 적 없어.”
“이번 라운드에는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적의 말을 믿나? 믿었다면 그건 그쪽 잘못이지. 여기는 전장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거야.”
유소라가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다른 나라 플레이어들을 전부 배신하고 그쪽만 살아남겠다는 거예요? 한시가 다급한 이 상황에?”
“…… 그래. 어차피 마지막 보스인 리바이어던은 없다. 남은 시간은 라파엘의 봉인이 풀릴 때까지 이곳에서 천사의 부름으로 버티면 될 테고.”
“당신들 정말 더럽군요. 다 같이 살 수 있는데 굳이-”
“아니, 다 같이 살 방법은 없어. 어차피 이 게임의 끝은 종말인 것을 모두 알고 있잖아?”
“……”
“김천재 그 녀석도 결국 루시퍼에게 패하게 돼 있어. 너도 알걸? 이 게임의 끝은 멸망이라는 것을.”
* * * * *
한조의 마지막 대답을 들은 내가 동상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무라이 플레이어들이 흠칫 놀라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했다.
마이클을 조준하던 검날의 방향이 내 쪽으로 바뀌었다.
한조가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눈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숨어 있었나.”
“…… 다들 들었죠? 저 녀석 계획을.”
내 음성이 방에 울려 퍼지자 곳곳에 숨어 있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한조에게 당한 중국 측 플레이어와 우리 한국 플레이어들이었다.
일본 플레이어의 배신을 믿지 않았던 몇몇 한국 플레이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정말로 저 녀석들이 배신했다니…. 완전 미친놈들 아니야?
-고인물 님을 믿지 못한 내 잘못이다. 모두 내게 돌을 던져라, 죗값을 달게 받도록 하마.
-지랄 염병하지 말고 싸울 준비나 해. 저 새끼들 전부 죽여 버리자고!
모두가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조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된 거, 모두 한꺼번에 죽여주지.”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 가지였다.
녀석이 이곳으로 들고 온 벨제붑의 뿔.
“벨제붑과 손을 잡았구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아니, 사탄의 뿔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는데. 벨제붑의 뿔인 줄은 전혀 몰랐어.”
“솔직하군.”
“칭찬 고맙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너는 우리 모두에게 포위됐고,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은 전부 강자들이야.”
“……”
“미리 말해두는데 항복 따위는 받지 않아.”
한조가 벨제붑의 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더니 나를 향해 소리쳤다.
“항복? 크하하하! 그런 미친 소리를 내게 뱉다니.”
“미친 건 너야.”
“……김천재, 기회가 있을 때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뭐?”
“나는 이제. 이 지옥의 왕이 된다.”
벨제붑의 뿔에서 어두운 오라가 흘러나왔다. 한조가 뾰족한 면으로 자신의 이마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콰직!
뿔이 깊숙이 박히며 한조의 몸속으로 스며들 듯 흡수되었다. 녀석의 이마에 홀로그램 빛이 몇 번 깜박이더니 벨제붑의 뿔이 생겨났다.
놈이 온몸을 감고 있던 붕대를 풀어 해치자, 악마로 변한 붉은 몸이 보였다. 이제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어버렸다.
[과거 지옥의 왕이라 불린 ‘식탐의 벨제붑’이 강림했습니다.]
[*주의: 플레이어 전원 강력한 파리 떼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크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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