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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베트남 플레이어들이 전부 악마에게 전멸당해 있었다.

성전의 안쪽을 통해 남쪽에서 서쪽으로 오는 시간은 15분 남짓.

그렇다면 아직 마몬이 출현하지도 않았을 텐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는 계단 아래 쓰러져 있는 베트남 플레이어들을 확인했다.

전부 죽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들 중 숨이 붙어있는 자가 손을 떨며 속삭였다.

“여, 여기….”

나는 그에게 달려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잠깐만?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악마 병사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오라를 뿜어 주위를 경계했다. 이번 게임에서는 사탄이 없어졌으니, 라운드 몬스터 외에 악마 중에는 몰래 침입할 녀석이 없다.

그렇다면 서쪽을 공격한 것은 누구란 말인가?

베트남 플레이어가 힘겹게 입을 때 내게 말했다.

“일…. 본….”

“응?”

“일본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일본 플레이어들이 서쪽을 공격했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녀석들이 굳이 이곳을 공격할 이유가 없을 텐데. 사탄이 사라진 이상 한조 녀석은 악마와 거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 아닌가?

“일본 플레이어들이 당신들을 공격했다고요?”

“크윽…. 예….”

“왜요?”

“그건…. 저희도 잘…. 쿨럭!”

베트남 플레이어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머리 위의 생명력 게이지를 보니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았다.

“계속 말 할 수 있겠어요?”

“하아….”

“일본 플레이어들이 정말 당신들을 공격했어요?”

“그렇…. 습니…. 다.”

털썩.

플레이어의 머리가 떨어졌다.

붉은색의 생명력 게이지가 회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고개를 떨군 플레이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리바이브.”

나는 이곳에 있는 모든 베트남 플레이어를 다시 되살려냈다. 감염되지 않은 상태의 몸이라 뱀파이어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저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언데드일 뿐.

소생시킨 베트남 플레이어들이 내 앞으로 모였다. 내가 순서대로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곳을 공격한 일본 플레이어의 생김새를 말해보세요.”

이게 첫 번째 질문이었고.

“그들이 공격한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이게 두 번째 질문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그들이 언제 공격 왔었나요?”

세 가지 질문의 대답은 전부 똑같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붕대를 쓴 일본 플레이어가 사무라이들을 끌고 와 자신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공격 온 시기는 내가 도착하기 십 분 전.

휴식을 취할 때다.

‘…… 정말 일본 플레이어들이 공격한 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베트남 플레이어들을 공격한다면 악마들이 서쪽을 통해 성전을 공격할 수도 있는 상태가 되는데.

대체 왜?

다 같이 죽자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 제길.”

지금 바로 한조에게 따지러 가고 싶지만, 성전을 향해 몰려오는 악마들이 보였다.

스톤, 스틸, 실버, 골드

각각의 재질을 가진 거구의 골렘들이 느릿느릿하게 다가오고 있다.

쿠웅!

몸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걸을 때마다 지면에 진동이 생겼다.

나는 베트남 플레이어들을 계단 아래로 배치했다.

“전투 준비.”

내 한 마디에 베트남 플레이어들이 각종 무기를 꺼내었다.

봉, 칼, 창, 도끼.

가지각색이었다.

과연 단단한 몸을 가진 골렘들에게 저런 무기가 통할까, 라는 생각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언데드로 다시 태어난 베트남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달려가 골렘들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단단한 몸이 아닌, 관절들을 노려 놈들을 분해했다.

분해된 골렘 안에서 자그마한 임프들이 뛰어내렸다. 지능이 낮은 골렘을 조종하는 악마 하수인들이다.

부웅- 콰직!

창날이 도망가는 임프의 가슴을 뚫었다.

골렘들이 한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쉽게 당했을 리는 없을 텐데, 그것도 십오 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말이다.

나는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나도 뛰어난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저들의 직업을 유추해보자면, 대부분이 근접 계열인 검투사 혹은 전사에 가까웠다.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성스러운 힘을 사용하던 플레이어로 유추된다.

언데드가 된 이상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몰려오는 골렘들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이들에게 서쪽을 맡기고 자리를 비워도 될까?

한시라도 빨리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다.

일본 플레이어를 믿으면 안 된다고.

“…… 리콜.”

[‘김천재’ 플레이어의 모든 하수인을 강제 이동시킵니다.]

위잉.

공간이 일그러져 보이더니,

쿠구구!

내 소환수들이 전부 서쪽으로 날아왔다.

가웨인과 박규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웨인, 이곳은 성전의 서쪽이다. 위치는 파악됐지?”

“옙!”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고 짧게 설명하지. 내가 없는 동안 저쪽에 있는 베트남 플레이어와 스켈레톤 병사를 데리고 이곳의 입구를 지키고 있어. 명령권을 네게 주도록 하마.”

가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주십시오.”

“그래, 그리고 박규환. 너는 나와 함께 성전의 남쪽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예!”

“너는 결계 안으로 이동할 수 없으니 바깥쪽으로 돌아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이동하도록 한다.”

박규환이 남쪽을 향해 달렸다.

나 또한 빠른 걸음으로 성전 안을 향해 뛰었다.

성전을 지키고 있는 성스러운 결계만 아니었어도, 박규환이 먼 길을 돌아올 필요가 없었을 텐데.

아쉽다.

두두두두두두.

성전의 남쪽에 도착하자 악마들을 상대하는 한국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그 중심에 광기에 휩싸인 전사가 보였다.

“마정우!”

마정우가 분노한 모습으로 골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관절을 노리는 베트남 플레이어들과는 다르게 무력으로 골렘들을 부수고 있었다.

스톤 골렘은 돌로 만들어진 신체가 박살나고.

스틸 골렘은 강철로 만들어진 몸이 구겨졌다.

미칠 듯이 싸우던 그가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시선을 돌렸다.

“어? 김천재.”

“비상, 일본 플레이어들이 배신했어.”

“…… 뭐?”

마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배신했다니 그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조 녀석이 베트남 플레이어들을 공격했어. 내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악마들이 서쪽을 통해 성전을 박살냈을 거야.”

“이게 무슨…. 말이야? 일본 플레이어가 연합을 배신했다고?”

“그래. 베트남 플레이어들, 전부 죽어서 내가 다시 되살려냈어.”

그가 이마 위로 흐르는 피를 닦아내더니 내게 달려왔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한국 플레이어들이 술렁였다.

-지, 진짜 일본 플레이어들이 배신했나?

-그 새끼들 미친 거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배신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

-아 몰라! 우선 몰려오는 골렘들부터 잡아. 뒤지기 싫으면!

나는 그들에게 진정하라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다들 진정해요. 녀석들이 배신했어도 우리는 계획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저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직 보스전이 한 차례 더 남아 있는데다가 이번 레이드의 메인인 ‘탐욕의 마몬’도 잡지 못했다.

앞으로 잡을 예정이지만.

성전 계단에 도착한 정우가 내게 물었다.

“확실한 거야?”

“아마도. 죽은 놈들을 다시 살려서 물어보니 전부 대답이 똑같았어.”

“아니…. 이해가 안 되네.”

“이해 안 되는 일이 한두 가지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

“어떻게 하기는. 우선 내가 서쪽을 막을 테니, 너는 일본 플레이어들을 경계하면서 남쪽을 막고 있어.”

“…… 오케이. 근데 미카엘은 괜찮은가? 만약 일본 플레이어들이 배신자였다면 북쪽도 무사하지는 못할 텐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번뜩였다. 생각해보니 서쪽을 버릴 정도의 일을 친 놈들이라면, 북쪽을 버리고 딴 곳으로 향했을 수도 있다.

그저 이 게임을 포기하기 위해서.

“…… 이번 라운드는 실패하면 다 죽지 않나?”

“그렇지. 지옥 게임은 도중에 종료 자체가 불가능하니깐.”

“그럼 녀석들도 성전이 무너지는 걸 그냥 보지는 않을 테고….”

일본 측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포기하고 베트남 측을 공격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지, 오히려 네 번째 라운드에서 서로 목숨을 노리던 우리를 공격하는 쪽이 더 그들의 배신 계획에 신빙성이 있다.

“…… 정우야.”

“왜?”

“일본하고 중국하고 손잡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제로? 왕천마하고 한조는 완전 극악 아니냐. 네 번째 라운드에서 그 짓거리를 했으면 우리보다도 더 사이가 안 좋을 텐데.”

“그렇지?”

“그렇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마지막 라운드의 보스, 리바이어던이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는 한조 녀석이 우리 모두를 배신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과 중국 플레이어가 마몬을 막을 것을 알고 있는 그는,

기회를 노려 우리 모두를 처리한 후 단독으로 이번 라운드를 끝내려 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전부 유추일 뿐이다.

아주 확률이 높은….

쾅!

갑자기 서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가웨인이 있기에 큰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초조해졌다.

“작전 변경. 마정우, 나는 곧장 서쪽으로 향할 테니 너는 동쪽으로 가서 중국 플레이어들한테 상황을 전달해줘.”

“뭐? 그러면 여기는?”

“내 소환수인 박규환과 다른 사람들이 막아줄 거야. 여기 모인 사람들 전부 한국 고수들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정우가 고개를 돌려 한국 소속 플레이어의 상태를 봤다. 역시 게임 강국이라서 그런지 이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전투를 하고 있었다.

정신이 불안정한 몇몇을 제외하고 말이다.

“알았어. 그럼 내가 뭐라고 전달하면 돼?”

“일본 놈들이 연합을 배신하고 베트남 플레이어를 공격했다고.”

“그리고?”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고 있으라고 전하면 돼. 왕천마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기습을 당하면 속수무책일 거야.”

“…… 오케이, 그럼 중국 놈들한테 상황을 말해 준 뒤에 나는 여기로 다시 돌아온다?”

내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며 대답했다.

“어, 혹시 모르니 조심하고.”

* * * * *

성전의 북쪽.

사무라이 복장의 플레이어들이 골렘과 혈투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골렘과의 싸움이 쉽지 않은 듯 진땀을 흘렸다.

찌르는 무기가 아닌 베기 전용 일본도. 어정쩡한 실력으로는 골렘의 몸에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부웅-

사무라이 중 한 명이 휘두른 일본도가,

캉!

스톤 골렘의 피부에 닿자 반으로 깨졌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한조가 허리춤에서 두 개의 검을 뽑아 들더니 골렘 무리를 향해 달렸다.

한쪽은 단검이라 불릴 정도로 짧았다. 또 다른 한쪽은 도의 형태를 가진 장검이었다.

“이도류.”

[바람의 노랫소리]

한조가 춤을 추듯 골렘 사이를 지나다니며 녀석들의 관절에 날붙이를 꽂았다 뺐다 반복했다.

골렘들이 레고처럼 분해되며 쓰러졌다.

주위를 정리한 한조가 모두에게 들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이 녀석들만 처리하면 우리들의 시대가 온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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