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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룰렛이 멈추었을 땐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좋아.’

다트가 박혀있는 곳에 황금빛이 번쩍였다.

[룰렛의 정중앙을 맞히셨습니다.]

[강화 아이템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강화 사타닉 목걸이

-강화 사타닉 반지

-강화 사타닉 장갑

-강화 사타닉 뿔

“목걸이.”

[보상으로 ‘강화 사타닉 목걸이’를 획득합니다!]

[*강화 사타닉 목걸이: 착용자에게 흡혈 오라를 부여합니다.(30%)]

목걸이를 걸치자 내 다리 밑으로 붉은색 기운이 맴돌았다.

사타닉 목걸이는 나뿐만 아니라 사정거리 안에 있는 그룹원과 내 소환수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

다다다다다!

김연희가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김천재!”

“…… 이제 괜찮아졌냐?”

“어! 어! 어!!!”

“그럼 이제 좀 떨어져줄래? 무겁거든.”

그녀는 멋쩍은 듯 두 손을 풀며 내게 방긋 웃었다.

“고마워.”

“알았으면 됐다.”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사탄한테 잡혔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네….”

나는 씨익 웃은 후 그녀와 함께 탑 밖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김연희에게 잔소리를 했다.

“다음부터는 정우 말도 잘 듣도록 해.”

“…… 알았다고. 그 말 좀 그만해, 귀 떨어지겠다.”

“백 번은 더 들어야 말을 듣지. 너 같이 팀플레이를 중요시하지 않는 플레이어는 진즉에 죽었어야 해.”

“야! 내가 좀 실수를 하긴 했지만,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야?”

“아니야.”

“……”

“잘 생각해봐. 이번에는 내가 사탄의 짓인 걸 눈치 챘으니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모두 전멸했을 거야.”

“……”

“우리는 팀이야. 절대로 개인행동을 하지 않도록 해. 알겠어?”

김연희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틀린 말은 하지 않았기에 그녀도 반박하지 못했다.

뭐, 나 정도 되는 실력자면 개인으로 움직여도 상관없지만. 김연희 같이 일반적인 지식으로만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은 절대로 혼자 다니면 안 된다.

여기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 이 게임의 후반부로 진입하는 장소니깐.

1층에 도착하자 문밖으로 쌓여있는 악마들이 보였다.

대충 숫자를 세어 봐도 천 마리 이상. 내 병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적들에게 쓰러진 스켈레톤 병사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제 중급 이하의 악마들로는 내 스켈레톤 병사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앞서 소환한 파충류 병사들과 함께 다시 성전으로 향했다.

* * * * *

성전 앞에 도착하자 아수라장이 된 전장이 보였다.

이미 보스를 처리한 북쪽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고, 동쪽은 상처를 입은 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북쪽과 동쪽을 거쳐 남쪽으로 돌아온 나는 마정우에게 보고했다.

“보고!”

마정우가 히죽 웃으며 내 말을 복명복창했다.

“보고!”

“김천재 외 1명은 사탄을 처치하고 아이템을 구해왔기에 보고합니다. 이상입니다!”

한국 소속의 남성 플레이어 중 몇이 피식 웃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이 보고 방법을 전부 알고 있기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정우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목걸이를 보며 말했다.

“사타닉 목걸이네.”

“어, 이거 받으려고 초 집중했다.”

“여기도 룰렛이디?”

“응. 많이 해봐서 그런지 돌아가는 판이 눈에 대충 읽히더라.”

“그걸 읽는 네가 더 대단하다….”

김연희가 내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왔어!”

“…… 왔냐, 말괄량이.”

“뭐래? 내가 왜 말괄량이야.”

“욕하려다가 약하게 말한 거야. 너 진짜 천재만 아니었으면……”

마정우가 겁을 주자, 김연희가 잔뜩 쫀 얼굴로 내 뒤로 숨었다.

유소라는 이 상황이 웃겼는지 키득거리며 다가왔다.

“잘 다녀오셨어요?”

“예.”

“연희씨도 잘 다녀오셨나요?”

김연희가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네!”

“그럼 됐어요. 이제 다들 쉬세요, 곧 있으면 다음 악마들이 몰려온다면서요?”

유소라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자 마정우가 물러났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대화를 이었다.

“정우야.”

“어.”

“미카엘은 확인해 봤어?”

“아니, 굳이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는데.”

“…… 그래?”

나는 성전의 입구를 슬쩍 쳐다본 후 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한 명은 성전 안을 지키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 왜? 어차피 일반 악마들은 결계 안으로 못 들어오잖아. 이번 라운드에 출현하는 대악마도 이제 한 마리밖에 안 남았고.”

“악마가 아니라 다른 놈이 신경 쓰여서.”

“…… 악마가 아닌 놈?”

마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눈썹을 움찔거리며 나를 의심쩍은 표정으로 보았다.

“너 김천재 맞냐?”

“맞지.”

“그럼 그 문양 보여줘 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인 후 땅에 문양 하나를 그렸다.

거꾸로 그려진 십자가에 두 개의 도끼가 사선으로 그려진 그림이었다.

역 십자가는 게임 속 내 직업인 네크로맨서를 나타내는 것이고. 두 개의 도끼는 정우의 야만 전사를 뜻하는 그림이다.

우리 둘이 이 게임을 정복하자며 길드를 만들 때 사용하던 문장.

정우는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천재 맞군.”

“맞다니깐.”

“아니, 이상한 말을 하길래 나는 아닌 줄 알았지.”

“이상한 말이 아니라, 그게….”

나는 주위에 누가 있는지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중국 쪽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 좀 수상해서.”

“중국 쪽? 왜?”

“왕천마 기억나?”

“왕천마? 그 중국 플레이어 중에 제일 강한 놈?”

“그래. 그 새끼가 이번 라운드에 참가했었더라고. 분명 게임 시작할 때는 없었는데, 내가 사탄의 탑으로 향할 때 마주쳤어.”

“…… 그래? 근데 녀석은 어떻게 게임에 참가했지. 분명히 이 게임에 참가 인원은 정해져 있을 텐데.”

맞다.

잠시지만 내가 망각하고 있었던 점이다. 분명 이 게임의 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중국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추가 인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잠시 고민했다.

답이 나오는 데까지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 추가 인원이 아닐 수도 있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추가된 게 아니라, 왕천마는 애초부터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어.”

마정우가 ‘아!’라고 탄식을 내뱉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네,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뭐 하러 우리를 기다리지?”

“이유는 뭐. 이벤트를 진행하기에 인원이 부족했다던가, 원하는 물건이 이번 라운드에 있다던가.”

“들 중 뭘까?”

“너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내 질문에 마정우가 눈동자를 굴렸다.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정우와는 다르게, 나는 앞선 왕천마의 행동에서 그가 이번 라운드에 남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네 국가의 플레이어들이 일정 숫자를 채웠다면, 분명 왕천마의 실력으로 다음 라운드로 갈 수 있었다.

굳이 왜 이곳에 남아 있는 걸까? 라는 질문에 나는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는 이번 라운드를 클리어할 만한 인원이 없었다.’

왕천마는 이유 없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 놈이다. 철저히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움직이는 스타일.

녀석이 이번 라운드에서 나오는 아이템을 노리고 있었다면 아까 나와 사탄의 전투에 끼어들었을 것이다.

흡혈 능력치가 붙은 사타닉 아이템은 이번 라운드에서만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마정우가 넌지시 말을 던졌다.

“아무래도 이번 라운드를 진행하기에 인원이 부족했던 거 아닐까?”

“오…. 역시 마정우!”

“그것밖에는 없잖아. 아이템이 필요했다면 굳이 이번 라운드에서 노가다할 필요가 없으니깐.”

“그렇지. 굳이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 아이템을 얻는다면 사타닉 아이템이 최선인데, 나를 따라올 생각을 안 하더라고……”

“허허…. 그럼 이 앞으로는 플레이어가 몇 없다는 말이네.”

나는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콧잔등을 닦아냈다.

“그렇지.”

* * * * *

휴식을 마친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중 몇은 내게 다음 계획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나는 그때마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우선은 열 번째 라운드로 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이다.

우선 열 번째 라운드까지만 도착한다면 한 동안은 ‘폐허가 된 마을’에서 지낼 생각이다.

여덟 번째 라운드와 아홉 번째 라운드를 건너뛰었으니, 그 만큼 무력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플레이어들이 실망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나는 히죽 웃으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모두가 사라지자 마정우가 나를 찾아왔다.

“점프는 그대로 진행할 거지?”

“당연하지. 그 짓 하려고 세계수까지 베어냈는데 못 하면 큰일이야.”

“좋아…… 나도 빨리 강한 놈이랑 싸우고 싶어.”

“에? 많이 싸웠잖아.”

“많이 싸우기는. 나는 이번 라운드에서 주구장창 나무만 치다 왔구만.”

우리의 시선이 쓰러진 세계수를 향했다. 용암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깊은 절벽, 그 사이를 세계수가 가로질러 있었다.

“근데 저 방법은 누가 찾아낸 거냐?”

“…… 나.”

“너?”

“어, 다들 성전 지킬 때 심심해서 세계수 때리기 하다가 찾았잖아. 기억 안 나? 이사키가 나보고 이스터 에그 찾는 미친놈이라고 했던 거.”

정우가 피식 웃었다.

“맞네, 맞아. 세계수가 쓰러진 후에도 다들 아무 생각 없었는데, 네가 세계수를 다리 삼아 절벽을 건너갔잖아.”

“뭐…… 그때는 그냥 심심하니깐 생각 없이 지나간 거지-”

위이이이이잉-!

갑자기 게이트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굉장히 작은 것으로 보아 거리가 꽤 있는 장소인가 보다.

모두가 굉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쪽이다.

드디어 세 번째 보스가 성전을 찾아온다.

이제 악마들의 지휘관이라 불리던 놈이 나타나겠구나.

“마정우, 나 서쪽 좀 다녀올게.”

“서쪽? 거긴 왜? 베트남 플레이어들 있잖아.”

“걱정돼서 한 번 보고 오려고. 베트남은 전 서버에서 제일 약한 플레이어들만 모여 있잖아.”

“뭐…. 마음대로 해라. 그럼 나는 여기 지키고 있는다?”

“마음대로 해. 소라 씨! 마이클! 김연희! 셋은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미카엘을 지키고 있도록 해.”

모두가 나를 향해 경례했다.

못된 것은 금방 배운다고 마정우의 행동을 똑같이 했다.

나는 성전 주위에 소환물들을 세워 둔 후, 결계 안을 통해 서쪽으로 향했다.

이쪽으로 가면 훨씬 빠르니……

[남은 시간: 03:01:58]

[시스템 메시지]

[탐욕의 상징인 대악마, ‘마몬’(이)가 성전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라운드에 참여하신 플레이어 전원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마몬, 녀석은 일곱 대악마 중 어정쩡한 포지션에 애매한 힘을 가졌다.

베트남 쪽 플레이어가 아무리 약하다고 하더라도, 여섯 번째 라운드인 메카니아를 지나왔다면 처리할 수 있는 보스.

“…… 설마 마몬에게 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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