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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역시 내가 생각한 이유가 맞았다.

루시퍼는 자신을 지옥의 발로 딛게 한 리바이어던과 벨제붑을 미치도록 미워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신과의 연을 끊을 기회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악이 되었으니.

이중적으로 분노가 끓어올랐겠지.

“그런 자식이 악의 근원이 되다니, 루시퍼도 참…. 이상한 놈이야. 맞지?”

사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대로 생각하시지요. 자- 그럼 이제 리바이어던의 행방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리바이어던? 그렇지. 알려줘야지.”

“그는 어디에 있지요?”

“…… 네 뒤.”

사탄이 깜짝 놀라서 뒤를 슬쩍 쳐다보더니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장난이 심하시군요.”

“아, 미안 미안. 네 뒤가 아니라 아래 있는데 내가 잘못 말했네.”

“…… 김천재 씨?”

“왜?”

“장난은 그만하시죠. 저는 당신이 원하는 조건을 전부 들어주었습니다.”

“장난 아닌데.”

“……?”

나는 지옥에 날아다니는 망령들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며 그에게 말했다.

“이 영혼들, 안 보여?”

“보입니다.”

“이 중 하나라고. 리바이어던의 영혼.”

“……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 참! 똑똑한 줄 알았더니 너도 참 답답하다.”

“답답하다뇨?”

“내가 영혼을 가리키며 리바이어던을 언급하면 무슨 뜻이겠어?”

“……”

머뭇거리던 사탄이 이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바이어던이 죽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그 후에는 영혼이 되어 지옥을 떠돌겠지? 다시 부활할 때까지 말이야.”

“…… 정말입니까?”

“정말이지. 그럼 거짓이야?”

녀석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는 건지 나빠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자신이 처리하려 했던 자가 죽었으니 좋아해야 할 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를 죽일 만큼 강한 자가 이 지옥에 있다는 말이니.

엄청난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누가 리바이어던을 처리했다는 겁니까?”

나는 당당하게 나 자신을 가리켰다.

“나야.”

“농담하지 마시고요.”

“농담 아닌데.”

사탄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화가 자기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어쩜 이렇게 PC 버전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VR기기로 리바이어던의 행방을 알려주었을 때와 완전히 똑같았다.

[‘사탄’ 님이 당신에게 ‘심안’ 스킬을 사용합니다.]

사탄은 10여 초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눈동자를 뒤집었다. 그가 내게 죽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나를 처리하려 들 것이다.

물론 상대는 안 되겠지만.

“김천재 씨, 아무래도 이곳에서 죽어주셔야겠습니다.”

우우우우우웅-

갑자기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위가 흔들려 보였다. 공간이 소용돌이치듯 주위가 뒤틀려 보였다.

‘거울의 방’ 스킬을 사용해 제 3 공간으로 나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다.

내가 웃어 보였다.

“이제 안 통해.”

나는 낫을 등 뒤로 길게 내빼어 크게 휘둘렀다.

소용돌이치던 사탄의 ‘거울의 방’ 능력이 와장창! 소리와 함께 깨졌다.

투명한 유리 조각들이 쏟아져 내려 땅을 덮었다.

주문을 외우던 사탄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이 무슨!”

“그 능력은 이제 내게 통하지 않아.”

“뭐라고?”

“너 그 기술의 단점이 뭔지는 아냐?”

“……”

“공간이 틀어진 곳을 오라로 가격하면 깨진다는 거야.”

“…… 제길.”

그렇다.

녀석이 스킬을 사용한 위치만 안다면 공간을 깨부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 스킬 사용하면서도 몰랐지? 하긴 알면 대놓고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겠지.”

사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놈이 두 손을 모아 그 안으로 검은 오라를 집중시켰다.

포효와 함께 원형의 구를 하늘로 날리자,

쾅!

검은 오라가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어디까지 범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내 시야가 닿는 곳에는 전부 떨어지고 있었다.

[‘사탄’의 부름을 받은 북쪽의 악마들이 황색의 탑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몰려오는 악마들을 막으며 사탄을 처리하십시오.]

그가 주술사처럼 손짓하자 사방에서 가고일들이 날아올랐다. 짧은 순간에 나를 중심으로 원형의 진을 쳤다.

숫자로 나를 밀어붙이려 하는 것 같은데, 가소로웠다.

“들어와 봐.”

* * * * *

사탄과 그의 부하들을 제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탑의 외부는 미리 준비시켜놓은 스켈레톤 병사들이 완벽하게 막았다.

간간이 길을 뚫고 들어오는 적들은 탑 내부에 대기 중인 리바이브로 살려낸 악마 부대가 막았다.

그나마 내게 손길이 닿을 수 있는 놈들은 지금 이 탑 꼭대기에 있는 사탄과 가고일 뿐.

“사라져라.”

내가 가고일 시체에 손을 대고 주문을 외우자.

[‘시체 폭발’을 시전합니다.]

쾅!

굉음과 함께 전방에 있는 몬스터들이 소멸 되었다.

가웨인과 박규환이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이며 남은 녀석들을 베어냈다.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탄의 주 무기는 상대방을 교란하는 ‘변신 능력’과 상대방의 몸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악마 벌레를 풀어 정신을 지배하는 ‘타락 자의 손길’.

전부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능력들이다. 악마 벌레가 몸속으로 들어오려면 생명력 게이지가 15% 이하로 내려가야 하는데 내가 그럴 일은 없으니깐.

“저 녀석을 죽여!”

김연희가 내 목을 향해 검날을 들이밀었다. 나는 그녀를 내려보며 가볍게 날을 잡았다.

팍.

“…… 사탄, 미안한데 너는 나를 너무 얕봤어. 내 힘을 확인할 기회가 분명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그저 장난만 치기에 바빴지?”

“……”

“내가 너였으면 김연희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지부터 생각했을 거야.”

“저 여자의 능력은 이미 알고 있다.”

그녀의 스킬란에 웨폰 브레이크가 있다면,

분명 아머 브레이크도 가지고 있다.

그 말은 즉 지금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갑주도 단방에 벗겨버릴 수 있다는 뜻.

김연희가 정말 나를 죽이려 했으면 그녀의 검날이 목이 아닌 명치를 노렸어야 한다.

즉, 목을 노렸다는 것은 김연희를 조종하는 사탄이 스킬을 전부 파악하지 못하고, 명령이 세세하다는 뜻.

목표물의 타격 지점까지 설정할 정도로 말이다.

“아는데 내 목을 노려?”

캉!

나는 손에 힘을 강하게 쥐어 그녀의 단검을 부러뜨렸다. 단순하게 악력만으로 부러뜨린 것은 아니다. 미세하지만 손안에 공명을 일으켰다.

검날이 깨지자 김연희가 뒤로 물러났다.

이 명령 또한 참으로 어리석었다.

내가 사탄이었다면 그녀를 제물 삼아 나를 껴안게 한 후 달려들었을 텐데.

“…… 이제 장난은 끝내도록 하지.”

나는 사탄을 향해 크게 뛰었다. 놈이 날갯짓하여 내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높이 날아올랐다.

거리가 닿지 않는다고 방심한 사탄은 아무런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하기 위해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냈다.

‘…… 잘 가라.’

휘리리리릭!

내가 데려온 지옥의 카멜레온이 혀를 뻗어 사탄의 몸을 휘감았다.

지옥 카멜레온은 이 순간을 위해서 탑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 몸을 숨기고 있었다.

완벽하다.

“이 무슨!”

“멍청한 놈.”

카멜레온이 혀를 빠르게 감자 사탄의 몸이 끌려 왔다. 당황하지 않았다면 침착하게 혀를 잘라낼 수도 있었을 텐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녀석의 판단력이 떨어졌나 보다.

“제길!”

나는 말려오는 사탄을 향해 낫을 겨누었다. 그리곤 오라를 날붙이에 집중한 후, 크게 휘둘렀다.

샥-

사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땅에 떨어졌다.

털썩.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생명력 게이지가 붉은색이었다. 역시 악마들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타이탄도 그렇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생명력 게이지가 남아 있으니 말이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내가 사탄의 머리 앞으로 걸어갔다.

“끈질기네.”

“김천재……”

분노에 가득 찼던 사탄이 나를 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죽이면 저 여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김연희를 힐긋 본 후 그에게 대답했다.

“돌아오지 않아도 돼. 어차피 네 ‘타락자의 손길’을 없애는 방법은 알고 있으니깐.”

“…… 뭐?!”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알고 있어?”

“아, 아니. 모르니깐 이곳까지 나를 찾아온 것 아닌가?”

“아? 나는 모른다고 한 적 없는데. 헬 바이블에 나와 있는 소환자의 권리만 읊었을 뿐.”

“……”

“‘타락자의 손길’의 약점. 상대방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숙주는 소환사의 생명력을 공유받으며 소환사가 사망 시 같이 사라진다, 맞지?”

“……”

나는 희죽 웃었다.

“즉! 네가 앞서 내게 말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거짓이지. 너를 죽이면 김연희의 몸에 있는 숙주는 사라진다, 이게 진실이고.”

“처음부터 전부 알고 있었나.”

“당연하지.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 네가 김연희의 몸으로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니 숨기고 있던 거야.”

사탄이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게 분노의 대악마라 불리는 존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내가 사탄의 머리에 가고일 시체를 하나 얹어 놓고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시체 폭발]

쾅!

* * * * *

[시스템 메시지]

[난이도 ‘???’ 숨겨진 이벤트 성공!]

[일곱 번째 라운드의 숨겨진 임무 최초 성공자로 등록됩니다!]

[분노의 대악마! 루시퍼의 오른팔인 ‘사탄’을 물리친 ‘김천재’ 님의 스토리가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 사자의 서에 새로이 기록됩니다.]

“후우.”

[시스템 메시지]

[‘관리자 1’(이)가 김천재 님은 적폐 등급의 플레이어라며 쓴 미소를 짓습니다.]

[‘관리자 2’(이)가 물개박수를 치며 정말 굉장하다고 환호합니다.]

[‘관리자 3’(이)가 난이도 설정이 ‘불지옥’에 맞춰져 있는 게 맞느냐며 확인해달라고 합니다.]

내가 쓴 미소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적폐라니, 말이 심하네.’

[보상: 분노의 대악마 ‘사탄’의 힘이 깃든 ‘사나틱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뽑기 룰렛이 돌아갑니다!]

내 앞에 원형의 룰렛이 하나 나타나더니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다트 하나가 허공에 빙글빙글 돌았다.

[다트를 던져 아이템을 뽑아주시기 바랍니다.]

잠깐이지만 돌아가기 전에 룰렛에 그려진 그림들을 전부 보았다.

장갑, 목걸이, 반지, 뿔.

무엇이 나오더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평균적인 능력치는 전반적으로 비슷하니깐 말이다.

그래도….

기왕 나오는 거면 목걸이가 좋겠지? 갑주 위에 장갑을 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홀로그램 다트를 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룰렛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나는 손을 앞뒤로 천천히 흔들며 목표를 조준했다.

하나

‘…… 지금이다.’

셋.

피슉.

다트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팍!

[룰렛의 정중앙을 맞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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