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보스 발견]
[일곱 번째 라운드의 숨겨진 보스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을 발동시켜 스토리 영상을 재현합니다.]
사탄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이 발동되었다.
플레이어에게 보여주는 이 장면은 대악마 중 한 명인 사탄이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는지였다.
신마 전쟁이라고 불리는 대전투.
그 전장의 중심에 사탄이 칼을 높이 세웠다.
“루시퍼 님을 지켜라!”
타락하기 전, 천사장 시절의 사탄이다. 루시퍼와 함께 신에게 대항하여 지옥에 떨어지기 전의 성스러운 존재다.
성전을 중앙에 두고 악마와 천사가 충돌했다.
성전을 기준으로 절반은 천당의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절반은 지옥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누가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비등비등한 전투였다.
성전을 지키려 하는 천사들과 그들을 막으려 하는 악마. 나는 그들 중앙에 서서 스토리 영상을 지켜보았다.
“…… 저들이구나.”
천사 중에서도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옷매무새와 무기를 가진 일곱 천사와,
수천, 수만의 병사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다른 오라를 뿜는 다섯 악마가 보였다.
일곱 천사와 다섯 악마.
각 진영을 대표하는 우두머리였다.
-벨제붑 님, 미카엘과 라파엘이 성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의 몸에 파리의 얼굴을 하는 악마, 벨제붑이 천사장들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그의 입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파리 때가 나와 성전의 입구를 막았다.
“녀석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라!”
벨제붑의 외침에 리바이어던이 번개를 내리쳐 계단을 박살냈다.
콰광!
천사들은 성전을 탈환하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팽팽했던 접전은 어느새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고, 한둘씩 쓰러져가는 병사들의 숫자가 절반이 되자 이 전쟁의 승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키에에에엑!
악마들의 숫자가 너무나 많다.
그 말인즉슨 인간 세계에서 넘어오는 영혼의 수가 선보다 악이 많았다는 것이다.
수가 배 이상 차이 났으니 장기전이 되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사실을 아는 천사들은 빠르게 전쟁을 끝내려 한 것이고, 무리한 전투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콰직!
리바이어던의 삼지창이 루시퍼의 복부에 꽂혔다.
“이제 끝이다.”
루시퍼가 신음을 흘리며 리바이어던을 향해 검날을 휘둘렀다.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피부를 찢어내지도 못할 정도로 가볍게 날아갔으니 말이다.
“허억…. 리바이어던….”
“그러게 왜 신께서는 지옥에 이딴 걸 지으려고 하는 거야? 서로 간섭하지만 않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닥쳐라.”
“크큭, 이제 곧 사라질 텐데 신께 한 번 빌어보는 건 어때? 전능하신 분의 이름으로 살려달라고.”
하급 악마들 여럿이 창을 휘둘러 루시퍼의 몸통을 관통시켰다.
악마에 비해 작은 체구를 가진 루시퍼의 몸에 여덟 개의 창날이 박혔다.
그를 도와주러 온 부관, 사탄이 방패로 몸을 가리고 달려와 악마들을 튕겨냈다.
이어 신성한 빛이 담겨있는 철퇴로 악마들을 내리쳤다.
“루시퍼 님!”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출혈이 너무 커 사망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 루시퍼는 자기 죽음을 직감하고 신께 기도드렸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이 모습을 본 벨제붑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이제 신에게 비는 것이냐!”
“닥…. 쳐라.”
“차라리 내게 빌어보는 것은 어떠냐? 내 너를 다시 악마로 태어나게 해주마.”
벨제붑은 루시퍼가 악마로 변하기 전 지옥의 왕이라 불리는 자였다.
이 신마 전쟁에서 큰 상처를 입기 전까지 말이다.
“닥- 쳐!!!”
스윽-
털썩.
루시퍼의 옆에서 사탄이 쓰러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욕의 아스모데우스가 비열한 웃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칼날에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루시퍼가 몸에 박힌 창을 하나 뽑아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던졌다.
“으아아아!”
휘융-
창이 아스모데우스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너무나도 처절한 모습에 지옥의 악마들이 다 같이 웃어 보였다.
전투의 승패가 보이자 미카엘이 성스러운 검을 머리 위로 들고 소리쳤다.
“전군 후퇴한다!”
천사들이 백색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지옥 정복에 실패하여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적장에게 붙잡힌 루시퍼가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자신이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신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닿았어도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었다. 선과 악은 대립할 수 있지만 신은 그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는 창조주였기 때문이다.
천사와 악마.
둘 다 그가 만들어낸 존재.
루시퍼가 사탄의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신이시여!”
* * * * *
천국의 성스러운 회랑에서 천사들의 회의가 열렸다.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랗고 긴 원형의 탁자.
그 앞으로 신의 명령을 하달하는 치천사 메타트론과 그의 밑에서 움직이는 대천사들이 줄지어 앉았다.
메타트론은 치천사이지만, 하늘의 서기관이자 신과 동일시되는 인물이었다.
탕! 탕! 탕!
메타트론이 자그마한 손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루시퍼는?”
미카엘이 대답했다.
“지옥에 있습니다.”
“…… 죽었나?”
“예.”
“그 녀석, 쉽사리 당할 녀석이 아닌데 말이야.”
“……”
“흐음- 그나저나 큰일이야, 루시퍼를 잃으면 앞으로 천군 전력에 큰 문제가 생기는데.”
“천군에 대한 일은 제가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제이기에 그가 무엇을 하였는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천군의 지휘는 네게 전권을 넘기도록 하마, 미카엘.”
미카엘이 낮게 목례했다.
메타트론은 신마 전쟁에 참여한 천사장들의 상태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성한 자들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나누어지는 회의는 앞으로 지옥에 대한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였다.
의견 대부분이 무력으로 진압할 수 없으니 그들을 최대한 억압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메타트론은 회의에 참석한 천사 장들의 생각을 순서대로 듣더니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자- 이렇게 하지. 앞으로 천 년. 인간들이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여 천사들의 숫자를 늘리고, 다음 계획은 그 후에 진행하도록 한다.”
모두가 그의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쿠궁!
회랑이 흔들렸다.
천사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회랑에서 지옥으로 연결된 게이트가 열렸다.
-키에에에엑!
천국에 악마가 쏟아져 들어왔다.
천국의 문이 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신께서 지옥에 만든 성전은 신성한 결계에 악마들이 막혀 손도 대지 못할 텐데, 게이트까지 열려버렸으니 말이다.
드높은 회랑의 꼭대기에서 악마들의 침입을 확인한 천사장들이 뛰어내렸다.
빠른 날갯짓으로 게이트를 향해 날아갔다.
악마와 천사들이 다시 충돌했다.
신마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투였다.
메타트론이 분노한 표정을 짓자 등에서 서른 개의 날개가 동시에 펼쳐졌다.
“신의 권능!”
그의 외침과 동시에 천국에 빛이 쏟아져 내렸다. 포탄처럼 강하게 지면을 강타하는 빛기둥이 악마들을 단방에 녹여냈다.
“물러서지 마라!”
미카엘이 천군을 이끌고 게이트를 둘러쌌다. 가브리엘과 라파엘이 악마의 공격을 그대로 받으며 날아가 게이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게이트 잠금을 시작합니다.]
[진행률: 58.97%]
더 많은 악마가 오기 전에 게이트를 닫으려는 계획이었다.
메타트론이 악마들을 뚫고 들어가 가브리엘과 라파엘에게 성스러운 방어막을 만들어 주었다.
“미카엘! 너는 회랑을 지키도록 해라!”
천국에 진입한 악마들의 이동 경로를 보니 회랑을 노리고 있었다. 천사와의 싸움은 뒷전, 본진을 공격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나 보다.
“알겠습니다!”
쾅!
회랑에 도착한 악마 한 놈의 몸이 폭발했다. 불길이 치솟아 오름과 동시에 또 다른 악마들의 몸이 터졌다.
콰광!
미카엘과 천군이 열심히 막아보았지만,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제길!”
그렇게 전투가 진행되던 중,
스으으윽.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게이트에서 나왔다. 메타트론은 그를 보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루, 루시퍼.”
성스러운 빛이 담겨 있어야 할 몸과 갑주는 온데간데없고, 루시퍼의 신체가 타락에 의해 검게 물들어 있었다.
“…… 메타트론.”
콰직!
옛 동료라는 생각에 의한 잠깐의 망설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루시퍼가 메타트론의 심장을 찔렀다.
몸통을 관통한 그의 기다란 손톱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루시퍼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메타트론을 쳐다보았다.
“형제여.”
“허어어억…. 루시,,, 퍼…. 네가…. 게이트를…. 어째서….”
“어째서 악마가 되었냐고? 뭐…. 신께서 나를 버리셨으니, 나도 신을 버린 거야.”
“무, 무슨….”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나는 회랑을 부수고 신을 찾아가도록 하겠다.”
팍!
가슴에 박힌 손을 빼내자 메타트론이 쓰러졌다.
이 장면을 목격한 미카엘이 분노하여 날아왔다.
“루시퍼!”
“…… 형제여.”
캉!
미카엘의 검과 루시퍼의 손톱이 맞부딪쳤다. 힘의 차이는 확연했다. 미카엘의 검이 뒤로 점점 밀렸다.
루시퍼는 대천사 중에서도 전투 실력이 으뜸이라고 불렸던 자.
그런 놈이 악마의 힘까지 갖게 되었으니 미카엘 혼자서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미카엘!”
“…… 라파엘?!”
게이트를 봉인하던 라파엘이 날아왔다. 그녀는 성스러운 방어막이 펼쳐있는 자신의 몸으로 루시퍼를 낚아채더니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뒤를 부탁해!”
“라, 라파엘!”
[진행율: 99.89%]
[게이트 잠금을 시작합니다.]
아직 대악마들이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옥으로 연결된 게이트가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천국으로 넘어온 악마 중 유일한 지휘관인 루시퍼가 사라지자, 악마들이 여기저기서 자폭했다.
콰광!
순식간에 천국이 쑥대밭이 되었다.
* * * * *
스토리 영상이 끝났다.
눈을 떠보니 황색의 탑 옥상에 내가 있었다.
사탄이 가부좌 자세로 허공을 날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김천재 씨, 약속 시각이 다 되어 가는데 리바이어던은 어디 있는지요?”
“…… 사탄.”
“말씀하시지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는 건데, 루시퍼가 리바이어던을 싫어하는 이유가 혹시 예전에 자신을 죽여서 그런 건가?”
사탄이 흠칫했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죠?”
“나는 모르는 게 없다고 말했잖아.”
“……”
“대답해봐, 이것만 말해주면 나도 리바이어던이 어디 있는지 바로 말해줄게.”
“응? 그를 찾았는지요?”
“찾았어. 찾았으니깐 먼저 말해줘.”
“…… 그렇습니까?”
그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갑자기 리바이어던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니 믿을 수 없었겠지.
[‘사탄’ 님이 김천재 플레이어에게 심안 스킬을 사용합니다.]
나는 당당히 두 팔을 벌리고 그의 심안 스킬을 받아들였다.
사탄은 모르지만, 저 능력은 심각한 오류가 하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지만, 현재 내가 기억하는 일들만 보여준다는 것.
덕분에 리바이어던이 사망했다는 똑같은 결과를 두고 두 가지의 답을 낼 수 있었다.
‘악마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이게 앞서 사탄 녀석이 심안으로 나를 들여다 볼 때의 생각이고.
‘리바이어던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데이터니깐 어딘가에 저장되어있다.’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답이었다.
심안으로 나를 들여다보던 사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정말 알고 계시는군요?”
“그래. 그럼 이제 들어볼까? 루시퍼가 리바이어던을 싫어하는 이유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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