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세계수 임무를 마친 마정우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복귀했다.
그쪽에서 꽤 고생을 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전에 혼자 남은 내가 더 멀쩡해 보일 정도.
마정우가 어깨에 쌓여있는 잿더미를 털어내며 내게 말했다.
“별일 없지?”
“없지. 너는?”
“없어.”
그는 김연희를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장에서 리더의 말을 듣지 않고 이탈한 자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게이트는 제대로 열렸어.”
“우리가 옛날에 보던 것과 똑같디?”
“어, PC로 볼 때랑 똑같이 생겼더라.”
“그럼….”
나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홀로그램 시간을 보았다.
[남은 시간: 05:35:11]
보스 게임까지 두 시간이 조금 넘게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숨겨진 임무를 찾아 행동하기에 충분하다.
“정우야, 임무 교대.”
“임무 교대? 아, 성전 방어 좀 하고 있으라고?”
“어, 나는 김연희랑 같이 ‘사타닉’ 아이템 좀 구해올게.”
“…… 둘이서?”
“응. 둘이서.”
사타닉 아이템.
일곱 번째 라운드의 숨겨진 보스인 ‘사탄’을 물리치고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물건이다.
물론 성전을 막기에도 벅찬 플레이어들은 사타닉에 도전할 생각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달랐다.
주요 인원을 나누더라도 성전 방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는 김연희를 데려가는 내 행동이 의아한 듯 잠깐 말을 멈추었다.
내가 윙크하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대로 해라. 근데 왜 김연희랑 가는 거지? 마이클을 데리고 가면 더 수월할 텐데.”
“…… 김연희가 이번 전투에 필요한 스킬을 가지고 있더라고.”
“스킬? 뭔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그에게 대답했다.
“여기서는 말할 수 없어.”
“…… 오케이.”
“그리고.”
“그리고?”
“사탄 녀석이 수시로 이곳을 찾아오고 있어. 우리가 아는 스토리랑 다르게 성전을 탈환하려는 것 같은데, 변신술에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 하긴.”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니깐. 우리끼리 알아볼 수 있는 신호를 만들어야겠어.”
“신호?”
“어. 너 그거 기억나지? 우리 어릴 적부터 그리던 문양.”
“…… 당연하지.”
“그게 서로를 알아보는 신호야. 이 정도면 확실하지?”
“그래.”
나는 떠나기 전까지 다른 플레이어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혼자 싸웠다.
모두를 다음 라운드로 데려가는 것이 이곳에서의 내 임무니깐.
정우도 모르는 숨겨진 임무.
-키에에엑!
철 갑주를 입은 악어가 메이스를 휘두르며 내 스켈레톤 병사에게 덤벼들었다.
단일 대결에서는 막상막하의 대결이었다.
파충류형 악마들은 대부분이 살아생전 탐욕이 강하여 남의 것에 욕심을 낸 자들.
그 야망 때문인지 앞서 찾아온 악마들보다 더욱 강한 힘을 내었다.
뭐.
어차피 녀석들이 강한 만큼 나도 강해지니 상관없지만.
“스켈레톤 킹과 모든 악마의 소환을 취소한다.”
앞서 소환한 악마 부대와 스켈레톤 킹의 뼈가 쏟아져 내리며 소환 목록에서 사라졌다.
“스켈레톤 소환, 리바이브.”
다시 많은 수의 스켈레톤 병사가 일어났다.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서는 단일 개체인 스켈레톤 킹보다 이쪽이 효율이 높다.
이어 쓰러진 파충류 병사들이 일어났다. 운이 좋았는지 시체 중 하나는 카멜레온 병사가 있었다.
나는 녀석을 따로 뒤로 빼내었다.
겁이 많아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는 놈인데, 실수로 섞여 들어왔나?
카멜레온이 지면의 색으로 몸을 바꾸며 성전 앞으로 다가왔다.
치지직!
계단 위로 올라오려다 결계에 막혔다.
나는 직접 내려가 놈의 상태를 확인했다. 배 쪽에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전투를 치르지는 않은 것 같고.
완벽한 상태의 카멜레온 전사였다.
“…… 좋아.”
* * * * *
준비를 마친 나는 병사들을 이끌고 성전의 동쪽으로 향했다.
결계 때문에 가로질러 갈 수가 없어 성전을 한 바퀴 돌게 되었다.
파충류 악마들을 상대하던 중국 플레이어들이 내 행군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아아 악마들이 밑에서 몰려온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접니다! 네크로맨서 김천재! 이 녀석들은 제 병사들이에요!”
내 모습을 확인한 드루이드 플레이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러 저번 보스에 대해 물어보았다.
드루이드 플레이어를 보니 한쪽 팔이 잘려져 있었다.
누구에게 당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이 희생해서 보스를 처치한 것이겠지.
“팔은?”
“목숨과 바꿨습니다.”
“…… 싸게 넘어갔네요.”
“그렇죠. 그나저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아직 이번 라운드는 끝나지 않았는데요.”
나는 드루이드 플레이어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사탄과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리바이어던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말과 성전을 탈환하려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을 교란한다는 이야기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드루이드 플레이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자식이….”
“이쪽에도 나타날 수 있으니 조심해요.”
“원래 녀석은 탑을 지키고만 있을 뿐 성전에는 안 나타나지 않나요?”
“그건 옛날 게임이고. 이곳에서는 그놈의 행동이 전혀 다릅니다.”
“……”
“그럼 저는 먼저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도록 하십시오.”
드루이드 플레이어는 내 충고를 알아들었는지 병사들을 불러 모아 사탄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역에서 빠져나오려는 때, 나는 그들의 전투 방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니 성전 근처에는 파충류 악마들이 없었다.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서 푸른 도포의 플레이어 한 명이 반짝거리는 쇠 봉을 휘두르며 일당백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아까는 없던 놈인데.
‘…… 그나저나 능력치 공유인가.’
저 정도 힘이면 나머지 플레이어의 모든 능력치를 주입한 것 같은데, 굉장한 전투 실력이었다.
부웅-
콰직!
그의 방망이질 한 방에 거북이 병사의 등껍질이 박살났다.
“드루와!”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어 누군지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보이는 눈이 낯이 많이 익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는 나를 의식한 듯 두건을 강하게 조여 얼굴을 가렸다.
나를 아는 자인가?
왜 정체를 숨기려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생각하는 동시에 답이 나왔다.
“…… 왕천마.”
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눈의 생김새.”
“……”
“그리고 네 반응, 굳이 내 앞에서 신분을 숨기려 하는 중국 플레이어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하니 네가 바로 떠올랐다.”
“……”
그와 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왕천마가 거리를 재고 있음이 느껴졌다. 어차피 이런 대군을 상대로 혼자 덤벼들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지.
“가웨인.”
가웨인의 등장과 동시에 왕천마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김천재, 나와 싸울 생각인가?”
“아니. 나는 그냥 지나가던 길이야.”
“지나가던 길?”
“그래. 저 위쪽에 볼일이 있거든.”
내가 검지로 가리키는 곳에는 사탄의 요새가 있었다. 높게 쌓아 올린 황색의 탑에 회색의 가고일들이 주변을 날아다녔다.
“사타닉?”
“알고 있군.”
“…… 가는 건 자유인데 다른 이들의 발목을 붙잡지는 마라. 사타닉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게다가 네가 사탄에게 당해서 적의 수만 늘리면 복잡해져.”
역시 중국 서버 최정상 플레이어답다. 사타닉의 위험성과 물건을 지키고 있는 사탄 녀석의 능력을 아는 눈치다.
사탄은 네크로맨서의 조상 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우스트의 계약자.
게임상 나의 선대 같은 존재이다.
녀석의 무력은 일곱 대악마 중 루시퍼와 리바이어던을 제외하면 단연 으뜸.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아이템은 누가 사용할 예정이지?”
“그건 네가 알 필요 없지 않나?”
“왜 없어. 플레이어가 사나틱에 잡아먹히면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는 줄은 알고 있지 않나?”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깐 걱정하지 말라고.”
“……”
“됐다. 나는 갈 테니 여기나 잘 막고 있어.”
내가 등을 돌렸다.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만 다시 한 번 그의 힘을 알 수 있었다.
백색의 오라가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치솟아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오라. 심지어 이 게임의 최고 레벨을 달성한 나보다도 오라의 크기가 컸다.
‘…… 얕보면 안 되겠어.’
* * * * *
사탄이 머무는 탑 앞에 도착했다. 그 끝이 대도시의 빌딩만큼 높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까마귀들이 파먹은 인간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비릿하고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시체가 보기 싫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다.
지옥의 악마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 중 하나, 자신의 죄명과 맞는 악마에게 영혼을 받치는 과정.
신체를 잃은 인간들의 영혼은 이곳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몸을 받게 된다.
그와 동시에 정신 또한 붕괴하여 악마화 되어 버린다.
‘…… 그럼, 저기 있는 사람들은 플레이어일 수도 있는 건가?’
아니면 시스템이 만들어낸 그저 허울에 불과한 것인가.
탑 앞에 서자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시스템 메시지]
[숨겨진 이벤트 발생!]
[난이도: ???]
[보상: 사타닉 아이템]
-사탄의 숨을 거두어 루시퍼의 힘을 봉인하시오.
가고일들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박규환이 데몬을 타고 등장하자 놈들이 탑 안으로 몸을 숨겼다. 가고일들의 대장급인 몬스터가 적으로 나타났으니 맥을 못 추리는 것은 당연했다.
내 부대가 탑을 둘러싸자 탑에서 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가득해졌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탑 안으로 향하는 입구뿐.
나는 담뱃불을 붙인 후 김연희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네 책임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마.”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지금 사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잖아.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아?”
“……”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알았어?”
김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어차피 내가 이곳으로 향하는 사실은 사탄이 알고 있다. 김연희와 함께 움직이는 이상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깐.
나는 리바이브로 살려낸 악마 병사들과 스켈레톤을 탑 주변에 배치한 후 안으로 향했다.
오직 가웨인과 박규환.
그리고 김연희와 언데드 카멜레온을 데리고 말이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탑 안으로 들어가자 차디찬 복도에 내 발걸음이 울렸다.
불타오르는 밖과는 다르게 안은 시원하게 느껴졌다.
다만 빛이 없는 어둠만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계단이 보인다.
벽에 붙어 있는 원형의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밖에서 볼 때는 가고일이 많이 붙어 있었는데, 안에서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다른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계단의 끝에 도착하자 탑의 옥상으로 연결된 입구가 보였다. 붉은빛이 들어오고 있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주위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번쩍.
빛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순간 시간이 얼어붙었다.
[보스 발견]
[일곱 번째 라운드의 숨겨진 보스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을 발동시켜 스토리 영상을 재현합니다.]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하얗게 변했다.
이어 거대한 전장이 보였다.
악마와 천사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 신마 전쟁의 한 장면이다.
-성전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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