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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성전을 향해 달려오던 악마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앞에는 내가 소환한 스켈레톤 킹이 있었다.

모든 언데드 상태의 몬스터는 스켈레톤 킹의 영역에 침범할 수 없다.

그 누구라도.

이번 라운드는 전투 없이 지나가도록 한다. 아직 두 번째 보스인데 굳이 체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벨페고르의 선봉장인 ‘리치’가 굳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했다. 시스템이 정한 규격 외에서 벗어나려 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였다.

“크아아악! 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거야!”

스켈레톤 킹이 그녀를 내려보았다. 눈을 마주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털썩 꿇었다.

언데드 킹의 영역.

우리는 그 위대한 힘을 지켜보고 있다.

김연희가 감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네크로맨서는 이런 식으로도 싸울 수 있구나.”

“사용하기 나름이지. 미카엘은 확인하고 왔어?”

“응. 표정이 안 좋아서 말은 못 걸었어.”

“잘했다.”

“근데, 나 저 녀석들 잡아도 돼? 경험치 좀 얻고 싶은데.”

“…… 마음대로 해. 어차피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니깐.”

나는 앞서 살려낸 악마 부하들을 시켜 언데드 군단을 공격했다.

석상처럼 가만히 굳어있는 놈들을 잡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거리에 있는 돌을 걷어차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키에에에엑!

벨페고르의 병사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하나둘 쓰러져갔다.

김연희가 그 틈에 섞여 녀석들을 신나게 베어냈다. 신난 표정이 마치 쾌락을 즐기는 것 같았다.

‘…… 저 녀석도 전투 광이구나.’

뭐, 그룹 내에 저런 인물이 있으면 나쁘지는 않다.

전투를 좋아한다면 나 대신 전방에서 죽어줄 방패막이 역할이니깐.

부웅- 콰직!

김연희의 단검이 벨페고르의 언데드 병사 목을 내려찍었다.

힘이 부족했는지 관통하지는 못했다. 부족한 공격에 힘을 실으려 검의 손잡이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팍!

“크아! 이 맛에 암살자 하지.”

“……”

저 정도 공격력이면 진즉에 죽었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여섯 번째 라운드에서 어떻게 거인과 싸운 거지?

은신과 기습 능력은 어떨지 몰라도 저렇게 형편없는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니.

내가 암살 길드의 수장이었다면 김연희는 실격.

시스템이 구현하지 못한 길드 시스템이 없는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김연희! 그 검은 손잡이를 반대로 쥐고,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 어? 이렇게?”

그녀는 내가 말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조금 전보다 빠른 공격 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게.”

김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언데드 몬스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빠르게 허공을 가른 그녀의 검날이 구울의 목을 단숨에 그었다.

뎅겅.

녀석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털썩.

김연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오! 이거 좋은데?!”

“암살자가 검을 쥐는 방법도 모르면 어떻게 하냐. 기본 중의 기본인데.”

“…… 그렇지.”

대화하던 나는 갑자기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김연희의 행동이 미심쩍었는데, 이번 움직임도 수상하다.

생각해보니 메카니아에서 전투를 즐기던 그녀와는 전혀 다른 검 파지법이었다.

“……”

분명 피는 붉은색이었고.

그녀가 악마였다면 아까 전, 기회가 있을 때 내 목을 노렸을 것이다.

물론 성공하지는 못했겠지만.

나는 그녀가 사탄인가, 싶어 다시 확인하려다가 생각을 접었다.

‘사탄이었다면 어택 브레이커를 사용하지 못했겠지.’

우선은 지켜봐야겠다.

김연희 같지 않은 김연희를.

* * * * *

순서대로 언데드 악마를 베어내던 김연희가 리치 앞에 멈추어 섰다.

새하얀 드레스를 본 그녀는 고개를 숙여 대화를 시도했다.

“당신 마녀지?”

“……”

“이쁘장하게 생겼는데 왜 악마들이랑 손을 잡았대? 그것도 언데드 군단이랑.”

리치가 김연희를 위아래로 천천히 보더니 싱긋 웃었다.

“너, 나와 같은 과구나.”

“응? 같은 과?”

“그래,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때 쾌락을 얻는, 쾌락주의자.”

“……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무슨 소리기는. 이런 소리지.”

리치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김연희를 조준했다.

[‘리치’(이)가 영혼 고리 스킬을 사용합니다.]

촤르르륵! 소리와 함께 리치의 입안에서 쇠사슬이 튀어나와 김연희의 몸을 묶었다.

“뭐, 뭐야!”

공격에 성공한 리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야말로 뭐지? 어떻게 살아있는 인간이 생기가….”

생기? 생명이 있다면 당연히 있는 것 아닌가.

멀리서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내가 박규환에게 명령했다.

“처리해.”

박규환이 빠르게 달려가 김연희를 잡고 있는 사슬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캉!

잘리지 않았다.

‘뭐지?’

박규환의 검격이 통하지 않을 정도의 쇠사슬이라니.

두어 번 더 검을 휘둘러본 박규환은 사슬에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리치의 몸통을 횡으로 잘라냈다.

새하얀 드레스가 검은 피로 물들었다. 상체와 하체가 서서히 분리되며 좌우로 떨어졌다.

땅에 눕혀진 리치의 얼굴이 크게 웃어 보였다.

“카하하하하! 좋아! 너무 좋아!”

고통이라면 자신이 당하는 것도 좋다는 건가.

쇠사슬에서 풀려난 김연희가 검을 크게 휘둘러 리치의 이마를 찍었다.

놈의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가 금세 회색을 띠며 사망 표시로 변했다.

김연희가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나를 보며 웃었다.

“아이고, 실수! 도와줘서 고마워,”

“…… 조심해라.”

“오키오키. 도깨비 군인 아저씨도 고마워!”

김연희가 박규환의 엉덩이를 툭 쳤다. 과장하듯 반응하는 그녀의 행동이 신경 쓰였다.

평소에도 기분이 들떠있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반응을 보이기는 쉽지 않을 텐데.

‘…… 보통 수상한 게 아니야.’

성전을 향해 몰려오는 언데드 군단을 전부 처리했다.

임무를 마친 스켈레톤 킹이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 덕분에 쉽게 이길 수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스켈레톤 킹, 그대로 동쪽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스켈레톤 킹이 내게 경례를 하더니 동쪽을 향해 걸었다.

그곳에는 벨페고르를 상대 중인 중국인 플레이어들이 있다.

킹이 돕는다면 녀석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

김연희가 피에 젖은 얼굴로 성전으로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게 결계를 통과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확실하게 사탄이 아니었다.

악마라면 공간을 이동하지 않는 이상 결계를 쉽게 통과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김연희, 좀 쉬지 그래?”

“됐어. 나도 동쪽으로 가서 벨페고르라는 놈하고 싸울게.”

얼마나 많은 악마를 처리했는지, 검은 피에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거울이나 좀 보지 그래?”

“거울?”

“그래. 네 모습이 완전 악마야. 피에 젖은 꼴 좀 봐.”

“……”

그녀는 주머니에서 네모난 파운데이션을 꺼내더니 그 안에 있는 작은 거울을 보았다.

“정말이네….”

“그 꼴로 다른 플레이어한테 가면 언데드인줄 알고 공격당한다.”

“…… 알았어.”

김연희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옷깃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녀의 옷깃으로 닦아내기에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피였다.

“이거 써라.”

내가 손수건을 던졌다.

그녀는 가볍게 낚아채더니 고개를 반만 까딱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땡큐.”

* * * * *

[두 번째 보스인 ‘벨페고르’가 사망했습니다.]

[일곱 번째 라운드에 참여하신 모든 플레이어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중국 플레이어의 승리 소식이 들려왔다.

일곱 악마 중 제일 약하다고 소문난 나태의 벨페고르. 그래도 앞선 라운드의 보스보다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너무나도 쉽게 처리된 것 같다.

[남은 시간: 08:31:44]

두 번째 보스가 나온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았는데, 중국 플레이어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강한가보다.

무시하면 안 되겠다.

김연희도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아쉬운 탄식을 뱉었다.

“아! 내가 죽였어야 했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김연희.”

“왜?”

“너 왜 이렇게 악마들하고 싸우고 싶어 하는 거지?”“……”

“네가 나대는 것까지는 상관없는데, 이상할 정도로 악마 사냥에 집착하네.”

김연희는 내 말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악마들을 엄청나게 싫어하니깐.”

“악마는 아무도 안 좋아할걸.”

“맞는 말이기는 한데, 너도 알잖아? 내가 엘프 광인걸.”

그렇다.

조영기와 김연희는 PC게임에서도 엘프 종족을 선택할 만큼 엘프광이었다.

물론 캐릭터 선택이 없는 이곳에서는 불가피하게 인간의 몸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엘프광인 거랑 악마를 싫어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 몰라서 묻는 거야?”

“그래.”

“원래 작중에서는 엘프 헬름이 악마에 의해서 사라지잖아! 너 그거 몰라?”

모른다.

엘프들이 악마 때문에 사라진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물론 드워프와 엘프가 사는 곳을 공격한 것은 루시퍼의 부하가 맞긴 했다.

그렇지만 엘프 헬름이 사라진다는 말은 처음 들어 봤는데….

“엘프 헬름이 사라져? 작중이라는 건 이 게임의 스토리텔러가 소설로 적어놓은 거 말하는 거지?”

“어! 아저씨 정말 모르는구나.”

“모르겠는데. 엘프 헬름이 왜 사라진다는 거지?”

김연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고인물이라더니 그런 것도 모르나.”

“……”

“우리가 엘프 헬름에 방문했던 다섯 번째 라운드. 그때 임무에 실패하면 악마들이 대륙 전체를 지배하잖아.”

그래?

나는 임무에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우리 그룹은 모든 이벤트를 성공으로 끝마쳤으니 알 턱이 있나.

시작부터 끝까지 성공만 해봤기에 실패한 임무는 알지 못했다.

“모르겠다.”

“허허…. 당신 진짜 김천재 맞아?”

“맞아. 우선 그 이야기나 계속해봐.”

김연희가 씨익 웃더니 대화를 이었다.

“뭐 따로 설명해줄 것도 없어. 그냥 악마들이 엘프 헬름을 지배하면, 거기서 루시퍼가 부활해서 대륙 전체를 멸망시키는 내용이지.”

“그럼 그 게이트 안은 전부 악마들이 우글거리나?”

“빙! 고! 예전에 내가 PC로 즐길 때는 그 때문에 엘프 헬름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됐었거든. 임무를 실패해서….”

그녀가 왜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게이트에 제한이 걸리면 그저 초기화를 시키면 된다. 임무에 실패한 모든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실패가 없던 우리 그룹을 제외한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게이트 입장에 제한이 걸리면 리셋하면 되지 않나?”

“그렇지. 근데 생각해봐, 여기서는 리셋이 안 되잖아?”

“…… 그래서?”

“그럼 우리도 다섯 번째 라운드에 돌아갈 수 없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우리가 왜 다섯 번째 라운드로 갈 수 없다는 걸까.

분명 이곳에서의 다섯 번째 라운드는 내가 확실한 승리를 안겨주고 왔는데 말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룹 확인창을 보았다.

그룹원들을 한 명씩 확인하던 내가 침을 꿀꺽 삼켰다.

“김연희.”

“응?”

김연희를 부름과 동시에 질문을 할까 말까 망설여졌다.

혹시라도 내 예상이 아니면 그녀의 기분이 굉장히 안 좋을 테니깐.

그녀의 똘망똘망한 눈을 바라보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너 혹시. 악마한테 당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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